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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흔에게 (반양장) - 기시미 이치로의 다시 살아갈 용기에 대하여
기시미 이치로 지음, 전경아 옮김 / 다산초당(다산북스) / 2018년 10월
평점 :
이 책의 서문을 읽다가 깜짝 놀랐다. 제목이 '마흔에게'인데 '노화'와 나이듦에 대해 말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나이가 들어도, 도전정신, '불완전한 용기'만 있다면 젊게 살 수 있다는 것이다.
내 나이 마흔 다섯.
가끔 친구나 주위 사람들에게 '나이 드니 예전같지 않다'는 말을 하지만 그것은 사실 자조 섞인 농담에 지나지 않았다.
아직 '늙음'을 실감할 나이는 아니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책 제목이 <마흔에게>인데 '노화', '늙음'에 대해 이야기 한다고? 살짝 거부감이 들었다.
나는 아직 늙지 않았어. 늙지 않았다고!!!!!
그러나 책을 읽다가 보니 내가 오해했음을 알 수 있었다.
책은 '마흔=늙음을 준비하는 나이'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었다.
저자는 나이가 몇이든, 삶의 의미를 성공이나 생산성에만 초점을 맞추지 말 것을 주문한다.
p40
아들러가 말하는 진화는 위가 아니라 '앞'을 향해 나아가는 움직임을 가리킵니다. 즉, 누군가와 비교하여 '위냐, 아래냐'라는 기준으로 측정하는 게 아니라 현상을 바꾸기 위해 한 걸음 앞으로 내딛는 거죠.
아리스토텔레스는 인생을 한 줄의 직선으로 파악하고, 출발점에서 종착치로 나아가는 것으로 이해하는 움직임을 '키네시스'라고 하고, 어딘가에 도달하지 않더라도 그 과정의 한순간 한순간이 완전하며 완성된 것으로 여기는 움직임을 에네르게이아'라고 불렀다고 한다. 즉 인생에 대한 관점은 그 의미가 무엇인가를 성취하는 것에 있는가, 아니면 존재 자체에 있는 것으로 보는가로 갈린다는 것이다.
저자는 이 중 에네르기아로서의 삶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말한다. 마치 춤을 추듯이, 순간 순간을 즐기면서, 뒤로 미루지 말고 현재를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p88
"인간은 언제까지나 젊게 살 수 있을까?"
이 질문에 대해 프랑스의 철학자 장 기통은 그의 저서 <나의 철학 유언>에서 "자기 앞에 영원할 삶이 있다고 생각하는 한"이라고 대답했습니다.
이러한 자세는 자신 뿐 아니라, 자신의 부모를 바라보는 시선에도 적용된다. 늙어 더 이상 사회 생활을 활발히 하지 않는 부모나 병상에 누워있는 노부모를 간호할 때, 그들이 무엇을 하고 할 수 없음에 촛점을 맞추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저자는 부모가 늙었음에도 무엇을 잘 하게 되었다고 칭찬하거나 무엇을 할 수 없게 되었다고 안쓰럽게 여기지 말라고 말한다.
p127
칭찬이란 '내려다보는 시선'이며 자신의 이상을 부모에게 강요하는 행동입니다. 가엾게 여기는 마음도 실은 내려다보는 시선에서 오는 감상임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러나 이 책에서 무엇보다 나에게 의미있게 울림을 준 말들은 뒤쪽에 있었다. 나와 나의 아이들 사이의 관계에 적용할 수 있는 이야기였기 때문이다. 아직 부모님이 크게 불편하시지 않아서 그런지, 지금 현재 나의 관심은 노부모와 나의 관계 보다는 부모로서 나의 역할에 집중되어 있기 때문이다.
p159
부모의 행복과 불행은 아이에게 전염됩니다. 아이의 행복을 바란다면 부모가 먼저 행복해지지 않으면 안 됩니다. 인간이 불행한 듯이 행동하는 데는 목적이 있습니다 주변과 세간의 동정을 사기 위해서입니다. 하지만 그러한 행동은 아이를 적으로 돌리게 됩니다.
이 문장을 읽는 순간, 몹시 부끄러워졌다. 힘들다, 괴롭다 울며 불며 보낸 세월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얼마나 어리광쟁이인가, 나는....마흔다섯의 나는 진정 독립적인 성인인가....
아이가 행복하게 자라기를 바란다면, 나부터 행복해야 한다. 내가 행복한 것을 보고 자신들도 행복할 수 있다고 생각하도록. 부모의 행복에 자신의 존재가 크게 기여하고 있다는 것을 믿으면서 자존감을 키우도록. 기억하자. 잊지 말자.
저자는 인간은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서 행복을 얻을 수 있고, 자신이 가치가 있다고 느낄 때만이 다른 사람과 관계를 맺을 수 있다고 말한다. 즉, 내 아이가 다른 사람과 건강한 관계를 맺으며 행복하게 살아가게 하는 데는 아이가 스스로 가치 있다고 생각하도록 느끼도록 해야 한다. 내가 그 동안 비수가 되어 아이에게 꽂혔을 많은 말들을 생각하며 한없이 미안해졌다.
그럼 나는, 이미 늦었는가?
이미 모든 걸 망쳐버렸나?
절망에 빠지려고 하다가, 다음과 같은 글에서 작은 위로를 받았다.
p201
먼저 '지금'을 과거의 연장으로 생각하지 않아야 합니다. 여태까지 두 사람이 어떤 인생을 보냈는지는 앞으로 사이좋게 사는 것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지 않으며 문제도 되지도 않습니다. 지금까지는 지금까지고, 앞으로는 앞으로라는 겁니다.
위의 문장은 '부부관계'에 대한 조언이다. 그러나 부모자식간의 관계는? 내가 과거에 매달린다고 해서 달라질 것은? 그것도 과거는 과거가 아닌가. 인생은 어차피 불가역적이다. 그렇다면 역시, 백미러를 보지 말고, 지금 이 순간에 집중하는 수 밖에 없다.
9장 '나는 나부터 챙기기로 했다'는 내게 내 아이들과의 관계에서 내가 가져야 할 태도에 대한 실질적인 팁을 풍성하게 얻었다.
p217
인간관계의 문제는 타자의 과제에 함부로 침범하거나 침범해오는 데서 일어납니다. 자기 생각을 말해도 되는 순간과 말하지 않으면 안되는 순간도 있겠죠. 하지만 그럴 때도 "내 생각을 말해도 돼?"라고 묻지 않으면 안됩니다. 설령 자기 생각을 말한다 해도 상대가 받아들이느냐는 별개의 문제입니다.
p222~223
힘에 호소하는 방법은 즉효성이 있지만 유효성은 없습니다....압력을 가하면 가할 수록 상대는 반발합니다....인간관계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상대를 존중하고 다양성을 받아들이고 대화를 지속하는 방법뿐입니다.
p224
'내 이야기를 잘 들어준다'라고 느낄 때는 먼저 이야기를 도중에 끊지 않는 걸 알았을 때입니다....그다음은 판단하지 않는다는 걸 알았을 때입니다. 이야기를 털어놓은 사람은 의견과 비평을 구하는 것이 아닙니다....그들이 요구하는 것은 그 사람이 하는 말이나 심정을 있는 그대로 받아주는 것입니다.
p227
미움받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점 외에 또 하나 중요한 점이 있습니다. 그것은 영향력을 행사하려 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원래 인간은 다른 사람을 키울 수 없습니다. 할 수 있는 것은 자식과 손주가 자라는 것을 지원하는 것, 아이가 자라는 환경을 마련해주는 것뿐입니다.
이 모든 것들이 처음 듣는 말이냐고? 천만에! 그러나 이 책을 읽으면서 이 문장들을 마음 깊이 받아들이게 되었고, 내 삶을 되돌아보게 되었고, 잊었던 것들을 소환하여 다시 한 번 실천할 용기를 얻었다. 그만하면 된 것 아닐까?
다람쥐가 숲에 도토리를 숨기는 심정으로, 언젠가 그것이 싹을 틔워 커다란 상수리나무로 자라기를 기원하면서
마흔다섯의 오늘을 춤추듯 살아가고 싶다.
*이 후기는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읽고 작성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