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사 지식향연 - 영국과 스페인, 제국의 엇갈린 운명
송동훈 지음 / 김영사 / 2016년 6월
평점 :
절판



프롤로그를 읽어보며,
그렇다. 부끄럽다 생각을 해보게 됩니다.
남아프리카공화국 넬슨 만델라 대통령 서거,
서구에서는 아쉬움을 대대적으로 표현하였는데
우리는 어찌하여 무심한 반응이었던가.
소식을 모르지 아니했건만,
관심을 두지 않았었음의 부끄러움.



이러한 관점은 지식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인 것 같습니다.
우리 역사만 세세히 알기에도 쉽지 않기는 하지만,
그나마 우리 역사는 여러 채널로 관심을 갖게 되는데,
세계사에 대해서는 어떠했는지.
역사가 주는 교훈은 단순히 우리나라에서만 다가오지 않습니다.
역사 흐름을 보며, 그 나라를 이해하게 되고,
또한 교훈은 덤으로 다가오지요.



<세계사 지식향연>은
일반 대중에게 세계사도 흥미진진하여
마치 원작소설을 읽듯 빠져들 수 있는 대상이라는 것을 알게 하는 책입니다.
유럽의 <그랜드 투어> 저서들로 각 나라의 역사를 알려주었고,
이번에는 떠오르는 해와 지는 해였던 두 제국, 영국과 프랑스에 관하여
흥미진진한 역사를 풀어봅니다.
세익스피어와 세르반데스라는 두 작가도 소개해주니,
그를 따라 당시 상황을 상상해보는 재미도 있지요.






영국부터 시작합니다.
영국은 원래 작은 나라였습니다. 1류 국가는 아니었지요.
덴마크 바이킹 리더인 크누크가 잉글랜드 왕위에 오르며,
잉글랜드는 용기와 도전의 바이킹 정신이 녹아들기 시작합니다.

바이킹은 무서운 침략가 정도로만 알려지곤 하지만,
사실 그들은 담대한 모험가이며 유능한 상인이었습니다.
이들이 잉글랜드로 정착하고자 하니,
앵글로섹슨족은 이를 눈에가시로 보았고,
그리하여 덴마크 출신인 데인인을 몰아내려 했습니다.
이에 대해 덴마크 왕인 스벤은 복수를 감행하고,
잉글랜드는 힘을 점점 잃어갑니다.

200년에 걸친 바이킹 정권으로 침략받던 잉글랜드는
아이러니 하게도 그들에 의해 안정을 찾습니다.


이렇게 시작되는 잉글랜드의 역사.
바이킹의 후예는 잉글랜드를 더 나아가는 길로 이끌고 있습니다.







셰익스피어는 영국을 대표하는 작가 중 하나죠.
셰익스피어 4대 비극의 작품만을 생각하곤 하는데,
비극이 명작으로 만들어질 수 있었던 이유는,
희극의 시대였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16세기 후반에서 17세기, 그의 활동시기는 엘리자베스 여왕의 처세가 절정을 이루던 때입니다.
4대 비극작가들의 시기는 아테네 민주주의가 꽃피우던 시기였고,
아테네가 몰락하고 민주주의의 불씨가 꺼지면서 비극은 사라졌지요.
그리고 세월이 흘러 셰익스피어가 비극의 명작들을 만들어내게 되는 떄는,
영국 제국이 단단해지고 나라에 활력이 넘치던 때였지요.





엘리자베스 여왕의 이야기가 나올때까지,
진행되는 잉글랜드의 역사는 영화 소재가 될만큼 흥미진진해보였습니다.
요크 가문과 랭커스터가문의 전쟁은
헨리7세와 요크 왕조의 엘리자베스가 결혼하며 튜더왕조로 귀결하니,
화해와 통합의 정치가 시작됩니다.
헨리7세는 잉글랜드에 민심을 다독이는 안정적인 정치와 더불어
주변국과의 정치적인 외교도 또한 똑똑하게 감행하지요.
그리고 이탈리아 뱃사람 존 캐벗을 후원하며,
북아메리카의 뉴펀들랜드를 발견하고
북아메리카에 캐나다를 비롯한 거대한 식민지를 건설하는 기초를 만듭니다.

그리고 헨리7세를 이어 차남 헨리8세는
형 아서왕이 요절하자, 왕위에 오릅니다.
스페인과의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자 형수였던 캐서린 공주와
다시 결혼하여 안정적인 시기를 잇고자 하지요.
그러저러 잘 지내온 것 같았건만,
문제는 헨리8세가 앤 불린과 사랑에 빠지고
앤불린은 왕비의 자리에 오르고자 헨리8세를 움직입니다.
카톨릭과의 결별을 하며 헨리8세는 이혼을 감행,
앤불린을 왕비로 맞이하고, 앤불린은 강한 아들집착의 헨리8세에
아들을 약속하지만, 아들은 출산하지 못하고 첫째딸, 엘리자베스를 낳습니다.

헨리8세의 아들집착은 계속 이어지고,
그리하여 앤불린 외에도 6번의 왕비를 맞지만
병약한 어린아들 에드워드 6세가 왕위를 잇고서 자리보전을 못하고
자신의 뜻에 맞는 친척 공주, 제인 그레이에게 계승법으로 왕위를 잇습니다.
그러나 캐서린과 사이의 공주 메리튜더가 지켜보는 가운데, 왕위는 쉽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메리가 자리를 차지한 후, 메리의 섭정으로 잉글랜드는 무서운 시대를 맞게 합니다.









메리는 엄마 캐서린이 처형되어 공주 대접을 받지 못하며 자기 세계에 빠진 인물이었습니다.
그리고 결혼 생활에서는 남편 펠리페가 훌쩍 스페인으로 떠나버렸습니다.
슬픔과 원망으로 가득찬 메리의 정치는 유혈낭자한 시기를 선사했지요.
그리하여 민심은 새로운 왕을 원했고, 그녀의 이복동생 엘리자베스 1세는
2류 국가이던 잉글랜드를 제국의 반열로 올리는 초석을 닦게 됩니다.
그녀는 메리와는 달리, 공주대접을 받지 못했다 하더라도
자유로이 공부하며 현명함을 쌓았던 공주였습니다.
그간 왕들은 종교파를 왕권의 철학으로 맹목적으로 사용하는 바람에
잉글랜드에 또다른 혼란이 있었습니다.
민심이 바라는 것은 종교의 교리가 아닌, 중용과 안정이었습니다.
엘리자베스1세는 그 뜻을 읽었지요.


 

헨리8세의 아들집착에 의한 이혼과 결혼 반복,
전 왕비 처형들, 그로인해 남겨진 자식들.
역사는 그렇게 지나올 수 밖에 없었겠지만,
결론은 엘리자베스 여왕이라는 왕자가 아닌 훌륭한 공주의 통치였기에
틀에서 벗어나서 현명함을 찾아야 한다는 교훈을 새겨봅니다.







1516년, 스페인 왕조는 토착 왕조인 트라스타마라에서 
외국 왕조인 합스부르크로 바뀝니다.
막시밀리안 황제시기, 유럽영역을 어마어마한 범위를 스페인이 통치하고
그의 장손자 카를5세는 날카로운 통찰력으로 방대한 영역을 이끌어갑니다.
그런데, 여기서 커다란 규모라 하여 그리 장점만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교훈으로 담아봅니다.
통치비용과 과세 부담. 그리고 외국인들과의 통합문제 등.
또한 같은 종교를 신봉하는 이탈리아 원정을 통해서는 카톨릭 공동왕의 심기를 건드리게 되기도 합니다.







잉글랜드는 결국 중용과 안정이라는 사회 전체의 분위기를 우선으로 생각하며 왕권이 이어졌다면
스페인은 우리 왕조끼리 똘똘 뭉쳐보자 하는 차이가 있었습니다.
근친상간으로 왕조를 유지하려다보니,
결국은 생식능력 없는 기괴한 외모의 왕자가 태어나기도 합니다.

결혼으로 권력을 유지하고자 하는 정치적인 이유,
왕권을 보존하고픈 왕가의 선택은
종교단체라기보다 정치단체인 신성로마제국의 눈치를 보아왔고,
권력이 그 무엇보다 최고다 생각하는 왕권은
국민을 챙기지 못합니다.
게다가 그러한 권력집착의 집단에 기생하는 정치세력은
왕족의 눈을 더 가리게 되었지요.







역사는 반복된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마찬가지다.

우리 역사를 읽을 때도, 후세에 다가오는 교훈은 마찬가지였지요.
영국과 스페인의 역사를 보면서, 어느 나라나 어느 시대나 마찬가지다 싶습니다.
집착적인 욕망은 결국 모든 것을 잃게 됨을 봅니다.
현명함이란 어떤 것인지, 우리 대한민국은 어떤 길을 걷고 있는지 생각해보게 됩니다.
소설같은 일들,역사에서 살펴보며
후대는 지나온 역사에서 지혜를 취해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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