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원 국장 출신인 연세대 정영철 교수는 "역대 정권이 국가정보원을 아마추어적으로 개혁해 중증 환자가 됐다"면서, 현재 정치권에서 논의되는 국정원 개혁이 잘못되고 있다고 비판했다.

정영철 교수는 27일, CBS '시사자키 오늘과 내일'(진행:신율 저녁 7:05-9:00)과 가진 인터뷰에서 국정원 개혁의 핵심인 수사권 폐지문제와 관련해 "과거처럼 인권을 유린하거나 정권안보에 나서는 일은 불식됐다"며 "수사권 문제를 단순히 대공수사 관점에서 볼 것이 아니라, 국가체제 유지를 위한 국가안보 수사권 차원의 접근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국정원의 수사권 행사에 따른 인권유린 염려에 대해서도 "지난 6년 동안 국정원이 대공수사를 했어도 인권유린이 나타난 사례는 하나도 없었다"면서, "그건 인권단체에서도 인정하는 사실이다"고 덧붙였다.

정교수는 지금 "정보기관은 정보수집능력이 있어야 하는데, 아마추어적인 개혁으로 지금은 정보 수집능력이 상실됐다"고 지적하면서, "정보수집활동에서 일부 국내 정보는 제외하고, 나머지 해외정보만 하라는 건 맞지 않다"며 국내정보 수집 필요성을 주장했다. 정교수는 또, 국내 파트와 해외 파트간의 기구 통폐합 논란과 관련해서도 "정보기관의 기구는 임무나 기능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지, 개혁과 기구 통폐합은 본질적으로 관련이 없다"고 지적하며, 기구통폐합 무용론을 주장했다.

정교수는 하지만 국회의 감독권 강화문제에 대해선 원칙적으로 동의했다. 다만 "국회가 먼저 전문성을 갖춰야지, 그렇지 못한 상태에서 예산이나 인원만 통제하려고 하면, 바람직한 감독활동이 이뤄질 수 없다"고 주장하면서 "우리나라 국회는 전문성도 없고, 전문성이 없는 상태에서 통제하려는 건 말이 안 된다"고 지적했다.

정치권이 국정원 개혁을 외면한다는 여론에 떠밀려 국회정보위를 중심으로 국정원 개혁 논의를 시작했지만 논의 초기부터 반대 입장이 개진되면서 국정원 개혁 논의가 성과를 낼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 이하 방송 내용 ********************
▶ 진행 : 신율 (CBS 시사자키 오늘과 내일)
▶ 출연 : 연세대 정영철 교수

- '국정원의 수사권 폐지'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과거엔 국정원이 전과안보?하고, 인권을 유린한 사례가 있었다. 지금도 그런 게 계속되고 있다면 당연히 폐지해야 하지만, 그동안 국민의 정부나 참여정부를 거치면서 그런 문제는 불식됐다. 이제는 국정원의 수사권 문제를 단순히 대공수사 관점에서 봐선 안 된다. 국가 체제 유지를 위한 국가 안보 수사권 차원의 접근이 필요하다. 다시 말해 국정원에 수사권을 못 주겠다면 제 3의 기관을 만들어서라도 국가 운영에 필요한 안보 수사권을 어떻게든 유지하는 방법이 연구되어야지, 무조건 국정원 수사권부터 없애는 방향의 논의는 무리가 있다.

- 수사권이 존재하는 한 인권 침해의 가능성은 여전히 있지 않나?
최근 5~6년 동안 국정원의 대공수사 중에서 인권유린이 나타난 사례는 하나도 없다. 그건 인권단체에서도 인정하는 사실이다.

- 국내정보수집기능을 금지해야 할까, 허용해야 할까?
답변 대신 내 경험을 말하겠다. 나는 퇴직하기 직전에 4년간 해외정보수집 책임자를 했는데, 해외에서의 정보수집 활동 방법을 설명하겠다. 우리가 해외에 나가 제일 역점을 두는 건 유력 정치인을 포섭하는 활동이다. 왜냐면 어느 국가나 정치인은 제일 영향력이 있고, 사회 각 부문과 잘 연결되어있기 때문이다. 지금 국내에는 많은 외국 정보기관들이 상주해 있다. 만약 우리가 국정원의 국내정보수집활동을 정지시킨다고 해서 그 사람들이 국내 정치인 대상 활동을 중지할까? 이건 일부 집단이 자신들에 대해 성역화 하려는 것밖에 안 된다. 정보활동에서 일부는 제하고 나머지는 하라는 건 옳지 않다. 외국의 정보기관이 어떻게 하는가를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

- 야당에서는 '국내정보정치활동에 대한 관여를 막기 위해서'라고 하는데, 이에 대해선 동의하나?
동의한다. 하지만 내가 주장하는 것은 지금까지 해온 정치사찰을 하자는 게 아니다. 참여정부 들어와서 국정원의 탈정치화, 탈권력화는 이뤄졌다.

- 야당에서는 계속 의혹 제기를 하는데?
야당의 일부 주장이지 많은 국민들은 동의하지 않을 것이다.

- 국내 파트 기구와 해외 파트 기구를 분리한 채 놔둬야 할까, 통합해야 할까?
정보기관 기구는 임무 기능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다. 개혁과 기구 통폐합은 본질적으로 관련 없다. 현재 국정원은 역대 정권이 아마추어적으로 개혁을 해서 중증 환자가 되어있는 상태다. 정보기관은 정보수집능력이 있어야 하는데, 그런 아마추어적 개혁으로 수집 능력이 상실된 기관이다. 이걸 어떻게 살리느냐가 문제지, 기구 통폐합은 문제의 본질을 모르는 얘기다.

- 정치권에서 국정원에 대해 왈가왈부하는 건 문제가 있다?
그렇다.

- 정치권에서 왈가왈부하면 국회 통제도 제대로 될 수 없다는 의견인가?
내가 국회 감독권 강화를 많이 얘기하는데, 원칙적으로는 동의한다. 그러나 우선 국회는 국정원 활동이 제대로 이루어지고 있는지 들여다볼 수 있는 전문성을 갖춰야 한다. 그걸 갖추지 못한 상태에서 예산이나 인원만 통제하려고 하면 바람직한 감독 활동을 못 한다. 외국에서는 오히려 정보기관 활동의 문제점을 국회 전문가들이 집어내서 지적해준다. 거기에 따라 예산과 인원을 조정해주는 게 감독 기능이지, 우리처럼 무조건 예산은 얼마로 써라, 인원은 얼마로 하라는 식으로 통제부터 해놓고 감독하려는 것은 제대로 기능을 발휘하지 못 하게 하는 것이다. 외국의 사례를 배우려면 본질을 제대로 보고 배워야 한다. 외국 국회에는 전문기관 뺨치는 전문의원들이 많이 있다. 그 사람들은 예산까지 편성할 능력을 갖고 있다.

- 우리나라 국회는 전문성도 없고, 전문성이 없는 상태에서 통제하려는 건 말이 안 된다?
그렇다.

▶진행:신율
▶CBS 시사자키 오늘과 내일(월~토 오후 7시~9시)

(대한민국 중심언론 CBS 뉴스FM98.1 / 음악FM93.9 / TV CH 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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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정원 vs 기무사 ‘40년 정보전쟁’ 秘話
“도와가며 일하라는데 왜 자꾸 말썽이야, 아주 보내버리겠어!”
황일도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shamora@donga.com

1월10일 아침, 기무사가 날린 ‘김정일 중국 방문’ 첫 보고
내곡동 자극한 ‘익명의 군 관계자’發 확인 기사
“中情 간부가 위장 수출 관여”…남산 포위한 방첩부대 요원들
허위보고 문제 삼아 보안사 정보처 해체한 김기춘 중정 국장
1979년 10월27일 아침 중정, “탱크가 와 있는 줄 알았다”
보안사 문서 소각한 중정, 중정 문서 압수한 보안사
“안기부가 왜 군 인사에 개입하나”…이양호, 권영해 그리고 김현철
청와대로 날아든 투서 ‘이라크에 있는 자이툰 기무부대가…’

서울 서초구 내곡동의 국가정보원 청사(왼쪽)와 종로구 소격동의 국군기무사령부 본부.

내곡동(국정원) 주변에 “기무사가 심상치 않다”는 묘한 소문이 돌기 시작한 것은 지난 1월말이었다. 소재는 새해 벽두부터 국가정보원을 당혹케 했던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의 방중(訪中). 김 위원장이 국경을 넘은 1월10일의 상황이 여러모로 미심쩍다는 이야기였다.

잠시 당시 상황을 복기해보자. 1월10일 새벽 외신들이 “김 위원장이 중국을 방문한 것 같다”는 소식을 타전하자, 누가 이 ‘설(說)’을 ‘사실’로 확인하느냐를 두고 정부 관련부처에는 온통 비상이 걸렸다. 국정원과 외교통상부 등은 ‘모든 채널을 열고’ 사실확인에 나섰다. 속도가 생명인 정보의 특성상 1분이 급한 상황이었다. 그러나 10일 아침 일과시간 직전에 청와대에 전달된 최초 확인보고는 뜻밖의 부서에서 나왔다. 국군기무사령부였다. “특별열차가 중국 단둥(丹東)에 도착했다”는 내용이었다.

2위는 이날 오후 중국측 소스를 인용해 확인보고를 날린 주중(駐中) 한국대사관. 4년 넘게 베이징을 지키고 있는 김하중 대사의 ‘내공’이 돋보이는 대목이었다. 반면 국정원의 공식확인은 이날 저녁에야 나왔다. 외교부 기자실에서는 “국정원이 외교부보다도 늦단 말이냐”는 수군거림이 흘러나왔다.

특히 국정원측을 자극한 것은 이날 아침 연합뉴스가 내보낸 최초의 ‘당국자 확인보도’였다. ‘익명을 요구한 한국군 정보관계자’의 말을 인용한 이 기사는 김 위원장의 중국 방문을 기정 사실화하는 내용이었다. 기사가 인터넷에 올라온 시점은 기무사의 청와대 보고 직후였다. 군 정보당국자가 특정 언론에만, 그것도 거의 실시간으로 정보사항을 확인해주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첫 보고에 늦어 체면을 구긴 국정원에서는 “기무사가 자신들이 ‘한 건’ 했다는 걸 과시하기 위해 언론플레이를 한 것 아니냐”는 불만이 터져나왔다.

더욱이 국정원은 ‘지난해 10월 후진타오 중국 주석이 북한을 방문했으므로, 당분간 김 위원장이 중국에 갈 이유는 없다’고 분석하던 상황이었다. 첫 보고에 늦은 것은 중국 등 국외정보를 담당하는 1차장 산하 해외파트의 책임이지만, 사전예측에 실패했다는 점에서는 북한파트도 할 말이 없기는 마찬가지였다. 이렇듯 국정원 관계자들은 곤경에 처해 있는데 ‘군 관계자’가 언론을 통해 광고를 하고 나선 셈이니, 분위기가 묘할 수밖에 없었다.

이후 내곡동 주변에서는 “도청사건과 황우석 파동 등으로 국정원이 의기소침한 틈을 타서 소격동(기무사)이 분위기를 주도해보겠다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흘러나왔다. 군내 방첩활동에 주력해야 할 기무사가 김정일 방중(訪中) 같은 정치정보에 관심을 갖고 보고하는 이유를 납득하기 어렵다는 논리였다. 1970년대 정보기관 사이의 갈등을 거론하는 경우도 있었다.

전세계 어느 나라를 막론하고 정보기관 사이에는 긴장관계가 상존한다. 한국도 마찬가지다. 물론 대부분의 경우에는 국익을 위해 서로 긴밀히 협조하며 문제를 해결해나가지만, 열심히 뛰다 보면 업무영역을 둘러싸고 마찰을 빚는 일도 생기게 마련이다. 제도적으로는 ‘종합정보기관’인 국정원이 ‘부문정보기관’인 기무사에 대해 압도적인 우위를 갖는다. 기관장의 직급만 봐도 국정원장은 장관이지만 기무사령관은 중장일 뿐이다(상자기사 참조).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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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정원] 전문 경력직 모집 안내  


♡ 모집분야 및 응시자격
  1. 경제 : 경제학 석사이상 학위 소지자로 중국경제(금융), 러시아경제,
              지역경제통합 분야 경력자
  2. IT : 정보기술 관련 학과 석사이상 학위 소지자로 관련 분야 연구경력자
            *  IT 산업·정책 분야 연구경력자 우대
  3. 에너지 : 에너지·자원 관련 학과 석사이상 학위 소지자로 관련 분야 연구경력자
  4. 원자력 : 원자력 관련 학과 석사이상 학위 소지자로 관련 분야 경력자

♡ 공통자격
  1. 국가정보원 직원법 제8조 2항의 결격사유가 없는 자
  2. 73.1.1(석사)·68.1.1(박사)이후 출생한 자(남자는 병역을 필한자 또는 면제자)  
     *  제대군인 지원에 관한법률 제2조에 의한 제대군인 및 병역법 제 26조 제1항 1호의 업무에 복무하고 소집 해제된 공익근무요원(행정관서)은 군 복무기간에 따라 1-3세 연장(1년미만 1세, 1년이상 - 2년미만 2세, 2년이상 3세)


♡ 전형 일정
   원서교부 및 접수 : 2005.1.17(月) - 2.16(水)

♡ 서류심사 : 2월말
   * 심사결과 합격자에 한해 추후 전형일정 및 내용 개별통보

♡ 제출서류

 응시원서(소정양식, 반명함판 사진 1장 부착) -------------------- 1부
 * 응시원서는 국정원 홈페이지(채용정보)에서 내려받기 가능
 
 대학·대학원 성적증명서 및 학위수여증서 ------------------------ 각 1부

 자기소개서(A4용지 2매 이내로 경력위주 작성) ------------------- 1부

 연구실적 목록 ------------------------------------------------ 1부

 관련 연구논문 요약분(A4 5매이내) ------------------------------ 1부

 자격증 사본(소지자에 한함) ------------------------------------ 1부

 주민등록초본(병역사항이 기재된 것) ---------------------------- 1부
   ※ 제출서류는 일체 반환되지 않습니다

♡ 원서접수장소
   국가정보원 인력관리실(강남구 역삼동 서울상록회관 303호)
   안내전화 : 02)558-9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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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정치학기본도서 도장목록

중문서적을 중심으로

 

중국지도자편

 

모택동: 모택동문집, 모택동전(중앙문헌출판사), 모택동선집, 건국이래 모택동문고, 모택동농촌조사문집, 모택동 군사사상사전, 모택동전, 모택동군사문선, 모택동외교문선, 전쟁과 전략문제(조선어), 모택동저작전제적편(2권) , 건국이래 모택동문고(13권중 1-11),

하롱: 허롱연보

유소기선집, 공화국주석유소기(중공당사출판사)

주덕: 주덕연보, 주덕군사문집, 주덕선집,

등소평 : 등소평군사문집, 등소평연보, 등소평문선, 샤오핑닝하오(일부 북한지도자 사진), 등소평이론전제적편, 등소평사상연보

진운문선,

주은래연보, 주은래군사문선, 주은래선집, 주은래서신선집, 주은래조시(어린시절)문집, 주은래와 영화, 주운래와 그의 세기,

이선념: 이선념문선,

천이: 천이연보, 진의문집,

섭영진: 셥영진연보, 섭영진군사문선

팽진문선,

기념송경령문집

팽덕회자술,

엽경영전

강청동지강화선집

임표문선

문화대혁명

스탈린연보

호요방전

 

중국 당, 국가 역사 및 자료

중화인민공화국실록 총10권(길림인민출판사),

중공중앙문건선집(중공중앙당교출판사 1권), 중공당사교학참고자료(총 8권),

건국이래중요문헌선집(20권)

약간중대 결책과 사건의 회고, 보일보(2권)

중국공산당역사(인민출판사, 3권, 49년 10월 56년 12월)

중공당사참고자료(인민출판사, 8권)

중공 60년 기념문선

관우 건국이래당의 약간역사문제의 결의(주석본, 1권, 인민출판사)

한중관계

중앙연구원중일한문 기간 장서종합목록

중국남경정부 외교부공보(하권)

조선전쟁: 러시아 당안관의 해제문건(중앙연구원)

 

 

전인대 - 중요문헌선집

중화인민공화국제1기 전국인민대표대회 제 4차회의 회간(1957)

6대이전 당내비빌문건(1권)

6대이래 당내비밀문건 (2권)

12대이래 중요문헌선집(3권)

15대이래 중용문헌선집(3권)

3중전회이래(인민출판사, 2권, 1982년)

전국인대와 기 상위회 대사기(1954-1987)

 

정협

중국인민정치협상회의 제 8기 전국위원회 위원명록

 

 

중국공산당

11기 3중전회이래 당의 조직공작문헌선집(중공중앙당교출판사)

11기 3중전회이래 중공당사 연국의 신진전(중공당사출판사)

중국공산당제2차에서 제 6차 전국대표대회문건회편(1권, 중앙당안관)

중국공산당 8차 전국대표대회문건(인민출판사)

각 종 대사기

 

외교문서

중미외교문서(3권중 1권)

중인분쟁(서장에 관한 영토분쟁)

중동문제

 

지도

항일전쟁시기(해제문건)

군사훈련작전도 등(비밀문건)

 

김정일: 사회주의사업의 승리를 위한, 1999, 평양

김일성전집(영문편 20권, 중문편 2권), 한국어판은 통일부 다운로드

 

 

비밀공작문건선편1978-1988, 국가비밀국, 금성출판사. 

당기공작문건회편(북경군구정치부조직부)

 

국공내전

중경담판자료(사천인민출판사)

 

 

소련

유물주의와 경험비판주의, 레닌

반사림론, 엥겔스

 

 

중소조약

1689년의 중러 조약문서

 

 

국제관계조약

현대국제관계사참고자료(1917-1932)

국제정치참고자료(상,1971년 10월)

 

경제

 

각종 법전

 

항일전쟁

중공중앙항일민족통일전선문건선편(3권, 당안출판사)

중국공산당항일문건선편(중국당안출판사)

 

항미원조전쟁

판문점담판(자성문, 해방군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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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중국경기행

 

 7월 초 10여일에 걸쳐서 북한과 중국 국경을 기행하였다.훈춘에서 출발하여 도문, 연변 등을 거쳐서 두만강을 따라서 백두산으로, 그리고 백두산에서 단동까지는 고구려 유적을 보기위하여 집안으로 경유하여 이동을 하였다. 북중국경의 옥수수밭의 바다이다. 넓은 들판에도 가파픈 산위에도 도시의 길가 사이에도 푸르른 옥수수밭이고, 옥수수밭 사이사이에 마을과 도시과 보이고, 깡마른 사람들이 산다.

 

-구호

훈춘-도문-연길

 

 훈춘의 동쪽에서 한중일 삼국의 국경이 시작된다. 중국측의 방천이라는 마을에 오르면 세 나라를 모두 볼수 있다고 하자만, 아침부터 내리는 여름 장대비가 좀처럼 쉬지않는다. 운전기사의 판단에 따라 방천으로 가는 것은 포기하고 서쪽으로 향하였다. 훈춘에서 도문에 이르는 두만강변 주변에서 끊어진 다리들이 많다. 백두산에 시작하여 동쪽으로 흐르는 두만강의 하류라서 강폭이 넓다. 장마철의 두만강 하류라고는 하지만, 여전히 수영하서 건너기에는 충분할 듯 해보인다.

 끊어진 다리 넘어의 북한은 온통 옥수수밭이다. 두만강을 두고 양쪽에 제방이 높이 쌓여있어서 중국측의 제방을 내려와서 북한의 제방 때문에 그 이상은 보이지 않는다. 삼삼오오 모여있는 북한사람과 드문드문 마른 황소들이 보인다. 7월의 푸르름으로 인하여 깡마른 사람들이 보이지 않는다면 한국의 여느 농촌의 한가함과 다를 바가 없을 것이다.

 도문의 조중국경 검문소에 들렀다. 중국측에는 국경경비대의 건물 하나의 감시탑을 입장료를 받고 개방한다. 조선족 안내인들이 도문맞은편의 북한 마을을 설명해 주는데 선전용일 가능성이 높다고 한다.

 

 연길에 도착해서 용정으로 이동했다. 연변조선족자치구는 항일운동유적지과 구 일본군 침략시설이 서로 산재된 공간이다. 연변조선족자치구를 여러 곳을 둘러보아도 한반도의 어느 마을과 다를 바가 없다. 조선말기의 국정혼란을 등에 지고 두만강과 압록강을 넘은 조선인들이 찾은 땅은 벼농사 짓기에 좋은 조선과 같은 땅이다. 불과 몇 십킬로를 북진했는데도 불과하고 벼농사는 그리 쉽게 되지 않았다. 그리고 몇 년이 지나서 추운 남간도지방에 적합한 쌀을 개발한 것이 조선인들이라고 한다. 그들은 조선과 같은 땅이 지천에 널러있고 벼농사까지 가능하고, 오랑캐라고 믿었던 종족들이 벼농사를 배우기 위하여 모시니 사농공상이 있는 개혁개방이 더딘 조선보다 마음편하지 않았을까.

 용정은 문익환목사, 윤동주 시인등 민족의 지도자를 많이 배출하였다.  마을을 가는 길에는 한국식 토종닭집이 즐비한데 맛이 일품이다. 시골마을에 번듯한 식당들은 시골의 빈곤한 조선족들이 한국에서 불법체류하여 돈을 벌어서 지은 식당들이라고 한다.

연길 - 화룡 - 나평진 - 두만강(북한의 무산시앞의 숭선진과 김일성낚시터 경유)

 

백두산

 자연풍광 묘사중.

 

 백두산정상에서는 조선족의 터새가 대단했다. 백두산을 지키는 민족적 자부심도 그렇지만, 몇 천명의 조선족들이 중국정부에 내는 비공식적인 세금(뇌물)도 만만치 않단다. 그러나 이런 조선족의 위세도 이제는 볼수가 없을 것이다. 중국길림성정부가 직접관리할 예정이라고 한다. 조선족은 중국의 5대 관리 소수민족일 정도 중국정부에게는 반항적인 민족이다. 그래서 민족정기를 상징하는 백두산을 무한정 조선족에게 관리하게 할수도 없을 것이다. 뿐만 아니라 최근 우익한국인들이 조선족에게 민족의식(?)을 이야기하고 다녀, 중국정부가 상당히 불쾌하다고 한다. 즉 중국정부의 위기 의식을 자극한다고 한다.

 백두산내의 모든 물가는 한국에 거의 육박한다. 단순비교해도 2004년도 한국과 중국의 1인당 GNP는 15배정도이고, 연변지역과 같은 시골의 물가는 정말 15배가의 격차가 난다. 이런곳에 대량소비를 하는 한국인 몇 십만명이 떨어뜨는 외화는 조선족 호주머니에 고스란히 넣는 것을 중국입장에서는 할 수가 없으리라.

 

 

 

심양 칠보산 호텔

 북경내에 북한 식당이 많이 있고, 심지어 왕징신청안에서는 대성산관이라는 북한 무역회사에 운영하는 웨스턴 바까지 있다. 북경의 대성산관은 스코치위스키, 맥주뿐 만 아니라 북한의 들쭉술, 구렁이가 담긴 구렁이주까지 다양한 식사류와 주류를 제공한다.

심양의 번화가에 유치한 칠보산 호텔은 다른 북한 무역회사에는 운영하는 식당과 같이 한국관광객이 대부분이다. 로비에서 쉬고 있는 맞은편의 건장한 남자 두 명이서 심각한 표정으로 귀속말을 하고 있었다. 무역일꾼들과 달리 몸이 마르지도 않았고, 가슴에 김정일휘장(뱃지)도 하지 않는 것으로 보아서 군인같아 보였다. 평양에서 왔냐고 묻자, 평양에서 왔다고 한다. 그리고 인상이 한국의 특수부대 군인같다고 하자, 군인아니니까 안심하시라요라고 한다. 그럼 무역일꾼입니까라고 묻자, 대답을 주저한다.

중국의 4성급 다른 호텔들과 별반 다른 것도 없고, 다른 호텔처럼 몇 차례 마사지받을 거냐는 중국아가씨들의 전화를 받았다. 7월 9일 새벽 2시경에 호텔이 정전이 되었다. 아침에 일어나보니 식당에서 한국사람들이 농담으로 조국(북한)이 전력난이 심하니 외국나와도 태를 낸다고 농담을 해대었다. 식당에서는 상당히 많은 북한 사람들이 식사를 하고 있었고, 여유로운 모습을 볼수가 없었다.내가 여류롭게 북한 사람들이 식사하는 모습을 본 것은 단동의 압록강 공원앞의 평양식당밖에 없었다. 한국관광객의 항의로 호텔비용을 받지 않았다.

 

 

호산장성-덕적도

 단동은 신의주를 마주보고 있는 가파르게 발전하고 있는 도시이다. 호산장성은 단동에서 30km정도 동쪽에 위치한 했고, 중국측의 역사왜곡의 대표적인 사례로서 만리장성의 일부라고 주장하고 있다. 호산장성의 입구의 오른편에서는 옥수수나 과일을 파는 조그많게 행상을 하는 많은데, 그 길을 따라 500m를 가면 조금 나룻배들이 있다. 중국 국경수비대의 국경촬영금지, 촬영시 엄벌함, 월경금지 등의 문구와 한국어로 북한국경을 넘는 투어라는 상반된 나룻배 상인들의 표지판이 나란히 있다.

 배에 오르려고 하자 담배를 파는 연인이 담배를 사가야 한단다. 북한에서는 담배가 화폐가치를 하므로 군인들에게 담배를 던져주어야만이 사진촬영을 허용한다고 한다. 나룻배에 오르자 해방군의 초급군이 동승했다. 그리고 몇 분후 산성기슳에 내렸다.

 호산장성의 바로 맞으편 몇 미터 앞은 북한 우적도이다. 우리 배가 북측에 접근하자 건장한 자전거를 탄 청년이 배를 따라 오기 시작하였다. 얼굴이 하얗고 체격이 좋았으면 안경도 상당히 고급스러워보였고, 복장 역시 아주 고급스러워보였다. 사공이 배를 좀 더 빨리 자전거를 더 이상 따라 오지 못했다.

   몇 십미터는 서쪽으로 이동하자 조선인민군 복장을 한 군인이 우리 서쪽으로 가르쳤다. 그의 복장은 깔끔해 보였는데 건장한 체력에 군복이 풀어지고 모자를 거꾸로 쓰고 있어서, 한국의 말년 병장을 연상하게 하였다. 지정한 장소를 따라서 사공이 배를 몇 백미터 이동하자, 사람 키보다 큰 옥수수밭 사이에서 옹색한 차림의 중년 아줌마가 나왔다. 사공을 담배를 던지라고 하자, 반사적으로 담배를 던졌다. 잠시후 말년 병장 같은 군인이 우리에게 손을 흔들고는 옥수수밭사이로 담배를 찾기 위하여 들어갔다.

 숨을 헐떡거리며 쫓아온 자전거를 타고 온 건장한 청년이 우리를 향하여 삿대질을 하기 시작하였다. 이런 일에 익숙한 듯 배사공을 내 사진을 빼앗서 그를 찍었다. 청년의 항의가 더욱 거세지자 뱃사공은 어디서 배웠는데, 감자나 먹어라라는 삿대질을 북한 청년에게 하면서 한국어로 똑같이 욕을 했다. 잠시동안의 옥수수밭의 해프닝이었지만, 북한 내부를 볼수가 있었다.

 음식을 던져주면 먹으면 끝나지만, 담배는 교통수단을 이용할 수가 있으므로 북한 군인들에게 가장 인기있는 품목이라고 한다. 군기가 헤이해진 북한 국경경비대의 모습과 그들을 감시하는 사람(?)들이 다중적 감시체계의 단면을 볼수가 있었다. 뱃사공은 한족으로 한국말을 조금 구사하였고, 배사공은 1인당 10원(1300원)을 요구하였고, 매일매일 상당수의 한국관광객이 밀려와서 수입이 상당하다고 자랑을 하였다.

 

신의주-단동

 

단동에 외국인이 넘쳐대는 것은 브루스 커밍스식 표현을 조금 가공하면 포스트 모던의 은자의 왕국(Hermit Kingdom of Post-modern)을 지켜보기 위해서 이다. 단동시내에서 신의주를 지켜볼수 있는 공간은 많다. 압록강공원, 항미원조전쟁기념관(한국전쟁기념관), 압록강변을 따라 즐비한 고층 아파트, 그리고  산 공원 등이다.

 압록강공원 앞에는 모터 보트나 단체관광객용 대형 선박을 이용하여 신의주앞까지 갈수가있다. 압록강공원에 중국인들은 무더위에 수영을 하면서 사실상 북한 영토인 위화도까지 왔다갔다한다. 모터 보트를 타자 압록강 철교를 따라서 신의주앞까지 이동하였다. 신의주앞이라기 보다는 이미 손만 뻗히면 북한 땅이 만져지고, 북한 배들이 만져지고, 북한 사람들과 이야기가 가능한 공간이다.

 철교에서 시작하여 동쪽으로 느리게 이동하였다. 먼저 짓다가 중단한 아파트나 별장 같은 허물한 건물들이 보이고 그 앞에서 수영을 하고 부유해 보이는 북한 남자들이 몇 수십명이 있다. 그리고 북측 압록강 공원에는 한국의 수학여행단 같은 풍경의 사람들이 여유롭게 시간을 즐기고 있었다.  신의주 항구에는 중소형 선박을 건조하는 소형 조선소 등이 있고, 끊임없는 군인들이 이동하는 모습이 모인다. 압록강에서 낚시를 하는 어부들은 모두 배를 정박해두고 배위에서 놀고 있는 모습이다. 비록 체격이 마르기는 했지만, 우리과 흡사한 모습은 사람들이 살고 있다. 식량난을 겪고 있는 모습은 전혀 느낄 수가 없었다. 중국측 안내인은 외국인을 위한 전시용이라고 했지만, 몇 백 명정도의 인민을 동원하는 것이 가능한지에 대한 의문이 들었다.

 밤이 되자 압록강 공원주변에 조선자기, 북한화폐 등등의 북한 물건을 파는 잡상인들이 들어났다. 도자기 등의 경우는 진품여부를 알 수 없었으나, 북한 군인들의 기념패, 훈장, 화폐, 우표 등등은 상당량이 거래되었다. 선군정치를 하는 북한에서 군인들의 명예를 상징하는 물품들이 외국 시장에서 싼 값에 거래되는 것을 볼 수가 있었다. 밤이 되자 신의주 중심부가 여전히 밝아보였다. 하도 신기하여 조선족들에게 물어보자 시내중심의 김일성 동상만은 전력난에도 불을 밝히기 때문에 환하단다.

단동시내 역시 북한 식당이 있고, 압록강 공원 주변에는 북한 무역회사도 꽤나 있어서 김일성휘장(빼지)를 오른쪽 가슴에 단 북한인들이 거리를 걷는 모습도 보였다. 북한 식당은 바다고기, 민물고기 등의 여러 종류가 많았고, 상어회, 랍스터 회 등 한국이나 중국대도시에는 비싼 값에 팔리는 생선회가 저렴했다.

 

 

 

2005년 7월

 

 

 

 

대련

 

러시아와 일본의 조차지로서 영향이 강하게 남았있고, 중러간에 군항에 대한 조차권 조약이 있었다.

 현재로 일본의 투자가 많이 많아있어, 일본인등 외국인이도  많다.

한국과는대인페리에서 국제선도 발달되어있고, 중국국내항구는 천진상해, 산동의   과는 불관 2시간 30. 인천과는   3 선박을 운항

대련항의 국제부두는 시설이 미비하여 많은 수화물을 직접 들고 다녀야 하며 배안에서의 이동도 불편하다.

인천-대련간의 배는 비교적 작아서 흔들리는데, 내가 여행하던 날은 특히 바다가 흔들렸다.

 대련은 동북지방에서 안되는 한족이 역사적으로 거주하던 공간이다. 특히 이홍장시대에 이르던 산동의 한족들이 이주하여, 지난 150 동안 한족화된 지역이다. 언어역시 산동북부지역의 말씨를 많이 쓴다.

 

 대련시내의 해변은 아름답고, 특히 라오후공원과 싱하이공원사이의 동북해변에서 보는 섬이 떠있는 발해만은 아름답다.

해변에는 아주 작은 봉추도섬이 있고, 앞에는 봉추도 빈관이라는 호텔이 있는데, 등소평이 기차를 타고 와서 휴양하던 곳으로 김일성역시 휴양지로 사용했고, 북중간의 최고지도자간의 비밀정상회담의 장소이다.

지금도 중국 최고지도자의 휴양지도 입장료 15원을 내고 들어가면 호텔외곽만 구경하고, 내부는 경비원들이 구경시켜주지 않는다. 그리고 봉추도 섬은 여행사에서 30-40원에 배로 주변을 둘러보는  프로그램이 있는데 실제로 운영되는지는 의문이다.

대련은 너무 아름답고 깨끗한 지역이다. 마치 20년전의 한국을 보는 그런 기분이다. 그러나 특색없는 서구화된 도시로 그다지 매력적이지는 못했다. 대련내의 거대한 공원은 크다는 것외는 그대지 내세울 만한 것이 없다. 현대화된 도시, 싱하이 공원은 유덕화의 별장이 있어서 휴양하기에 좋다는 느낌이 든다. 특히 대련의 야경은 일품이다.

여순군항

 

대련, 여순은 한국병탄과정의 가장 중요한 청일전쟁과 러일전쟁의 격전지로

동북아시아 해영패권을 좌우했던 공간이다.

여순은 지금 중국이 관리하는 해군항으로, 여전히 외국인에게 개방되어 있지 않지만,

중국인과 섞여 여행이 가능한 지역이다.

여순항은 일반적으로 50원인데 나를 여행사에 소개한 조선족이 80원을 요구했다. 그리고 출발시간이 되어서는 100원을 요구했다. 괘씸했지만, 외국인출입금지 구역이라서 그냥 참았다.

먼저 박물관같은 곳을 갔는데, 위해의 청일전쟁박물관에 비하여 아무것도 없고, 입장료만 받는다.

그리고 여순의 중심부에 위치한 산에 올라가서 여순을 조망하는데, 외국인이라고 5분만 보라고 한다.

여행사는 발각되면 나와 여행사가 물어야할 벌금이 적지않고, 최악의 경우에는 스파이 혐의로 추방된다고 한다. 우습기는 했지만, 역시도 졸렸다. 그래도 5분사이에 군함과 항구입구를 촬영했다.

여순항은 입구가 적은 천혜의 요새다. 군항내의 오른쪽으로 건조중인 구축함이 여러 척이 있는데

최신 한국형 구축함과 크기는 비슷했다. 그리고 항내에 수리중에 10여척의 크고작은 구축함이 있고,

소형 군함등도 많이 있었다.

항구주변은 해군시설로 가득했고, 대련에서 단동에 이르는 모든 지역은 레이다 부대가 설치되어 있었다.

극동미군, 한국군, 일본군만이 아니라 특히 북한군의 동향을 포착하려는 것임을 짐작할 있었다.

군항주변의 거리는 스탈린가가 있는데, 모택동의 제국주의적 야욕을 부리던 스탈린에게서 여순항을 반환받기 위해 지혜롭게 혹은 굴욕적으로 소련과 협상했음을 할게 해주는 대목이다.

그리고 소련 열사능, 구관동군 사령부 등이 소련, 일본의 식민지 지배의 잔재가 강하게 남아있고,

여순항의 모습은 흥미로웠다.

여행사에서 강제로 쇼핑하는 곳을 군데 갔는데, 악어마른 고기, 뱀가족 지갑, 러시아 우표 특이한 물건들이 많았다. 그리고 악아쇼를 보러갔는데, 트렌스 젠더들이 거의 나체로 춤을 추고, 남자들 무릅위에서 음란한 동작과 춤을 추는데 모두 거부감을 느껴다. 너무도 자본화된 중국의 퇴폐적인 일면을 볼수 있어서 즐거웠다. 그리고 같이 사진을 찍은 후에 상당량을 돈을 요구했다.

 

 

2006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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