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이에의 강요 열린책들 파트리크 쥐스킨트 리뉴얼 시리즈
파트리크 쥐스킨트 지음, 김인순 옮김 / 열린책들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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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단편소설이 어렵다. 장편소설은 호흡이 길다. 충분히 마음의 준비를 할 시간이 허락된다. 단편소설은 다르다. 갑자기 훅 들어와서는 온갖 복잡한 심경만 안기고 그냥 작가 꼴리는 대로 아무데서나 끝나 버린다. 나는 그 진한 여운이 너무 힘들다. 특히 한국 단편소설은 감정이 흘러 넘쳐 사방이 온통 질척이는 느낌이라 읽고 있으면 감정 이입이 과해져 심히 괴롭다.

그런데 이렇게 간결하고 담백한 단편이라니! 게다가 생각할 거리만 잔뜩 쥐어 주는게 아니라 재미가 있다. 파트리크 쥐스킨트 덕분에 나는 앞으로 단편을 사랑하게 될 지도 모르겠다.

<깊이에의 강요>
누구의 말인지 기억이 나지는 않지만 사람은 고인(故人)과 어린 아이에 대한 평가에 관대하다고 한다. 자신의 경쟁상대가 아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고인(故人)은 더이상 자신의 경쟁상대가 될 수 없고, 아이는 당장 눈 앞의 경쟁상대가 아니다. 작가가 이 작품을 통해 말하고자 하는 바에 대해서는 다양한 해석이 있을 수 있겠지만 (무심코 던진 돌에 개구리 맞아 죽는다 등등), 예술가의 재능이나 그가 남긴 작품에 대한 평가가 종종 그의 죽음 뒤에 후해지는 것을 보면 이것도 영 상관없는 이야기는 아닌 것 같다.

<승부>
잘 해 나가던 사람이 남의 시선을 느끼는 순간 불안을 느끼며 흐트러진다. 전혀 상관없을 것 같던 이야기가 다시 같은 주제를 건드린다. 감탄이 저절로 나온다. 그러다 영문을 모를 결말로 이어진다. 뭐지? 내가 놓친 것은 뭐지? 이 노인은 젊은이에게 왕관을 물려주고 이제 그만 최고의 자리에서 내려오고 싶었던 걸까. 왜? 자신보다 실력이 한참 아래인 젊은이를 상대로 전력을 다해 이긴 것이 못나 보여서? 그런 여유도 낭만도 없이 차지한 승리가 쪽팔려서? 건달이 쪽팔리면 안된다이가 뭐 그런 건가...? 아.. 구경꾼들! 옮긴이의 글을 읽고 내가 구경꾼들을 놓쳤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들은 왜 젊은이를 보고 환호했는가. 무모하지만 승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그 거침없는 도전이 모두의 심장을 뛰게 했던 것일까. 직접 용기를 낼 수 없는 소심한 우리들이기에 더욱 더 간절한 마음으로 응원하게 되는 것일까.

<장인 (匠人) 뮈사르의 유언>
공상과학이 아니었어? Twilight Zone 언저리 어딘가에 나올 법한 이야기라고 생각했는데 완전 잘못 짚었다. 옮긴이의 말을 읽고 이건 다시 읽어야 해 반성中.

<문학의 건망증>
인싸개그. 최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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