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Book] 혼자서 본 영화
정희진 지음 / 교양인 / 2018년 3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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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진득하니 앉아서 2시간 영화를 보는 것도 쉽지 않다. 넷플릭스처럼 내 시간에 맞춰서 언제든지 재생을 눌렀다가 화장실 가느라 잠깐 멈추고 뭐 먹을거 가지러 가는가 잠깐 멈추고 꾸벅꾸벅 졸다가 에이 그냥 그만 보자 하면서 그냥 영상을 꺼버리는 일이 부지기수다. 좋은 영화를 보고 나서 리뷰를 꼭 남겨야지 하면서도 그냥 "좋은 영화였다" 이 한마디로 끝나게 된다. 그래서 영화를 보고 이렇게 좋은 리뷰를 남겨주신 정희진님께 감사드린다.


밑줄 그은 부분이 너무나 많다. 나도 영화 리뷰를 이렇게 잘 쓸 수 있었으면 좋겠다...

내가 정말 좋아하는 영화 '타인의 삶'이 있어서 좋았고, YMCA 야구단도 들어 있었다. 

안다는 것은 깨닫고, 반성하고, 다른 세계로 이동하고, 세상이 넓음을 알고, 그리고 타인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는 과정을 뜻한다. - P21

팜파탈은 남성이 저지르는 폭력과 파괴가 결코 남성의 잘못이 아니라는 것을 주장하는 남성 판타지의 산물이다. 남성의 성욕은 무한대라서 어디로 ‘분출‘될지 모르지만 (성의 피해자로서 여성), 성욕 폭발의 버튼을 누른 사람은 남자 자신이 아니라 남자를 유혹하는 여자 (성이 유혹자로서 여성)라는 것이다. - P65

생각해보라. 여자들이 ‘진짜‘ 이성애자라면, 남자의 벗은 몸을 보고 쾌락을 느껴야 하지 않을까? 그러나 대부분의 이성애자 여자들에게 남자의 벗은 몸은 공포요, 폭력이다. 성기 노출이 성폭력이 될 수 있는 이유는 여성이 그것을 얼마나 두려워하고 불쾌해하는지 그들이 정확히 간파하고 있기 때문이다. 여자들은 이성애자이면서도 남자의 벗은 몸이 아니라 (남성의 시선으로) 여자의 벗은 몸을 보고 성욕을 느낀다. 우리는 남자의 안경을 너무 오래 쓴 탓에 아예 남자의 눈을 가지게 되었다. - P73

일탈 욕망은 젊은/부잣집/도련님에게나 가능하다. 그것은 성 해방이며 인간의 성장과 창조를 촉진한다. 자기 세계를 넓히기 위한 남자의 모험이다. 그러나 힘없는 자의 욕망은 역겹거나 최소한 심한 불편함을 준다. (노인의 성과 사랑의 ‘욕망‘을 다룬 영화 <죽어도 좋아>에 대한 우리 사회의 폭력을 보라 - P81

적당히 지적이지만 남성의 언어에 도전하지 않고, 거칠고 험악한 노동 시장에 진출할 필요나 의지가 없으며, 남자에게 부담 주지 않을 만큼만 의존적인, 깨끗한 손톱과 하얀 피부를 가진 여자. 한강이 내려다보이는 아파트에서 최고급 가전제품을 사용하면서 행복하다고 말할 수 있는 여성은, (모든 남자가 ‘가질 수 없기에‘) 남성의 계급을 증명한다. 바로 광고와 드라마에서 ‘이영애‘가 재현하는 이미지다. - P124

남한 남성은 신자유주의 채찍지에 시달리면서,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경험 (어성들과 ‘동등한‘ 취업 경쟁)에 노출되기 시작했다. 이런 자신의 처지를 한탄하고 이를 ‘여혐‘으로 표출하고 있다. 게다가 젠더 의식, 인권 의식, 평화주의 개념은 ‘꽝‘이다. - P278

남자들은 배려, 보살핌, 사랑을 생산하기 위해 아무런 노동도 하지 않는다. - P316

"나는 자기 방어를 위한 폭력은 폭력이라 부르지 않는다. 나는 그것을 지성이라 부른다"라고 한 맬컴 엑스와 "내가 주장하는 것은 폭력의 효율성이 아니라 폭력을 통한 식민지 민중인 ‘나‘의 등장이다"라고 외친 프란츠
파농과 연대한다. - P3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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