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Book] 미쳐있고 괴상하며 오만하고 똑똑한 여자들 - 이해받지 못하는 고통, 여성 우울증
하미나 지음 / 동아시아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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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안의 화제 미괴오똑을 읽었다. 하미나님이 젠더 살롱에 쓰시는 글을 보면서 꼭 이 책을 읽어보고 싶었다.

한국의 20대 30대 여성이 우울증을 어떻게 겪고 있는지 개별적인 인터뷰를 통해서 그들의 목소리를 직접 들을 수 있었던 점이 좋았다. 

주거의 불안은 여성을 우울하게 만드는 큰 요소이다. 내가 남편과 별거를 하고 집을 찾는 과정에서 너무나 힘들었고 우울 증세가 나타났다. 나 혼자 편히 쉴수 있는 공간을 쉽게 찾을 수 있었다면 분명 그 도시에 계속 머무를수 있었을텐데. 전남편은 나와 달리 아주 쉽게 집을 찾았다...

당장 한푼이 아쉬워서 전전긍긍하는 경험이 쌓이면 우울해 질 수 밖에 없다. 3000원 밖에 없어서 고생하는데 많은 사람들이 커피숍에 가득 있었다는 에피소드가 가슴이 아팠다. 얼마나 막막하고 힘들었을까. 

만성적 우울을 야기할 가능성이 큰 가정폭력, 성폭력, 빈곤을 없애기 위해서 정말 열심히 싸워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성의 우울, 그 원인을 에스트로겐으로 한정하는 설명은 우울을 경험하는 여성의 구체적인 사회문화적 맥락을 지워버린다.

아픈 걸 아프다고 말하지 못할 때, 상처받은 것을 상처받았다고 말하지 못할 때, 내가 경험하는 고통이 타인과 연결되지 못할 때, 고통은 깊어진다. 스스로 거부해도 몸으로 나타난다. 내 일상과 삶을 뒤흔든다.

약의 역사는 너무도 많은 우연과 실수, 뜻밖의 발견과 직감, 그리고 제약회사의 마케팅으로 이루어져 있다.

항우울제는 신자유주의 시대의 자기관리 방법의 하나로 여겨지면서, 개인의 고통에 내재한 사회 구조적 문제를 정치적으로 사유하기보다는 사적으로, 심리적인 문제로 환원하게 만든다고도 지적한다.

탈출이 불가능한 상황 속에 갇혀 폭력을 계속 당하다 보면, 피해자는 상황을 바꾸거나 행동을 변화시키는 대신 자신의 의식을 변화시키는 쪽을 택하게 된다. 내가 이 상황을 선택했다고 생각하거나, 이것은 꽤 좋은 것이라고 받아들이거나, 피해자인 나보다 가해자를 옹호하며 불쌍히 여기기도 한다. 오랫동안 고통에 전 사람이 새로운 삶의 태도와 사고방식을 갖기란 매우 어렵다. 사람들은 낯선 행복보다는 익숙한 고통을 택하는 경향이 있다.

타인과 고통을 나눌 수 없는 상태에서, 또 탈출할 수 없는 환경에서 반복적이고도 지속적으로 폭력에 노출되면, 현실에서 벗어나는 게 아니라 현재 의식에서 탈출함으로써 폭력 상황을 견디게 된다. 그것이 해리 증상이다. 해리는 한 번에 이루어지는 경험이 아니라, 고통으로부터 탈출을 시도했다가 이것이 좌절되는 경험을 여러 번 반복하며 이뤄진다. 피해자는 영원히 이곳을 탈출할 수 없을 것이라는 무력감을 학습하게 된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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