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인 조르바 Mr. Know 세계문학 5
니코스 카잔차키스 지음 / 열린책들 / 200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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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 그렇다. 나는 그제서야 알아들었다. 조르바는 내가 오랫동안 찾아다녔으나 만날 수 없었던 바로 그 사람이었다. 그는 살아 있는 가슴과 커다랗고 푸짐한 언어를 쏟아 내는 입과 위대한 야성의 영혼을 가진 사나이, 아직 모태인 대지에서 탯줄이 떨어지지 않은 사나이였다. 언어, 예술, 사랑, 순수성, 정열의 의미는 이 노동자가 지껄인 가장 단순한 인간의 말로 내게 분명히 전해져 왔다...

조르바는 분명 매력적인 인간입니다. 행동없이 머릿속에서 단어만 굴리는 지식인들을 비웃고, 국가라는 미명 아래 악행에 면죄부를 부여하는 애국심을 비웃고, 인생이 선사하는 쾌락과 희열의 순간 앞에서 머뭇거리는 알량한 윤리관을 비웃는, 이 정열적인 남자의 야수적인 매력을 과연 누가 거부할 수 있겠습니까?

하지만, 결국 그는 살아남은 사람입니다. 조르바에 여성관이 지독히도 편향되어 있다는 것은 애교로 받아들인다 하더라도, 조르바가 회한섞인 한숨으로 고백하는 과거 그의 악행의 기록들까지 조르바라는 위대한 인간이 완성되기 위한 한 단계나 수순이었다고 받아들일 수는 없습니다. 카잔차키스 자신이기도 한 극중 화자는 인간 조르바의 매력에 취해 그의 죄많은 개인사까지도 '행동하는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의 범주에 속하는 것으로 판단하는지 모르겠으나, 제겐 그런 화자의 태도는 문약한 자신에 대해 컴플렉스를 갖고 있던 지식인의 뒤틀린 가치관으로 받아들여집니다.

조르바는 위대하고 자유로운 인간입니다. 그가 뱉어내는 말들은 지하철 안에서 저도모르게 킥킥대며 웃게 만들만큼 솔직하고 신랄했으며, 그가 하는 어떤 행동들과 용기는 무척 감동적이었습니다. 행동으로 가득찬 조르바의 삶의 역정은 평범한 사람의 삶의 스케일이 아닙니다. 하지만 다른 소설 속의 영웅들의 삶이 그러하듯이 그의 삶의 어떤 에피소드들은 일반적인 윤리관으로는 용서하기 힘든 오점이 있고, 저 같은 소심한 남자는 그것때문에 조르바를 온몸으로 받아들이고 존경하기를 거부하고 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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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소 수프 - 무라카미 류 걸작선
무라카미 류 지음, 정태원 옮김 / 동방미디어 / 200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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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일본 소설'이라면 무라카미 류의 소설이 가장 먼저 떠오릅니다. 무라카미 류의 소설이 가장 전형적인 일본소설이라거나 일본문학사에서 큰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것은 아닐겁니다. 그런데도 제가 일본소설이라고 하면 그의 소설부터 떠오는 이유는, 아마 그의 소설이 일본 영화의 어떤 경향과 닮아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미이케 다카시와 츠카모토 신야의 중간쯤에 위치한다고 할까요? 때로 그의 소설에는 일본제 고어영화의 한 장면을 글로 옮겨놓은 듯 잔인한 장면이 나옵니다. 그것도 아주 섬세하고 시각적인 묘사로 말이죠. <오분후의 세계>나 <오디션>에서처럼 말이죠. 그 중에서도 이 소설에서 프랭크가 어떤 미팅크클럽에 가서 사람을 죽이는 장면은 가히 백미군요. 처절한 아름다움이 느껴질 정도입니다. 저런 장면이 다 무슨 의미가 있느냐, 단지 선정주의일 뿐이지 않느냐, 싶기도 하지만, 저런 잔인과 냉담이 무라카미 류가 바라보는 현재 일본사회의 심연의 본질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사실 무라카미 류의 소설이 지극히 통속적인 소재를 지나치게 선정적인 방식으로 풀어나가는 경향이 있지만 쇼킹만을 주기 위해 그의 소설에 삽입되는 것 같지는 않습니다. 그의 소설은 거의 대부분 무너져가고 있는 일본사회를 어떤 방식으로든지 반영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때로 일본사회를 바라보는 그의 시선은 무척 비관적입니다. 이 소설에서 서슴지 않고 살인을 저지르는 미국인 프랭크의 광기는 나름의 당위성을 획득합니다. 그의 행동에 심정적으로 공감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그의 행동을 설명할 수 있는 코드가 존재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인정하게 되는 것이지요. 정체가 밝혀진 후 단순한 공포의 대상이기만 했던 프랭크는 소설 말미에 가서는 '고발자'처럼 여겨집니다. 무너져버렸지만 아무도 알아차리지 못하거나 인정하려하지 않는 일본 사회의 시스템을 직시하라고 요구하는 고발자로서 말입니다. 그 폐허를 보지 않으려고 두 손으로 눈을 가린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의 두 손을 잘라내는, 그런 처참하고 냉정한 방식으로 말이죠.

일본이 어떤 사회인지, 전 잘 모릅니다. 하지만 그의 소설에서 만나는 일본은 회복의 가망이 없는 나라입니다. 우리나라는 얼마나 다를까요?


연쇄살인자 프랭크가 자신의 어릴적 시절을 회상하며 하는 말 중에 이런 게 나오는군요.

"... 기본적으로 공포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은 따분한 인생을 살고 있어. 자극을 원하면서도 그들은 안심하고 싶어하지. 두근거리는 영화가 끝나고 자신과 세계가 의연하게 정확히 존재하는 것으로 안심하는 것이지. 그것이 공포 영화의 진짜 존재 이유야. 공포 영화는 충격 완화의 역할을 완수하는 것뿐이야. 때문에 이 세상에서 공포 영화가 사라져 버린다면 상상력의 불안을 해소해 주는 것이 한 가지 없어지는 것이고, 아마 엽기적인 살인은 비약적으로 증가할 거야. 공포 영화를 보고 살인을 생각하는 멍청이는 살인에 대한 뉴스를 보아도 살인을 생각할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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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플 게임
하야시 마리코 지음, 김자경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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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제는 <모든이의 비밀 皆の秘密>입니다. 엉터리도 엉터리 나름이지, 글을 다루는 사람들의 작명센스가 왜 저따위일까요...

제목과 구성- 12편의 연작소설로 한 편에서 조연급 등장인물이 다음 편에선 주인공이 된다는 식의 릴레이 구성-만 보곤 '야마다 에이미' 쯤의 연애질 소설인 줄 알았는데, 이거, 좀 무겁군요. 매 편마다 섹스에 관련된 욕망과 기억들이 빠짐없이 등장하지만, 가령, 오디푸스 컴플렉스가 대학 초년생인 어린 딸에게 전이되, 뒤돌아선 딸내미의 엉덩이를 탐욕스럽게 응시하는 이야기라든가, 하는 얘기는 2,30대 여성독자를 겨냥한 불륜물쯤의 소재로는 너무 부담스럽겠죠.

적어도 '이름만 대면 다 아는 대기업의 간부'나 그의 아내, 딸 정도 되야 주인공이 될 수 있는, 위화감 조성하는 인물설정은 좀 배알꼴리지만, 그런대로 읽을만한 소설이었습니다.

... 세상의 결혼한 여자들이 불륜을 두려워하는 것은 결코 도덕 때문이 아니다. 그렇다고 남편에 대한 사랑 때문은 더더욱 아니다. 자신의 몸을 다른 남자에게 보여주고 싶지 않다는 것, 단지 그 이유뿐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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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러독스의 세계 - 인간 이성의 한계를 묻는 12가지 역설
윌리엄 파운드스톤 지음, 민찬홍 옮김 / 뿌리와이파리 / 200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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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만해 보이는 제목과는 달리 상당한 지적 도전을 요구하는 책이군요. 하지만 무척 재밌었습니다.

'통 속의 뇌' 같은 익숙한 주제로 시작한 책은 '과학철학과 논리학, 언어철학'의 여러 난제들을 두루 아우르며, 인간 이성으로 가능한 것과 불가능한 것 사이의 한계를 그어줍니다. 사변 수준의 소일거리나 두뇌 트레이닝 등을 위한 도구적 기능 이외에, 뭔가 실천적인 의미도 얻을 수 있을 거에요. 사실 인간 이성의 불완전성에 대한 경고는 근대 이후 철학이나 예술, 문학 분야의 오래된 레퍼토리겠지요. 하지만, 가령 인간 이성에 대한 맹신이 불러온 결과-전쟁이나 환경파괴 등-의 비극성을 들어 '심장'으로 거부하게 만드는 대신, 이 책은 논리학과 통계학, 물리학의 도구를 빌려, 이성의 한계를 '이성적으로' 납득할 수 밖에 없게 만듭니다.

여튼 재밌는 책이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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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lmatodall 2019-04-18 09: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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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틸다 (양장) - 로알드 달 베스트
로알드 달 지음, 퀸틴 블레이크 그림, 김난령 옮김 / 시공주니어 / 200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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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알드 달, 유명한 동화작가이지만 모르시는 분이 계실 것같아 조금 설명드리면... 1916년 출생한 영국출신의 소설가로 2차대전 때 전투기 조정사로 참전했다가 격추당한 후 글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최근 리메이크된 <찰리와 초코렛 공장>의 원작자이기도 하구요, <마틸다>, <제임스와 수퍼 복숭아>, <내 친구 꼬마 거인>등의 동화등을 썼습니다.

제가 로알드 달에 대해 처음 알게 된 것은, 어느 무료한 휴일, 집에서 빈둥대다 무료함에 지쳐 리모콘으로 채널을 이리저리 돌리다가... <마틸다>라고 하는 영화를 보고 난 다음입니다. '이거 웃기네'하며 보기 시작한 그 '애들 영화'를 자세를 고쳐잡고 끝까지 보고 말았어요. 애들 영화임에 분명한데 어딘가 정상성에서 벗어난 듯한 해괴한 영화였거든요. 전직 투포환 국가대표였던 교장선생이란 작자는 초등학생들을 빙빙 돌려 담장밖으로 날려보내고, 천재소녀 마틸다의 부모들은 이를데없는 저속함과 천박함으로 무장하여 "TV를 보면 뭐든지 알 수 있는에 왜 쓸데없이 책이나 읽고 있냐"며 마틸다를 구박합니다. 원작을 읽으니 더 가관이군요. 어른들의 유아학대에 대한 구체적이고 잔인한 묘사-가령 마리오 바바의 < Black Sabbath > 의 그 유명한 마녀처형기구를 연상시키는, 사방에 못이 튀어나와 있어 선 채로 조금도 움직일 수 없는 처벌 방이라든지 체벌의 일환으로 아이의 귀를 잡아당겨 귀가 늘어나버린 장면이라든지-와 근친살인에 관한 언급, 차라리 '유기'에 가까운 부모들의  무관심 등, 아이들에게 전혀 유익하지 않은 내용으로 가득차 있었습니다. 제 자식이라면 읽히고 싶지 않은 책이지요. 하지만... 위반의 쾌감이랄까요? 나이 서른줄 먹은 어른인 제가 봐도 이렇게 신나는데 어린이들이 본다면 얼마나 즐겁겠습니까?

여튼 두 권 읽었을 뿐인 로알드 달의 동화들은 어른이 읽어도 꽤 재밌는, 흥미로운 소설들이었습니다. 물론 로알드 달의 동화보다 자극적이고 반권위적이며 심오한 주제의식을 가진 '어른' 소설은 많지만, 동화의 외형을 띠고 이렇게 멋대로 이야기를 풀어나는 방식은 어딘지 통쾌한 맛이 있군요. 게다가 엽기로 일관하는 대신, 딜런 토마스의 시를 인용하고 영어권 고전들을 언급하는 장면에선 문학과 예술에 대해 아이들의 주의를 환기하는 꽤 교육적인 내용도 담고 있습니다.  

시간나면 한번들 읽어보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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