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 한 마리가 술집에 들어왔다
다비드 그로스만 지음, 정영목 옮김 / 문학동네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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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소리 완창을 듣는 기분이었다. 마치, 볼품없는 늙은 소리꾼의 마지막 노래를 듣는 것 같았다. 깊고 좋은 소리는 시간이 가져가 버렸고 맑고 강한 기운은 신이 가져가 버려서 남은 것이라곤 바싹 마르고 주름진 거죽뿐. 초라하고 한심한 꼴로 그는 얼마 남지 않은 생의 마지막 스탠드업 쇼를 벌이고 판사를 초청한다. 초청장에 판사로부터 기대하는 것은 판결이 아니다라고 썼지만 본심은 그렇지 않았다. 그게 아니라면 왜 판사를 초대했겠나.

 

생일은 결산을 하는 날. 그는 생일더러 영혼을 탐색하는 날이라고 했다. 이 대목에서 나는 그가 왜 은퇴한 판사를 그의 쇼로 불러들였는지 비로소 깨달았다. 그의 죽음이 태어나는 날을 앞두고 그는 결산을 해보려 했다. 그 날은 그의 인생을 탐색하는 날이었다. 사람은 버둥거리고 신은 그의 인생을 뭐같이 망쳐버리는 것이 삶이라면 어쩌면 죽음이 태어나는 날이야말로 기쁜 날인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그 날의 탐색과 결산이야말로 그 어떤 생일의 결산보다 의미 있는 것 아닌가. 신은 나의 삶에서 무엇을 얼마나 망쳐버렸고 나는 얼마나 우습고 하찮게 되었나를 정산하는 일이 영혼을 정비하는 일보다 쉽다. 영혼을 유지할 자원이 없는 사람에게는 확실히 그렇다. 도발레 같은 인물에게는 정말 그렇다고 확신하다.

 

아니, 진지하게 말하는데!” 그는 소리를 지르더니, 말에 속도를 낸다. “요즘 세상에 영혼을 유지하는 게 어떤 의미인지 알고 있어? 그건 사치야, 좆도. 농담 아니라니까! 계산을 해보면 마그네슘 휠보다 돈이 더 들어간다는 걸 알게 될 거야! 나는 지금 기본 모델 영혼 이야기를 하는 거야, 무슨 셰익스피어나 체호프나 카프카가 아니라. 다들 훌륭하지, 그렇다고 들었어, 개인적으로는 하나도 읽어본 적 없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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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삶에 대해 언젠가 어느 시인이 썼던 구절이 잊히지 않는다. 그는 시골 5일장에 물건을 팔러온 할머니가 늘어놓은 마른 감자들을 보며 삶은 흙 묻은 감자처럼 데굴데굴 구른다고 표현했다. 나는 아직도 이것 이상으로 삶을 잘 표현한 구절을 찾지 못했다.

도발레의 원맨쇼는 흙도 털어내지 못한 채로 이리저리 치어 구르는 감자의 모양새였다. “그냥 살아 있자라는 놀랍고도 전복적인 가치를, 도발레는 그의 처참한 생으로 증명한다. 무슨 셰익스피어나 체호프나 카프카처럼 대단한 인물이 되려고 한 것도 아니고, 무슨 영웅이 되려고 한 적도 없이 기본 모델 영혼이라도 유지하려고 했지만 그것마저 사치인 인생이다. 이런 인생인데도 그냥 살아 있기 위하여 견디는 일은 얼마나 위대한가. 견디기 위하여 온갖 굴욕과 모멸과 수치를 자기 옷으로 껴입은 그 사람을, 그 사람의 광채를 나는 뭐라고 묘사해야 하는지 적당한 말을 찾지 못했다. 아마 도발레의 초청으로 그의 쇼를 본 전직 판사 라자르도 마찬가지였으리라.

 

이스라엘의 불행한 역사와 그 불행의 직격탄을 맞은 개인을 잘 보여준 소설이라는 세간의 평에 대해서 나는 잘 모르겠다. 도발레의 생애 속에 분명 그 녹진한 역사들이 나타나긴 하지만 망가진 유대인들의 사회라는 주제는 아직 내게는 먼 나라 이야기다.

그에 반해 인간 도발레는 아주 익숙하고 가깝게 다가온다. 바보 같이 착한 그의 어딘가에 내 어린 시절의 파편 몇 조각이 녹아있는 것도 같고 자기혐오를 숨기지 않는 그의 쇼는 지난 밤 내 머릿속의 일부를 고스란히 재현해 놓은 것도 같다. 이것이, 천박하고 상스러운 언어로 때로 역겨우리만치 기이한 쇼를 펼치는 도발레에게 애잔함을 느끼는 이유다. 이상하게도 동질감을 느끼게 하고, 동정심을 표출하게 만드는 힘이야말로 도발레가 누구이며 그가 가진 광채가 어떤 것인지를 보여주는 가장 결정적인 빛이 아닐까 싶다. 이 힘에 끌려 라자르는 결국 도발레의 편에 서고야 말았고 독자 역시 쇼의 끝에 가서 도발레에게 위로주 한 잔 건네고 싶어진다. “모두들 안녕히.”라고 그가 말했을 때 나도 모르게 터지는 눈물이라니.

 

스탠드업 코미디의 주인공이 도발레이기에 그의 이야기에 가장 많은 시선이 가는 건 사실이지만 도발레의 이야기와 수시로 교차되는 라자르의 이야기 역시 느슨하거나 약하지 않다. 오히려 라자르에게서 도플갱어를 보는 듯 나와 꼭 닮은 얼굴과 표정을 많이 발견했다. 그래서 내가 마치 라자르가 된 듯 도발레의 쇼를 관람할 수 있었던 것일까.

 

책 맨 뒤에 실린 옮긴이의 말에서 역자는 저자 다비드 그로스만을 총명한 작가라고 했는데 이 표현에 십분 동의한다. 도발레도, 라자르도 자신의 처지와 생애를 구절구절 설명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도발레가 장례식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 라자르가 타마라를 회상할 때마다 소중한 이를 잃은 그들의 현실을 은연중에 알게 된다. 독특하고 뛰어난 묘사 역시 [말 한 마리가 술집에 들어왔다]에 빠져들게 만드는 묘미다.

 

역자를 언급한 김에 그에게 감사를 전한다. 히브리어에서 영어로, 영어에서 다시 한국어로 옮겨야 하는데다 본연의 유머를 언어를 초월하여 간직해야 한다는 쉽지 않는 작업을 성공적으로 해낸 데에 박수를 보낸다.

"아니, 진지하게 말하는데!" 그는 소리를 지르더니, 말에 속도를 낸다. "요즘 세상에 영혼을 유지하는 게 어떤 의미인지 알고 있어? 그건 사치야, 좆도. 농담 아니라니까! 계산을 해보면 마그네슘 휠보다 돈이 더 들어간다는 걸 알게 될 거야! 나는 지금 기본 모델 영혼 이야기를 하는 거야, 무슨 셰익스피어나 체호프나 카프카가 아니라. 다들 훌륭하지, 그렇다고 들었어, 개인적으로는 하나도 읽어본 적 없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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