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점, 포장마차

 

 

 

그만 마시라는

아주머니의 잔소리에

 

등 떠밀려

밤길로 나선 순간

 

나를 싣고 온

막차가

 

잠든 모습을 보았다

웅크린 채 코를 골며

 

다른 버스들과

어둠의 한 이불을

살포시 덮고

 

별빛 아래서

곤한 잠을 자고 있었다

 

모두가 잠든 새벽

눈물을 흘리며

 

막차에게

절을 했다

 

 

 

 

--- 지금도 그 노선 버스가 다니는지 궁금합니다. 아마 사라졌겠지만 134번 버스... 제가 다니던 대학에서 동대문 종로 신촌 등지를 거쳐 서울의 가난하고 외진 동네였던 북가좌동의 허름한 차고지로 들어가곤 했던 그 완행버스. 그 시절 가끔씩 저는 이 버스를 타고 무작정 종점까지 가곤 했습니다. 종점까지 가서는 다시 되돌이표로 고스란히 되돌아오곤 했습니다. 이 가난한 몸을 뉘일 지상의 방 한 칸이 있는 대학 근처의 자취방으로...

  가고 오는 그 버스 안에서 저는 이성복과 최승자, 박남철의 시집을 읽었습니다. 네루다와 로르까, 파울 첼란과 라이너 마리아 릴케의 시들을 읽었습니다. 그냥 무슨 뜻인지 해독하는 건 제 몫이 아니었습니다. 서울 도심의 변두리에서 서울 중심의 한복판을 거쳐 다시 변두리를 왔다갔다 하는 그 흔들리는 버스 안에서 그저 느릿느릿 시집을 읽었다 바깥의 저 무수한 인파의 거리와 도로를 바라보기도 했다 하는 그 시간이 그저 좋았으니까요...

 

  그러던 어느 날, 오늘 하루쯤은 가서 돌아오지 말자~ 라는 생각으로 134번을 탔습니다. 다소 늦은 밤이었어요. 종점 근처의 포장마차에서 계란찜에 우동 한 그릇을 안주로 술을 마셨습니다. 많이 마셨습니다. 그 시절, 그 침침한 카바이트 불빛 아래서는 혼자 술을 마실 수 있는 묘한 아우라가 형성되곤 했으니까요! 

 

그리고는 시에 쓴 그대로입니다. 정말 모두가 잠든 것만 같은 깊고 고요한 밤이었구요.

가난한 대학생이었던 제가 지상의 삶을 위해 몇 시간 머물러 지하로 내려간 곳이 24시간 만화방이었다는 사실만 빼구요~!

 

종점에 가시면 한 번쯤 돌아오지 마시기를~

종점 근처 허름한 선술집이 있다면 꼭 그곳에서 소주 한 잔을 꼭 들이키시기를~

종점에서 자신을 싣고 온 막차와 그 위에 뜬 처연한 별들과 깊은 어둠을 조용히 응시해 보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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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오는 날의 연가   -우산

 

 

그대의 떨리는

손이

 

오래도록 잊고 지냈던

체온이

 

내 가는 살의

영혼을

하늘로 펼칠 때

 

어차피

나의 운명은

 

그토록

젖어 드는 것

 

우울한 비가

멎지 않도록

 

자꾸만 자꾸만

가슴에 스미는

빗물을 튕겨내는 것

 

 

 

--- 오랜만에 비가 내리는구나~ 라고 생각하는 날이었습니다. 하루가 다르게 늙으시는 어머님의 허리와 다리가 어젯밤엔 그리 쑤시다고 할 때 예감했어야 했는데... 그 어떤 예보보다 놀라운 예감이 이렇게 비가 되어 내리더군요.

  원래 비를 맞고 다니는 걸 워낙 좋아해서~ 평소 같으면 그냥 제 머리를 막아 주는 허름한 모자 하나 믿고 바깥 산책을 나갔을 텐데... 아직도 이 나이든 늙은 자식을 걱정하는 어머님의 잔소리 덕에꺼내게 되었습니다. 신발장 한 구석에 물구나무서기를 하고 꼿꼿하게 서 있는 우산을~

 

  생각했던 것보다 비는 훨씬 많이 내리고 내렸습니다. 가는 우산살을 잔뜩 흐린 하늘을 향해 펼쳤을 때 마른 버즘같은 먼지들이 자꾸만 촉촉한 땅으로 떨어지더라구요. 아~ 우산 이 영혼도 누군가를 한참동안 기다리고 기다렸겠구나!  누군가를 대신해 하늘의 눈물을 대신 맞을 수 밖에 없는 비오는 날이 어쩌면 이 영혼에게는 역설적이게도 그 누군가를 사랑할 수 있는 날이구나!  온통 슬픔과 우울한 비여도 멎지 않아야 그 누군가와 함께 길을 걸을 수 있겠구나!

 

  사랑이란

  밝은 날이 아니라 온통 흐리고 슬픔으로 젖어야만 하는 시간에 그 사랑의 대상이 되어

  그 사랑의 대상 너머의 그늘에서 충분히 슬퍼하고 아파해야만 다가오는 것인지 모른다고 생각했습니다.

 

  자꾸만 사랑하는 당신의 한복판으로 쉴새없이 떨어져 내리는 슬픔의 눈물을

내 온 몸과 가슴으로 받아내고 튕겨내고 싶은 그런 날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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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물머리

 

 

 

해가 진다

해가 질 때

생은 아프다

사랑도 아프다

아픈 사랑을 가슴에 품고

해 지는 두물머리를 걷는다

 

흘러가는 두 강이 하나가 되기 위해

온 마음의 문을 열고

서로를 받아들이는 순간의 모습

바로 저것이 너와 나의 사랑이었나

 

강물을 슬프다고 했었지

두 강이 만났어도 아직은

먼 길을 흐르고 흘러야만 하는

그런 막막한 아픔이라고

슬픈 운명의 낙인을 손쉽게 찍으며

그렇게 말했던가

 

너도 없는 저물 무렵

독백의 편지로 다시 중얼거리고만 싶네

 

결코 슬픔도 아픔도

비극적 생의 주인공도 아니라고

강은

가 닿아야만 하는 바다가 있어

슬프지만 기쁘다고

멀고 먼 그리움이어도

고단한 몸을 쉬지 않는다고

길고 긴 기다림이어도

조금씩 조금씩 너에게 가고 있다고

 

해가 진다

해가 질 때

생은 아프고 사랑도 아프다

미완성인 사랑이 만나

멀고 먼 길을 가는 두물머리

 

네가 없는 그 곳에

해가 지고 있다

 

 

 

--- 외롭고 쓸쓸할 때... 불현듯 우울하고 막막하여 마음이 스산해질 때... 괜히 마음 시리고 오래 전의 상처가 덧나 깊어만 갈 때... 그리고 사람이 그리워 질 때...

 

  저는 두물머리에 가곤 합니다. 북한강과 남한강이 만나는 곳이지요. 두 강은 만나지만, 이 곳에 가보면 혼자 걷는 사람이 제법 많습니다. 옛사랑을 그리거나 헤어짐의 아픔을, 기다림의 먹먹함을 한 발 한 발 디디러 온 사람들이지요. 그런 사람의 풍경은 마냥 슬프거나 쓸쓸하지만은 않습니다. 오히려 처연하게 아름답다고 저는 느꼈습니다.

 

  두 강이 아름답게 만나는 이 곳에서 누군가를 만났고 함께 걸었던 사람은

반드시 연어가 되돌아 오듯 이 곳으로 다시 거슬러 오기 마련입니다.

 

  생이 아프신가요?

  지나간 사랑 때문에 가슴 저미신지요?

  지금 현재의 이룰 수 없는 사랑 때문에 저릿저릿 아프신가요?

 

  그렇다면  

  해가 지는 두물머리 그 곳으로 가보라고

  강 위로 부서지는 햇살을 안고 한참을 저벅저벅 걷고 또 걸으시라고

  두 강이 아프게 온 마음으로 만나 멀고 먼 바다를 향해 아프게 흐르고 흘러가는 그 모습을 오래도록 보고 또 보고 오시라고

 

  강추합니다.

 

  꾸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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벗바리 2014-01-30 02: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기 계셨네요~^^

poet30 2014-01-30 21: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 찬곤샘!^^ 너무 반갑다!ㅎㅎ 이 공간에 글들 갈무리해 두려구~!
 

 

좋은 책은 가까이 두고
몇 번을 다시 꺼내어 들춰 읽는다지만

단 한 번의 입시로또인
수능시험을 위해 3년 내내 그토록
열심히 땀흘려 낑낑대고 고민했던

저 교과서며 문제집들은
뒤돌아보지 않고  
버려진다. 아무런 미련도 없이

송두리째 단 하나의 티끌도 없이
그렇게 버려진다.

11월 수능 이후
몇 일 지난 운동장,

저 참혹한 풍경 앞에
햇살은 따스하다.

도대체 나는
무엇을 가르쳤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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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여지기 위해서
이 삶을 사는 것은 아닌데 자꾸만

우리는 누군가에게
거울처럼 비춰지는, 그
이미지의 감옥에 평생을 갇혀 산다

거울이 깨진 후의 참혹함으로
그 본질을 드러내듯이

나, 너, 그리고 우리 역시
그럴 순 없을까!라는 고민...

유리의 벽을 거둔 자리에
피처럼 뚝뚝 피어나는
이름없는 저

들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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