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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론 (무삭제 완역본) ㅣ 현대지성 클래식 20
존 스튜어트 밀 지음, 박문재 옮김 / 현대지성 / 2018년 6월
평점 :
개고기 식용 금지 청원이 이슈가 되면서 이를 다룬 기사의 댓글도 갑론을박으로 와글와글했다. 개고기 식용을 혐오한다는 어느 사람의 말에 누군가 또 댓글을 달았다. ‘개고기 식용을 혐오한다는 말을 이렇게 공개적으로 적을 자유가 있다면 나 역시 한 마디 남기겠다. 개고기 식용 혐오를 혐오한다. 혐오할 자유가 있다면 혐오를 혐오할 자유가 있다.’
도덕이라는 과목을 수업 시간에 배울 때부터 나에게 참으로 어려웠던 몇 가지 개념이 있는데 그 중 하나가 ‘자유’다. 무엇을 자유라고 할 것인가. 이 의문은 자유의 본질적 성격, 자유의 범위, 자유의 기능 등등을 모두 포괄하는 질문이 아닐까 싶다. 이 질문에 대해 나는 20년이 넘게 고민해왔고 여전히 고민하고 있다.
존 스튜어트 밀은 그의 저서 [자유론]에서 자유는 개인의 고유한 권리이며 절대적인 것이라고 썼다. 이 자유의 범위와 역할을 결정하는 두 가지 축으로 효용과 해악을 들었다. 개인의 효용 뿐만 아니라 사회와 국가 나아가 인류 전체의 미래를 위하여 (개인과 전체의 효용을 위하여) 개인의 자유는 억압되어서는 안 된다. 그러나 개인이 행사하려는 자유가 타자에 해악을 미칠 경우 그의 자유는 간섭받을 수밖에. (사실 이 부분이 내가 가진 고민에서 가장 어려운 부분이다. 해악과 효용을 가르는 기준은 어떤 가치를 중심으로 세워야 하는가?)
존 스튜어트 밀은 [자유론]에서 국가, 사회, 여론 등이 개인의 자유를 간섭하고 억압하는 일 즉, 개인의 자유를 훼방하는 권력에 대하여 아주 강하게 경계한다. 국가가 국민에게 간섭하고 사회가 시민에게 간섭하고 여론이 개인에게 간섭하는 갖가지 경우와 사례를 들어 설명하면서 그는 개인의 자유를 억압하는 권력에게 날을 세운다. 이 부분은 국가와 종교의 권력이 막강했던 1800년대라는, 저자가 살았던 시대뿐만 아니라 오늘날에도 유효하다. 국가, 사회, 여론이 삼위일체가 되어 개인을 통제하고 조종하려는 시도는 여전하다. 아니, 오히려 예전보다 그 시도의 힘은 강력하고 성공률도 더 높아진 듯하다. 그 시대에는 없었던 ‘언론’이라는 새로운 권력이 개인을 좌지우지하고 있으니.
존 스튜어트 밀이 쓴 [자유론]에 대부분 공감한다. 하지만 그의 주장에 의거하여 개인의 자유가 완벽하게 보장되어야 하는지에 대해 동의냐 반대냐를 쉽게 결정하기는 어렵다. 개인의 자유가 완벽하게 보장되려면 자유를 사용하는 개인 본인과 그 개인과 함께 공존하는 수많은 개인들, 그 개인으로 구성된 집단까지 고도로 성숙해야 한다는 전제가 있다. 아마 저자는 이 책을 쓸 때 독자들이 그런 고도의 성숙함으로 나아가기를 바라는 뜻이 있지 않았을까 싶다. 하지만 구성원 전체가 자유의 개념, 역할, 범위 그리고 범위를 결정짓는 척도에 대한 이해의 정도가 동일하지 않은 상황에서도 개인의 자유가 완벽하게 보장될 수 있는가? 혹은 그래도 되는가?
나는 이 책이 그 어느 시대, 어느 문화권보다도 지금 시대, 우리 사회에 가장 간절한 책이라고 생각한다. 책 표지에 ‘서울대 필독서’ 뭐 이런 거가 적혀 있었는데, 초등학교에 입학할 때부터 학교에서 이 책으로 공부를 해야 한다는 생각도 든다. 여러 번 읽어도 그 재미와 유익함이 전혀 떨어지지 않는, 아니 시간이 지날수록 더 큰 성찰을 주는 아주 희소한 책.
여담으로, 이런 책을 써줘서 참 고맙다. 저자에게 가슴 깊이 우러나오는 고마움을 느끼는 경우가 많지 않은데 이 책이 그렇다.
인간은 토론과 경험을 통해서 자신의 잘못들을 바로잡을 수 있다. 단지 경험만으로는 그렇게 되지 않고, 반드시 토론이 있어야 한다. 토론은 경험을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지를 보여주기 때문이다. 틀린 의견들과 실천들은 사실과 근거에 의해 점차 밀려난다. 하지만 사실들과 근거들이 인간의 지성에 어떤 효과를 미치기 위해서는 지성 앞에 호출되어야 한다. 사실들이 자신의 의미를 스스로 말해주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사실들이 지닌 의미가 드러나기 위해서는 거기에 대한 사람들의 판단이 필요하다. 6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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