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천히, 스미는 - 영미 작가들이 펼치는 산문의 향연
길버트 키스 체스터턴 외 지음, 강경이.박지홍 엮음, 강경이 옮김 / 봄날의책 / 201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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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누나가 죽은 다음날 누나의 뇌가 담긴 싱그러운 사원이 사람의 검시로 아직 모독되지 않았을 때 나는 누나를 한 번 더 볼 계획을 세웠다.

(중략)

내 눈을 맞이한 것은 활짝 열린 큰 창문 뿐이었다. 한여름 정오의 눈부신 태양이 창문으로 쏟아져 들어왔다. 날씨는 맑았고 하늘은 청명했으며 그 파란 심연은 무한을 그대로 옮겨놓은 듯했다. 삶과 삶의 아름다움을 이보다 더 아프게 환기시키는 상징을 눈으로 보거나 마음으로 그릴 수는 없었다.

내 마음에 크게 영향을 미치고 내 마음을 뒤흔들었던 기억, 그리고 내 죽음의 시간에도 내게 남아 있을 (지상의 기억이 조금이라도 남아 있다면) 기억을 회상하는 일을 잠시 멈추고 내가 처음 쓴 <어느 영국인 아편 중독자의 고백>에서 적어도 죽음의 영향이 풍경이나 계절 같은 부수적 요소에 따라서 조금이라도 가감이 가능한 한에서는 다른 조건이 모두 같다면 다른 계절보다 여름에 경험하는 죽음이 왜 마음을 더 깊이 흔드는지 설명하려 했던 것을 몇몇 독자들에게는 상기시키고, 다른 독자들에게는 알려야겠다.

<아편 중독자의 고백>에서 나는 열대지방처럼 왕성한 여름의 생명력과 무덤의 어두운 불모성이 서로 반복하기 때문이라는 이유를 제시했다. 우리가 눈으로 보는 여름과 우리 생각을 맴도는 무덤. 우리를 둘러싼 찬란함과 우리 안의 어둠. 둘이 충돌하면서 서로를 더 뚜렷이 도드라지게 만든다.

48-49_ 토머스 드 퀸시가 쓴 어린 시절의 고통(1845) 중 일부

 

벚꽃이 언제 그렇게 활짝 피는지 보고 싶어서 지켜본 적이 있다. 팝콘이 터지듯, 어린아이가 숨김없이 웃음을 터뜨리듯 꽃잎을 시원하게 터뜨리는 순간을 발견하고 싶었다. 햇빛이 없는 동안 남몰래 꽃을 피우는가 싶어 늦은 저녁부터 어느 벚꽃 가지 아래에서 내내 꽃망울을 올려다보았다. 천천히 관찰했다. 별이 뜨도록 속내를 보여줄 생각이 없는 벚꽃 아래에서 나는 밤을 샐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종이에 물이 스며들 듯, 천천히 하지만 분명하게 꽃잎이 벌어질거고 나는 그 순간을 확인하려 했다. 그러다 불현 듯 잠이 들었다. 내가 잠을 자는 사이, 천천히 하지만 분명하게 벚꽃은 피어서 다음날 아침에 바라본 꽃가지에는 활짝 핀 꽃 몇 송이가 달려 있었다. 약이 올랐다. 너의 꽃잎이 느리게 열리는 모습을 꼭 보겠노라고 다음 봄을 기약했는데, 여전히 나는 벚꽃이 웃음처럼 피는 그 순간을 발견하지 못했다.

 

이번에는 놓치지 않으려고, 나는 정성스럽게 이 책을 읽었다. 천천히 스미듯 흘러가버리는 시간들 사이로, 천천히 스미는 소중한 깨달음을 꿰어 담은 이 책에서, 혹시라도 내가 방심한 틈을 타서 나몰래 꽃잎이 활짝 피어버리는 그런 경험을 반복하고 싶지 않았다. 아니, 내가 보고 있지 않아도 으레 꽃잎이란 자기 때가 되면 피는 것이겠지. 그렇게 거기 있다가 또 때가 되면 미련 없이 떨어져 자기 갈길로 가버리는 것이겠지. 꽃잎도 자기 일을 하듯, 이 책에 작품을 수록한 저자들도 다 자기 일을 하고는 때가 되어 미련 없이 떨어져 자기 갈길로 가버렸다. 꽃이 피는 그 순간을 확인하고 싶은 욕심은, 저자들의 남긴 그들 삶의 순간들을 애써 발견하고 싶은 욕심과 같다. 내가 굳이 발견하려 하지 않아도 그들의 글은 거기, 이 책도 으레 있어야 할 곳에 묵묵히 있겠지. 하지만 그래도 굳이 꼭 읽고 확인하고 발견하고 그렇게 마침내는 내 것으로 만들어보고 싶어서 공들여 읽었다. 꽃이 피었다 지는 것은 꽃의 기억이지만 그 꽃을 지켜본 시간은 내 기억이 되니까.

 

꽃처럼 연약하고 향기롭고, 짧아서 더 소중한 작품들.

전혀 다른 시대, 전혀 다른 성별, 전혀 다른 형태로 삶을 살아가는 우리들 그러니까 저자들과 나인데, 생각의 흐름은 어떤 지점에서 분명하게 만난다. 인간이기 때문일까? 우리가 다 인간이기 때문에.

 

아주 미약하고 가는 소리였다. 갓 난 아기 새가 첫 울음을 터트릴 때 내는 소리만했다. 하지만 소리 크기는 중요하지 않았다. 내게는 교회 첨탑에서 울리는 귀청이 터질 듯한 종소리도 저 안에서 침묵을 깬 그 한 음보다 의미가 없을 것이다. 저 안에서, 어둠 속에서, 내게 응답한 벨 소리가 여전히 떨리고 있었다. 철사의 떨림일 것이다. 하지만 대답하는 이가 없다. 저 안쪽에서 먼지 위에 발자국을 찍으며 이리로 오는 이가 없다. 그러면 ‘나’라도 대답하지. 나는 다시 손잡이를 쥐고 이번에는 망설이지 않고 더 세게 잡아당겼다. 그것이 내 대답이었다. 응다은 내가 생각했던 것 이상이었다. 빠르게 이어달리는 음들, 희미하지만 명료하고 장난기 있지만 사무치게 슬픈 소리, 저 먼 과거에서, 아니 바로 이 가까운 어둠에서 울려 나오는 듯한 쾌활한 웃음 같은 소리. 내가 알던 무엇과 너무나 닮아서, 내가 분명 알고 나를 분명 알아보는 듯해서 나는 놀라움에 사로잡혔다.
그 소리를 여러 번, 여러 번 들었으니 분명 문 앞에서 오래 서 있었던 것 같다. 틀림없이 되풀이해서 끈질기게 열정적으로 벨을 울렸을 것이다. 바보같이.
78-7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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