오늘도 쓸데없는 것을 만들었습니다 - 어느 프리랜서 디자이너의 취미 수집 생활
김은경 지음 / 북라이프 / 2019년 6월
평점 :
절판


 

 가끔 내가 혼자 틀어박혀서 뜨개질이니, 소품이니 이것저것을 내키는 대로 만들어 대는 날이 있다. 손을 조물락대면서 죄그만 무언가를 만들다보면 시간은 얼마나 빨리 가는지. 만들기를 시작해서 중간에 잠시 ‘몇시지?’ 싶어 시간을 확인하면 새벽 두시나 세시가 되기 일쑤고 거기서 좀더 몰입해서 빠져 있다 보면 밤을 새는 것도 십상이다. 그런 날, 그런 나를 두고 어머니는 가끔 ‘또 공장 돌렸느냐?’며 웃으신다.

 

 손으로 뭔가를 만들어내는 건 참 재미있는 일이다. 악필로 명성을 떨쳐온 나는 그리기니 켈리니 하는 것들에는 영 젬병이라 그런 쪽으로는 아예 눈길도 주지 않는다. 그러나 베이킹이니 점토니, 수공예니 하는 것들에는 제법 손가락이 민첩하게 움직여서 다 만들어 놓고 혼자 뿌듯해 하곤 한다. 그러나 어디까지나 혼자보기에 좋을 뿐이지, 다른 사람에게 내놓지는 못한다. [오늘도 쓸데없는 것을 만들었습니다]의 저자 김은경은 나보다 금손이라 그림부터 가죽 공예, 뜨개질, 인형만들기 등 손으로 만드는 무엇이든 만들어낸다. 장르와 분야를 가리지 않는 이 정도의 금손이면 인정!

 

 프리랜서 디자이너로 일하고 있는 김은경씨는 디자이너로 취직하여 십여 년을 근무했다고 한다. (그 세월과 사연이 이 에세이에 다 드러나 있지 않지만 어떠한 생활이었을지 절절히 이해된다.) 그는 여전히 디자이너로 일하고 있지만, 여러 가지 취미들을 함께 겸하며 차곡차곡 살아가고 있고 이 책은 그런 저자의 생활의 자취를 담아 탄생한 책이다. 


 ‘예쁜 쓰레기’라는 말이 있다. 아무짝에도 쓸모 없는 데 단지 보기에 예쁘다는 이유만으로 버릴 수 없는 물건들을 일컫는 말이다(심지어 대부분 비싸기까지 한 물건이다). 그런데 저자는 쓰레기로 버리려던 것을 재활용해서 쓸만한 쓰레기인데 심지어 예쁘기까지 한 노트를 만들었다. (본문 챕터 7, 쓸만한 쓰레기 중에서) 본업이 디자이너이니 그림을 그리는 뭐 그런 취미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당연하다는 마음으로 책을 읽었는데, 뜨개질도, 가죽 공예도 수준급인 저자의 금손이 만들어낸 쓸데 있는 것들을 읽다 보면 내 손도 절로 근질거린다.
 이 책은 저자가 그동안 손으로 만들어온 작품들을 만드는 방법만을 설명한 실용서는 아니다. 그것을 만들면서 저자가 생각하고 경험했던 일상의 일들이 가지런한 글자가 되어 차곡차곡 함께 실려 있다.

 

 저자는 ‘일 년 사계절, 손으로 만드는 무언가는 여전히 답이 없는 고민에 시달리는 나를 물레처럼 굴려줬다. 말이 좋아 프리랜서지 대부분을 쉬고 있는 지금, 이러다 히키코모리가 되는 건 아닐까 싶을 정도로 집을 좋아하는 집순이가 그래도 심심풀이 땅콩 삼을 취미가 있어 하루하루 얕은 재미를 느끼며 살고 있다’고 저자의 말에서 전한다. 고민이 있거나, 생각이 정리가 되지 않거나, 머리가 복잡할 때 우리 중 많은 사람들이 드로잉북이나 필사북을 찾거나 수세미라도 떠보려고 수공예 소모임앱을 기웃거리는 것은 다 이유가 있다. 손으로 조물딱 대는 것은 머리를 비워주는 일이어서가 아니겠는가. 그렇게 생산해 낸 것들에 자부심을 느끼고, 생산하느라 흘러가버린 시간에 근심도 같이 흘려보내는 일이, 손으로 만드는 행위가 주는 선물이 아닌가 싶다.

 오늘도 쓸데없는 것을 만드는 것을 좋아하는 저자가 마찬가지로 쓸데없는 것을 만들고 있는 모든 이들을 응원하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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