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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조선사회주의 체제성립사 1945-1961 ㅣ 선인 현대사총서 10
서동만 지음 / 도서출판선인(선인문화사) / 2005년 1월
평점 :
・서동만에 의한 북조선의 사회주의체제 성립의 5단계 45-61
국권 사회주의(전시체제적 성격): 소련모델의 국가사회주의+(냉전최전선)군사적 색채
(1) 느슨한 인민위위회 체제 : 45-46
(2) 기간산업의 국유화와 농업, 유통부문의 사적 지배라는 이질적인 요소를 풍은 ‘당=국가체제’가 올라서 있는 ‘인민민주주의국가’ : 46-50
(3) ‘당=국가체제’가 농촌말단까지 침투하게 된 ‘전시체제’ : 50-53
(4) ‘당=국가체제’의 행정력, 조직력을 움직여 농촌과 개인상공업의 사회주의적 개조를 완수 : 53-58
(5) 당의 일원적 지도체계가 정군공농의 전 부문에서 관철되어, ‘당=국가체제’가 전 사회를 포함한 ‘사회주의 국가’ : 58-61
・로동당의 세력구성: 다양한 세력 →(특히, 56년 정변) 만주파
: 전 사회를 당의 일원적 지도체계로 묶음, 체제의 경직화
・ 일원적 체제로 귀결된 체제형성 과정이 군사, 공업, 농업의 각 부분에서의 반영
1) 군사부문: 당정군이 일체화된 군사적 색채, 즉 만주파의 당군정 장악
(중국, 베트남과 같이 민족해방전쟁을 통하여 사회주의국가이나, 양국은 당의 군 지배)
: 당은 군사부분을 통일적 장학하지 못하고, 625를 통하여 군의 당의 군대가 되지만, 당정군의 일체화는 만주파의 권력장악(56년)을 매개로 이루워졌다
2) 공업부문: 625직전, 소련식 ‘유일관리제’ 도입하여 전시기, 전후 복구 시기도 유지
: 해방후 인민위원회체제 하에 직업동맹이 강했으나, 전쟁결과 단체계약의 권리는 부정
: (56년이후도) 대중동원형 생산방식 등의 전시체제적 성격이 강화
: 당의 일원적 지도에 의한 공장 관리체제 ‘대안의 사업체계’가 성립, 지배인, 당, 직업동맹의 삼각구조를 유기적 관계 아래 통합하여, 각 부문의 독자성을 부정 (중국형에 비슷)
3) 농업부문: 토지개혁이후 농민위원회는 인민위원회에 흡수
: 625이후 지방인민위원회 체계가 개편되어 농촌 말단까지 중앙의 행정력이 침투, 농업집단화의 조직적 기반
: 집단화 과정을 통하여 농업협동조합은 ‘준국가기관화’(콜호즈, 소련형에 비슷), 중국 인민공사와 같은 ‘정-사합일’형 요소, 당의 일원적 통제의 실현
・북한은 내부모순을 극복하기 위하여, 소련, 중국에 비하여, 강한 국가사회주의 체제로 대응: 우리식 사회주의 기원
:60년대 중소분쟁, 한미일의 삼각관계에서 북조선의 대응은 군사적인 독자노선, 군사적 독자노선은 주체노선으로 체계화
→ 대외적 조건이 지속되어 체제에 항상적 위기상태가 내재하여 구조화, 만주파에 의한 집단적 성격이 불식되고, 김일성 개인의 지위확립
・60년대 이후의 북조선의 변화를 이해하는 방법
1) 국가사회주의로서의 철저화, 자기 유지, 그리고 수정과 관련시켜 보는 것
2) 상부구조의 정치적 측면 뿐 아니라 체제의 심층적 이해의 필요
제 1장 해방과 인민위원회(1945-1946)
・ 해방직후, 북조선 아래부터의 자발적 “느슨한 인민위원회 체제”
북조선 - 이중권력: 소련점령정책의 목표는 북조선에 한정된 정권조직 – 권력의 폭력부분장악, 행정은 인민위원회에, 북조선행정10국의 건설 이후 위로부터 부문별로 통제가 개시, 각도 인민위원회의 지역적 독립성은 유지, 행정체계는 도, 시, 군, 면 단위까지 정비, 리 차원은 촌락공동체
정치: 공산주의자+우익민족주의자(조만식)의 공존
산업: 중요기업, 공장은 인민위원회가 접수, 실질적 ‘공장위원회’의 자치
농촌: 농민조합 → ‘농민위원회’ – 빈농+지주, 부,중농을 포괄
・ 미소의 분할점령과 공산당북조선분국 창립(45.10. 13.) : 공산주의자의 지역적 분립
: 소련의 의사, 김일성중심의 빨치산 그룹, 소련계, 일부 국내공산주의자의 호응
: 국내 토착 공산주의자들이 저항 → 김일성은 박헌영과 타협을 통해 분국형태로 조직 창설
: 북조선행정10국(10.19.), ‘조선인민공화국’도 자진해서 남조선에 한정(11.20.), 대중조직도 남북 분리현상
・ 분국 : 내적 갈등과 대중성 결여로 조직 통제에 한계
: 각 도의 연합형태, 역량의 부족, 서울중앙지지자와 북조선 독자노선 지지자 사이의 갈등, 지방조직의 독자성, 당내 통제의 곤란,
: 인민위원회나 대중단체 내 좌익세력이 강,
: 신의주사건→ 분국 제 3차 확대집행위원회(12.17.)의 김일성 책임비서 취임 : 당조직의 중앙집권화, 빨치산파, 연안계, 소련계의 김일성 지지
: 조선민주당에 비하여 공산당의 열세, 통제력도 한계
・ 통일전선 : 김일성은 당조직의 중앙집권화와 통일전선을 조직
: 남조선 사회단계의 영향력이 약한 부문부터, 남조선의 전평, 전농의 영향력이 강한 노동자, 농민조직보다는, 서울의 중심성을 인정하면서, 청년단체, 여성단계부터 독자적 조직화
: 직업동맹: 교원직업동맹을 시발로
・ 남북간 경제적 연계의 단절: 남조선식량부족 (45년 가을) → 북조선 식량 사정 악화
: 미군측과 협상을 거부하던 소련측은 물자 교역협상을 수락 → 남조선 식량 제공 불능 → 미국과 협상중단
제 2장 ‘인민민주주의국가’ 수립과 ‘당=국가’(1946-1950)
미소공동위원회 개최 직전
: 모스크바 3상회의 이전, 소련군은 북조선을 단위로 하는 정권조직 창설과 토지개혁 구상
: 평양중심파(김일성)의 주도
주요 정책결정, ex)북조선임시인민위원회 결성, 토지개혁 실시 등
: 분국의 조직역량부족(내부대립, 대중성부족)으로 인하여, 소련군과 김일성 연계하는 비공식루트
・ 북조선임시인민위원회의 성격: 통일전선조직+행정조직
: 모스크바 3상회의 결정에 따른 전 조선임시정부 수립의 토대라는 의도
: (남조선) 조선공산당이 주도하는 통일전선체인 민주주의민족전선과 분리되어 북조선의 독자노선
: 토지개혁도 예정: 임시인민위원회의 지지기반을 공고히, 조선임시정부 수립시 주도권확보
: 농민의 아래로부터의 열망을, 임시인민위원회가 위로부터 단행→ 순조롭게 완료
・ 토지개혁을 통하여, 분국이 인민위원회 조직에 올라타는 형태
: 중앙의 통제가 미약한 분국이 토지개혁을 통하여 급성장 →북조선공산당으로 자칭
: 이후, 민주개혁은 ’김일성’이름으로→ 조선공산주의 운동의 리더이며, 조선 지도자로 옹립하는 작업
・ 북조선로동당 창립: ‘당=국가’를 지향, (전 조선) 최대정치세력 형성을 지향
→북조선에서 복수정당간의 체제경쟁이 끝나고, ‘일당제’
: 소수의 만주파, 다수의 연안계와 소련계 등의 주류파가 국내계를 누르는 ….
: 지방통치기구 : 해외출신 도당위원장이 국내계 도인민위원장을 견제
・ 1947년 초 거대한 북조선 로동당을 권력의 중심으로하는 “당=국가”완성
: 46년 말 지방인민위원 선거, 47년 2월 북조선인민위원회 및 인민회는 사실상의 정부 수립
→→ 소비에트제도를 모델로 한 의행합일의 권력집중(권력분립을 부정)
: 북조선인민위원회는 북로당, 민주당, 청우당, 무소속의 연립형태, 집행기구(인민위원회)는 북로당이 다수
・정파연합형 정당, 북로당은 내부 정치적 경쟁이나 다원성은 복잡하게 전개
: 다수의 만주파, 소련계와 소수의 연안계가 주류파형성, 국내계를 억압→ 정파간의 균형
: 다양하고 이질적으로 표출
・군대: 창설부터 당과 인민위원회 외부에서 자율적인 통제: 만주파가 주도→ 당군관계는 복잡
・산업: 유일관리제 실시로 인하여 김책의 산업성과 허가이의 당조직위원회가 대립
・ 정파연합적 성격의 강화: 남북로동당의 합당
: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남북조선로동당의 협력 속에 성립
: 박헌영은 2인자 자리, 각 정파의 거두에 의한 내부 합의 구조
・ 탈식민지사회중에서 북조선 경제(농업사회)는 중공업비중이 높다
: 기간산업의 국유화와 계획경제가 실시(소유의식에서는 사회주의화가 시도되지 않음)
: 농업부문과 중소상공업은 사적 경영
→ ‘당=국가체제’가 위에 올라서 있는 ‘인민민주주의국가’ (– 여전히 국가사회주의체제가 아님)
・사회단체의 자율성 사실
:‘당=국가체제’에서 직업동맹, 농민동맹에게 당의 전도벨트라는 위치 부여
: 다만, 직업동맹에는 노동자 권익단체로서 일정한 권한 부여
: 유일관리제실시: 지배인을 정점으로 당위원장, 직업동맹위원장의 삼각구조
: 토지개혁 이후 농민동맹은 약화
: 총독부시기 시민사회발달이 취약 →해방 후, 폭발적 자치조직→ 행정조직에 흡수
・ ‘노멘클라투라 시스템’은 북로당 창립 이후 형성, 48-49년 체계적으로 간부인사 통제
: 촌락자치: 당=국가체제가 농촌 촌락 수준까지 침투 못한 단계,
제 3장 6・25전쟁과 전시체제(1950-1953)
・전시체체의 특징: 군사위원회를 정점으로 하는 중앙집권적 측면
: 당내 다원성은 유지, but 전쟁책임 소재로 김일성의 불안정한 위치(특히, 50.10.)
: (국가의) 최고의사결정기구 기능을 당중앙위원회 전원회의가 수행
: 전쟁과정에서 정규전형, 인민전쟁형, 유격전형 등 군대가 하나로 통합
: 인민군내 총정치국이 설치되면서 ‘당의 군대’로…
・ 한국전쟁의 성격: 내전 → 미중전쟁으로
: 국군 작전지휘권이 유엔군으로, 인민군 작전지위권이 조중연합사령부로…
: 스탈의 동의로 김일성은 중국측이 제안한 조중연합사령부의 설치에 동의, 김일성은 중공지원군에 경계심과 위기 의식 : 인민군최고사령관이자 조선로동당 위원장으로서 김일성의 굴욕감..
: 전세역전으로 인한 위기상황을 박헌영과 협조에 의해 수습, 박헌영은 당의 군대인 인민군 총정치국장에 취임…
・ 김일성, 전쟁을 통한 힘의 회복:
: 40회 탄생일(52.4.)을 기점으로 개인숭배현상의 확대
: 허가이의 몰라과 자살, 박일우의 좌천, 박헌영의 숙청 등으로 라이벌 제거
→몰리는 입장에서 반격에 성공하여, 당, 정부와 함께 김일성은 권력의 원천
・ 남로당파의 숙청 : 조선내의 최초의 스탈린식 숙청재판, 모택동, 스탈린 개입 가능성…
: 6.25. 개전: 스탈린, 마오쩌등 개입, 김일성과 박헌영의 협력, 박헌영의 남한 빨치산을 이유로 휴전지연 → 중국측의 양해 : 남로당 숙청은 휴전협상과 관계…
・ 전시기 민심수습 차원 : 과거 적색 농조, 노조운동 출신의 국내계를 각 도당, 인민위원장으로 기용
: 남로당파 숙청으로 인한 권력 공백을 다른 파가 채움….갑산계의 부상,
・ 공업부문: 유일관리제의 순조로운 실현
: 엄격한 전시노동입법: 노동관계에서 이동의 자유의 제한, 형사적 조치, 단체 계약의 정지 등
・농촌부문: 초기 승전분위기로 전시생산체제로의 이행이 늦어지고…북측 재점령 이후에 이해..
: 노동력의 조직화: 공동잡업대, 부업협동조합등, 전후 농업집단화의 맹아
: 농촌행정: 남한 점령시 적용했던 전권대표 파견방식의 하상화
: 농촌에 대한 정치적 통제나 행적적 조치는 엄격, 생활은 ‘자연경제’에 의존
: 소련 내전기의 ‘전시공산주의’정책보다는 시장역할을 활요한 ‘네프’(NEP)적 농촌경제
・ 전쟁시 피점령과 탈환을 통한 반혁명적 상황으로 정권과 주민의 고통
: 군중심판 등의 제재수단을 광범위하게 활용
: 통치체제정비(51.3.): 농촌의 대중정치사업의 강화,
유급민주선전실장제도, 5천명의 노동당원을 농촌에 배치
・지방행정구역의 전면적 개편(52.12.)으로 근본적 제도 개선
: 남로당 숙청“당중앙위 제5차 전원회의 문헌통의 사업”과 행정체계 개편을 동시에 단시일에 진행(52.12.-53.초) : 면체계 폐지: 도-군(시)-리 체계로
: 농촌 말단 행정조직에 중앙의 직접적 영향력, 연고없는 간부배치
・ 전쟁을 통하여 광범한 사영상공업이 몰락, 수백만의 주민의 남하
: 토지개혁에 이은 ‘제 2차 인구이동’ → 계층적으로 지주, 부농, 사영상공업자의 남하로 북조선은 주민구성에 동질화
: 전후 사영부문의 현저한 감소, 이남과 심리적, 인적 단절 등의 총체적 단절
제 4장 전후경제복구건설과 사회주의적 개조(1953-1958)
・전후세력관계: 김일성의 권력강화+ 당내 다원성의 유지
:김일성, 김일, 박정애, 박금철, 리효순 등의 주류파vs 박창옥, 최창익 등 연안계, 소련계의 반대파
: 중요 정책결정과정에서 김일성 의사에 반대: 전후 3개년 계획 작성 시기의 중공업중시 노선이나 농업집단화 방침 등
: 소련의 정책적 간섭
→ 당지도부 내부 갈등의 심화: 양곡수매사업, 농업집단화 정책, 전후복구건설의 방향 등
: 남로당파 숙청의 공백을 국내계에서 매우며, 반대파를 억누르는 방법으로..
・농업정책상의 실책으로 김일성과 반대파의 대립(55.12.)
: 주류파는 박일우와 김열을 숙청하며 반대파를 위축
: 주류파는 최고인민회의에서 반격, 김일성은 주체라는 민족주의에 호소, 소련계를 공격
→ 개인숭배문제로 김일성과 반대파는 악화: 제 3차 당대회에서 반대파의 의견은 수용되지 않았고, 소련, 동구의 개인숭배 비판에 편승하여 반대파는 김일성 비판
→ 중소 개입으로 사태는 중단되었으나, 헝가리 동란으로 국제공산주의가 스탈린주의로 회귀하자, 김일성은 반대파를 다시 공격
・ 8월전원회의: 당, 정부내 다원성의 소멸, 광범위한 숙청
: 소련파를 제거하여, 소련의 내정간섭 통로를 차단, ‘점령사회주의’의 유산을 청산
: 권력중심부의 ‘반당종파분자에 대한 투쟁’에 그치고, ‘반혁명분자에 대한 투쟁’과는 거리
- 강경파와 온건파의 대립
・ 인민군내의 만주파의 헤게모니
: 중국군 주둔과 소련의 군사원조에 의하여 군사비는 낮은 수준으로 경제부흥에 총력
: 민주기지론은 전전의 ‘기동전’에서 전후의 장기전 ‘진지전’으로 전환
: 민주기지론의 측면에서 농업집단화는 사회주의 ‘농촌진지’의 구축 : 제대군인, 인민군후방가족, 애국열사유가족, 피살자 가족등 - 제대군인의 광범위한 농촌간부로 배치: 촌란질서의 재편
・ 정전후, 중국과 북조선에서는 전 사회의 사회주의적 개조가 진행
: 중국군과 인민군은 ‘사회주의 혁명’을 휴전선에서 ‘제국주의의 방해’로부터 공동의 수호
--중국혁명과 중미 대결의 결말
: 농업집단화등의 사회주의적 개조가 완료한 후, 중국군의 철수
: 사회주의 개조과정에서 조중간의 긴밀한 관계도 그런 맥락에서..
: 인민군내의 연안계와 소련계의 숙청, 조중연합사령부 체제의 종언은 인민군의 항일빵치산의 전통을 이은 군대로
・ 위로부터의 사회주의적 개조
: 중앙당 집중지도 방식 : 전시기는 농촌말단까지 당, 정부의 행정력으로, 농업집단화 강행
: 56년 대중운동활성화방식 ‘혁명적 군중노선’채택 – 톱다운 방식
: 사회주의적 개조과정이나 공업건설은 소련모델
: 집단화는 제 1형태를 거치지 않고, 제 2형태, 제 3형태(콜호즈, 56)를 채택하는 급진적방식
- 단기간에 제 3형태로 전일화한 집단화는 계급적으로 빈농 중심의 집단화
・ 대규모 주민숙청(소련과 동일)
: 전쟁시 혁명과 반혁명 투쟁의 경험으로 동질화된 사회
: 전시기는 ‘지체된 계급투쟁’- 이는 집단화에 대한 ‘선행한 계급투쟁’
: 전후 남북대립은 주민 억압의 기제
: 57년 개성 등 ‘신해방지구’의 집단화 이탈 움직임은 ‘반혁명분자와의 군중적 투쟁’이라는 초강경수단으로 수습( ‘미제간첩’이라는 명목으로…. 광범한 유혈사태로까지 발전하지는 않았다…)
・ 주류파의 당조직 장악: 체제운용에서 당조직의 역할 증대
: 공장관리, 농업생산화(농업협동조합, 집단화) 에서 통제권이 당조직에 …
: 당조직과 행적조직을 이원적으로 운용하여 상호견제하려는 방식이 강구…ㅇ
・ 농촌: 집단화에 대한 중앙당 집중지도, 당조직이 간부의 인사측면에서 강화
: 농촌지역의 당의 관료주의 문제 → 집단화이후,‘청산리방식’으로…
: 리인민위원회 → 농업협동조합관리위원회에 흡수, 동 조합의 행정기관화, 국가화의 진행
: ‘정사합일’을 이상으로 하는 중국인민공사운동의 영향 – 원래부터 북측의 움직임
・ 관리측과 직맹측간에 전후 단체계약은 없다:
: 전후 복구건설 기간과 사회주의공업화가 개시될때도, 노동관계는 전시체제의 연장성
: 증산경쟁에서 노동자의 생산의무만… 관리자의 책임은 없다..
: 56년 서휘주도 노동관계의 평시체제로의 이행을 시도하지만, 8월종파사건으로 좌절…
→ 직업동맹내부에, 당조직이 직덥 서휘세력에 대한 광범위한 숙청
: 증산경쟁운동 →서휘의 직업동맹의 변화→ ‘집단적 혁신운동’, ‘천리마운동’
・ 전후 복구건설과 사회주의공업화
: 초기 소련, 중국, 동유럽의 원조 + 농업에서의 잉여
:경제복구노선은 당내 노선대립으로 결국은 중공업 중심의 초고속성장 노선으로..
: 주류파의 농업집단화는 경제잉여를 추출하는데 공헌
- 곡물생산량에 대한 통계조작과 곡물수매량확대와 가격통제라는 정책수단을 통한 방법
→전후경제성장은 노동자, 주민의 저소득수준, 농산물의 저가격을 통한 “강행적 축적방식”
제 5장 ‘국가사회주의’와 당의 ‘일원적 지도’체제 확립(1958-1961)
・58년 3월 당 제 1차 대표자대회, ‘종파주의 및 수정주의’청산을 종결
:중앙당에 행정부가 신설: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재판소, 검찰소, 내무성에 대한 당통제의 제도화
: ‘프롤레타리아독재론’이 공식화
: 갑산계의 주도하에 ‘반종파투쟁’과 ‘반혁명분자에 대한 투쟁’이 정식으로 결합
: 57년부터 김일성과 갑산계의 비호 아래 모스크바 유학 출신의 소장 강경파가 부상, 적색농조운동 출신의 국내계의 쇠퇴
: 58년 9월 말, 농업협동화와 개인상공업의 사회주의적 걔조의 완료후 → 갑산계 주도의 ‘새로운 혁명전통 확립’ (갑산계의 비호하의 생존한 소장 강경파의 김창만, 하앙천(연안계) 등도 역할 수행)
・ 농업협동화 완료후, 지방 당과 인민위원회까지 숙청확대 + 김일성의 항일무장투쟁이 민족해방투재의 정통성을 대표한다고 주장하기 시작..
: 일제시대 적색농민조합운동이 강했던 지역에 중앙당 집중지도 → 토착 좌인운동출신인 당, 인민위원회 간부가 상당수 숙청
・ 58, 59년경, 사회와 국가에 대한 당의 우위 원칙 ‘당위원회에 의한 일원적 지도’
: 군대 → 농촌 → 공장 : 군대에서는 연안계와 소련계의 숙청작업과 결부
: 김일성의 직접 지도
: 소련형 ‘국가사회주의’라는 기본특 + 중국식 + ‘천리마운동’과 같은 대중운동, ‘대안의 사업체계’, ‘새로운 농업지도체계 ’등 북조선 독자 모텔 (= ?)
・61년 4월 제4회 당대회: 김일성은 권력자+ 당, 정, 군, 경제, 이데올로기 등 체제의 설계자
: 만주파의 대회이자, 유일한 정파, 특히 군에서..(만주파 중앙위원 절반이상인 군 출신)
-‘군의 만주파화’, ‘당중앙위원회의 만주파화’ → ‘당,정,군의 잋레회’
・ 군내 숙청작업
: 중국군 철수, 조중연합사령부체제에서 인민군의 인적, 제도적 틀로 + 소련식 군내 정치사업방식 ‘군사단일제’에 대한 비판
: 반혁명폭동음모라는 명목의 숙청
: 군내 만주파의 상승으로 김일성의 독자적인 군 통제
: 인민군 창군이념 ‘ 항일무장투쟁’의 전통 → 유일한 창군 이념, 유일한 로동당 창당이념, 유일한 건국이념으로 :
・ ‘강행적 축적체제’
: 58년 3월 제 1차 5개년 계획 ‘초고도 성장노선’
: 58년 6월 ‘집단적 혁신 운동’ → 59년 3월 ‘천리마작업반운동’ (경제부문에 군사적 성격)
: 공업성장 목표도 터무니없는 높은 수준으로..
: 중소분쟁으로 소련과 냉각관계, ‘자력갱생’ – 게획의 실패, 이후 성장률을 공개하지 않음
・ 58년 초 직맹 내 숙청작업의 완료 : 사회단체로서 직맹의 국가기관화, 공업부문에서 당우위의 제도화
・ 결론: 북조선의 국가사회주의체제화는 제 4차 당대회를 기점으로..
: 당정 관계 및 군대, 공장, 농촌의 말단에 이르기까지 당의 일원적 지도 체계를 관철, ‘사회’를 생산단위의 작업반 수준까지 국가사회주의 안으로 포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