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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고 멋진 발견 - 빅데이터가 찾지 못한 소비자 욕망의 디테일
김철수 지음 / 더퀘스트 / 2018년 4월
평점 :
품절
사과 씨 안에 얼마나 많은 사과나무가 들어있는지 안다면, 사과씨를 결코 작다고 할 수 없을 것이다.
<작고 멋진 발견>이라는 이 작은 책 안에는 참 거대하고 근사한 이야기들이 담겨 있다. 저자는 이 책의 머리말에서 ‘빅데이터보다 정확도가 더 높은 경험 데이터와 직관’이라는 말을 썼다. 그리고 이 책은 빅데이터를 뛰어 넘는 경험 데이터와 직관의 실례들을 들어 왜 빅데이터가 진리가 아닌지를 잘 알려준다.
4차 산업혁명이라는 말과 어울려 아주 자주 사용되고 있는 단어가 저 ‘빅데이터’가 아닌가 한다. 많은 기업과 기관들이 저 빅데이터의 결과, 빅데이터가 알려주는 수치를 따라 그들의 전략을 세우고 정책을 추진한다. 하지만 나는 언젠가 멸치를 잡는 그물이 다르고 고등어를 잡는 그물이 다르다고 들었다. 과연 빅데이터라는 그물로 상어부터 멸치까지 잡을 수 있을까. 저자가 ‘비즈니스 헛발질’이라고 쓴 여러 실패와 문제들의 상당수가 빅데이터의 그물을 잘못 사용하거나 오용했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든다.
저자는 빅데이터에 대한 맹신과 오해를 털어내고 그물 구멍 사이를 좀더 면밀하게 들여다보기를 권한다.
그래서 나는 이 책을 쉽게 읽어낼 수가 없었다. 저자가 제공하는, 저자가 안내하는 그물 사이사이 ‘언메트니즈’의 세계가 너무 재미있고 유익하고 흥미로워서다. 이 책에 실린 사례며 노하우며, 여러 팁들을 하나도 놓치고 싶지 않았다. 이 책을 문장 하나까지, 사례 하나까지라도 꼭꼭 눈으로 잘게 씹고 분해해서 머리에 차곡차곡 쌓고 싶었다. 그러면 이 책이 적립해준 경험 게이지와 직관을 가지고 내 일을 더 잘해낼 것 같은, 정말 더 멋진 성과를 낼 수 있을 것 같아서 욕심이 났다.
이 책에 실린 많은 이야기들이 흥미로웠지만, 책을 다 읽은 후인 지금까지도 나는 이 사례가 내내 마음에 남는다. 언제라도, 내가 수치에 매몰되어 둔감한 판단을 내릴 때 이 이야기가 보여주듯 눈치를 일깨워야겠다.
낡은 운동화에서 찾은 레고의 기적>
전 세계 어린이들을 연구한 빅데이터 역시 레고에게 기존보다 훨씬 크고 단순한 블록을 만들도록 요구하고 있었다.
그러나 빅데이터가 주는 예측을 뒤엎는 사고의 전환은 사소한 단서에서 시작되었다. 2004년 레고의 마케터들은 각 도시를 돌며 어린이들을 인터뷰하는 중이었다. 그러다 독일의 작은 도시에 살고 있는 11살 소년을 만나게 되었다. 소년의 집에는 레고 블록이 가득했고, 그는 스스로를 레고 마니아라고 지칭했다. 인터뷰 말미에 마케터는 소년에게 한 가지 부탁을 했다,
“네게 가장 소중한 물건을 하나만 보여줄래?”
그러자 소년은 방 밖으로 나갔다가 재빨리 물건 하나를 들고 왔다.
“이거예요.”
소년이 마케터 앞에 내려놓은 것은 한 켤레의 아디다스 운동화였다. 여기저기 때가 묻고, 굽은 닳을 대로 닳아버린 낡고 오래된 신발이었다. 소년은 레고 마니아면서 동시에 스케이트보드 타기에도 열성적이었다.
소년은 신발을 높이 든 채 “이쪽 면은 낡아서 떨어졌고 뒤꿈치는 아예 마모됐죠”라며 어깨를 으쓱였다. 그 설명만으로도 레고 마케터들은 어린 소년이 무엇을 말하려 하는지 가슴으로 느낄 수 있었다. 그것은 소년의 친구들, 세상 모든 사람들에게 “난 이 동네에서 스케이트보드를 가장 잘 타는 사람이야”라는 것을 드러내는 표현이었다. 낡아빠진 운동화는 일종의 트로피이자 금메달이었던 것이다.
이 순간 마케터들은 그동안 믿어온 가설이 틀렸다고 직감했다. 그간 쌓아온 데이터로부터 얻은 결론, 아이들은 참을성이 없어서 짧은 시간에 결과물을 얻고 싶어 하고, 즉각적인 만족감만 추구한다는 믿음은 완전히 잘못된 것이었다. 마케터들은 소년으로부터 아이들이 놀이 과정에서 높은 수준의 기술을 습득하는 것이 또래 집단에서 일종의 소셜화폐를 얻는 것과 같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그 기술이 자신에게 충분히 가치 있는 것이라면 시간이 얼마나 오래 걸리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24-25쪽
그래, 인간이란 나이가 적든 많든 저렇다.
그냥 좋아하는 것과 가슴 깊이 품고 긍지를 느끼는 것은 다르다.
저런 <작고 멋진 발견>을 해내는 눈치, 그러니까 직관력이 날카로워져가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