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오늘 행복할 거야
정켈 지음 / 팩토리나인 / 201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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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면서 누구나에게 닥치는 것 같다. 그런 순간들. 정말 난데없이 일어나는, 재난이라고밖에 말할 수 없는 그런 순간들.
그건 어떤 특정한 일이나 사건이 아니다. 그게 뭐 되게 크고 별난, 대단한 일이어서 그런 것도 아니다.
정말 아무것도 아닌 일에도, 아무것도 아닌 말에, 정말 한없이 별 것 아닌 상황일지라도 그 순간에 내가 그것을 상처라고 받아들여버리면 나는 어떻게 손 써볼 수도 없이 넉아웃 되고 마는 것이다.

 


그림 에세이를 그리고 쓰면서 정켈 작가가 거기에 담은 것도 그런 것들 아니었을까?

 


무심코 던진 돌에 개구리가 맞아 죽을 지경인데, 심지어 개구리는 죽어가면서도 돌을 탓하지 못하고 자기가 개구리인 것을 탓하고 있는 복장 터지는 상황.


그런데 이 이야기에서 하나만 바꿔보자. 돌에 맞은 개구리가 만약 개구리가 아니라 000이라면.
오리 사이에 버려진 백조가 자기를 오리라고 알고 컸다는 이야기를 전국민이 다 아는 판국에, 저 개구리가 실은 개구리가 아니고 황소였다고 한들 뭐가 어때서? 왜 안되는데?

돌맹이에 맞은 황소는 죽지 않는다. 죽기는 커녕 돌 던진 데를 쫓아가서 들이 받지.

 

그래서 나는 요즘 생각한다. 어차피 이렇게 된거 개구리 말고 황소로 살아야겠다.

 

정켈 작가가 그린 에세이 속에서 '나'는 촛농 처럼 녹기도 하고 흙처럼 부서지기도 한다. 그렇게 형체를 잃었다가 기운을 다시 얻은 '나'는 더 견고한 형태로 다시 일어선다. 액체괴물처럼 내 뒤통수 위에서 나를 덮친 슬픔이나 외로움이나 무력감이나 분노나 절망... 이런 것들은 '부디 내가 준비되었을 때 오라'고 제어할 수 없다. 어디 뭐 세상이 내 사정 봐주나? 그럼 나도 세상의 사정을 봐줄 것 없다. 누가 뭐라고 생각하든지 말든지, 내가 사회악이나 민폐나 공공질서 파괴를 수행하는 게 아닌 이상 내가 좀 까탈스럽고 예민하고 독특하고 별난 나로 살아도 문제는 1도 없다. 아마 촛농처럼 녹고 흙처럼 부서지는 과정은 저 사실을 몸으로 깨우치는 시간인 것 같다.

 

이 시간을 겪은 정켈 작가는 투박하고 거친 스케치, 날것 그대로의 펜선을 숨기지 않고 드러낸다.

'나는 내가 나라서 마음에 드는데요, 뭐. 그냥 이게 나인데요.' 마치 이렇게 읖조리듯.


 

 

어따 개수작이야 - P1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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