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Book] 엄마는 되지 않기로 했습니다 - 아이 없이 살기로 한 딩크 여성 18명의 고민과 관계, 그리고 행복
최지은 지음 / 한겨레출판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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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가 임신을 했다. 계획한 임신이 아니었다. 피임을 전혀 안하고 섹스를 했으니 그 결과 임신. 그럼에도 아이가 들어선 것에 큰 당혹감을 비추는 친구를 보며 내가 더 당혹스러웠다. 대화 중에 몇번이고 자기는 아이 낳을 생각이 없다고 하던 친구여서 일종의 배신감도 들었다. 친구는 임신이 자신의 인생의 새로운 챕터를 여는 모험이라고 여기며 묘한 흥분도 감추지 않았다. 미지의 세계니까 기대가 생기는 것도 이해가 갔다. 그러나 나는 임신으로 인해 여성의 몸이 변하고, 아이가 살아갈 환경을 생각하면 아이를 낳는 것이 정말 최선인가란 고민에 빠지게 된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해 이 책을 읽게 되었다. 

책에서 가장 놀란 부분은 애를 안 낳겠다고 하면 이상한 사람으로 본다는 점이다. 차라리 "애가 안 생겨서요"라고 하면 불쌍해하기라도 한다고... 결혼하면 애를 낳는게 너무나 당연해서 다른 선택지가 있다는 것조차 상상할 수 없구나 싶었다. 엄마가 아이를 뒷바라지하고 키우는게 당연한 사회에서 여성의 손해는 막심하다. 캐리어와 육아 두가지를 다 잡고 싶은 여성들은 슈퍼맘이라고 칭송받으면서 자기 몸을 혹사시킨다. 둘중에 하나를 포기해야 한다면 나는 어떤 선택을 할까? 캐리어를 고르면 이기적인 여자라 비난받고 육아를 고르면 맘충이 된다. 이놈의 뿌리 깊은 여성 혐오....

신은 왜 여자만 애를 낳게 만든걸까? 그리고 달 탐사도 가는 이 시대에, 왜 여자 자궁을 남자에게 이식하지 못하는가? 아이를 낳는 것이 여성에게 남성에게 그리고 사회에 어떤 의미인지 더 많은 이야기가 나왔으면 좋겠다. 그리고 그놈의 노키즈 존도 차별금지법으로 다스리고!

나는 내 인생을 그렇게까지 침범하고 흔들어놓을 타인을 원하지 않는다.

아이를 낳아 키우며 느낄 벅차고 뜨겁고 충만한 감정과 경험이 내 것이 될 수 없다는 것에 가끔 아쉬움을 느끼기도 한다. 그러나 아이를 먹이고 입히고 끊임없이 이야기와 요구를 들어주는 하루 하루를 내가 견딜 수 없을 거라는 사실 또한 알고 있다.

낳음을 정답으로 제시하는 세상에서 살다 보면, 그 답에 대한 의문을 갖는 것조차 차단당하기 쉽다. 자신이 아이를 낳고 싶은지 아닌지 고민하는 여성을 향해 ‘고민되면 일단 낳아야지‘라고 던지는 말들은 그 두리번거림을 당장 멈추라는 뜻이다.

아이를 원하지 않는다는 의식과 별개로, 우리는 ‘낳아야 한다‘는 통념이 깊이 뿌리내린 무의식의 지배와 끊임없이 싸우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임신 중지: 재생산을 둘러싼 감정의 정치사>에서 임신 중지에 따르는 여성의 수치심, 죄책감, 슬픔 같은 감정이 ‘자연스러운‘것이 아닌 정치적 산물이라고 분석한다.

살면서 내가 누구인지를 아는 것만큼이나 내가 무엇이 될 수 없는지를 아는 것도 중요한 법이다.

일상을 공유하고 유대감을 나누었던 상대와 멀어지거나 단절되는 것은 간단하지 않은 문제다

내가 알고 있던 그 ‘성숙한‘ 어른은 그가 개인으로서 존재할 때만 유지할 수 있는 정체성일 뿐, 아이의 보호자라는 역할을 갖게 되는 순간 자신도 어찌할 수 없는 너무 많은 변수들이 생기는 것이었다.

혐오는 쉽다. 어려운 것은 이해다. 나와 다른 존재에 대한 이해는 한순간에 이루어지지 않고, 한번 ‘이해‘했다고 해서 마냥 지속되는 것도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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