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원 마구잡이 통화내역조회


검찰지휘 안받는 대테러국 활용
지부장 전결 많아…지난해 7281건

국가정보원이 통신비밀보호법상의 규정을 근거로 언론사 기자나 공무원 등에 대한 통화내역 조회를 무더기로 실시한 것으로 알려져 자의적 판단에 따른 인권침해라는 논란이 일고 있다.

국정원은 지난 한해 동안 7281건(전년도 대비 40.5% 증가)의 통화내역을 조회하면서 지방검찰청장의 승인서가 필요한 국정원 수사국보다는 국정원장의 승인서만으로 조회가 가능한 대테러보안국을 통해 조회를 주로 요청하는 ‘편법’을 사용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

현행 통신비밀보호법은 국가기관으로 하여금 ‘국가안전보장에 대한 위해를 방지하기 위한 정보수집’을 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국정원의 통화내역 조회는 이 규정을 근거로 한 것이지만, ‘국가안전보장에 대한 위해’ 여부가 매우 추상적이고 포괄적이어서 자의적 판단에 따라 개인 신상정보인 통화내역 조회를 남발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국정원은 또 국정원장이 직접 작성하도록 돼 있는 조회 승인서를 국정원 내부 규정에 따라 각 지부의 지부장 등이 전결 처리하거나, 국정원장이 작성한 1장의 승인서에 여러 건의 통화내역 조회를 묶어 요청하는 방식을 사용한 것으로 전해졌다.

정부의 한 관계자는 15일 “국가보안법 위반 사건이나 대공 사건에 대한 수사를 전담하는 국정원 수사국에서 통화내역을 조회할 경우에는 검사의 지휘를 받아야 하기 때문에 통신비밀보호법에 따라 국정원장의 도장만 찍으면 되는 대테러국으로 조회 요청이 몰린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요청서가 너무 많아 그때그때 처리하지 못하고 일정기간 동안 모아서 국정원장의 도장을 찍는 절차만으로 요청을 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국민일보> 조수진 기자의 경우처럼 외부의 요청이 들어와도 별 통제장치 없이 원장이 도장을 찍는 경우도 있다”고 덧붙였다. 그는 또 “외부의 요청에 대해 때로는 국정원 쪽이 난색을 표명하는 경우도 있으나, 압력에 못이겨 결국 통화내역 조회를 하도록 한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국정원의 핵심 인사도 “한 해 동안 7천여건의 통화내역 조회가 이뤄지기 때문에 국정원장이 모두 결제할 수는 없다”며 “국정원 내규에 따라 지부장 등이 전결로 처리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남용 가능성을 일부 인정했다.

이에 대해 국정원 고위 관계자는 “통신비밀보호법상 법원의 영장을 받아 실시하는 감청의 경우 통신회사는 감청이 끝난 뒤 한 달 안에 가입자에게 이를 통보하도록 의무화하는 등 너무 엄격하다”며 “간첩행위나 군사기밀누설 혐의가 상당한 경우라도 감청의 경우 죄를 입증해 형사처벌하지 못할 경우 수사기관에 상당한 부담이 따르는만큼 수사 초기단계의 내사기법으로 통화내역 조회를 활용하고 있다”고 해명했다.

한편, 국회 과학기술정보통신위원회(위원장 안동선 의원)가 오는 17일 에스케이텔레콤 등 이동통신 3사를 방문해 국정원과 검찰·경찰 등의 통화내역 조회 관련 장부와 기록을 현장검증하기로 한 것에 대해, 국정원 등이 강하게 반발하고 나서 파장이 예상된다.

국정원은 “국가안보를 위한 통화내역 조회는 의뢰한 정보기관이나 수사기관장 이외에는 누구에게도 공개할 수 없고, 민간기업인 이동통신사를 국회가 조사하는 것도 위법”이라며 “절대 공개할 수 없다”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사정 당국 고위인사는 특히 “1급 군사기밀이 누설된 혐의가 짙은 언론 보도나 국익을 위협하는 정보누설 확증이 있는 사안에 대한 정보수집은 국정원이 국민으로부터 위임받은 정당한 업무”라며 “통화내역 조회 제공 대장을 확인하는 과정에서 특정인의 명단과 내역이 공개될 경우 외교적 문제로까지 비화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백기철 김재섭 신승근 기자 skshi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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