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블레스 오블리주 - 세상을 비추는 기부의 역사 살림지식총서 261
예종석 지음 / 살림 / 2006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가진분들이나 없는것들이나, 인간 전체에 대한 혐오가 너무 깊어진 자신이 아무래도 염려되어 일종의 치유책으로 이 얇은 책1을 읽었습니다. 제가 알고 싶었던 건 이거에요. 우리에게도 '존경'할만한 부자가 있는가? 있다면 내게 좀 알려줘.

부자를 존경하기 위해선 단지 많은 금액을 기부한 것으론 부족합니다. 아무리 천문학적인 금액을 기부했어도 악랄한 독점자본가였던 록펠러를 존경할 순 없는 일이죠. 더군다나 한국처럼 면죄부의 댓가로 혹은 대통령 해먹는데 도움이 될까 싶어서 기부 흉내를 내는 천박한 자본주의 사회라면 존경은 고사하고 최소한의 사회적 책임감을 지닌 부자조차 찾기 어렵습니다.

이 책이 소개하는 한국의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예도 조선시대 최부자 집안이나 유일한 등 과거의 인물이 대부분이고, 생존해 있는 인물은 -워낙 드물어서 그럴거라고 짐작하고 있습니다만- 그 수도 적은데다가 '존경'씩이나 할만한 사람들인지 확신할 수 없군요. 정문술은 박정희 정권때 안기부 고위직이었던 인물이고, 김군자 할머니는 노블레스와는 관계없는 분이잖아요.  

결국 제 희망과 달리 이 책을 읽고 한국의 가진분들에 대한 혐오가 더 깊어지고 말았습니다.

구한말과 일제시대에 독립운동에 투신했던 이회영 집안이나 이상룡 집안 등은 노블레스 오블리주라는 말로 한정지을 수 없는, 어떤 윤리적 경외감마저 갖게 만드는 분들입니다. 하지만 그 도덕적 실천 때문에 결국 일가의 상당수가 비참한 최후를 맞거나 집안이 망했다고 하네요. 불의에 타협하고 같은 민족을 착취하던 인간들의 후손은 시대의 격변에도 아랑곳없이 부와 명예를 움켜쥐고 잘먹고잘살고 있는데 말이죠. 많은 것을 설명해주는 문장이 있더군요. " 우리의 역사가들은 노블레스 오블리주는 그 시대 지배층의 역사적 정통성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고 지적한다. 정통성 있는 세력이 그 시대를 지배할 경우 노블레스 오블리주는 시대의 정신으로 자리잡지만 그 반대의 경우에는 실종된다는 것이다." 도무지 좋아할 수 없는 나라에요. 예나 지금이나. 이딴 나라이고 보니 목숨과 재산을 바쳐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하신 분들이 존경스럽긴 하지만 나도 저렇게 살아야겠다는 생각은 전혀 안 드는군요.

하지만...

인간에 대한 혐오와 불신은 제 정신과 삶을 점점 더 피폐하게 만든다는 점 역시 경험을 통해 알게 된 사실입니다. 남들도 베풀지 않는데 내가 미쳤다고? 혹은 저런 멍청한 인간들에겐 자선조차 과분해, 라는 생각은 자신을 더욱 고립시키고 인생을 더욱 비관하게 만들테지요. 있지도 않은 '부'를 가지고 이런 생각을 한다는 게 좀 코미디 같긴 하지만, 도덕적 의무감 같은 윤리의 문제가 아니라, 세상과 사람을 더욱 아름답게 바라보고 그 덕분에 내가 조금 더 행복하게 살려면 자발적인 선행과 가진자로서의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이렇게 사람과 사회가 미워서는 스트레스만 받다가 인상고약하고 불평만 늘어놓는 늙은이가 되어버리고 말거에요. 일생을 증오 속에 살다보면 나이 쳐먹고 가스통같은 걸 매달고 다니는 미친짓을 하게 되는 법이죠.
우리는 어려울 때 서로 돕는 참 정이 많은 민족이라는 헛소문이 있습지요. 사회적 책임을 떠넘기고 싶은 가진분들이 생각해낸 우민화 정책의 결과가 아닐까 싶어요. 책임질 놈은 발뺌만 하는데 국민들은 금을 모은다고 난리법석이던 imf 때의 한심한 풍경을 생각해보면, 썩 잘 먹히는 정책이다 싶기도 하네요. " ... 그러나 우리들의 베풂은 다분히 일회적이고 즉흥적이며 감상적이다. 우리나라에서 어려운 이웃을 돕기 위한 모금의 70%가 연말연시에 이루어진다는 사실이 그러한 현실을 웅변으로 말해주고 있다. 아직도 우리의 기부는 개인(30%)보다는 기업(70%) 중심이며, 정기적 기부자(18%)보다는 비정기적 기부자(82%)가 더 많다. 선진국의 기부는 우리와는 반대로 소액의 개인기부가 중심이며 그것도 일회성이 아니라 꾸준히 기부하는 정기기부가 대종을 이룬다. 선진국 시민들에 있어 기부는 일상적인 일이다. 소액기부라 하지만 미국인들은 연평균 140만원을 기부하는 데 반해 우리나라 사람들은 5만 7,900원을 기부하는 데 그치고 있다. 미국과 우리나라의 소득격차를 감안하더라도 이것은 크게 차이가 나는 액수다."


댓글(1)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