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바다와 나비 - 2003년 제27회 이상문학상 수상작품집
김인숙 외 지음 / 문학사상사 / 2003년 1월
평점 :
이상문학상은 개인적으로 내가 가장 좋아하는 문학상이기 때문에 고등학교때부터 매년 빠짐없이 수상집을 읽어왔다. '이상'을 기리며 제정한 상이라 그런지 실험정신과 독창성을 지닌 작품들에 상을 주는 것이 마음에 들었다. 올 해에도 나를 실망시키지 않는 좋은 작품들이 많이 뽑혔는데, 그 중 대상작품인 <바다와 나비>는 여러 우수작을 제치고 수상을 하기에 손색없는 작품이었다. 또 김인숙은 문단에서의 비중에 비해 유명세가 덜한 편이었던 것 같은데 대중적이진 않지만 좋은 소설을 써 왔던 그녀가 상을 수상한 것이 기뻤다.
제목에서 보듯이 이 작품은 김기림의 동명의 시에서 모티프를 따온 작품인데, 김기림의 <바다와 나비>가 근대라는 엄청난 위력앞에서 절망할 수밖에 없었던 사람들의 자화상을 투영한 것이라면, 이 소설은 이념과 국가를 넘어서 물질이 모든 것을 압도하는 세계에 살아가는 사람들의 좌절과 허무를 그려내고 있다. 소설속의 조선족에게 한국은 그저 돈을 많이 벌 수 있는 나라이며, 한 때 밀실에서 광활한 중국에 대해 공부하던 주인공에게 중국은, 하나의 도피처이며 서구에 비해 아이를 조기유학보내기 만만한 나라일뿐이다. 그러나 하나같이 암울한 상황이지만 날개가 찢겨진 채로도 바다에 나가는 나비의 이미지를 이용해 여전히 희망을 제시하고 있는 것이 마음에 든다.
이번에 이상문학상에서 특기할 만한 것이 특별상을 제정한 것인데 이 상을 수상한 전상국의 소설은 잘 이해가 되지 않았지만, 교과서에서 배운 작가의 최근 소설을 읽는다는 것이 흥미로웠다. 한 작품집에서 전상국, 복거일의 소설과 정미경, 김영하의 작품을 같이 읽는 것은 최근 한국문학의 시류를 파악하는 좋은 계기가 될 수 있을 것 같다. 그들의 작품을 읽으면서 느낀 것은 젊은 작가일수록 요즘의 상황에 관심이 많다는 것과, 중년 작가들의 경우는 뭔가 새롭고 독특한 소재를 찾는 다는 것이다. 복거일 소설의 경우 우주공간을 다루고 있고 주인공도 사람이 아닌 로봇이며, 전상국의 소설은 생명 복제를 이야기한다.
이 책에서 가장 재밌게 읽은 것은 정미경의 <호텔유로,1203>인데 가장 늦게 등단한 작가라 책의 맨 뒤에 실린 소설인 만큼 요즘 세상에 대한 신랄한 풍자를 담고 있다. 명품에 중독된 친구들에게 한 번 꼭 읽어보라고 권해주고 싶다. 또, 주인공의 엄마가 한 말이 계속 입가에 맴도는데 이 말 한마디 때문에 이 소설은 내 기억에 오래 남아있을 것 같다. '공부 잘해봤자 예쁜 년 못 당하고, 예뻐봤자 팔자 좋은 년 못 당한다'
김영하는 우리학교에서 했던 강연에서 보고 인간적인 면모에 매료되었던 작가인데 <너의 의미>는 이 책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작품이다. '호르몬의 이상으로 나타난는 병리현상'으로도 볼 수 있는 '사랑'에 대해 쓴 작품인데 사람이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 얼마나 어이없고 설명이 안 되는 것인지 재밌게 그려냈다. 그런 면에서 제목이 역설적인데 여기에서 '의미'란 의미없음의 의미있음이라고 나름대로 해석해 보았다.
이상문학상은 '한국문학의 최전선'을 살펴볼 수 있는 좋은 자료가 될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상의 수상작가들이 대개 다른 작품상을 수상한 사람들이고, 유명한 기성작가들인 경우가 많은 데다가, 우수상 수상작가들이 매년 겹치는 것은 다양성의 측면에서 좀 아쉽다. 이것은 문학계의 발전에도 별로 도움이 안 될 뿐더러, 나같은 평범한 독자들마저 타성에 젖게 하는 건 아닌지 좀 걱정이 된다.굳이 '문학권력'같은 무시무시한 말을 들먹이지도 않아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