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련님
나쓰메 소세키 지음, 김정오 옮김 / 하다(HadA)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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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쓰메 소세키는 정말, 진짜, 참 잘 쓴다고 생각했다. 첫 페이지의 몇 줄을 읽는 것만으로 화자의 개성을 단번에 느끼게 되고 그 매력에 푸우우욱 빠지게 된다. 유학시절 신경쇠약을 앓았다던 이 일본의 예민하고 시니컬한 작가는 본인의 성정이 그대로 묻어나는 ‘도련님’을 통해 부조리하고 정의롭지 못한, 못난 세상을 걷어찬다.

 서울대학교 선정 고전 독서 뭐 어쩌고~가 표지에 작게 들어가 있긴 한데, 굳이 그런 배지를 달지 않아도 되는 작품이 아닐까 싶다. [나는 고양이로소이다]로 대표되며 일본의 국민 작가라는 소개로 우리나라에 익숙한 나쓰메 소세키의 작품은 고양이~~~ 외에도 [마음], [도련님], [그후] 등이 우리나라에 번역되어 들어와 있다. 


 [도련님]은 세상 물정 모르는 뚱딴지에 철부지에 호쾌하고 단순하지만 예민한 성정의 도련님이 부유한 부모님이 모두 돌아가신 후 수학선생이 되어 시골학교에 부임하면서 벌어지는 일들을 그린 작품이다. 첫 꼭지부터 무척이나 웃긴다. 이 도련님이 자기를 소개하는 대목으로 작품이 시작하는데, 실제로 이런 사람이 주변에 있으면 나는 겉으로는 티를 못 내도 속으로는 ‘아유, 저 또라이’ 이래가면서 우습게 여겼을 것 같다. 실제로 작품 속에서 도련님은 다른 사람들로부터 자주 비웃음을 당한다. 그런데 여기서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은, 이 도련님을 비웃는 작자들이 대부분 비열하고 비겁하고 계산적이고 위선적인데 그것을 마치 성숙한 어른의 세계, 다 그렇게 돌아가는 세상사의 이치인 것처럼 꾸며대는 사람들이라는 점이다.

 

 학문을 떠나서 개인의 덕으로 감화하지 못하면 진정한 교육자가 될 수 없다는 둥 터무니없고 과도한 요구 사항을 마구 늘어놓았다. 그렇게 훌륭한 사람이면 그깟 월급 40엔을 받고 멀고도 먼 이런 촌구석까지 내가 올 리 만무하지 않았겠는가. (중략)
 “교장 선생님께서 하신 말씀대로는 도저히 실천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이 임명장을 도로 반납하겠습니다.”
 그러자 교장은 너구리처럼 생긴 눈을 깜빡거리면서 내 얼굴을 쳐다보았다.
 “방금 내가 한 말은 어디까지나 희망사항일 뿐입니다. 선생께서 이와 같은 희망사항을 액면 그대로 실천할 수 없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습니다. 걱정하지 않아도 됩니다.”
 교장은 이렇게 말하며 웃었다. 그렇게 잘 알고 있다면 처음부터 겁을 주지나 말았어야지.
 36-37쪽 

 

 생각해 보니 세상 사람들 대부분은 그릇된 짓을 하도록 권장하는 것만 같았다. 그릇된 짓을 해야만 사회에서 도태되지 않고 출세하는 것으로만 인식하는 분위기였다. 간혹 정직하고 때가 붇지 않은 사람을 보면 세상 물정에 어두운 철부지 도련님이라는 둥 샌님이라는 둥 괜한 트집을 잡아 깔아뭉개며 업신여긴다. 그런 식이면 초등학교와 중학교에서 도덕 선생이 학생들에게 거짓말을 하면 안 된다. 정직해야 한다고 가르치지 않는 편이 낫다. 학교에서 차라리 대놓고 거짓말하는 방법이라든지 남들을 믿지 않는 기술을 터득하게 한다든지 남을 속여 이용하는 술책을 가르치는 편이 세상을 위하고 당사자를 위해서도 보탬이 될 것이다. (중략)
 빨간 남방이 소리내어 웃은 이유는 나의 단순함을 비웃은 것이다. 단순함과 진솔함이 비웃음을 사는 세상이라면 어쩔 도리가 없다. 기요 할멈은 이런 상황에서 절대로 웃는 법이 없었다. 대단히 감동하며 귀담아들어 주었다. 그런 점에서 기요 할멈이 빨간 남방보다 훨씬 훌륭했다.
 “물론 나쁜 짓을 하지 않으면 되지 하지만 본인이 나쁜 짓을 하지 않더라도 남이 나쁜 짓을 하는 걸 깨닫지 못하면 낭패를 보게 된다는 걸세. 세상은 만만하고 담백한 것처럼 보여도, 친절하게 하숙집을 소개해 준다고 해서 절대로 방심해서는 안 되는 법이야.”
106-107쪽

 

 

 이 짧은 소설 중 이렇게 많은 텍스트를 인용해서 올리다니. 도련님이 보기라도 했다면 ‘아예 전체를 타이핑해서 공개해두지 그래?’라고 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두 부분은 이 또라이 비슷한 도련님의 강직함, 정의로움, 결벽증에 가까운 정직함을 드러내주는 부분이라 꼭 인용하고 싶었다. 이 부분만 읽어도 느껴지지 않는가? 도련님의 매력에 빠져들고 싶지 않은가? 기요 할멈이 왜 그토록 입이 마르고 닳게 도련님을 칭찬하고 어여뻐하였는지 너무나 공감이 된다. 나도 이 시대의 기요 할멈이 되고 싶으나, 도련님이 기요 할멈 같은 여자는 거의 찾아볼 수 없다고 잘라 말했으니 진정해야겠다.

 누군가 진짜 재밌는 일본 소설을 추천해달라고 하면 나는 무라카미 하루키나 미미여사, 뭐 이런 작가들도 좋겠지만 나쓰메 소세키의 [도련님]을 가장 먼저 입에 올릴 것 같다. 이야기도, 인물도, 마무리까지 모든 것이 완벽한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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