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으로 들어가본 아주 특별한 일터
[zoom up] 20.국가정보원
국가정보원 홈페이지(www.nis.go.kr)에는 1961년 중앙정보부가 발족한 이래 국정원이 걸어온 역사가 정리돼 있다. 거기에 빠지지 않고 쓰여 있는 것이 역대 대통령의 국정원(예전엔 중앙정보부.안기부) 방문 기록이다. 국정원이 대통령의 지시.감독을 받는 대통령 직속 기관임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사상 처음으로 언론에 문을 열어젖힌 '국정원의 일터' 속으로 들어갔다.

◆달라진 국정원=지난해 7월 김승규 원장이 취임한 뒤 국정원은 여러 가지 새로운 시도들을 하고 있다. 국정원의 모든 부서는 4월까지 젊은 직원들로 '주니어 보드'를 구성했다. 이들의 역할은 각종 참신한 아이디어를 모아 부서장에게 직접 전달.반영하는 것이다. 기강이 엄격한 정보기관이지만 '하의상달(下意上達)'로 수직적 의사구조를 보완해 좀 더 살아 움직이는 조직으로 만들겠다는 뜻으로 보인다. 원장.고위 간부와 일선 실무자들의 면담도 늘었다. 한 팀장급 직원은 "요즘엔 현장 실무자의 의견에 더 귀를 기울이는 분위기"라고 했다. 덕분에 '의전대기'도 많이 사라졌다고 한다. '의전대기'란 자기 업무가 끝났는데도 윗분이 퇴근할 때까지 예의상 기다리는 것을 말한다. 회의 문화도 많이 달라졌다. 회의 자료가 간소화됐고 시간도 20분 내외로 단축됐다. 전문가를 불러 특강도 한다. 그동안 윤종용 삼성전자 부회장, 박원순 아름다운재단 상임이사 등을 초빙해 20여 차례의 특강을 했다. 김 원장은 취임 이후 '세계적으로 경쟁력 있는 선진 정보기관'을 국정원의 비전으로 제시했다. 과학정보.산업보안.국제범죄 관련 활동 등을 국정원의 핵심 업무영역으로 설정했다. 불요불급한 인력을 정보수요가 많은 분야에 집중 재배치하는 등 조직을 쇄신하고 있다.

◆전문성 갖춰야 생존=한 교육담당 직원은 "안정적인 직장을 찾아 국정원으로 오겠다는 사람, 자기 과시욕이 있는 사람은 사절한다"고 말했다. 그는 "우리는 개인 평가를 매우 엄격하게 하기 때문에 전문성을 갖추지 않으면 생존하기가 쉽지 않다"며 "계급 정년이 있기 때문에 밖에서 보는 것만큼 안정적이지도 않다"고 했다. 국정원 직원의 정년은 5급 이상은 60세, 6급 이하는 57세이다. 하지만 직급별로 계급정년이 있다. ▶2급 5년 ▶3급 7년 ▶4급 11년 ▶5급 15년이다. 이 기간 중 승진하지 못하면 옷을 벗어야 한다. 인터뷰에 응했던 직원들은 "국정원은 더 이상 권력기관이 아니다"라고 입을 모았다. 폼 잡을 일도 없고, 더 이상 폼 잡을 수도 없다고 한다. 3년차 직원 오모(30)씨는 "친구나 친척을 만나도 직장을 밝히지 못한다"고 말했다. 해외 파트에서 정보 수집 일을 하는 박모(39)씨는 "사명감을 갖고 묵묵히 일하는 사람이 아니면 적응하기 힘들다"고 했다. 역시 새내기 직원 문모(29.여)씨도 "결혼식 때 주례선생님에게 부탁해 남편과 내 직장 소개를 모두 뺐다"고 했다. 북한 파트에서 일하는 송모(29)씨는 "주말에 어디 먼 곳에 가기가 쉽지 않다"고 했다. 주말에도 전화를 받으면 1시간 안에 업무에 복귀해야 하기 때문이란다. 당연히 밤중에도, 주말에도 휴대전화를 켜놓고 산다. 수영장에 가서도 지퍼 비닐백에 휴대전화를 넣고 전화 수신 여부를 계속 체크하는 직원들도 있다.

◆선배님 가라사대=인사업무를 맡고 있는 김모(35)씨는 "조직내 상하관계는 일반적인 대기업보다 엄격한 편"이라고 했다. 윗사람들에게는 깍듯이 '선배님'이라고 부른다. 물론 직책이 있는 선배에게는 직책을 붙인다. 그럼, 선배는 후배를 어떻게 부를까. 해외 파트의 박씨는 후배들에게도 'OOO씨'라는 일반적인 호칭을 쓴다고 했다. 반면 국내 방첩 분야에서 일하는 변모(41)씨는 "OO야" 하는 식으로 그냥 이름을 부른다. 어떤 파트는 후배들이 퇴근할 때 사무실 전등을 끄고 마지막에 나가는 게 당연하게 여겨질 정도로 위계질서가 있다. 회식 문화도 파트별로 약간 차이가 있다. 해외 파트 박씨는 "국내 파트보다는 덜 마신다"고 했다. 방첩 분야의 변씨는 "예전 이문동 시절에는 퇴근길에 한잔 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는데, 여기(내곡동)는 워낙 도심에서 멀리 떨어져 있어 술자리를 같이하기 힘들어졌다"며 "과거에 비해 폭탄주도 많이 줄었다"고 했다.

◆'칼 퇴근'은 없다=구직자들이 요즘 공무원 시험에 몰리는 이유 중 하나가 비교적 일하는 시간이 정해져 있다는 점일 것이다. 하지만 국정원에서는 정시 출퇴근이 쉽지 않은 것 같다. 7년차 직원 김모(35)씨는 "오전 8시 이전에 출근하는 게 자연스러운 분위기"라며 "윗분들은 더 일찍 나온다"고 했다. 해외 파트 박씨는 보통 오전 7시~7시30분에 출근, 오후 8시 전후 퇴근한다. 그는 "말이 공무원이지 우리는 일에 따라 움직인다"고 했다. 방첩 파트의 변씨는 "그래도 융통성은 있는 편"이라며 "전날 야근했으면 다음날은 '일찍' 정시 퇴근을 하기도 한다"고 했다.

서경호.임장혁 기자


*** 신입사원 "700m 상공서 낙하산 메고 뛰어내렸죠… 할만 하던데요"

서울 소재 대학을 졸업하고 올해 1월 국정원에 입사한 이모(여.23)씨는 고교 시절부터 정보요원을 꿈꿨다. 대학 전공으로 정치외교학을 택한 것도 그 때문이라고 했다. 대학 4학년 1년간 국정원 공채시험을 준비했다. 시험 과목에 '종합 교양' 과목이 있어 평소 대학 수업을 들을 때도 시험 준비하는 마음으로 공부를 했다. 이씨는 "종합교양 과목은 출제 범위가 있는 듯 없는 듯해서 국정원 시험 대비 학원에도 다녔다"고 말했다. 논술 기법도 따로 익혔다(하지만 이씨와 함께 인터뷰한 다른 두 명의 신입직원의 경우 국정원 입사를 위해 별도의 학원 강의를 들은 경험이 없었다. 시험 준비기간부터 구체적인 준비방법에 이르기까지 각양각색이었다). 이씨의 영어 실력과 학교 성적은 좋은 편이었다. 토익은 900점대, 대학 학점은 4.3 만점에 4.0 안팎이라고 했다. 그는 정확한 토익점수나 학점은 공개하지 않았다. 뭐 그런 것까지도 보안이냐는 질문에 "사소한 정보도 조각조각 모으면 의미를 가질 수 있다"고 당차게 답했다. 더 눈에 띄는 것은 이씨의 무술 실력이었다. 그는 합기도 2단, 태권도 1단을 딸 정도로 꾸준하게 몸을 단련해 왔다고 한다. 얼마전 700m 상공의 헬리콥터에서 낙하산 메고뛰어내리는 공수훈련도 동기들과 함께 받았다. 뛰어내릴 때의 소감을 묻자 그는 얼굴 표정 하나 바꾸지 않으며 "할 만했다"고 했다. 국정원에 들어와 농구.배구 등 각종 운동도 처음으로 배웠다. 합숙 교육기간 중 자유시간에 하는 동아리 활동으로는 밴드부를 골랐다. 요즘 베이스기타를 치며 동료와 한창 음악을 맞춰보고 있는 중이란다.

서경호 기자


*** 국정원 Q&A


Q:국정원 전체 직원수는 얼마나 되나요?

A:보안 문제로 밝힐 수 없다. 국가정보원법에는 "국정원의 조직.소재지 및 정원은 국가안전보장을 위하여 필요한 경우에는 이를 공개하지 아니할 수 있다"고 돼 있다.

Q:올해 7급 공채는 모두 몇 명이나 뽑나요?

A:그것도 밝히기 곤란하다.기간 요원인 7급의 매년 채용규모가 알려지면 전체 직원 규모를 추산할 수 있기 때문이다.

Q:신입직원 급여는 어느 정도인지.

A:정확한 금액은 국정원 예산과 관련된 사안이어서 공개할 수 없다. 예산 심의도 국회정보위원회에서 비공개로 한다. 채용설명회에서는 '대기업 수준'이라고만 밝히고 있다. 수당을 포함하면 같은 직급의 공무원 급여보다 약간 많다는 이야기도 있는데 그건 직접 입사해서 확인해봐라.

Q:그럼 도대체 명확하게 밝힐 수 있는 것은 뭡니까.

A:음…. 글쎄다. 이건 공개해도 될 것 같다.국가와 국민을 위해, 필요하다면 목숨도 초개처럼 버릴 수 있는, 뜨거운 가슴을 지닌 선배들이 여러분을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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