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센서스
제시 볼 지음, 김선형 옮김 / 소소의책 / 2019년 5월
평점 :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한용운이 쓴 님의 침묵이라는 시를 나는 너무나 좋아한다. 빼앗긴 나라의 주권을 빗대어 연인과의 이별로 쓴 그 시의 주제 때문만은 아니다. ‘아아, 님은 갔으나 나는 님을 보내지 아니하였습니다.’로 완성되는 그 시의 마무리는 정말 너무나 아름답고 대단해서 읽을 때마다 혹은 떠올릴 때마다 경이에 빠지곤 한다. 기억하고 있기에, 간직하고 있기에 이별하였으나 이별하지 않은 것, 보냈으나 보내지 않은 것. 이것을 뒤집으면 이별이란 기억하고 간직하는 과정 혹은 상태라는 의미라고도 정의할 수 있지 않을까.
언젠가 ‘ㄱ, ㄴ, ㄷ’에 맞추어 내 기억을 정리해보려는 시도를 한 적이 있다. 내가 어디까지 왔을까, 나는 어떻게 살아왔을까에 대한 의문에 가능한 객관적이고 명료한 (타자와 공유 가능한) 정리를 하고 싶어서였다. 제시 볼의 신작 [센서스]를 읽으며 나는 그때의 내 시도와 맥락이 비슷한 주인공의 여정을 읽으며 묘한 기시감에 빠졌다. 이것은 그들의 이야기인가, 나의 이야기인가? 하는.
몽환적이고 추상적인 내용과 환상과 현실을 오가는 화자의 내러티브 덕에 이 소설을 읽는 것은 쉽지 않았다. 그러나 소설을 거의 다 읽어갈 때 쯤, 이 소설의 종착지는 결국 헤어짐이라는 것을 상기하게 된다. 더 이상 아들을 책임질 수 없는 아버지, 아버지의 옆에서 살아갈 수 없는 아들. 아버지는 아들을 기차로 떠나 보내고 흙 속으로 들어간다. 나는 이 지점이야말로 이 소설의 진짜 재미있는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아들과 여정에 나선 아버지는 병든 몸으로 불치의 병 끝에 죽음이 예정되어 있었다. 그래서 이야기 끝에, ‘내 무덤, 내 무덤, 내 무덤’이라고 화자가 되뇌이는 것이 이상하지 않다. 그러나 신기하게도 이야기는 마치 아들을 요단강 건너로 떠나보내고 아버지만 홀로 존재하는 것 같이 읽힌다. 자식이 죽으면 마음에 묻는다 하던가. 마치 그것처럼, 아들이 아버지를 잃은 것이 아니라, 아버지가 아들을 잃고 홀로 남겨진 듯한 시선이 소설의 끝에 길게 그림자로 남는다.
우리의 삶은 어쩌면 모두가 저 ‘센서스’일 것이다. 끊임없이 누군가의 정보가 내게 기록이 되고, 간직이 되고 그러면서 나의 생애가 통째로 하나의 기록이 되는 것. 이 기록의 과정에서 나는 무엇을 남기고 무엇을 보존해야 할 것인가. 소설의 한계를 뛰어넘어보려는 저자의 시도에 박수를 보내면서도, 생애의 끝을 보여주는 이야기가 나를 한없이 허무하고 무기력하게 만드는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