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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틴어 수업 - 지적이고 아름다운 삶을 위한
한동일 지음 / 흐름출판 / 2017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이 책 앞에는 이런 문구가 붙어 있다.
'지적이고 아름다운 삶을 위한'
아름다운 삶이란 내가 살고 싶어서 살아지는 것이 아닌데, 많이 안다고 지적인 사람이 된다고 해서 내 삶의 앞글자에 '아름다운'이라는 단어가 붙을 수 있을까?
이 책을 다 읽은 후에도 여전히 저 의문은 남는다.
이 책이 가르쳐준 라틴어의 세계, 명확하고 정교한 언어와 의식의 세계를 엿보고 그 힘으로 잠시 시야의 확장을 느껴보기도 했다.
그것만으로도 이 책은 읽을만한 책이고, 라틴어수업은 너무나 유익하고 기분좋은 수업이다. 이 수업에서 접한 지혜들을 살아가는 중에 발휘해보고, 그런 실습의 순간들이 쌓이면 '아름다운 삶'이라는 형태로 가까이 나아가게 되려나?
요즘 생각이 너무 많아서... 잡설이 길었지만 어쨌든 이 책은 참 재미있다.
영화 [와호장룡]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찬탄한 그 장면, 대나무 숲에서 장쯔이와 주윤발이 춤추듯 대결하는 씬에서 감독은 주윤발에 진정한 고수의 모습을 담았다. 대나무 가지 끝에 서더라도 나무가 부러지지 않고, 바람이 불면 잎사귀들이 눕는 방향으로 함께 기울이며 자연 속에 어긋남이 없이 어우러지는 것이 고수였다. 막힘이 없고 무해하고 부드러운 경지.
라틴어의 단어와 문장을 가르치며 신학과 법학을 넘나드는 저자의 강의는 청명한 대나무 숲의 바람과 그 숲을 날듯이 거니는 고수를 연상케 했다.
이 책이 유명한 줄은 진작부터 알았지만 왜 유명한지는 잘 몰랐다. 조금 더 솔직해지자면 나는 이 책이 소설인줄 알았다. 나의 무례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2010년부터 2016년까지의 강의 내용을 엮어 책으로 냈다는 첫 페이지 글을 읽고는, 이전에 읽었던 비슷한 부류(강의를 엮어 책으로 낸 것)의 서적들을 떠올렸다(지금은 그런 책들의 제목도 기억 못하는 주제에...). 그리고는 ‘뭐, 그냥 사색적인 이야기를 이리저리 잘 섞은 강의인가?’라며, 책 한 줄도 읽지 않은 채로 재단하는 짓거리를 하기도 했다. (웃기지도 않지, 참.)
이렇게 회개하는 내용으로 서평을 쓰는 가장 큰 이유는 저자의 용기에 탄복해서다.
신을 섬기는 사제로서, 법조인으로서 그리고 끝없이 자신을 바라보는 공부자(노동자)로서 저자 한동일은 정말 용기 있다. 인생이라는 긴긴 시간 속에 우리 각자가 응당 해야 할 ‘공부’라는 삶의 일부에 대한 저자의 철학(공부하는 노동자)이 대담하고, 신학자이면서도 ‘우리는 저마다 신의 계명을 버리고 사람의 전통을 좇고 있는 것은 아닌가’라고 자문하는 그 고백이 용기 있다.
라틴어 각 단어의 원어와 파생어를 설명하며 여러 언어를 넘나든다거나, 언어는 곧 문화이기에 여러 언어만큼이나 드넓은 지구촌의 나라와 역사들을 아우르는 그의 식견에도 박수를 보내게 되지만, 이 방대한 양을 이토록 재미지게 설명하고서도 ‘나 역시 학생들에게 배운다’고 한 강의를 이 책의 첫 장으로 시작하는 그의 겸손함이 아름다워 내용이 더욱 의미 있게 읽힌다.
요한복음 6장에 ‘말言이 영靈이요’라는 구절이 있다. 내가 너무 좋아하는 구절이다. 전에 누군가 그랬다. ‘내 말은 나라는 존재의 실체’라는 말은 너무 관념적이라나 뭐라나. 하지만 말이 곧 그 사람이라는 것은 관념도 아니고 모호하지도 않다. 향을 싼 종이에서 향내가 나고 생선을 싼 종이에서는 비린내가 나듯이, 비린 속을 가진 사람이 향을 낼 수 없고 향기로운 속을 가진 사람이 비린내를 내지 못한다. 그래서 말의 체계인 언어에, 그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과 세상이 들어있겠지. (저자도 설명했지만) 아마 라틴어를 공부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라틴어라는 ‘말의 세계’에 오래도록 깃든 깊은 학문과 사유의 문화를 흠모하기 때문일 것이다. 이 책을 통하여 라틴어 단어 겨우 몇 개를 읽어본 나조차 ‘정말 향기로운 언어’라고 느낄 정도이니. 아마 내가 지금 학부생이고 이 책을 읽고 강의 소식을 들었다면 나 역시도 저자의 라틴어강의를 청강하러 찾아갔을 듯하다.
강의를 직접 찾아가 들을 상황은 되지 못하나, 이런 강의들이 좀더 많아졌으면 좋겠다. 단순히 ‘언어에도 온도가 있네, 인격이 있네’ 이런 주제의 강의나 책 말고. 언어의 본질적인 특성과 역할을 탐구하면서, 마치 거울처럼 그 언어에 비춰보이는 우리의 세상을 은근히 생각하고 성찰할 기회를 선사하는 그런 강의. 듣는 것만으로도 영혼이 조금이라도 씻어지는 듯한 그런 강의 말이다.
여기서 우리는 ‘도 우트 데스’의 상호주의 원칙의 붕괴로 인해 인류가 겪어야 했던 인간의 추악함과 잔인함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특히 제2차 세계대전 중 나치와 일본이 저지른 만행은 상호주의 원칙이 깨짐으로써 벌어진 인류의 가장 추악하고 잔인한 역사였습니다. "네가 주기 때문에 나도 준다"라는, 이 단순해 보이는 믿음 없이는 개인과 사회, 국가와 국가는 존립할 수 없습니다. 여기에서 간과할 수 없는 것이 하나 있습니다. 결국 ‘네가 주기 때문에 나도 준다’라고 말할 수 있으려면 개인이든 국가든 상대에게 줄 수 있는 그 무언가가 준비되어 있어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생각해봐야 합니다. 과연 나는 타인에게 무엇을 줄 수 있을까요? 어떤 것을 준비해야 할까요? 12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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