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기도(전북대·중남미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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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president.go.kr/share/images/200411/041115column_song.jpg)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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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송기도 전북대 교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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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대통령이 우리와 지구 반대편에 위치한 남미의 아르헨티나, 브라질, 칠레 3국을 방문하기 위해 10일간의 기나긴 여정에 올랐다. 14일 아르헨티나 방문을 시작으로 펼쳐지는 노 대통령의 정상외교는 브라질을 거쳐 21-22일 칠레에서 열리는 제 12차 ‘아·태 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로 막을 내리게 될 것이다. 역내 선진국인 이들 3개 국가는 남미에서 가장 중요한 국가로 이들 국가의 첫 글자를 따서 ‘남미의 ABC’국가라 불리고 있는데, 지난 1996년 김영삼 전 대통령이 방문한 이후 8년만의 일이며, 우리나라 국가원수로는 두번째 방문이다.
변화하는 남미
최근 남미에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아니 21세기에 들어서면서 시작된 정치적 변화의 바람이 점점 더 세지고 있다. 세계의 이목이 미국선거에 쏠린 가운데 치러진 지난 10월 31일 우루과이 대통령 선거에서 ‘광역전선’의 바스케스 후보가 당선됐다. 1825년 독립이후 지난 170여년 동안 우루과이를 지배해왔던 ‘콜로라도당’과 ‘국민당’ 양대 보수정당이 몰락하고 들어선 좌파정권이다.
이는 남미대륙에서 1999년 베네수엘라에서 차베스 정권이 출범한 이후 칠레의 라고스 정권(2000년), 브라질의 룰라 노동자당 정권(2002년), 에콰도르의 구티에레스 정권(2002년), 아르헨티나의 키르츠네르 페론당정권(2003년)에 이은 여섯 번째 좌파정권이다. 이로써 남미 11개국가중 좌파정권이 반을 넘어섰다.
89년 베를린 장벽의 붕괴와 90년 소련체제의 해체로 인한 사회주의 체제의 분열로 인해 자연스럽게 냉전에서 승리(?)한 미국은 시장개방과 민영화, 경쟁을 강조하는 신자유주의에 바탕을 두고 아메리카 대륙을 하나의 거대한 시장으로 묶는 정책을 추진했다. 페루의 후지모리, 브라질의 카르도주, 아르헨티나의 메넴, 멕시코의 살리나스 대통령 등 90년대 대다수 남미 정치 지도자들은 미국의 정책을 충실히 따랐다. 이에 따라 90년대 초반 경제가 일시 회복되는 듯했으나 결국은 대부분의 국가에서 경기가 곤두박질치고 엄청난 인플레와 국부유출, 빈부격차 등 경제위기를 맞았다.
이러한 상황에서 신자유주의에 반발하며 국민의 압도적인 지지로 정권을 잡은 차베스 대통령은 남미에 좌파, 개혁바람을 불러일으켰다. 그리고 2002년 군부 쿠데타에서 생존한 차베스 정권은 2002년 등장한 브라질의 룰라 정권과 남미대륙 변화의 진원지로서 역할을 하고 있다. 부시 미대통령의 ‘악의 축’ 발언에 빗대 베네수엘라, 쿠바, 브라질로 이어지는 ‘선의 축’을 만들어 9·11이후 부시 대통령의 패권주의적 정책에 도전하고 있으며, 룰라대통령은 아르헨티나, 브라질이 중심이 된 ‘남미공동시장’(Mercosur)을 중심으로 한 경제정책을 추진해 미국과 대립하고 있다. 신자유주의를 강력히 추진했던 메넴을 물리치고 2003년 들어선 아르헨티나 페론당 정권은 이러한 남미국가들의 변화가 새로운 기류를 형성하고 있음을 잘 보여주었다. 그리고 이번 우루과이 좌파정권의 등장은 이러한 변화가 움직일 수 없는 대세임을 확인시켜 준 것이다.
‘좋은 친구’가 되기 위한 남미 순방
8년 전 중남미를 순방한 김영삼 전 대통령은 이들 국가들과 실질적인 경제 협력을 강화하기 보다는 소위 ‘선진국의 사교클럽’이라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을 통해 국제사회에서 한껏 높아진 한국의 위상을 과시하기 위한 측면이 강했다. 쉽게 말해, 한국이 국제사회의 당당한 일원임을 그리고 세계로 뻗어가는 ‘한국의 힘’을 중남미 국가들에게 보여준 것이었다. 어쩌면 그것은 김영삼 정부가 강조했던 ‘세계화’ 정책의 한 방법으로, 그들이 우리를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에 대해서는 크게 괘념치 않았다.
그러면 이번 노무현 대통령의 이번 남미순방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 노 대통령은 이번 남미 순방을 통해 무엇을 얻어야 할까? 이번 순방은 칠레에서 개최되는 APEC회의에 참석하는 기회를 이용한 인접국 방문이지만, 남미에서 정치적 변화의 소용돌이가 퍼져나가고 있는 시점에서 이루어진 방문이다. 따라서 변화의 흐름을 정확히 파악하고 이들 국가들과 정치, 경제적 협력을 강화해야 한다.
첫째, 이들 국가들을 우리의 자원 공급원이자 상품시장이 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즉, 이들을 우리의 주요 경제 협력 파트너로 만들어야 한다. 작년 우리나라 총 수출 중 중남미는 4.5%만을 차지했을 뿐이다. 중남미는 전체 국내총생산(GDP)가 2조 달러에 이르는 거대한 시장이며, 브라질, 아르헨티나가 이끄는 ‘남미공동시장’은 1조 달러의 규모의 시장이다. 또한 미국은 전체 아메리카 대륙을 하나의 시장으로 통합하려는 ‘미주자유무역지대’(FTTA)를 추진 중이다. 따라서 이들 국가는 그 자체로 뿐만이 아니라 미국 시장과의 연결고리로서도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둘째, 국제사회에서 이들이 한국의 적극적인 지지자가 되도록 직접 그들과 대화하고 설득해야 한다. 이번 노 대통령의 남미국가 순방은 중국, 일본, 베트남 등 동아시아 국가들의 경쟁적 방문 속에 이뤄지고 있다. 특히 노 대통령의 방문은 후진타오 주석의 방문과 교차하면서 이들 국가에서 관심도 커지고 있다. 다시 말해, 중남미 국가들의 시장 잠재력이 새롭게 인식되면서 일본, 중국, 유럽 국가들이 이들과 경제교류를 강화시키고 있는 상황이다. 우리도 이들 지역에 대한 접근을 신속하게 하지 않으면 이들에게 뒤쳐질 수 밖에 없다.
셋째, 우리나라가 한 단계 더 발전하기 위해서는, 국제사회에서 우리의 관계를 특정 몇 개 국가에 집중시켜서는 안된다. 다시 말해, 정치, 경제적 다변화를 통한 국가발전전략이 만들어져야 하고 중남미는 그러한 정책을 현실화시킬 수 있는 ‘유용한’ 지역이다. 한국의 발전과 국제사회에서 우리의 위상을 강화하기 위한 지렛대로 이들 국가들을 최대한 활용해야 한다.
남미는 우리와 낮과 밤이 다르고 계절이 거꾸로다.
그러나 최근 그들의 생각은 우리와 많이 비슷해지고 있다. 지난 80-90년대 미국과 국제기구(IMF, IBRD)의 강압(?)에 따라 추진해왔던 경제정책으로 인해 국가부도의 위기까지 겪은 이들은 21세기가 시작되면서 ‘마음’을 고쳐 잡았다. 지난 수 십년 동안 지지해왔던 정당과 정치인들을 버리고 새로운 선택을 했으며, 이들은 국제사회에서 미국의 패권주의에 대항하기 위해 연대하기 시작했다. 동시에 그들도 다른 지역의 파트너를 찾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노무현 대통령의 이번 방문은 아주 시의 적절한 것이다. 그들이 우리에게 좋은 기회이듯이 우리도 그들에게 ‘멋있는’ 기회로 다가서야 한다. 그리고 미국이나 영어를 통한 접근이 아니라, 우리가 직접 그들의 문화를 이해하고 그들의 언어로 접근해야 한다. 우리가 진정으로 그들의 ‘좋은 친구’가 되기 위해 노력할 때 그들도 우리의 친구로 더 가깝게 다가올 것이다.
* 송기도 교수는 한국외국어대학 서반아어과를 졸업하고 스페인 국립 마드리드대학교에서 정치학 석/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현재 전북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습니다. 저서로는『콜럼버스에서 룰라까지』와 공저로는 『미국 밖에서 새로운 질서를 찾는 리더십』『권력과 리더십』시리즈 등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