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누

 

 

 

영원에 대해 생각하지 않는다

 

영원히 흉내낼 수 없는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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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

                             -김재석

 

   

사람의 눈에

나무가

땅에 뿌리박은 사람으로 보일 때

 

나무의 눈에

사람이

걸어다니는 나무로 보일 때

 

 

 

---오늘도 어김없이 저 중동의 가자지구에서는 피의 냄새가 자욱히 깔린 포성 소리가 들려옵니다. 이념이든 종교든 돈냄새나는 자본이든... 이유가 어찌됐든 간에 광기의 폭력이라고 말할 수 밖에 없는 전쟁과 학살은 이 세계에서 도무지 끝날 것 같지 않을 것만 같습니다.

  만물의 영장이라고 스스로를 자부하는 인간,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존재라고 한껏 스스로를 자부하는 인간, 그런데 참 아이러니한 건 그런 뛰어난 인간들이 지금껏 서로가 서로를 죽여왔으며, 자연스럽게 인간을 둘러싸고 있는 자연마저 목 조르고 파괴해 왔다는 사실입니다.

  그렇기에 오랜 세월 쌓고 만들어 온 이 문명과 역사라는 빛나는 성채 속에는 아무리 부인하려고 해도 결국 죽음과 죽임의 세월이 고스란히 아로새겨져 어두운 그늘을 드리우고 있다는 생각을 저버릴 수 없습니다. 안타깝게도 그 죽임의 피해자 대다수는 어린이와 여자, 그리고 힘없는 자연일 수 밖에 없었습니다.

 

  폭력과 광기의 역사가 인간의 역사였으며 지금도 현재진행형인 이런 세계에, 과연 진정한 평화는 진정 다가올 수 있는 것일까요?

 

  시인은 말합니다.

땅에 뿌리내린 나무가 인간의 눈에 사람으로 보일 때 가능하다구요.

나무의 눈에 인간들이 걸어다니는 나무로 보일 때 가능하다구요.

 

  몇 일 전 동네 뒷산에 올랐을 때, 눈을 감은 채 나무를 껴안고

킁킁 냄새를 맡고 있던 한 여자아이를 보았습니다.

그저 아름다웠습니다.

그 아이나 바라보는 저나 말없이 평화로웠습니다.

 

  오늘밤 가까운 산책길에 꼬옥

나무를 꼭 껴안아 보시기를 평화를 다해 빌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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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황인숙

 

 

왜 사는가?

 

왜 사는가……

 

외상값.

 

 

 

 

---  단 두 줄 짜리 이숙희 시인의 '기적'이란 시 기억하시나요? 

  오늘은 그 시보다 딱 한 줄 더 많은 시 한 편 소개합니다. 울적하거나 마음이 푹 가라앉을 때...  무뎌진 감각 때문에 왠지 무기력하고 기운 빠져 멍 때리고 있을 때...  읽으면 톡~하고 신선한 물방울이 입 안으로 부터 몸 전체로 퍼지는 듯한 청량감과 생동감을 주는 시들을 많이 쓰신 분이 바로 이 황인숙 시인인데요. 그녀의 그런 감각적이고 발랄한 상상력과는 다소 거리가 있지만, 읽을 때마다 묘하게 재밌으면서 동시에 아픔을 주는 시가 바로 이 시가 아닌가 싶습니다.

 

  이 시에 뭐 어려운 게 있나요?

  오래 전에 '엘리 시겔'이라는 외국 시인은 'I'(나) 라는 제목의 시를 써놓고... 딱 한 행으로 묻습니다. 'Why?'.  이 한 행의 물음에는... 도대체 나란 존재는 '왜 태어났고', '왜 성장하고', '왜 밥을 먹고', '왜 누군가와 관계맺고, 사랑하고 있으며', '왜 아파하고 이별하며', '왜 죽어야' 하는가 등의 일체의 삶의 존재에 대한 모든 질문이 담겨 있습니다.

  저는 황인숙 시인의 이 시가 그 '엘리 시겔'이 던졌던 화두 같은 'Why?'에 대한 하나의 재치있으면서 절묘한 답변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삶과 존재에 대한 의문(?)에서 모든 생은 시작하지 않겠습니까?

  사는 일이 그 지난함과 막막함과 안개같은 모호함을 2행의 말줄임표(……)가 말없이 말해주는 것 같지 않습니까?

  그리곤, 뚝 새침을 떼듯이... 딱 단호한 표정으로... 화자이자 시인은 말합니다. 의문투성이의 삶이고 막막하고 지난한 삶이지만, 어쩌면 '사는 일'이란 '외상값' 아니겠냐고! 마침표를 탁 찍으면서...

 

  마지막 마침표에 오래 시선이 머물렀습니다. 그 앞 세 음절의 단어와 함께~~

곰곰이 생각해 봅니다. 사실 '사는 일'이라는 게 무언가에게 누군가에게 조금씩 빚을 지며 사는 게 아닌가? 하고... 또한 '삶'이라는 건 태어날 때부터 누군가에게 무언가에게 조금씩 진 그 빚을 조금씩 되갚고 갚는 과정 아닌가? 하고 말입니다.

 

  사랑도 그렇지만... 시도 길이가 중요한 건 결코 아닙니다. 아무리 짧아도 감동과 깊이가 있어야 좋은 사랑이고 좋은 시겠지요. 이 폭염의 무더운 계절에 두고 두고 오래 곱씹어 보시면 좋을 것 같아 삼가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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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적

                         -이숙희

 

 

 

세상은 다시 봄

세상을 다시 봄

 

 

 

 

--- 아무리 춥고 시리고 아파도... 겨울은, 봄이라는 희망의 예감 때문에 견딜 수 있는 한 시절일 겁니다. 그러나, 어김없이 다가오는 봄은 정녕 봄이었는지요? 그저 일없이 방문을 걸어 잠그고는 한없이 웅크려 보낸 시간은 아니었던가요?

  언제나 시간의 흐름 따라 이 세상엔 다시 봄이 왔었고, 오고, 또 오겠지요. 그렇지만, 어김없이 오는 봄 앞에서 과연 세상을 다시 들여다 보는 그런 지혜의 순간을 나는 가져본 적이 있었나? 하고 뒤돌아 보면... 휴우~ 아프지만 없었네요, 없었습니다.

 

  쾅~ 문을 닫아 걸고 방문을 잠근 채 그저 유리창을 내다보며 봄이 오기만을 기다리는 자에게 그저 봄은 그 흔한 봄일 뿐. 결코 다시 봄은 아니겠지요.

  얼어붙은 동토의 길을 걷고 걸으며 오래 앓고 아파한 사람, 그 아리고 쓰린 고통의 계절을 꽉 껴안고는 끝끝내 버티고 이겨낸 사람에게만 봄은 다시 봄이겠지요. 그 봄은 세상을 다시 보게 하는 사랑의 눈을 주겠지요.

 

  이미 지나간 봄을 생각하며 음미해 보시라고... 오래 전 제 비망록에 적어 둔 시를 꺼내 읽어 보았습니다. 두고 두고 보고 또 되새김질해 온 시이건만 아직 저는 다시 봄을 맞은 적이 없습니다.

 

  다시 올 그 추운 겨울 지나

  당신은 꼭 그런 봄을 맞으시기를 간절히 기원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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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서

 

 

 

내가 너를 사랑한 게 죄다. 씨팔

 

아이들도 놀지 않는 골목길

벽 아래 서서

한참을 들여다 보다

 

시가 되지 못할

답장만 새기고 왔다

 

아니 더 사랑하지 못한 게 죄다. 쓰바

 

 

 

--- 몇 일 전 서울의 한 변두리 동네를 은근슬쩍 다녀왔습니다. 가끔 마실가는 정말 작은 헌 책방에 들러 책 몇 권을 사고는 지하철 역 주변에서 그냥 10번이라고 적힌 초록색 마을 버스를 타버렸습니다. 버스는 조금씩 섰다 멈췄다를 반복하며 어딘가로 오르고 있었고... 얼마 안 가 종점.

 

  종점에 내려, 어릴 적 그 옛날의 구멍가게 같은 '수퍼'에 들러... 맥주 한 캔과 담배 한 갑을 사서는 작은 골목길을 느리고 느리게 걸었습니다. 지지부진한 뉴타운 개발 사업 때문인지 이 작은 마을은 웬지 황량하고 어수선하면서도 고요하고 적막했습니다. 앙상한 철근이 반쯤 드러난 집들... 입이 아닌 옆구리가 터져 널브러진 종량제 쓰레기 봉투... 집요하고도 무료하게 거기로 달려드는 파리떼...  조금씩 허물어지고 무너질 듯 위태롭게 서 있는 담벼락 아래서 삼삼오오 모여 아직은 놀고 있는 아이들...

 

  '철거'와 '인부구함', '이사'와 관련된 각종 전단지가 덕지덕지 붙어 있는 전봇대 옆 담벼락에 위의 낙서가 써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담의 발치에는 버려진 라커 몇 개가 있었구요.

  조금씩 미세한 금이 가 있는 담 한 가운데 파란색 라커로 새겨진 커다란 글씨. 그 맞은편 담벼락에 기대어 앉아 '딱'하고 맥주캔을 땃습니다. 다소의 거품이 가라앉고 목을 축이며 다시 그 글씨를 보고 또 보았습니다.  자세히 보니 '너'라는 큰 글씨 아래 그보다 다소 작은 영문 이니셜이 소심하게 새겨져 있었습니다.

  아마 그 이니셜의 여자는... 절대 육두문자가 날것 그대로 나오는 이 짧은 편지 아닌 편지를 읽지 못했을 겁니다. 읽을 필요도 읽어야할 이유도 사실 없는 것이지요.

 

  이별의 사유가 어떠했든... 이 날것 그대로의 육성에는 고스란히 한 젊은 청년의 아픔이 담겨 있었습니다. 아마도 그는... 아직은 이별을 온전히 받아들이지 못하는 자기 내면의 답답함과 먹먹한 슬픔 등을 어떻게든 말하고 싶었을 겁니다. 그러니 얼마나 솔직하고 진솔한 글이 아니겠습니까?!

 

  그러기에 저는 아직은 봄날일 것이 분명한 저 젊은 청년의 독백같은 편지에 답변을 남기고 싶었습니다. 맥주 한 캔을 훌쩍 비우고... 무더운 땡볕 아래 맞은 편 담벼락으로 다시 걸어갔습니다. 그리곤 댓글같은 답글을 버려진 라커를 들고 써 보았습니다.

 

  과연 내 답변을

  그 젊은 청년이 어느 날 불현 듯 다시 읽을지 못 읽을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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