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황인숙

 

 

왜 사는가?

 

왜 사는가……

 

외상값.

 

 

 

 

---  단 두 줄 짜리 이숙희 시인의 '기적'이란 시 기억하시나요? 

  오늘은 그 시보다 딱 한 줄 더 많은 시 한 편 소개합니다. 울적하거나 마음이 푹 가라앉을 때...  무뎌진 감각 때문에 왠지 무기력하고 기운 빠져 멍 때리고 있을 때...  읽으면 톡~하고 신선한 물방울이 입 안으로 부터 몸 전체로 퍼지는 듯한 청량감과 생동감을 주는 시들을 많이 쓰신 분이 바로 이 황인숙 시인인데요. 그녀의 그런 감각적이고 발랄한 상상력과는 다소 거리가 있지만, 읽을 때마다 묘하게 재밌으면서 동시에 아픔을 주는 시가 바로 이 시가 아닌가 싶습니다.

 

  이 시에 뭐 어려운 게 있나요?

  오래 전에 '엘리 시겔'이라는 외국 시인은 'I'(나) 라는 제목의 시를 써놓고... 딱 한 행으로 묻습니다. 'Why?'.  이 한 행의 물음에는... 도대체 나란 존재는 '왜 태어났고', '왜 성장하고', '왜 밥을 먹고', '왜 누군가와 관계맺고, 사랑하고 있으며', '왜 아파하고 이별하며', '왜 죽어야' 하는가 등의 일체의 삶의 존재에 대한 모든 질문이 담겨 있습니다.

  저는 황인숙 시인의 이 시가 그 '엘리 시겔'이 던졌던 화두 같은 'Why?'에 대한 하나의 재치있으면서 절묘한 답변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삶과 존재에 대한 의문(?)에서 모든 생은 시작하지 않겠습니까?

  사는 일이 그 지난함과 막막함과 안개같은 모호함을 2행의 말줄임표(……)가 말없이 말해주는 것 같지 않습니까?

  그리곤, 뚝 새침을 떼듯이... 딱 단호한 표정으로... 화자이자 시인은 말합니다. 의문투성이의 삶이고 막막하고 지난한 삶이지만, 어쩌면 '사는 일'이란 '외상값' 아니겠냐고! 마침표를 탁 찍으면서...

 

  마지막 마침표에 오래 시선이 머물렀습니다. 그 앞 세 음절의 단어와 함께~~

곰곰이 생각해 봅니다. 사실 '사는 일'이라는 게 무언가에게 누군가에게 조금씩 빚을 지며 사는 게 아닌가? 하고... 또한 '삶'이라는 건 태어날 때부터 누군가에게 무언가에게 조금씩 진 그 빚을 조금씩 되갚고 갚는 과정 아닌가? 하고 말입니다.

 

  사랑도 그렇지만... 시도 길이가 중요한 건 결코 아닙니다. 아무리 짧아도 감동과 깊이가 있어야 좋은 사랑이고 좋은 시겠지요. 이 폭염의 무더운 계절에 두고 두고 오래 곱씹어 보시면 좋을 것 같아 삼가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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