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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이 본 한국전쟁 1 - 항미원조 - 중국인민지원군
중국 해방군화보사 글.사진, 노동환 외 옮김 / 눈빛 / 2005년 6월
평점 :
품절
중국의 군사박물관, 단동의 항미원조박물관등에 있는 사진들이 있다. 중국현지에서 상당한 노력과 돈을 들어야 볼수있는 사진들이 이 책 한권으로 볼수있다.
비록 조작되어 있자만, 한국전쟁에 대한 중국인들의 마음을 알 수 있다.
강력 추천하는 도서이다.
- 牛军(북경대교수)
1. 중국의 한국전쟁 참전 연구
최근 중국과 러시아 공식문서 일부의 해제
- 중국의 참전 결정과 참전 목표, 중국의 정전협상에서의 외교활동, 중국과 동맹구고가의 관계, 중국의 군사전략 등 연구
- 최근 : 거시적 관점에서 지원군의 38선 돌파 결정 과정과 동기를 연구
2. 중국의 참전목표
-중국지도부는 참전 고려에서 작전을 수립할 때까지 항상 유동적이고 모호한 태도
당시 중국의 제 1문제는 티벳과 타이완 침공, 그리고 한반도와 인도차이나는 두번째 문제
-중국지도부는 미국의 한반도, 인도차이나, 대만문제에 대한 간섭을 우려
-7월 7일, 중앙군사위원회는 동북변방군의 조직을 결정, 임무는 동북 방위와 조선인민군 지원 : 대만 공격을 지휘하던 속위가 동북변방군 사령관 겸 정치위원으로 임명, 8월 상문 조선인민군 공세가 저지를 받자 중국은 병력 배치를 강화
-8월 4일, 중앙정치국 회의에서 모택동은 출병구상, 8월 중순 동북변방군에개 입북작전을 준비하라는 명령
-8월 26일, 국방회의에서 대만 침공을 연기하고, 항미전쟁을 준비를 결정, 동북에 대규모 병력집결, 동북의 방공망 강화
-9월 15일, 미군의 인천상륙작전 성공과 중국의 미국에 대한 경고
-10월 7일, 미군의 38선을 넘는 북침 : 중국지도부는 미군에 의한 도미노현상을 우려
출병후 중국지도자의 참전목표는 국제주의(이데올로기), 국가안전이라는 두 가지 관점
출병 결정 과정에서 중국 지도자들은 3개의 참전목표를 제시
1. 처음에는 북조선을 돕는 것이었으나, 나중에는 미국에게 승리하는 것으로 – 모택동은 당시 정세를 오판했을 가능성이 높다
2. 전쟁 전 상황으로의 회귀
- 유엔군이 38선을 넘지 않았다면 중국군이 참전하지 않았을 가능성도 있다.
3. 10월중순 확전. 모택동은 전쟁전 스탈린의 공중엄호 약속을 믿었지만, 스탈린은 확전이 된 이후에 약속을 이행하지 않았다.
5. 결론
1. 지원군의 38선 돌파는 조선전쟁이 발전하여 얻어진 산물: 처음부터 중국은 모호했다
2. 지원군의 38선 돌파 결정은 정치적 결정. ‘전쟁은 정치의 연속이다’
코멘트:
1. 중국역사왜곡의 심각성 : 왜곡의 일상화
중국관변대학의 학자라서 일반적으로 알려진 진실과 상반되는 주장으로 일관 - 한국전쟁은 참전 계획부터 스탈린, 모택동, 김일성은 협의했고, 한국전쟁의 세 명의 독재자의 전쟁이었다. 중국측에는 한국전쟁 기원에 대하여 연구를 하지 않고 있고, 지정학적 충격 가능성만 가능하는 가능성. 모택동의 한국전쟁 발발책임을 전혀 연구하지 않는다.
한국전쟁개시 직전에 조선인민군의 1/3을 중국측에서 북한에 반환. 일부 병력은 조선인부대, 일부 병력은 북한군이 국공내전을 위해 참전했음.
38선은 한국군이 미군을 장시간 주둔시키려는 전략으로 월북했고, 38선 때문에 미군이 중국이 위협이다는 것은 논리적 모순: 한국전쟁 이전에 모택동은 중미대결의 장소로 인도차이나, 대만, 조선을 대비중이었음.
2. ‘전쟁은 정치의 연속’(클라우제빗)이라는 제국주의적이고 공격적 현실주의 국제관계 용어를 통해 중국의 전쟁외교를 합리화하는 모순 : 당시 중국은 제국주의 국가라는 명제를 증명.
중국의 6.25전쟁 참전과 그 영향 : 이완범(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
부정적 영향
국내적 영향: 1백만명의 사상, 경제발전의 저해, 국토완정계획에 차질, 역사이래 최대의 탄약을 소모
국제적 영향: 유엔에 침략자로 규정, 71년 말까지 미국, 유엔주도의 국제사회에서 고립
긍정적 영향
소련으로부터 대규모 군사, 경제 원조, 경제회복과 군현대와의 기반
49년 건국이후 토지개혁에 따른 사회주의 개혁에 대한 저항과 궁핍으로 인한 환멸과 불만을 해소 – 즉, 국내정치통합과 공산정권 공고화에 기여
청일전쟁 패배로 인한 한반도에 대한 영향력 상실을 회복, 대북 영향력이 소련을 능가
국제적으로 미중전쟁으로 인하여 국제적 영향력 상승
혈맹관계를 구축하여 현재까지 북한에 영향력
제네바국제회의에 참가하여 신생정권의 국제적 위상 강화
결론: 한국전쟁은 모택동을 위기 상황에서 구하였다. 김일성보다는 모택동
소련
53년 스탈린 사망이후 내우외환, 후계자를 둘러싼 불화, 전쟁실패에 대하 비판
스탈린 사후 공산진여의 결속력 약화, 후루시초프의 수정주의로 인한 공산권의 동요
한국전쟁으로 인하여 중-소-북 관계에서 소련에 심각한 타격,
소련은 중국에 약속한 참전 보상을 충분히 하지 않음으로서 중소분쟁의 중요한 원인을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