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튼, 순정만화 - 그때는 그 특별함을 알아채지 못했던 수많은 여성들의 이야기 아무튼 시리즈 27
이마루 지음 / 코난북스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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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아무튼 시리즈를 다섯권 정도 읽었는데 아무튼 외국어 다음으로 가장 재밌게 읽었다. 사실 따지고 보면 아무튼 외국어가 재밌었던 이유도 일본어 공부에 취미를 들였기 때문이고 이미 사회인인 내 업종과 1도 관련없는 일본어 공부에 매진하게 된 것 역시 정발되지 않은 만화 또는 애정하는 만화의 원서를 읽기 위함이 주된 목적이었으니 이 두 권의 책이 가장 재밌는 것도 어쩌면 당연한 이치. 읽으면서 몇번이나 책은 됐고 작가님 그냥 나랑 잠깐 만나서 반나절만 만화얘기 좀 나눕시다 그런 굴뚝같은 심정으로 마지막 문장까지 읽었다 (가장 마음에 들었던).

그럼에도 여기서 옥에 티를 하나 짚고 넘어갈 것이 있다. 다른 만화들은 나도 기억이 확실치 않아서 지적질을 할 수 없지만. 내가 소장하고 있고 근 30년 가까이 흐른 세월동안 백번은 족히 읽었다 말할 수 있는 빅토리 비키만큼은! 꼭 짚고 넘어 가려 한다. 딱히 큰일은 아니지만 ㅋㅋ 비키의 아버지는 미국인이 아니다. 아니 비키 아버님이 미국인이 되시면 이 만화는 순식간에 장르가 막장 불륜 드라마로 바뀐다. 절대 그래서는 안되겠죠. 😅

그리고 대여점 이야기가 나와서 읽다가 어제 점심은 추억돋는 컵라면에 단무지로 해결했는데. 언뜻 라면에는 김치가 궁합이 맞을 것 같지만 간만에 단무지랑 먹어보니 역시 라면에는 단무지인가. 과식을 부르는 단짠의 정석이다.

중학교 교사였던 엄마는 아주 일찍부터 만화를 좋아했다고 한다. 만화가 호환마마와 동급으로 취급받던 엄마의 어린 시절부터 꿋꿋하게.

만남과 헤어짐을 거듭하고서 사랑에 냉소적이라도 될라치면 『우리들이 있었다』(오바타 유키) 8권에 등장한 나나미와 야노의 키스신을 되새긴다. 야노는 어쩔 수 없는 사정으로 먼 곳으로 전학을 가야 한다.
곧 떨어질 두 사람은 사랑을 지키자고 맹세하면서 별빛 아래에서 입을 맞춘다. 그리고 그 순간 여주인공 나나미의 독백이 밤하늘을 배경으로 펼쳐진다.
"어른이 된 우리가, 더 이상 영원을 믿지 않게 된 우리가 지금도 그 순간을 기억하는 건… 그때만큼은 시간이 멈추고, 이 세상에 우리밖에 없고 이 순간이 무엇보다 진실되며 꿈 같고,
찰나이면서 영원처럼 느껴졌기 때문일 것이다.
젊은 날의 우리 마음속에 확실히 영원은 있었다."

초등학교 2학년, 생애 처음으로 아파트 단지로 이사하면서부터 내 열정에 불이 붙었다. 작은 맨션이나 소형 빌라가 아닌 20층짜리 아파트 단지(비록 두 동 짜리였다고 해도)에 산다는 건 또래 친구 수가 급속하게 늘어난다는 의미였다. 충남 서산에 갓 지어진 그 새 아파트에서 나는 우리 가족과 같은 시기에 앞집으로 이사 온 지선이를 만난다. 나와 두루 둘이서 공유하던 만화에 관한 이야기들이 우리 집 현관을 넘어 확장된 감격적인 순간이었다. 셋이라니! 셋은 릴레이만화도 그릴 수 있고, 역할 놀이도 할 수 있으며, 두명이 다퉜을 때 다른 한 명은 그걸 중재할 수도 있는 숫자다. 그렇게 우리는 만화에 관한 모든 걸 공유했다 (역시 동료는 필요하다.)

믿음직한 동행을 찾았다면 운이 좋은 것. 하지만 나를 완전하게 채워줄 누군가가 등장하길 바라며,
평생을 결핍감 속에 사는 것보다는 혼자, 성큼성큼 나아가는 편이 좋지 않을까.

덕분에 정말 즐겁고 행복했다고 고백하며, 조심스레 안부를 묻고 싶다. 내 세상을 만들어준 수많은 순정만화가들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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