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지 말자
도올 김용옥 지음 / 통나무 / 201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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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올 김용옥 선생의 책을 읽기는 이번이 처음입니다. 이 책은 도올이 낙산에서 산보할 때 만난 젊은이가 이 세상을 어떻게 봐야 하고, 살아갈 길이 막막하다며 어려운 고전번역 말고 젊은이들이 쉽게 읽을 수 있는 책을 써달라는 간청에 의해 씌여졌다 합니다. 

저는 도올에게 감사드려야할지, 이름 모를 그 젊은이에게 인사해야할지 모를 정도로 이 책에서 큰 울림을 받았습니다. 

 

이 책은 '우주와 천지' 라는 두 사상결구에서 '청춘, 역사, 조국, 대선, 우주, 천지, 종교, 사랑, 음식' 분야로 풀어쓴 것으로, 선생께서 말씀하신대로 '우리 민족 철학의 자존심'이라 여겨졌습니다. 부족한 제 눈을 번쩍 뜨게한 사상과 철학이 빛났으며, 우리에게 이러한 사상가, 철학가가 있다는 게 여간 자랑스럽지 않더군요. 

 

이 책 제목이 <사랑하지 말자> 입니다. 

사랑....하지 말자니요. 인류 역사상 웬만한 사람들이 모두 들고 나온 '사랑'을 하지 말자니요. 다소 선정적인 제목은 출판 마케팅에서 지어진 이름일겁니다. (사랑에 관해 나오긴 하지만, 이 제목이 책을 대표하진 않습니다) 

제가 한번 지어볼까요? 

<도올, 시대에게 고함> <동서 철학의 통섭> <진리의 항변> <도올철학의 집대성> <도올이 청춘에게 고함>.... 어흑, 전 네이밍을 하지 말아야겠습니다. 안 그대로 도올선생이 '시중의 무슨 흔해빠진 힐링서적만큼' 팔리지 않는다 그러시는데 말입니다. 

 

도올선생이 '사랑하지 말자' 라 하는 것은, '사랑'이라는 개념에 플라톤의 에로스, 기독교의 아가페나 필리아, 그리고 영어의 'to make love'와 같은 표현에 담긴 남녀간의 성행위를 포함하여 모든 형이상학적.형이하학적 의미를 포괄하는 지극히 외연이 넓은 말이어서, 우리말 개념지도를 크게 왜곡하기 때문입니다. 

외래어로 들어온 사랑이란 단어로 우리의 일상적 가치를 왜곡하지 말자는군요. 사랑이라는 일반명사의 외연을 축소시키자 합니다. 사랑은 '몸의 꼴림인 화학작용'에 국한시키고 그 외 사랑의 범주에 속한 일체의 행위는 일반도덕 범주에 환원시켜야 한다 말하고 있습니다. 

호르몬이 담당하는 사랑 영역 외에는 우리말인 '괸다' '아낀다'를 쓰고, 그 외 일반도덕 범주로서 측은지심, 수오지심, 사양지심, 시비지심, 즉 인.의.예.지의 단초를 얘기하고 있어요. 

 

이 책은 '대선' 도 겨냥하고 있습니다. 좌파.우파 개념이 아닌 철학가로서 얘기하고 있지요. 민감한 시기, 노골적인 대선이야기지만, 한번쯤 철학가가 말하는 대선얘기를 들어봐도 좋겠단 생각이 듭니다. 

 

이 책에서 가장 감명깊게 읽은 것은 우주종교 부분이었어요. 

이 부분을 통해 제가 지금까지 읽어온 책들이 하나의 퍼즐로 완성되는 느낌이 들더군요. 머리가 환해지고 깊어지는 느낌입니다. 

 

먼저 '우주' 편 입니다. 

'우주'편에서 서양과 동양 철학을 비교하며 동양철학의 우수성을 말하고 있습니다. 서양철학은 우주에서 일어나는 모든 모습은 시공의 인과성 지배속에 있음을 시인하면서도, 그 배후에 그 현상을 지배하는 본체가 반드시 따로 있다 생각하는 게 한계라 지적하고 있습니다. 이 플라톤적인 사유가 서양역사 2천여 년동안 확고한 틀로 자리잡았는데, 도올선생은 한마디로 해괴한 것이라 하더군요. 

영혼과 인간이라는 존재가 분리되며, 불멸하다 보는 생각은 '불멸에 대한 동경'이라 말할 수 있는데 이는 서양철학의 최대 오류라 지적하고 있습니다. 

반면 동양철학의 인간은 몸 Mom을 빼놓고 존재할 수 없다 합니다. 몸을 떠나 존재할 수 없는 제약때문에 동양철학은 변화를 동경할 수 밖에 없다는군요. 이러한 시공간적인 제약과 인과필연성의 지배를 받으며 자기이익과 행복을 추구하는 이기적 존재가 인간이지만, 인과필연성을 넘어 보편적이고 초월적 시점에서 사유하고 판단하는 도덕주체 또한 될 수 있는게 사람이라 합니다. 

 

이러한 도올선생의 생각은 신을 긍정하느냐, 부정하느냐로 읽혀졌습니다. 

신을 떠나 생각할 수 없는 서양철학과 신이라는 개념 대신 천지 즉, 연기론적 총상 속에서 우연과 필연을 해소시켜 나가는 과정(ing)을 중시 여긴 동양철학으로요. 

 

전 도올선생의 말씀에 주억거릴 수 밖에 없었습니다. 정말 그러한가를 묻는 건 제 소관이 아니라 여겨졌어요. (감히 전적으로 공감한다 말해도 될런지요) 서양.동양 철학이 진정 그러하다면, 전 동양철학 편에 서야겠다 생각이 들더군요. 

 

'종교'편에서는 기독교가 수용되던 조선시대 상황과 초기 유학자들의 생각, 그 후 한국의 기독교 역사를 풀어내고 있습니다. 18세기 후반 유학자인 안정복의 천주교 비판은 오늘날까지도 정확하고 유효한 논리이며, 버트런드 러셀의 <나는 왜 기독교인이 아닌가>라는 책보다 더 포괄적인 측면을 섭렵하고 있다는 도올선생의 말씀에, 저도 격하게 공감하면서 읽었습니다. 

 

책 초반, 빛이 사라진 게 아니라 네 마음이 사라진 것이라며, 어진仁 본성을 스스로 저버리는 자포自暴도, 이 세계를 변혁시킬 수 있는 힘이 없다 생각하여 의로운 길을 걸어가지 않는 자기自棄도 하지말고, 반성하며, 우리 몸에 구현되 있는 우주의 모든 원리를 깨달으라는 도올선생의 말씀을 깊이 받아들이렵니다. 

(이 책을 읽고 제 서평문체가 바뀌었지요. 자포자기하지 않고 늘 반성하렵니다) 

 

이 책 저 책을 순례하며 주워들은 지식이 하나의 퍼즐로 완성되는 소중한 느낌을 받은 인연에 감사하면서 말이지요. 

 

 

읽은 날 2012. 9. 22    by 책과의 일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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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원하게 나를 죽여라 - 이덕일의 시대에 도전한 사람들
이덕일 지음 / 한겨레출판 / 200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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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원하게 나를 죽여라, 이덕일, 310쪽> 

 

 '시원하게 나를 죽여라~' 

비장미가 담긴 문구가 담박에 저를 사로잡았습니다. 

이른 새벽, 시원한 칼바람처럼 신선한 이 문장은 저를 사춘기로 잡아끌더군요. 

고만고만한 고민을 하던 그 시절, "자유란 무엇인가" 란 질문도 저를 채우던 것 중 하나였습니다.

교과서에서 알려주는 자유말고, 내가 답할 수 있는 자유에 대해 고민을 하던 중 이청준 선생의 어

느 소설을 보고 깨달음을 얻던 순간이 떠올랐어요. 

 

그 소설에서 '자유'는 모진 고초가 뻔한데도 안전한 곳에서 의연히 걸어나와 나를 잡아가든 말든,

초라하고 궁색한 '안전'을 선택하지 않겠다....던 어느 주인공 이미지였어요. 수용할 수 없는 환경

이든, 자신이 수용되지 않는 환경이든 자신의 신념 그대로 당당하던 이미지, 그것이 저의  자유였

습니다. 

<시원하게 나를 죽여라>는 바로 그 연장선에 있는 문장이었지요. 

 

고민하지 않고 고른 이 책의 서문 또한 근사합니다. 

 

"<사기>를 쓰기 위해 살아남은 사마천,  '사초'를 전하기 위해 죽어야 했던 김일손, 상식을 뒤엎었

던 신채호!  이 세 역사가의 공통점을 그 시대가 아니라 다음 시대와 대화한 데 있다. 그 시대의  논

리를 뛰어넘는 역사 인식이 세 역사가에게는 있었다. 역사의 진정한 몫은 이렇게 다음 시대와 대화

하는 것이리라. 과거를 가지고  미래와 대화하는 것이 역사학의 본질이다. 

 

그렇게 필자는 그 시대와는 불화했던 사람들에게 우리 시대로 걸어 오라고 작은 오솔길을 놓았다.

그러자,  주자와 달리 경전을 해석했다고 사문난적으로 몰렸던 윤휴, 주자학에 반대해 양명학자임

을 선언했던 정제두, 여성 차별과 지역 차별에 맞섰던 허난설헌과 홍경래, 인조반정을 쿠데타라고

꾸짖었던 유몽인,  서얼 출신으로 새 세상을 지향했던 유득공과 박제가,  정약용 형제보다 더 오랜

귀양 생활 끝에 유배지에서 죽어간 이광사 형제,  그리고  새로운 나라를 개창하려던   동학의 영수

김개남 등 스물다섯 명이  그 시대를 넘어  우리 시대 속으로 뚜벅뚜벅 걸어왔다.  그들은 자신들의

지난했던 삶으로 우리에게 묻고 있었다. 

'너희들의 시대는 나의 시대와는 다른가'" 

 

책 처음이 마음에 들면, 가슴이 두근거려요. 좋은 걸 읽고 있다는 기쁨에요. 

아, 그런데......이 책을 읽어갈수록..... 

저자의 의도와 선택한 꼭지는 매우 훌륭했으나  꼭지마다 2% 부족한 게 너무 아쉬웠어요. 시대와

불화했으나 자신과 시대에 당당했던 그들의 모습이 각인되지 않았습니다. 당시 시대분위기와 주인

공의 행적이란 씨줄과 날줄만 보일 뿐 작품으로 승화되지 못한 느낌이 들고 구멍이 얼기설기 난, 기

대에 못미치는 작품이었습니다. 

좋은 책이 꼭 '작품'이 되어야 하는 건 아니겠지요. 투박하면 투박한대로 거칠면 거친대로...빛나는

가치가  있습니다만, 

가치와 울림, 감동....저는 찾지 못했네요. 

 

하여 이덕일이란 저자는  제 기억에서 흐릿해져가는 분이었는데,  단 한권의 책으로 평가한다는 건

무리가 있지 싶습니다. 

아직까지 소설에 빠져있다보니, 역사소설에 일가견 있는 이 분이 자연스레 떠올랐고 다시 만나봐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평이 괜찮은 <근대를 말하다>로 만나볼까 합니다. 

역사평설....이라, 본격적인 역사를 말하는 이 책은 어떨까 기대되는군요. 

 

 

 

  읽은 날  2011. 2. 17     by 책과의 일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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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적 유전자 - 2010년 전면개정판
리처드 도킨스 지음, 홍영남.이상임 옮김 / 을유문화사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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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적 유전자, 리처드 도킨스> 

 

너무나도 유명한 책, <이기적 유전자>입니다. 

제가 이 책을 통해 말하고 싶은 부분은, 

어렵다, 왜 어려울까, 이 방법밖에 없었나, 그럼에도 불구 이 책이 제게 주는 의미, 이렇게 입니다. 

 

보통 글쓴이마다 문체가 다르지요. 익숙하고 좋아하는 문체일수록 내용을 덜 따지게 됩니다. 

마치 드라마가 재미있다면 다소 과한 설정을 용서해줄 수 있는 것과 같은 이치에요. 

그런데.... 리처드 도킨스의 문체는 매우 시크하고 신경질적으로 보였습니다. 

예를 들어 볼까요. 

 

'이 책에서 다루지 않을 첫 번째 사항을 말하고자 한다' 하는 부분은  '내가 말하지 않을 부분을 가 

지고 따지지 마~!' 하는 것 같았고, 

'초기의 자기 복제자를 살아 있다고 하든 하지 않든 그들은 생명의 조상이며, 우리의 선조'라 하는 

부분은 진실 여부를 떠나 매우 단정적으로 말하는 것 같았습니다. 

성과 교차가 있어 유전자가 있다면서, 갑자기 무성생식은 성과 교차가 없다는 말이 나와 생뚱맞게 

들렸고,  ESS, 매파, 비둘기파, 보복자와 불량배 등을 예로 들면서 설명하는 부분은 논리의 비약으 

로만 여겨졌습니다. 

 

이해되지 않는 방대한 설명을 통해 리처드 도킨스가 말하는 것은 명확합니다.  유전자가 이기적이 

라는 것과 우리는 유전자가 만들어 낸 생존기계라는 것이지요. 

그 명제를 풀어내는 과정이 인터넷 책 소개에는 '대담하고도 섬세한 이론을 무리 없이 전개함으로 

써 완벽한 이론가의 면모를 보인 그는 완전무결한 슈퍼스타' 라 나와 있어요.  하지만 제게는 '내가 

설명하는 방식으로만 이해하며 따라올 것, 독자의 이해도와 수준은 내 알 바 아니니까' 로 보이더군 

요. 

왜 그럴까, 생각해보니  그가 주장하는 '생존기계' 개념이 너무 낯설고 적응하기 어려워 그랬던 거 

같습니다. 

비록 시대와 경험이 주는 한계 속에 꽁꽁 묶여 살고 있지만, 가끔 제법 스스로 생각하고 행동하는  

사람이 유전자가 조종하는 생존기계에 불과하다니, 거부반응이 일지 않나요? 

게다가 팔짱 끼고 내려다보는 시선으로 말이에요, 오우. 

 

좀 더 다른 방법이 없었을까, 하던 차에 <다윈주의 좌파>를 번역한 최정규님의 글을 읽으니 이거다 

싶더군요. 

유전자는 원래 이기적이랍니다.  유전자가 이기적이지 않으면  즉, 자신을 더 빨리 복제해내지 않으 

면 소멸될 운명이기 때문이죠. 유전자의 관점에서 그 담지자를 이기적으로 행동하게끔 만드는 유전 

자가 있을 때에도 그 유전자는 이기적 유전자이며, 반대로 그 담지자를 이타적으로 행동하게끔 만드 

는 유전자가 있다 하더라도 그 유전자는 이기적 유전자라는 것이죠. 

이 당연한(?) 사실을 발견해서 리처드 도킨스가 유명한 게 아니라, 유전자 시각에서 세상을 바라보 

고, 그것을 세상에 해석할 것을 요구했기 때문이라네요. 

아.... 이기적인 유전자가 말을 해서 그렇게 신경질적으로 보였나! 문득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최정규님이 생존기계란 단어를 쓰지 않아서 상대적으로 편하게 받아들인 걸 보면,  그 단어 

가 싫어도 참 싫은가 봅니다. 

 

사실 리처드 도킨스와 최정규님의 말은 같습니다. 

유전자는 이기적이다. 그렇지만, 우리의 뇌는 (혹은 유전자가 담겨져 있는 담지체로서의 인간) 이기 

적 유전자에 배반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는 정도로까지 진화했다. 

이러한 원리가 넓~게 작용할 수 있고, 또 그래야만 한다. 라는 것입니다. 

같은 말인데, 독자에게 어필되는 정도가 무척 다릅니다. 

 

<이기적 유전자>는 유전자가 왜 이기적인가를 540쪽에 걸쳐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걸 보는 게 피 

곤한 나머지 결론을 잊어버리기 쉬운데, 최정규님은 <다윈주의 좌파> 130쪽 안에서 그것도 '옮긴 

해제' 몇 쪽을 통해 결론을 말하고 있어, 훨씬 간결합니다. 

어쩌면 진실에 다가가는 지리한 과정을 즐기지 못하고, 쉽게 결과를 얻고자 하는 얄팍한 독자의 한 

계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유전자를 놓고 볼 때, 인간의 행동 중 어디까지가 유전자의 조종인지, 어디서부터가 유전자 

를 배반하는 능력인지 구분하는 것이 과연 가능할까 싶을 정도로 어려워 보이고, 심지어 유전자 숫 

자 또한 셀 수 없이 많으니, 이 책의 주제가 어려워도 참 어려운 것이긴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 이 책이 제게 주는 의미는 이렇습니다. 

아무리 뛰어나다해도 독자를 감안하면 좋겠다 라는 것이죠. 

이 책이 나온 시기나 생물학계의 여러 이슈를 감안하고, 진화생물학 역사에 한 획을 그었다는 변할 

수 없는 사실을 인정하지만, 

독자를 감안하는 눈높이 설명이 있었다면 더 좋지 않았나 하는 부분 말이에요. 

이해도가 부족한 제 탓도 있습니다만, 이 책이 많이들 어렵다 하더라구요. 

 

하여, 별다를 것도 새로울 것도 없는 제 글이 앞으로 좀 더 쉽게 읽힐 수 있도록 노력 해야겠다~  

굳은 결심을 했습니다. 

리처드 도킨스야 어려운 걸 설명하자니 그랬다지만, 전 그래야 할 이유가 정말 없다는 생각이 들었 

거든요. 

 

마지막으로 제 글, 정리합니다. 

신경질적으로 보이는 문체, 받아들이기 어려운 생존기계 개념, 그리고 쉽지 않는 주제에 관한 이 책 

은 유명세와 저자의 의도와 전혀 상관없이,  제게 쉬운 글이 좋은 것이여~ 라는 상당히 엉뚱한 결론 

을 준 책입니다. 

 

정말 마지막, 저자에게 한마디 해봅니다. 

유전자의 조종과 유전자를 배반하는 능력을 복잡한 현실세계에서 구분할 수 있는지요?  

그 방법은 어떻게 되나요?  

궁금, 합니다...만 쉽게 설명해 주신다면 정말 좋겠어요. 

 

 

읽은 날  2012. 5. 21   by 책과의 일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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뜻으로 본 한국역사 - 젊은이들을 위한 새 편집
함석헌 지음 / 한길사 / 200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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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뜻으로 본 한국역사, 함석헌> 

 

지난 총선 이후 정치에 대한 관심이 급격히 떨어졌다. 아니, 희망을 말하기 힘든 길고 긴 암흑터널 

상태라 해야겠다. 

박근혜의 광폭행보라든지, 안철수 대선출마 여부라든지....사각지대 밖의 일이긴 하나, 이번 박근 

혜의 발언은 내 정신을 흔들어 꺠우는 벼락과 같은 충격이다. 

 

인혁당 사건을 놓고 '대법원 판결이 두 가지로 나왔다', '역사적 평가에 맡기자'라 하지를 않나, 

5.16 쿠테타 사건을 놓고 '돌아가신 아버지로서는 불가피하게 최선의 선택을 하신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라고 하지를 않나, 지나가는 개미가, 모기가, 바퀴벌레가 웃을 소리다. 

 

일단 웃음이 나온다. 부연 설명이 필요없는 헛웃음이다. 

그 다음, 솔직함에 놀랐다. 대부분 그런 생각을 해도 차마 입 밖에 소리내지 못하건만, 뚝심인건 

지, 무식해서인지 그의 무대포 정신이 선명하다. 

그 다음, 정말 무식하다. 정치를 하고 싶다면 이런 말을 할래야 할 수 없다. 타인을 설득해 자기 편 

에 서게 하는 게 정치 아닌가. 세상을 올바르게 하는 게 문자 그대로 정치 아닌가. 무식한 발언에 

두 손 두 발 들어버릴 사람이 생각보다 많을 것이다. 득보다 실이 지나치게 많은 발언을 왜 할까. 

차라리 아버지의 세상을 재현하고 싶어요~ 라 대놓고 말할 것이지. 

 

그의 발언도 발언이지만, 국민을 어떻게 보고 이 따위 발언을 하는건지, 그런 발언을 들어야 하는 

게 우리의 수준인지, 그 따위 (표현된 발언보다 그의 역사의식이 문제다) 발언을 해도 지지율에 큰 

화가 없는 게 정.말. 우리의 수준인지 개탄스럽기 짝이 없다. 

김어준이 화제의 작 <닥치고, 정치>에서 일찍이 지적했지만, 실제로 당하고 보니 이번 일이야말로  

메가톤급 충격이 아닐 수 없다. 

그도 그지만, 그런 꼴을 들어야 하는 우리의 처지가 개탄스러워 어찌할 줄 모르겠다. 

어쩌다가 이렇게까지 된 것일까. 

 

돌아가신 함석헌 선생의 목소리가 여기까지 들리는 듯 하다. 

 

"한국사람은 심각성이 부족하다. 파고들지 못한다는 말이다. 생각하는 힘이 모자란다는 말이다. 

깊은 사색이 없다. 현상 뒤에 실재를 붙잡으려고, 무상 밑에 영원을 찾으려고, 잡다 사이에 하나인 

뜻을 얻으려고 들이파는, 컴컴한 깊음의 혼돈을 타고 앉아 알을 품는 암탉처럼 들여다보고 있는, 

운동하는, 생각하는, broodking over 하는 얼이 모자란다. 그래 시 없는 민족이요, 철학 없는 국민 

이요, 종교 없는 민중이다. 이것이 큰 잘못이다." 

 

일찍이 고구려의 위대함이란 주몽이 민중에게 뜻을 보였고, 그 뜻이 민중의 가슴에 타올랐기 때문 

이었건만, 삼국시대를 기점으로 착하고 너그럽고 곧고 굳고 날쌔고 의젓하던 정신이 그만 사막으 

로 흘러드는 냇물 모양으로 어느덧 자취를 감추어버렸다고 함석헌 선생이 <뜻으로 본 한국역사> 

에서 말하고 있다. 

 

까마득한 삼국시대부터 잘못되 이 꼴이 되었다는 것을 실감할 수 없으나, 작금의 돌아가는 모양새 

를 보니 그야말로 실감나는 일이다. 

민중은 예나 지금이나 결코 자기를 잊은 적이 없다던데, 지금은 아닌가 보다. 

특권계급은 언제나 자기네 이익을 위해 민중을 속여 압박자에게 팔고 자기네는 그 값으로 영화를 

누리자는 것이다. 어느 민족, 어느 시대나 민족을 파는 것은 권력계급이다. 민중을 팔지 않고 권력 

은 안 생긴다.  

민중은 자기를 팔지 않기 때문에 권력이 없다는데, 일이 이렇게 돌아가는 걸 보면, 민중은 필시 자 

기를 잊었나 보다. 

파고들며 생각하는 힘도 모자라, 내가 나를 잊었나 보다. 

그렇지 않고서야! 

 

"역사는 점점 더 알 수 없다. 해방이 갑자기 온 것도 알 수 없거니와, 6.25 전쟁을 당하고 나서는 

점점 더 알 수 없다. 그러나 알 수 없는 것은 생각하라는 말이다." 

 

이제 신화도 없어지고 민족의 영웅도 없어져 갈수록 태산인 지금의 상황에서, 함석헌 선생의 말씀 

대로 '알 수 없으니 생각'해야만 하는가. 

무엇을 어떻게 생각해야 할까! 

 

좌절과 절망에 사로잡혀 생각할 힘도 잃어버리고, 저 멀리 있는 희망이나 목표나 바램은 싸구려 짝 

퉁마냥 내던져 버리고 싶건만, 

별이 반드시 붙잡혀서 길 인도가 되는 게 아니듯, 이상도 반드시 거기 도달해야 좋은 것이 아니라는 

말씀에 냉정을 찾는다. 

따라가도 따라가도 잡을 수 없는 별이기 때문에 영원한 길잡이가 되듯, 이상이란 힘써도 힘써도 그 

대로 되지 않기 때문에 사람이 묵묵히 한 걸음 한 걸음을 걷는...것일....것이다. 

올바른 말씀, 애써 주억거린다. 

들리지 않는 말씀이나, 애써 새겨 듣는다. 

 

역사는 나아가도 나아간 것이요, 물러가도 나아간 것이라는데 도대체 우리는 얼마큼 물러가야 진정 

나아갈 수 있을까. 

우리가 칼을 꺽고 깊이 생각해야 할 일은 과연 무엇일까? 

 

박근혜를 맹신하는 그들에게 묻고 싶다. 

왜 그러냐고. 

당신의 역사인식은 무엇이냐고. 

당신의 옳고 그름, 소망은 무엇이냐고. 

눈만 돌려도 수두룩하게 보이는 빈자와 약자가 안 보이냐고. 

당신은 우월하게 태어났으니 상관없냐고. 

 

영원할 거 같냐고. 

 

진정. 

 

 

  읽은 날   2009. 6. 22    by 책과의 일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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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세기 조선 지식인 지도
이경구 지음 / 푸른역사 / 200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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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7세기 조선 지식인 지도, 이경구>  

 

평소 정조를 비롯한 그 시대의 지식인을 애정해 왔다. 이 책 <17세기 조선 지식인 지도>를 네이버 

지식인의 서재 '성석제' 편에서 보자마자 산 건, 정조시대 이외 뛰어난 우리 조상이 분명 있을텐데 

모른다는 사실을 순간에 인지해서였다. 

한 편으로 가지를 뻗어나가는 '앎'이 부담스럽지만, 18세기 이후 쏟아져나온 조선의 높은 문화정 

신의 기저에는 분명 전 시대가 있어 가능한 일이니, 보람은 부담을 압도한다. 

 

17세기 조선,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거쳐 사상계 전체에 큰 변화가 싹트고 있을 즈음, 서인은 

1623년 광해군을 몰아 낸 인조반정으로 북인정권을 몰아내고 정권을 잡기 시작한다. 그때 중국은 

주자의 정통이었던 송이 쇠퇴하고 오랑캐인 금이 패권을 쥐어잡던, 혼란기였다. 

이렇게 구질서가 마감되고 신질서가 성립하는 시기에  조선 지식인을 사로잡았던 것은 '사회질서 

재건 의무감'이었다. 

 

인간이면 누구나 갖고 있는 보편적 덕성이 외면적 질서로 나타난 '예', 즉, 사회, 국가, 나아가 세계 

질서에 실현되어야 하는 이상적 질서를 바로잡는 것이 그들의 절박함이었다. 

이러한 생각은 예송 (조선 현종 때 궁중의례의 적용문제, 특히 복상(服喪) 기간을 둘러싸고 서인과 

남인 사이에 크게 논란이 벌어진 두 차례의 사건), 종법에 바탕을 둔 의리나 예법 등에서 찾아볼 수 

있는데 그 중 가장 압권은 송시열이다. 

 

송시열은 왕을 제외하고 <실록>에 가장 많이 나온 이로써, 83세의 나이, 압도하는 풍모, 인조에서 

숙종까지 4대에 걸친 정치적 이력,  율곡학파를 주류에 올려놓은 학문적 업적을 자랑하는데, 그가 

후대에 높이 평가받는 것은 주자의 정신을 계승, 실천했다는 점에 있다. 

그러나 명나라도 없어진 상태에서 조선이 유교의 명예를 이어야 한다는 책임감이 강했던 탓에, 송 

시열은 유교적 질서를 세우는 일에 집요하게 매달렸고,  그 집요함은 때론 '구태'의 상징이 되기도 

했다. 

 

그 다음 교과서에서 배웠던 역사의 단면 몇 가지가 인상적이었다. 

'북벌'하면 조선의 영토 확장이나 민족정신의 발로로 오해되기 쉬운데, 북벌 추진자들은 근대 민족 

주의에서 그리는 영도자가 아니라 유교적 세계관에 충실한 이들이었다. 일반적으로 당대인이 생각 

한 북벌은 복수설치, 즉 병자호란의 치욕을 씻고 대명의리를 드높이는 행위였다. 

이후 박지원이, 발전한 청 문화의 실체를 인정하고 배워 궁극적으로 청을 극복하자 주장한 것도 기 

저에는 명나라를 위한다는 신념이 깔린 것이라 한다. 

 

그 다음, 지금 우리가 갖는 '실학'에 대한 오류 부분이다. 

우리에게 실학은 '조선 후기의 일련의 개혁 사상'이란 고유 명사이며, 그 정신을 계승해 '현실에서 

공허한 이론에 얽매이지 않고 실심, 실용, 실질을 추구하는 사상'이란 보통명사이기도 하다. 

그러나, 조선시대에 실학은 진실한 학문이란 의미에서 보통명사였다. 불교에 대해 유학이 실학이 

었으며,  과거 준비하는 출세 학문에 대해 성리학 등을 탐구하는 순수 문학이 실학이었고, 이론만 

캐는 공허한 학문에 대해 일상.현실의 실천을 강조하는 학문이 실학이었다 한다. 

이렇게 다양하게 쓰이던  실학이 고유명사 실학으로 정립한 시기는 일제강점기였다. 우리의 과거 

를 부정하고 '개혁'을 강조하고 싶었던 시대정신의 오류의 정의다. 

 

그 다음 붕당정치에 대한 오해다. 

공자시대, 붕당의 결성은 국왕 앞에서 사사로운 이익을 위해 뭉친다 하여 금기시되다,  중국 송대에 

이르러 붕당에 대한 새로운 해석이 내려지기 시작하여 16세기 조선에도 공존과 견제구도로서 붕당 

정치가 자리잡았다. 

비록 숙종때 이르러 격렬한 대립으로 비화되긴 했으나, 붕당정치의 장점 대신 단점만 기억하는 우리 

들의 인식은  일제강점기 때 조선 망국의 원인을 붕당정치의 파당성에 돌리며 식민 지배를 합리화한 

이른바 식민시관이라 하니, 놀라웠다. 

  

 

이 책에 나온 많은 지식인 중 가장 인상깊은 이는 장유남구만이었다. 

장유는 압도적인 문명 앞에서도 주눅 들지 않고 주체성을 잃지 않은, 존경스러운 분이다. 

 

"중국에 들어간 자들은 눈이 커지고  정신이 아득해져서  망연자실하기를  마치 우물 안 개구리가 

바다를 본 듯하는데, 이는 내게 있는 지극한 보배를 알지 못하고 그저 현혹되었을 따름이다. 그것 

들은 애초 사람마다 고유한 것이어서  단지 저들(중국)이 먼저 얻었을 따름이다. 저들에게 취하는 

것은 나에게서도 찾을 수 있으니, 저들은 이런 것 때문에 스스로 과대평가해선 안 되며, 우리 또한 

이런 것 때문에 스스로 과소평가해도 안 된다." 

 

사대주의에 절었다는 조선 지식인에 대한 인상을 확 바꾸어놓는 글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또한, 장유는 유불선을 넘나들며 (대도는 하나인데 유교.불교.도교는 무엇이고, 주자학과 양명학은 

또 무엇인가. 큰 진리에서 본다면 성현들이 제시해 놓은 길조차도 하찮을지 모른다)  주자학만으로 

줄을 세우는 당대의 풍조를 비판했다하니, 시대를 뛰어넘은 지식인이라 할 수 있다. 

 

그 다음 남구만이다. 

교과서를 통해 들어봤음직한 "동창이 밝았느냐 노고지리 우지진다..."가 남구만의 것이라 한다. 

이렇게 서민적 풍모를 풍기나, 역사 속의 그는 붕당들의 공존이 불가능해진 숙종대에 영의정을 세 

차례나 지냈던 정계의 조타수였고 대제학을 지냈던 문장가였으며, 역사지리학의 선구자였고 제도 

개선과 적극적인 북방 경영을 역설한 당대의 실무가이다. 

 

숙종 즉위년에 청에서 군사를 요청하자,  '우리나라는 병자호란 때 맺은 약조 때문에 군대를 마련 

하지 못했다' 고 허를 찌르는 대응책을 낸 것이며, 하급관료인 이서들의 횡령을 알아챘을 때, 그는 

잘못을 눈감아주는 대신, 그동안 축낸 분을 보상하게 함으로써 다시는 횡령이 발생하지 않게 했다 

는 등 이야기는  다양한 가치의 공존과 조화를 시대의 화두로 떠올리는 지금, 꼭 필요한 지혜라 할 

수 있다. 

 

산림의 시대를 연 김장생과 김집 부자,  70세가 넘은 노재상 김집에 대립각을 세우며 대동법을 시 

행하고자 했던 김육, 주자가 경외스럽던 시절에 주자조차도 통과 대상에 불과하다던 윤휴, 조선의  

새로운 길을 세우고자 했던 유형원,  철학과 시문을 넘나들며 이념의 지표를 세운  김창협, 김창흡 

형제...그들의 문화가 있었기에 18세기 빛나는 문화가 가능했으리라. 

 

우리는 되풀이되고 있는 역사 속 지식인에 대한 앎을 통해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가치를 발견할 

수 있다. 바로 다양한 가치의 공존과 조화에 대한 지혜이다. 

아울러, '찬란했던 과거, 흥미로운 소재를 소개하거나 빠져나갈 구멍 없는 해석을 제시하는 식의 

서술은 계몽과 각성의 효과는 있겠지만, 결론이 나오기까지의 과정을 투명하게 지켜보며 비판적 

안목을 기를 기회를 실종시켜 버릴 수 있다'는 저자의 말대로 이 책은 대중과 함께 호흡하는 친절 

함을 갖췄다. 

 

그리고 역시 드는 생각은, 사람이 자신이 속한 시대의 생각을 뛰어넘는 일이야말로 정말정말 어려 

운 일이란 점이다. 

 

그리고, 지금 이 시대의 지식인을 사로잡는 절박함, 과연 그들에게 절박함이 있을까. 

난 차라리 지식인보다 집단지성의 힘을 믿고 싶다. 

 

 읽은 날  2012. 6. 11    by 책과의 일상  

   http://blog.naver.com/cji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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