쿡스투어 - 세상에서 제일 발칙한 요리사 앤서니 보뎅의 엽기발랄 세계음식기행
앤서니 보뎅 지음, 장성주 옮김 / 컬처그라퍼 / 2010년 2월
평점 :
절판


  방송용 분장으로 떡칠이 된 채 주방에 돌아오면 보란 듯이 놀리기도 했다. 뭔가 새로운 걸 찾아야 했다. 그래서 나는 담당 편집자에게 이런 제안을 했다. ’완벽한 한끼‘를 찾는 거예요.
14-15쪽

 

 나는 먹방을 좋아한다. 요즘 방송가에 난무하는 ‘자극적인 음식들을 많이 그리고 과감하게 먹는’ 방송 말고. 최불암이 진행하는 ‘한국인의 밥상’이나 방랑식객 임지호가 출연하는 ‘식사하셨어요’ 혹은 그의 요리 다큐들이 좋다. 이런 방송들을 보면서 나는 이끼나 나뭇가지도 먹을 수 있다는 데에 놀라고 심지어 그것이 맛있을 수 있다는 가능성에 두 번 놀란다. 하지만 단순히 놀라움만 주는 건 아니다. 청국장 같이 푸근하고 담담한 최불암의 목소리에 실려 한국의 각종 요리들의 배경과 문화가 전달되고, 사람에게 요리란 단순한 에너지원이 아니라 정이고 삶을 지속하게 하는 산소라고 여기는 요리사(임지호)가 만들어내는 요리를 보며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과 사람을 느낀다. 그리고 거기서 감동을 받는다. 먹방이라고 하면 이 정도는 되어야지.

 

 색채는 전혀 다르지만 나는 앤서니 보댕의 요리방랑기에서 내가 좋아하는 먹방들과 비슷한 빛을 발견했다. 직업 요리사의 삶도 좋아하고 방송으로 유명해지는 것도 물론 좋아하지만 이 끼 많은 요리사는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각국을 다니며 ‘완벽한 한 끼’를 찾겠다니. 책의 서두에 있는, 그의 고단하고 다사다난했던 여정의 단초이자 이 책의 시발점이 된 저 구상을 읽은 그 순간부터 나는 이 요리사가 마음에 들었다. 끼니로서의 요리가 아닌, 문화로서의 요리를 발견하려는 꿈. 이 꿈에 구미가 당기고 흥미가 생긴다면 누구나 이 책을 좋아하게 될 거다.

 

 아, 한 가지 조심스러운 점은 있다. 여정을 선사하는 화자 그러니까 저자의 입은 생각보다 거칠다. 마치 밥집 주방이 일반인의 생각보다 훨씬 거친 것처럼. 성적인 농담이 즐비하고 과격한 단어나 표현들이 다수 등장한다. 그러니 포르투갈로 찾아간 첫 번째 에피소드를 읽기 시작했다면 미리 마음의 준비를 해야 한다. 그리고 그냥 적응해버리면 된다. 저 거친 입담에 어떻게 적응할 수 있냐고? 이렇게 생각해보면 간단하다. 만약 입담이 얌전하고 신사적인 인물이 이 여정에 나섰다면 아마 이 방송은 실패했을 것이며, 책도 당연히 재미가 없었을 것이다. 앤서니 보댕 정도의 입담이기에 이런 장면들이 이렇게 생생하고도 구성지다.

 

 (러시아에서 사우나와 얼음수영을 체험하게 된 저자) 허둥지둥 다리에 수영복을 꿰었다. 평소 같았으면 푸드 네트워크 시청자들 앞에서 불알을 덜렁거릴 생각에 변태적인 기쁨을 느꼈을 테지만, 추위에 쪼그라들어 잣만 해진 불알을 보여 주긴 싫었다. 나는 바깥문을 열고 미끄러운 발판을 맨발로 총총 뛰어 호숫가에 이르렀고, 얼음 낀 계단을 내려간 다음, 얼어붙은 호수에 몸을 던졌다.
 충격적이었다거나 숨이 턱 막혔다, 굉장히 주웠다, 뭐 이 따위 표현은 그 경험을 묘사하기에 턱없이 부족하다. 그건 ‘투명한 화물 열차에 들이받히는 느낌’이었다. 온몸의 세포 하나하나와 원자 하나하나가 미친 듯 날뛰었다. 불알 두 쪽은 빗장뼈 근처 어딘가를 향해 솟구쳐 올랐고, 뇌는 소리 없이 비명을 질렀으며, 두 눈알은 눈구멍에서 뛰쳐나오려고 기를 썼다.
160쪽

 

 ㅋㅋㅋ 저 뒤에 자기가 물에서 나오면서 비명을 질렀는데 다른 사람이 들었으면 누가 자동차 배터리로 고양이를 고문하는 줄 알았을 거라는 둥 썰을 풀다가, 눈 덮인 얼음장 위로 풀썩 누웠는데 춥기는커녕 기분이 굉장히 좋았다는 체험담이 이어진다. 나는 이 부분을 읽으면서 마치 내가 얼음수영을 체험하는 것처럼 쿡쿡거리며 웃다가 이내 ‘나도 하고 싶다’고 떠올렸다. (40도에 육박하는 폭염 속에서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을지도)


 15번의 에피소드 전체가 결국 저것으로 귀결된다. ‘나도 하고 싶다, 나도 가고 싶다, 나도 먹고 싶다’. 저자는 단순히 ‘완벽한 한 끼’ 그러니까 요리 그 자체만을 전달해주는 일에서 나아가 그가 경험한 현지의 공기를 독자에게 전달하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그리고 독자는 그의 체험이 얼마나 흥미진진한가에 이내 동화되어버리고 만다. 그래서 온갖 벌레들이 들끓고 변기가 역류하는 험한 숙소에서 뒹구는 체험이라고 할지라도 일단 가보고 싶다는 마음에 들게 되고 만다.

 

 책의 제일 마지막, 그가 쓴 마지막 에피소드는 황홀하기까지 하다. 저자는 서인도제도의 어느 해변에서 아내와 함께 밥을 먹는다. 요리가 나오는데 30분 이상이 걸려도 재촉하거나 신경쓰지 않는다. 맥주, 모래, 파도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 완벽은 돼지고기를 굽는 시간이 몇 분이냐거나 어느 재료를 어떻게 처리해야 한다는 데에 달려 있는 게 아닌가보다. 저자는 세상을 두루 돌며 많은 것을 배웠다고 글을 마치고, 나는 책을 덮으며 그의 경험담으로부터 나 역시 많은 것을 배웠다고 기뻐하며 읽기를 마쳤다.

 

 하아... 그래서... 내 휴가는 어디로 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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