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근원수필 (보급판) - 고전의 향기 듬뿍한 『근원수필』의 새 모습
김용준 지음 / 열화당 / 200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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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하면 학창시절 교과서에서 봤음직한 피천득 선생의 <인연>이 떠오릅니다. 

뭔가 아득한 느낌이에요. 

수필...... 

예전에는 '에세이(essay)'란 단어를, 근래에는 '산문'이란 단어를 더 보게 됩니다. 

아득하고 그리운 마음에 <근원수필>을 읽어보게 됐어요. 

그런데, 원래 읽으려던 책은 <관촌수필>...... 어휴, 기억력이란! 

 

수필, 에세이, 산문... 차이를 찾아봤습니다. 

수필은 경수필, 중수필로 나뉘는데, 중수필을 에세이라 하더군요. 

산문은 소설이나 수필을 뜻한다니, 산문 > 중수필 = 에세이 > 경수필, 정도 되겠네요. 

 

<근원수필>은 '근원'이란 호를 가진 사람이 쓴 글입니다. 바로 김용준이란 분인데, 화가이자 미술평론가, 미술사학자라네요. 그는 1950년에 월북한 작가로서, 오랜기간 금시기됐던 분이랍니다. 

 

이 수필집은 세속을 날카로이 보나 거세게 비난하지 않는 근원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치부를 겸손의 방식으로 드러내는데, 그 솔직함에 빙긋 웃게 됩니다. 짐짓 체하지 않아 보기 좋았어요. 

또한, 1948년에 나온 책답게 시대의 문체(?)로 씌여 있어 읽기의 색다른 맛이 있습니다. 

고어(古語 문체가 뭔지 모르지만요) 와 현대어의 중간(?) 느낌이 신선했어요. 

 

이런 문장들입니다. 

"나는 구름같이 핀 매화 앞에 단정히 앉아 행여나 풍겨 오는 암향을 다칠세라 호흡도 가다듬어 쉬면서 격동하는 심장을 가라앉히기에 힘을 씁니다." 

"역대로 게를 두고 지은 시가 이뿐이랴만 내가 쓰는 화제는 십중팔구 윤우당의 작(作)이라는 이 시구를 인용하는 것이 항례다." 

 

근원은 자신의 수필집에 대해 이렇게 평합니다. 

"수필다운 수필이란 다방면의 책을 읽고 인생으로서 쓴맛 단맛을 다 맛본 뒤에 저도 모르게 우러나오는 글이나, 

마음속에 부글부글 괴고만 있는 울분을 어디 호소할 길이 없어 가다 오다 등잔 밑에서, 혹은 친구들과 떠들고 이야기하던 끝에 공연히 붓대에 맡겨 한두 장 씩 끄적거리다 보니 그게 그만 수필이 되었다" 라구요. 

정확한 자평(自評) 입니다. 

 

근원 말대로, 수필집을 관통하는 주제와 내용을 찾아보기 어려웠습니다. 

초반의 정돈된 글과 달리 후반으로 갈수록 무엇을 위해 글을 썼을까... 싶은게, 실망스러웠어요. 

글마다 서로 다른 느낌과 주제는 자유분방한 예술가 기질에서 나왔겠지만요. 

엉뚱한 주제의 여러 글이더라도 전체적인 그림이 보였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하나하나의 이쁜 구슬이면 충분할까요, 못난 구슬이라도 꿰어서 빛나면 좋을까요. 

저는 후자가 좋습니다만...  아무래도 예술가 기질이 농후한 글과는 안 맞나 봅니다.                                  

 

 

 

 

 

푸른하소구슬목걸이

루브르박물관, 소장

 

 

읽은 날  2012. 8. 24    by 책과의 일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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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과 좌절 - 노무현 대통령 못다 쓴 회고록
노무현 지음 / 학고재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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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여 년 인생을 단어로 표현한다면,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요. 

아직도 부르기 힘든 이름, 고 노무현 대통령은 '성공과 좌절'이란 단어로 자신의 인생을 표현했습니다. 

그 분이 말한 성공이란 어릴 때 생각했던 것처럼 먹고 사는 데 걱정 없는 사람, 또는 출세한 사람이 됐다는 뜻입니다만, 성공의 핵심적 요소인 명성과 명망이 땅에 떨어지게 생겼으니 남은 게 없다 말합니다. 

우리나라 정치의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겠다며 인생을 걸고 도전했는데, 이 또한 거의 원점에 돌아와 있으니 좌절이라 말해요. 

빈껍데기만 남은 성공과 원점으로 돌아온 좌절이, 고 노무현 대통령 스스로가 말한 자신의 인생입니다. 

 

60여 년 인생을 '좌절'로 표현하는 것, 참으로 안타깝기 그지없습니다. 

어째됐든 팔짱 낀 채 무관심과 수수방관으로 살아온 게 아닌, 누구보다 행동과 실천으로 목표를 향해 열심이었으니 말입니다. 

만약, 그 분이 대통령이 되지 않았다면 어땠을까요. 

그 분 말처럼 스스로도, 준비된 조직적 세력도 없이 정권을 잡았고, 우리 사회가 미처 받아들일 준비가 안 된 개혁을 하려 한... 그 시작부터 겪었던 좌절을 느끼지 않을 수 있었을까요. 

 

가정이든 학교든 기업이든 長의 자리는 무척 중요합니다. 

운이 맞아 떨어진다면, 자신이 원하는 것을 거침없이 해나갈 수 있고 그 영향은 실로 막대하니까요. 

그러나, 長이 된다해서 원하는 모든 것을 이룰 순 없습니다. 여러가지가 맞아야 가능하니까요. 

그렇다해도 정치인이 대통령이라는 자리에 오르고자 하는 이유는 그만큼 확실한 자리가 없기 때문이기도 할 거에요. 

만약 대통령이 되지 않았다면.... 어쩜 그 분은 여전히 인생의 성공을 향해 지금도 열심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이 책에는 북한 로켓이 문제되던 2006년 자신과 인식이 달랐던 참모들 얘기며, 이라크 파병 등에 대한 얘기가 담담히 기술되어 있습니다. 이라크 파병에 대해, 대통령이 역사의 오류를 기록하고 싶지 않다고 해서 그럴 수 있는 것이 아님을, 스스로 역사의 오류로 남을 것을 알면서도 그렇게 할 수 밖에 없었다 말합니다. 

헌법 개정 문제 또한, 되느냐 안 되느냐의 논의와 토론조차 되지 못하고 언론이 담합해 덮어버릴 줄 몰랐다며 끔찍해 합니다. 대의명분이나 정당성이 얼마나 힘이 있는 것인지 모르겠다며 말하는 부분은, 정.말. 아렸습니다. 

 

대의명분이나 정당성...그 허울좋은 이름 대신 그 분 말대로 보통 사람들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상식대로 세상이 돌아간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그 분이 꿈꾸던 바로 '사람 사는 세상' 말입니다. 

 

저는 아직 그 분 앞에 객관적이기 힘듭니다. 

우리 사회는 어떨까요. 

아직 역사란 이름이 켜켜히 쌓이기 힘든 시간인데요, 세월이 지나 우리의 역사는 그 분을 어떻게 평가할지...긴 시간을 두고 지켜보는 게 할 일이라 여겨집니다. 

 

 

        

 

 

읽은 날 2009.  10.  16   by 책과의 일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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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든 - 완결판
헨리 데이비드 소로우 지음, 강승영 옮김 / 은행나무 / 201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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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간의 호평을 받는 <월든>은 제게 숙제였습니다. 

큰 마음을 먹고 숙제를 끝냈는데, 영 개운치 않았어요. 

생각보다 별로였거든요. 

왜 별로일까.... 이 또한 숙제였습니다. 

 

책 읽기 전에 예상했던 헨리 데이비드 소로 이미지와 완독 후 이미지가 사뭇 달라서 그런거 같습니다. 

제가 생각한 헨리 데이비드 소로는, 넉넉한 풍채에 인자하게 웃는 인상이 얼굴에 주름으로 새겨져 있고 켄터키 옛집에 나올 듯한 밀짚 모자와 푸근한 멜빵바지를 입고 있는 넉넉한 삼촌이었거든요. 

그러나 책 읽은 후의 이미지는 키가 크고 꼬장꼬장하게 마른데다 인생의 고민이 잔뜩 새겨져 있는 얼굴에 숱이 별로 없는 머리를 내놓고 낡은 옷을 입고 있는 노인같았습니다. 

그러나 웬걸요. 

그가 <월든, 혹은 숲속의 생활>의 삶을 산 것은 고작 29세였으며, 책을 쓴 것도 38세에 불과했습니다. 

 

소로는 인생을 의도적으로 살아보기 위해 호숫가 삶을 택했다지만, 제가 보기엔 목사직 같은 안정적인 생계가 힘들어져 어쩔 수 없이 간 게 아닌가 싶어요. 소로 자신도 그렇게 말했구요. 

그렇게 정착한 호숫가에서 이웃 주민들의 삶을 관찰하며 그들의 어리석음과 무지함을 탓하곤 해요. 왜 그들은 삶을 저당잡힌 채 살고 있는가, 왜 번지르르한 싸구려 물건을 들여다보며 살고 있는가, 검소한 생활을 하면 필요 이상의 노동을 하지 않아도 될텐데... 하면서요. 

 

한편으로는 이렇게 얘기합니다. 

"나는 외로움을 느낀 적이 한 번도 없었으며 고독감 때문에 조금이라도 위축된 적이 없었다. 나도 외롭지 않다. 나도 외롭지 않다." 

 

그가 비록 "나의 일과는 흙이 자신의 여름 생각을 쑥이나 개밀이나 피 같은 잡초가 아니라 콩잎으로 나타내도록 설득하고, 그리하여 대지가 '풀!'하고 외치는 대신 '콩!' 하고 외치도록 만드는 일"이란 멋진 표현을 해도, '외롭지 않다, 외롭지 않다' 말하며 콩코드 농부를 탓하는 소로가 더 크게 보였습니다. 

책을 전혀 읽지 못하는 사람의 무식과, 아이들과 지능이 낮은 사람들을 위한 책만 읽는 사람들의 무식 사이에 큰 차이를 두고 싶지 않다는 발언 또한, 그나마 없는 호감을 떨어뜨렸습니다. 마치 자신은 수준과 격이 다른 사람이라는 것 같았어요. 근근히 살아가는 그의 이웃은 스스로의 선택이라기보다 사회와 자본의 울타리 안에 메인 평범한 농부일 뿐인데 말이에요. 

사회 문제는 보지 못한 채 개인의 문제로만 치환해 그들을 탓하는, 제가 싫어하는 시각이지요. 

 

그럼에도 헨리 데이비드 소로는 시대를 앞서가는 탁월한 시각과 삶의 양식으로 많은 사람들에게 영감을 주었습니다. 구체적인 사례를 인용하지 않아도 될만큼 차고 넘쳐요. 

그러나 제겐 장점보다 울분 가득한 고독이 더 크게 보이네요. 

29세 혈기왕성한 나이에 혼자 조용한 호숫가에 살며 세상을 향해 하고 싶은 말이 많았던 그에게서, 조금은 답답한 제 자신이 보여서일까요. 

스스로에게 주문걸만큼 외로웠는데, 매우 치밀하게 외로움을 숨기려는 그가 너무 투명합니다. 수많은 자연 예찬에도 불구 부엉이 소리를 '엄숙하기 짝이 없는 무덤의 노래'라 말하는 그가 안쓰러워 보입니다. 그가 남긴 글보다 여백으로 남아있는 행간 사이에 그의 본 모습이 더 남아있는듯 해요. 

소로는 이런 제 시선에 뭐라 말할까요. 

불쾌하다 할런지, 보일듯 말 듯 미소를 지어줄런지... 

그저 그가 머물렀던 월든 호숫가를 휘리릭 한바퀴 돌아볼 거 같아요. 

이젠 이곳도 예전과 다르군.... 하면서요. 

 

어느 누구도 대다수 사람들과 다른 삶을 고민없이, 외로움 없이 살긴 힘들 것입니다. 

혼자 떨어져 다른 하늘을 바라보는 삶이 마냥 행복하기만 하진 않을테지요. 

외로울 땐 외롭다고, 힘들 땐 힘들다 솔직히 얘기해도 될텐데요. 

아마 그의 시대와 지금이 다른 이유도 있을 겁니다. 

 

꼿꼿한 눈길을 하고 있는 소로, 이젠 힘 빼도 괜찮아요. 

많은 이가 당신 글에서 영감을 받고 있으니까요. 

더 이상 외로워하지 마시길. 

 

 

                

 

 

읽은 날  2012. 6. 22     by 책과의 일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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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게 어쩌면 스스로에게 - 이 시대 7인의 49가지 이야기
김용택 외 지음 / 황금시간 / 201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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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OFF 매장에서 음반이 잘 팔리던 시절엔 음반 1장당 10곡 이상이 주로 담겨 있었습니다. 곡 수가 충분하다보니 앨범 고유의 특징을 느낄 수 있었어요. 

그런 음반이 대세일 땐, '컴필레이션 앨범'(편집 혹은 베스트 앨범이라고도 해요)이 그리웠습니다. 

앨범마다 고유한 음악세계도 좋지만, 음반마다 핫한 노래를 골라 담은 것도 좋았지요. 

지금보다 성능 떨어지는 카셋트에 열심히 녹음했던 기억이 나네요. 

 

<세상에게 어쩌면 스스로에게>는 그런 컴필레이션 앨범을 떠올리게 합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한 작가에 의해 씌어진 게 아닌, 여러 작가가 한 꼭지씩 맡은 컴필레이션 책이라 해야 할까요. 

 

이 책에서 가장 인상깊었던 것은 서민과 반이정이었습니다. 

그 둘은 '책 쓰기'에 대해 서로 양 끝단에 있어요. 

서민은 자신의 경험을 예로 들며 '책 쓰기'를 장려합니다. 

우리나라 30개 대학 50명 정도의 기생충학자가 있는데, 왜 유독 자신에게만 전화가 왔을까, 며 '책'이라는 결론을 냅니다.

책을 쓰면 해당 분야의 전문가라 인식될 소지가 충분하고 돈을 벌 수 있고, 생소한 분야를 대중에게 알릴 수 있는 기회가 된다면서요. 

 

반이정은 말합니다. 

강한 자의식을 가진 사람이라면 필경 자기 한계에 부딪혀 모멸감을 느끼고 실의에 빠지곤 하는데, 그게 글쓰기의 정도라구요. 

'저자 되기' 수요를 충족시키며 언급될 수 있는 '자신감'에 대해서도 날을 세웁니다. 

자신감이란 휴대전화처럼 소지할 수 있는 게 아니라, 당사자만 은연 중 감지하는 '흐름'에 가깝다구요. 이것은 반복된 수련으로 각자 내면에 감지되는 흐름이랍니다. 

텅 빈 모니터를 응시하며 '끝낼 수 있다'는 설득과 '못할지도 모른다'는 협박 사이에서 방황하다가 결국 '끝내는 쪽'으로 결론내는 일, 그것이 그가 하는 직업의 패턴이라 말해요. 

그의 얘기는, 아무나 쉽게 책 내는 것에 대해 환멸을 느끼는 것처럼 여겨졌어요. 

서민과 반이정의 책쓰기 분야가 서로 다름을 감안해야하지만 말입니다. 

 

당신은 어떠신가요. 

저는 반이정 편에 가깝습니다. 

아니, 대세 흐름과 반대라는 표현이 정확하겠네요. 

아무나 쉽게 책을 쓴다면 쓰지 않을테고 (아, 능력은 열외로 할께요) 책 내는게 어렵다면 혼자 도전해볼런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어디까지나 상상일 뿐이에요. 

작가 입장의 책쓰기와 별개로 폭 넓고 구애받지 않을 독자의 자유는 존중해야겠지만요. 

 

컴필레이션 책인 이 책을 통해 처음 접하는 사람들이 있어 좋았습니다. 

'초심을 잃지 않겠다'며 진지하게 얘기하는 초보 정치인 송호창 씨가 좋았고, 유럽 생햄의 맛과 돼지 볼살!, 잘 숙성된 비계, 내장으로 새로운 분야를 얘기하는 박찬일 씨가 좋았고, 세월이 흐를수록 깊어지는 홍세화 씨가 좋았습니다. 

그러고 보니 지난 5년 동안 딱 2권 읽은 컴필레이션 책 모두 홍세화 글이 들어가 있군요. 

아직 덜 훼손된 인간으로 살아남았고 사회적 발언까지 하게 해준 '우연'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글을 쓴다는 그의 글에, 예전보다 많은 울림을 받았습니다. 

 

한 작가에 의해 씌여진 깊이 있는 책도 좋지만, 가끔 이런 컴필레이션 책을 보는 것도 좋은 거 같습니다. 평소에 접해보지 않는 다양한 작가와 만날 수도 있고, 챕터마다 다른 분위기도 느낄 수 있으니까요. 

 

예전에 읽은 컴필레이션 책 제목이 <거꾸로 생각해 봐!> / (2008년 출판) 였는데, 이 책 제목은 <세상에게 어쩌면 스스로에게> / (2013년 출판) 입니다. 

책 제목의 변화가 세상의 변화처럼 느껴지는 건... 성급한 시선일까요. 

 

 

                                

사진 출처 http://today.movie.naver.com/today/today.nhn?sectionCode=MOVIE_TUE&sectionId=699

 

 

 

읽은 날  2013. 8. 21      by 책과의 일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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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세화 씨 편에 나온 '개똥 세 개'를 인용합니다. 곱씹어 볼만해서요. 

 

옛날에 서당 선생이 삼형제를 가르쳤겠다. 

어느날 서당 선생은 나란히 앉은 삼형제에게 장래 희망을 물어봤겠다. 

맏형이 "저는 커서 정승이 되겠습니다."라고 대답하니, 서당 선생이 "그렇지, 사내대장부는 포부가 커야지."라고 응수하면서 흡족한 표정을 지었겠다. 

이어서 둘째 형이 "저는 커서 장군이 되겠습니다."라고 하니, 서당 선생이 이번에도 흡족한 표정을 지으며 "아암, 그래야지, 사내대장부라면 큰 뜻을 품어야지." 라고 했겠다. 

그리고는 막내를 향해 "너는 커서 무엇이 되고 싶으냐?"라고 물었겠다. 

막내는 잠시 생각하더니 "저는 장래희망은 그만두고 지금 여기에 개똥 세 개가 있으면 좋겠습니다."라고 했겠다. 

뜻밖의 대답에 서당 선생이 "개똥 세 개? 그건 왜?" 라고 물을 수 밖에. 

막내가 대답하길 "저보다 글 읽기를 싫어하는 맏형이 정승이 되겠다고 큰 소리를 치니 그 입에 개똥 한 개를 넣어주고 싶고, 또 저보다 겁이 많은 둘째 형이 장군이 되겠다고 큰 소리를 치니 그 입에 개똥 한개를 넣어 주고 싶고..." 여기까지 말한 막내가 우물쭈물하니, 서당 선생이 일그러진 표정으로 "그럼 마지막 한 개는?" 하며 버럭 소리를 질렀겠다. 

 

여기까지 말씀하신 외할아버지가(홍세화 씨의 외할아버지) 잠시 뜸을 들이다 나(홍세화)에게 물었다. 

"애야, 막내가 뭐라고 했겠니?" 

나는 주저 없이 "그거야 서당 선생 먹으라고 하지 않았겠어요?"라고 대답했다. 

"그건 왜 그러냐?"  

외할아버지 물음에 나는 또 서슴없이 "맏형과 둘째 형의 그 엉터리 같은 소리에 맞장구치며 좋아했으니까 그렇죠 뭐."라고 대답했다. 

내 대답에는 작은 떨림이나 흔들림이 없었다. 

그러자 외할아버지는 넌지시 나를 바라보면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그래 네 말이 맞다. 마지막 세 번째 개똥은 서당 선생이 먹어야 마땅하지. 그런데 말이다. 지금 내가 하는 말을 꼭 기억해 두어라. 앞으로 네가 살아가면서 세 번째 개똥이 서당 선생 몫이라는 말을 하지 못하게 될 때, 그 때엔 네가 그 세 번째 개똥을 먹어야 한다. 무슨 말인지 알겠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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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만 보는 바보 진경문고 6
안소영 지음 / 보림 / 200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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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은수저>란 책을 읽으면서 그간 읽었던 자전적 소설을 떠올려 봤습니다.              

 

 

 

 

 

 

 

 

 

 

 

<은수저>는 일본의 대문호 나쓰메 소세키의 극찬을 받은, 나카 간스케의 자전적 소설입니다. 이 책을 본 일본의 한 중학교에서는 기존의 국어 교과서를 버리고 책 내용대로 체험학습을 했다네요. 100년 전 즐겨먹었던 전통과자에 대한 얘기가 나오면, 옛 상점을 수소문해 학생들과 함께 먹어보는 등... 이러한 수업을 받은 학생들은 모두 우수한 대학에 진학해 일본을 깜짝 놀라게 했답니다. 

이 책에는, 무엇이든 먹여줘야 겨우 먹는 습성에 그마저도 누군가 시야에 들어오면 수저를 내던지고 집에 가겠다 떼를 쓰고, 어떤 것을 갖고 싶다는 말을 해본적 없는 유약하고 낯가림이 심한 아이에서, 청일전쟁에 대해 당차게 의견을 피력하는 소년으로, 깜짝 놀랄만큼 성장한 저자의 이야기가 담겨 있습니다.     

 

 

 

 

 

 

 

 

 

<젊은 음악가의 초상>은 한국인 최초의 음악학자라 불리우는 이강숙 교수의 자전적 소설입니다. 그는 이 책을 통해 주체할 수 없는 열정과 재능을 가졌던 유년기에 대해 얘기해요. 그저 소리에 불과한 것(피아노 소리)에 혼을 뺏기고, 그것이 음악이 되어 자기 귀에 들리는 순간 감동하여 실신하기도 했던 자신의 유년기를 말합니다. 

열정을 다해 하고 싶었던 음악과 어머니의 반대, 그리고 조르바같은 친구 병구가 나오는 그의 이야기는 고쳐배움을 통해 쉼없이 달려왔으나 여전히 목마르다며 끝이 납니다.         

 

 

 

 

 

 

 

 

 

3.1 운동 후 일제의 눈을 피해 독일로 건너간 이미륵의 자전적 소설, <압록강은 흐른다> 입니다.  

유리창 달린 새 학교가 싫었으나 아버지의 뜻에 따라 선선히 가기로 하고, 새학문이 싫었으나 어머니 뜻에 따라 선선히 하고, 3.1 운동 후 유럽에 갈 용기가 없었으나 어머니 뜻에 따라 선선히 독일로 건너갑니다. 

3.1 운동 가담조차 자의식과 열정이 아닌 얼떨결에 등 떠밀려서 했지만, 구차해 보이지 않습니다. 

새로운 것이 낯설고 힘들지만 담담히 한걸음 내딛고 후회하거나 물러서지 않는, 담백한 이미륵의 성정을 느낄 수 있습니다. 

 

 

 

 

                

 

 

 

마지막 <책만 보는 바보> 입니다. 

이 책을 자전적 소설이라 할 수 있을까요? 

정조시대 스스로 '간서치'라 불렀던 청장관 이덕무의 이야기지만, 이덕무가 아닌 안소영이 쓴 책입니다. 안소영은 일찍이 이덕무에 매료되어 그와 관련된 글을 샅샅히 찾아내어, 이덕무의 시선으로 그의 벗들과 시대를 불러옵니다. 

 

군신유의, 부자유친, 부부유별, 장유유서, 붕우유신..... 익히 아는 오륜이건만 이덕무는 오륜을 이야기할 때마다 서글퍼집니다. 

군신유의, 임금을 대할 기회가 서자인 그에게 주어지지 않았고, 부자유친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부부유별, 그의 아내도 그처럼 서출 출신, 장유유서는 또 어떤가요. 서자출신은 노인이라도 본가 어린아이에게 존댓말을 써야 한다지요. 

이런 시대와 한겨울 숨을 쉬면 입김이 성에가 되어 이불에 맺힐 정도로 가난했던 이덕무에게 유일하게 한자리 내어줬던 것은 붕우유신 뿐이었습니다. 

연암 박지원, 담원 홍대용, 박제가 등 뜻이나 처지가 비슷했던 훌륭한 벗들이 있었으니, 그나마 천만다행입니다. 

 

양반이라 농사짓지 못하고 서자라 관직에 나아가지 못하면서도 온종일 방 안에서 햇빛을 쫓아 아침.점심.저녁으로 상을 옮겨가며 책 볼 정도로 이덕무는 가난한 애서가였습니다. 

울분 가득해 넘칠 것 같은 처지였으나, 그는 조용하고 나직합니다. 어떻게 그리 차분할 수 있을까요. 

 

 

 

이 포스팅을 위해 <압록강은 흐른다> 와 <책만 보는 바보>를 다시 읽었습니다. 비교적 최근에 읽은 <은수저> <젊은 음악가의 초상>, 총 4권 중 가장 시선이 가는 것은 <책만 보는 바보>였어요.

인상깊었던 책을 다시 읽으면 대개 예전 감동만 못합니다. <압록강은 흐른다> 또한 그러했어요. 

그런데 다시 읽은 <책만 보는 바보>의 감동은 여전하더군요. 

 

세 권과 달리 <책만 보는 바보>는 유년기를 지나 일생을 마치기 직전까지의 내용이 담겨있습니다. 아름답게 기억되곤 하는 유년기를 지나 좀 더 독립적인 주체로 삶을 살아낸 기록이라 눈에 더 들어온 것 같아요. 

만약 세 권이 성인기의 내용을 담고 있었더라며 어땠을까 궁금합니다. 

좀 더 생각해보면 유년기를 회상하며 쓰는 것보다 성인기, 노년기... 당대를 직접 쓰는 게 훨씬 더 어려울 것 같아요. 

 

또한 <책만 보는 바보>는 다른 세 권과 달리 자신의 기록이 아닙니다. 안소영이란 뛰어난 공감력을 가진 21세기 작가에 의해 재해석된 책이지요. 

그러나 그가 창작하진 않았을거라 생각합니다. <청장관전서> 등 지금까지 전해지는 기록물로 이덕무 속으로 들어가 그의 마음에서 절로 썼으리라 여겨집니다. 그래서 이 책을 당연히 자전적 소설로 여기고 있구요. 

 

유년기를 지나 각자가 살아있는 현재까지의 삶을 소설로 쓴다는 것은 무척 어려운 일입니다. 

자신만 아는 자신의 모습, 남들이 알아봐주기를 바라는 모습 등 여기저기 드러내고 싶은 것이 많고, 이를 문학적으로 조율하는 것 또한 무척 어려운 일이니까요. 

에드워드 윌슨이 자신의 삶, 의지, 목표, 희망을 버무려 써낸 자전적 소설, <개미언덕>이 인상적이지 못한 것은 문학성이 부족해서였습니다. 분명 자전적 소설이고 그리 읽었음에도, 이 포스팅에 오르지 못하네요. 

 

일부러 자전적 소설을 챙겨 읽은 건 아니에요. 

다시 읽어도, 여전히 좋은 <책만 보는 바보>를 위해 긴 글을 쓰게 됐습니다. 

1년에 두어 번 할까 말까한 재독과, 쓰여지지 않고 있는 많은 독후감 속에 

읽는 것도, 독후감도 두 번째인 이 책, 

정말 이 책이 좋습니다. 

       

 

 

 

 

by 책과의 일상

 

http://blog.naver.com/cji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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