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과 내가 대화할 수 있을까 - 소통 불가능성의 인문학
정희진 지음 / 창비 / 202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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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다리고 기다리던 정희진 선생님의 신간이 나왔다. 몇 년 전부터 선생님이 ‘소통 불가능성의 인문학’이라는 제목으로 강의해 오셨던 내용이 한 권의 책에 집약되어 있었다. 강의로만 들었던 내용을 정리된 텍스트로 읽으니 훨씬 이해가 잘 되었고, 그동안 들었던 강의의 내용을 다시 복습할 수 있어서 좋았다. 무엇보다 선생님이 읽으신 책과 보신 영화들이 곳곳에 언급되어 있어서, 공부해야 할 것들이 또 늘어났다.

흔히 “비폭력대화”라든가 “대화로 풀자”라는 말을 많이 듣는다. 그런데 나는 왜 이런 말만 들으면 그렇게 경기를 일으키고 강한 반발심이 들었는지, 이 책을 읽으면서 그 이유를 확실하게 알게 되었다. 그래서인지 오히려 속이 후련했다. 대화라는 것이 언제나 동등한 위치에 있는 두 사람이 나누는 것이 아니다. 대화의 자리에서 자주 약자의 위치에 있었던 나는 상대방을 이해시키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하지만 그 안간힘은 대부분 제대로 된 보상으로 돌아오지 않았고, 결국 나는 자기혐오에 시달리곤 했다.

‘내가 너무 비굴하게 굴었나?’
‘나는 왜 그런 헛소리에 맞장구를 쳤지?’
‘정작 내가 하고 싶은 말은 하나도 하지 못했는데.’

이런 생각들이 뒤늦게 나를 괴롭혔다.

말에는 힘이 있고, 우리는 그 말에 지배당한다. 그렇다면 그 말은 누가 만든 것일까? 우리가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수많은 말과 개념은 이 사회에서 ‘주류’라고 불리는 사람들이 만들어온 것이다. 그리고 그 말들은 나의 삶과 생각을 온전히 대변하거나 표현하지 못한다. 그렇다면 나는 어떻게 나의 말을 만들어야 할까.

이 책은 한국 사회의 심각한 문제들에 대해서도 이야기한다. 예를 들어 김건희를 비판하는 것이 여성혐오라는 주장 (성별이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여성이 다른 여성을 비판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극우는 박멸해야 한다는 주장 (그렇다면 뭐 다 죽이겠다는 거야?), 그리고 동성 간 결혼은 사회적 합의가 이루어져야 가능하다는 주장 (얼핏 엄청 합리적이고 당연한 말로 들리지만 소수자의 인권을 어떻게 다수결로 결정할 수 있는가? 말도 안되는 언설)이 판을 친다. 이런 대목들을 읽으며 한국 사회의 담론이 얼마나 빈약하고 단순한 방식으로 작동하고 있는지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내가 이 책에서 가장 좋았던 구절은 다음과 같다.

“나는 왜 이렇게 어디에도 섞이지 못하는 이방인처럼 느껴질까?”라는 자기연민에서 멈추지 않고 “내 안의 이방인성, 그 타자성을 어떻게 새로운 사유의 도구로 삼을 것인가?”라는 질문으로 나아가는 사람은 타인의 고통스러운 타자성 앞에서도 조금 더 민감하게 깨어 있을 수 있습니다. 내가 나 자신에게조차 낯선 존재임을 인정하는 것. 이 곤혹스러운 타자성을 직시하는 순간, 우리는 비로소 ‘이해할 수 없는 타인’과 어떻게 조우할 것인가라는 소통의 가능성을 다시 물을 수 있습니다.

나 역시 오랫동안 ‘어디에도 섞이지 못하는 사람’이라는 감각을 가지고 있었던 것 같다. 하지만 그 이방인성을 단순히 극복해야 할 결핍으로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사유를 가능하게 하는 위치로 바라볼 수 있다면 어떨까.

이 책을 읽고 나니 ‘소통’이라는 말을 이전과는 조금 다르게 생각하게 된다. 서로를 이해시키기 위해 무조건 대화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애초에 우리가 서로를 완전히 이해할 수 없다는 사실에서 출발하는 것. 그리고 그 이해할 수 없음과 낯설음을 견디면서, 그 틈에서 내가 나의 말을 만들어가는 것. 어쩌면 그것이 이 책이 말하는 소통의 가능성에 조금 더 가까운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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