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기억에서 사라진다 해도
에쿠니 가오리 지음, 김난주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0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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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의미 그 자체입니다. 이 책을 읽고 났더니 한동안 일본 대중소설에 빠져 지냈던 몇년전 한때가 다 부끄러워질 정도에요. 이딴 걸 왜 읽고 있나 라는 자괴감.

거창한 사건이 일어나지 않는다는 건 뭐 일본 대중소설의 특징이니까 그냥 넘어가자구요. 하지만 문학적 깊이도 , 상징하는 바도, 시대의 아픔도, 청춘의 고뇌도, 성장한다는 불안도, 삶의 비애도, 그 어느 것 하나 없는 평범한 일상을 그냥 게으르게 쫓아가는 <언젠가 기억에서...>는 정말 용서할 수 없을만큼 무의미할 뿐입니다. 김난주씨는 옮긴이의 글에서 이 소설이 여고시절을 지내본 여성독자에겐 어떤 공명이나 울림이 있을 것처럼 얘기하시는데, 글쎄요, 그런말 하시는 진정성까지는 의심하는 건 아니지만, 저같은 성인 남자로서는 일말의 공감도 할 수 없는 말입니다. 저뿐만 아니라 아마도 상당수의 독자에겐 읽을 가치나 의미가 전혀 없는 책일거라고 생각합니다.

에쿠니 가오리의 책은 이로써 세권째인데 어느 것 하나 만족했던 적이 없습니다. 그런데도 왜 읽었나 모르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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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블레스 오블리주 - 세상을 비추는 기부의 역사 살림지식총서 261
예종석 지음 / 살림 / 200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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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진분들이나 없는것들이나, 인간 전체에 대한 혐오가 너무 깊어진 자신이 아무래도 염려되어 일종의 치유책으로 이 얇은 책1을 읽었습니다. 제가 알고 싶었던 건 이거에요. 우리에게도 '존경'할만한 부자가 있는가? 있다면 내게 좀 알려줘.

부자를 존경하기 위해선 단지 많은 금액을 기부한 것으론 부족합니다. 아무리 천문학적인 금액을 기부했어도 악랄한 독점자본가였던 록펠러를 존경할 순 없는 일이죠. 더군다나 한국처럼 면죄부의 댓가로 혹은 대통령 해먹는데 도움이 될까 싶어서 기부 흉내를 내는 천박한 자본주의 사회라면 존경은 고사하고 최소한의 사회적 책임감을 지닌 부자조차 찾기 어렵습니다.

이 책이 소개하는 한국의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예도 조선시대 최부자 집안이나 유일한 등 과거의 인물이 대부분이고, 생존해 있는 인물은 -워낙 드물어서 그럴거라고 짐작하고 있습니다만- 그 수도 적은데다가 '존경'씩이나 할만한 사람들인지 확신할 수 없군요. 정문술은 박정희 정권때 안기부 고위직이었던 인물이고, 김군자 할머니는 노블레스와는 관계없는 분이잖아요.  

결국 제 희망과 달리 이 책을 읽고 한국의 가진분들에 대한 혐오가 더 깊어지고 말았습니다.

구한말과 일제시대에 독립운동에 투신했던 이회영 집안이나 이상룡 집안 등은 노블레스 오블리주라는 말로 한정지을 수 없는, 어떤 윤리적 경외감마저 갖게 만드는 분들입니다. 하지만 그 도덕적 실천 때문에 결국 일가의 상당수가 비참한 최후를 맞거나 집안이 망했다고 하네요. 불의에 타협하고 같은 민족을 착취하던 인간들의 후손은 시대의 격변에도 아랑곳없이 부와 명예를 움켜쥐고 잘먹고잘살고 있는데 말이죠. 많은 것을 설명해주는 문장이 있더군요. " 우리의 역사가들은 노블레스 오블리주는 그 시대 지배층의 역사적 정통성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고 지적한다. 정통성 있는 세력이 그 시대를 지배할 경우 노블레스 오블리주는 시대의 정신으로 자리잡지만 그 반대의 경우에는 실종된다는 것이다." 도무지 좋아할 수 없는 나라에요. 예나 지금이나. 이딴 나라이고 보니 목숨과 재산을 바쳐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하신 분들이 존경스럽긴 하지만 나도 저렇게 살아야겠다는 생각은 전혀 안 드는군요.

하지만...

인간에 대한 혐오와 불신은 제 정신과 삶을 점점 더 피폐하게 만든다는 점 역시 경험을 통해 알게 된 사실입니다. 남들도 베풀지 않는데 내가 미쳤다고? 혹은 저런 멍청한 인간들에겐 자선조차 과분해, 라는 생각은 자신을 더욱 고립시키고 인생을 더욱 비관하게 만들테지요. 있지도 않은 '부'를 가지고 이런 생각을 한다는 게 좀 코미디 같긴 하지만, 도덕적 의무감 같은 윤리의 문제가 아니라, 세상과 사람을 더욱 아름답게 바라보고 그 덕분에 내가 조금 더 행복하게 살려면 자발적인 선행과 가진자로서의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이렇게 사람과 사회가 미워서는 스트레스만 받다가 인상고약하고 불평만 늘어놓는 늙은이가 되어버리고 말거에요. 일생을 증오 속에 살다보면 나이 쳐먹고 가스통같은 걸 매달고 다니는 미친짓을 하게 되는 법이죠.
우리는 어려울 때 서로 돕는 참 정이 많은 민족이라는 헛소문이 있습지요. 사회적 책임을 떠넘기고 싶은 가진분들이 생각해낸 우민화 정책의 결과가 아닐까 싶어요. 책임질 놈은 발뺌만 하는데 국민들은 금을 모은다고 난리법석이던 imf 때의 한심한 풍경을 생각해보면, 썩 잘 먹히는 정책이다 싶기도 하네요. " ... 그러나 우리들의 베풂은 다분히 일회적이고 즉흥적이며 감상적이다. 우리나라에서 어려운 이웃을 돕기 위한 모금의 70%가 연말연시에 이루어진다는 사실이 그러한 현실을 웅변으로 말해주고 있다. 아직도 우리의 기부는 개인(30%)보다는 기업(70%) 중심이며, 정기적 기부자(18%)보다는 비정기적 기부자(82%)가 더 많다. 선진국의 기부는 우리와는 반대로 소액의 개인기부가 중심이며 그것도 일회성이 아니라 꾸준히 기부하는 정기기부가 대종을 이룬다. 선진국 시민들에 있어 기부는 일상적인 일이다. 소액기부라 하지만 미국인들은 연평균 140만원을 기부하는 데 반해 우리나라 사람들은 5만 7,900원을 기부하는 데 그치고 있다. 미국과 우리나라의 소득격차를 감안하더라도 이것은 크게 차이가 나는 액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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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라질풍의 포르투갈어 - 전후일본단편소설선 2 한림신서 일본현대문학대표작선 24
오에 겐자부로 외 지음, 오경 외 옮김 / 소화 / 200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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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에는 오에 겐자부로 '외' 라고 적혀있긴 하지만

화면 중간 부분 <저자 소개>에는 오에 겐자부로만 적혀 있어

저는 오에 겐자부로만의 단편소설집인 줄 알았습니다.

오에 겐자부로의 단편은 단 하나만 실려있어요.

저처럼 실수로 구매하지 마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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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의주의자 사전 - 특별보급판
로버트 토드 캐롤 지음, 한기찬 옮김 / 잎파랑이(제이제이북스) / 200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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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의 '사전'이란 말이 과장이 아닐 정도로 충실하고 방대한 양을 다루고 있습니다. 저자가 과학과 합리성이라는 원칙을 철저히 고수하다보니, 가령 '침술'처럼 우리에게 익숙한 개념들조차 비과학과 맹신으로 치부되기도 합니다. 하지만, 과학적 사실도 '잠정적인 진리'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염두에 두고, 저자의 주장을 비판적으로 받아들인다면 더없이 유익한 독서체험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저자가 미국인이다보니, 우리에겐 생소한 현상들, 가령 화초요법이나 아유르베다 의술 같은 것에 대해서는 자세히 설명하지만, 우리 사회 고유의 미신이나 그릇된 신념에 대한 설명이 없어 안타깝습니다. 어쩔 수 없는 부분이겠지요. <회의주의자 사전> 한국 버전을 기대해 봅니다.

충실한 내용에 비해, 오자도 간간히 보이고 번역도 성의없는 부분이 많습니다. 조사가 이상하거나 목적어가 연달아 두 개가 나온는 부분들은 원고를 제대로 수정하지 않았음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저는 양장본이 아니라 보급판으로 읽었는데, 활자가 굉장히 작아서 눈이 쉽게 피로해진다는 점도 알려드리고 싶습니다. 여력이 되시면 좀 비싸더라도 양장본으로 구입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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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halasia 2008-12-04 17: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침술이 우리에게 익숙한 '사기'일 뿐이죠. 굳이 회의주의자 사전이 아니더라도 침술이 어떻게 사람들을 속여먹는지에 관해서는 많은 자료와 논문이 있습니다. 블로그만 몇 개 뒤져도 쉽게 나와요. 뭐, '잠정적인 진리'라고 회의하시는 것으로 보아 별로 쓸모없는 조언인듯 싶습니다만.

Cocteau 2008-12-04 18:25   좋아요 0 | URL
한의학의 사상체계를 무지나 비과학으로 치부한다 하더라도 '침술'이 특정한 증상에 대해 임상적 효과를 가진다는 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이 책의 저자들도 동의하는 바구요. 저 역시 침술의 효과를 과대평가하는 것은 경계하지만 그렇다고 눈에 보이는 사실까지 부정하는 것은 오만이거나 몰이성이라고 생각합니다. 과학사의 숱한 에피소드들이 말해주듯이, 그런 오만과 몰이성이야말로 과학적 진보를 가로막은 주범이었지요. 아시다시피 과학적 진리가 '잠정적'이라는 사실을 부인한다면 그건 더이상 과학이 아니잖아요?
 
속죄
이언 매큐언 지음, 한정아 옮김 / 문학동네 / 200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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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사랑, 마지막 의식>과 함께 주문한 이 책을 택배로 받아 보았을 때, 전 질려버렸어요. 500페이지가 넘는 소설이라니... 이렇게 두꺼운 소설은 2005년도에 <콜레라 시대의 사랑> 이후 처음이었습니다. 제 나름의 기준에 따라 문학사의 고전으로 평가받은 책이 아니라면 많은 시간을 들여 한꺼번에 읽어내야 할 장편소설은 거의 읽지 않거든요. 작가소개말이나 인터넷 책소개에 따르면 이언 매큐언은 영미문학권에서 꽤 영향력있는 작가인 듯한데, 저로선 그러한 사실을 잘 알지 못했습니다. <첫사랑, 마지막 의식>을 먼저 읽고 나선 <속죄>까지 산 것에 대해 후회하기도 했어요. 최근 영화가 개봉하기도 해서 <첫사랑, 마지막 의식>을 사면서 덩달아 산 건데, <첫사랑, 마지막 의식>은 썩 자극적이고 재밌기는 했지만, 근친상간과 강간, 신체절단이 묘사된 500페이지가 넘는 책을 읽어낼만큼 제가 기력이 있는 것도 아니고 시간낭비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물론 그건 모두 오해였어요. <속죄>는 예전 고등학교 때 읽었던 <제인에어>나 <부활>처럼 가혹한 운명과 비극적인 사랑이 장중하게 펼쳐지는, 고전의 향취가 느껴지는 소설이었거든요.

대충 어떻게 소설이 진행되는지 알고 있었지만, 브로이니의 경솔함 때문에 로비가 모함에 빠지는 장면에선 명치끝이 저려오는 듯한 분노가 치밀기도 했었습니다. 로비와 세실리아의 비극적인 사랑에 가슴 아파하기도 했구요. 두 연인의 운명에 2차대전이라는 문명의 몰락이 뒤따르지 않았다면, 두 연인의 비극이 인류의 비극으로 덮여지지 않았다면, 전 브로이니와 무자비한 운명에 분노하며 읽던 책을 집어던졌을 거에요. 고등학교 때 <테스>를 읽으며 그러했던 것처럼. 예, 저도 압니다. 이런 감상이 서른줄을 훌쩍 넘은 남자가 할 소리가 아니라는걸. 하지만 소설을 읽으며 이렇게 흥분해보기는 또 중고등학교 이후로 처음인 것 같아요. 읽고 있자니, 나의 인생의 목적은 소설을 쓰는 것이 아닐까, 같은 잊고 있던 망상이 다시 떠오릅니다. 

참 많은 것들을 생각하게 하는 소설이었습니다. 자신이 진실이라 믿는 것을 말하는 것이 타인에게 어떤 위험을 초래할 수 있는지. 브로이니는 10대 초반의 불안한 정서를 가진 소녀이지만, 그런 오만에 찬 자의식은 연령을 초월해 우리 모두가 갖고 있는 결함 중 하나잖아요. 타인의 입장과 감정을 헤아리지 못하는 그런 무감각한 폭력이 초래한 비극을 소설 속 2차대전에서, 그리고 우리가 알고 있는 숱한 야만들 속에서 쉽게 발견할 수 있습니다. 비근한 예로 근거없는 루머를 입에 담으며 함부로 타인을 평가하는 건 저의 못된 습관 중 하나입니다. 딱히 타인에게 잘못을 저지른다는 자의식도 없이 이루어지는 그런 무책임한 평가를 실제로 입에 담지 않더라도 그것이 인간에 대한 예의를 벗어난 천박한 행동이고 보이지 않는 폭력이라는 점은 분명합니다. 부끄러워지는군요.

소설을 읽고 최근에 개봉했다는 <어톤먼트>(이런 병신같은 작명은 제발 하지 말아주세요. 무슨 덜 떨어진 스노비즘이랍니까?)를 대충 훑어봤습니다. 전 두루 인정받는 고전이 아니라면 원작보다 영화를 보는 편이 시간절약이라고 생각해왔었는데, 역시 그게 아니었습니다. <어톤먼트>는 <속죄>에 대한 사려깊은 해석이라고 찬사받는 영화인 것 같고, 해안가의 그 유명한 롱테이크나 물에 떠있는 세실리아처럼 인상적인 장면들도 많은 영화이지만, 역시 뭔가 빠져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네요. 많은 실패작들이 그러는 것처럼 가벼운 대사와 단순무식한 단순화로 원작의 행간을 상상하고 싶어하는 독자의 상상력을 짓밟아서가 아니라, 영화라는 매체의 특성상 시간적 축약을 할 수밖에 없다는 점이 가장 큰 이유일 것입니다. 존재감이 별로 없는 로비 역의 제임스 맥어보이와는 달리 세실리아 역의 키이라 나이틀리는 변함없이 아름답구요. 인터뷰로 마무리짓는 결말부도 지나치게 설명조이긴 하지만, 그밖에 어떻게 결말을 지을지 달리 생각나는 바도 없네요.

여튼간에 간만에 읽은 근사한 소설이었습니다. 요즘엔 웬만한 책은 읽고 팔아버리는데 이 책은 도저히 그럴 수 없네요. 일찌감치 팔아버렸던 <첫사랑, 마지막 의식>도 아까워졌습니다. 시간나면 그의 다른 소설들도 다 읽어볼 계획이에요.

그 두께만큼이나 가벼운, 예를 들어 옴니버스 구성의 일본 대중소설들에 빠져 계신 분들이나, 삶에 치여 소설 따위가 무슨 소용이냐며 문학소년/소녀였던 자신의 과거를 부정하고 계신 분들이라면, 술 마시고 옷 사입으실 돈과 시간으로 한번 읽어보시길 권해봅니다. 잊고 있던 문학적 감동이 느껴지실 거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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