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세균 없는 세계’를 만들기 위해 버려지는 타자들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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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나를 알기도 전에 나를 평가해버려.
(They judge me before they even know me.)
- 영화 <슈렉>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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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알기도 전에 나를 평가하고 판단하고 배제하는 사람들. 슈렉은 그런 사람들에게 지쳐버렸다. ‘판단’은 바로 차별과 배제의 전초전이다. 아기들은 악취에 코를 찌푸리지 않는다. 좋은 냄새와 나쁜 냄새를 분별하는 기준이 없기 때문일 것이다. 반면 어른들은 악취, 특히 부패로 인한 악취에 매우 민감하다. 부패한 생물에서 풍기는 악취, 그것은 바로 ‘죽음’의 냄새를 연상시키기에.
사람들은 슈렉에게 가까이 와서 그를 제대로 알아보기도 전에 ‘괴물은 냄새나고, 더럽고, 혐오스런 존재’라는 편견의 울타리 밖으로 슈렉을 밀어낸다. 슈렉뿐 아니라 동화 속의 생물들을 모두 추방한 파쿼드 왕국 또한 쓸데없는 공상으로 인생을 낭비해서는 안 된다는 판단의 잣대로 현실 속에서 ‘환상’의 색채를 띤 모든 것을 몰아내는 것이다. 이렇게 괴물의 입김도 환상의 바이러스도 없는 세계는 과연 안전할까. 이렇게 완벽하게 살균된 세계는 과연 행복할까.
안정된 정체성을 확립하기 위해 낯설고 이질적이고 위협적인 것을 주체의 경계 밖으로 밀어내려는 심리적 과정, 그것을 크리스테바는 ‘아브젝시옹’이라 불렀다. ‘아브젝트’가 배제된 대상들이라면 ‘아브젝시옹’은 배제하는 행위와 과정 자체를 말한다. 우리의 주체성이 처음부터 고정된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만들어지는 ‘과정’ 속에 있다면, 그 과정 속의 주체는 ‘나다운 것’의 기준을 세워 ‘자아’를 조립하고, ‘우리다운 것’의 경계를 그려 ‘사회’를 구성한다. 슈렉을 비롯한 각종 동화 속 생물들은 현실적이고 효율적인 공동체, 보다 중앙집권적이고 균질적인 사회를 만들어내기 위해 배제된 타자들이다.
파쿼드의 ‘동화 속 생물 추방 명령’을 수행하는 병사들은 도망가는 당나귀 동키를 잡으려다가 슈렉을 만나자 혼비백산하여 도망쳐 버린다. 슈렉의 늠름한 덩치 뒤에 숨어 체포 위기를 면한 동키는 얼떨결에 자신을 구해준 슈렉에 대한 반가움에 들떠 호들갑을 떤다.
동키 : 와우, 정말 대단해! 정말 멋져!
슈렉 : (어이없는 표정으로) 지금 나한테 이야기하는 거야?
동키 : (주변엔 슈렉 말고는 아무도 없다) 응, 그럼! 진짜 대단했어! 병사들이 날 막 쫓아왔었는데, 네가 나타나니까 길 잃은 아이들처럼 허겁지겁 도망가던걸. 어찌나 기분이 좋던지, 으하하.
슈렉 : (관심 없다는 표정으로 시니컬하게) 그거 참 잘 됐군.
동키 : 아, 이제 드디어 그들로부터 벗어났구나. 이 자유의 기쁨을 친구들과 함께 축하해야 하는데! (……) 하지만 난 친구가 없어. (계속 엄청난 속도로 혼잣말을 중얼거리다가 슈렉의 눈치를 슬금슬금 보며) 아차! 좋은 생각이 떠올랐어. 나랑 함께 지내면 어때? 넌 싸움을 잘 하잖아. 우리 둘이 함께하면 엄청날 거야.
슈렉 : (귀찮다는 듯이 아무 대꾸도 하지 않고 도망치듯 늪을 향해 발걸음을 옮긴다)
동키 : (슬프지만 우스꽝스러운 표정으로) 내 등에 타줄 사람이 아무도 없어. 난 친구가 필요해. (엉터리 노래를 부르며 계속 슈렉의 관심을 끌어보려 하지만 슈렉은 본척만척한다.)
슈렉 : (괴성을 질러대며 노래를 흥얼대는 동키의 목소리를 참다못해 소리를 버럭지른다) 노래 그만! 친구가 없을 만도 하네! 어이, 날 봐! 내가 뭐 같아?
동키 : 응? 키가 큰…… 사람?
슈렉 : 아냐! 난 괴물이야, 괴물이라고! 횃불하고 쇠고랑을 준비해야지! 날 피하지 않아? 정말 내가 아무렇지도 않아?
동키 : (천진난만한 표정으로) 그럼!
슈렉 : 정말?
동키 : 정말이야! 난 네가 완전 마음에 들어. 그런데 넌 이름이 뭐야?
슈렉 : 흠……, 슈렉.
동키 : 슈렉? 슈렉! 제일 마음에 드는 게 뭔지 알아? 딴 사람이 나를 어떻게 생각해도 좋다는 네 태도야. 정말 존경스러워!
한 번도 타인과 함께 지내본 적이 없는 슈렉은 당나귀 동키의 끈질긴 러브콜이 귀찮기만 하다. 자신을 무서워하지 않는 존재를 처음 만난 슈렉은 너무 놀라 물어본다. 정말 내가 무섭지 않느냐고. 슈렉은 자신을 그 어떤 편견도 없이 있는 그대로 바라봐주는 존재를 처음 만난 것이다. 당나귀 동키의 눈에 비친 슈렉은 그저 ‘키 큰 사람’이고 위험에 빠진 자신을 본의 아니게 구해준 생명의 은인이었던 것이다. 동키는 처음으로 괴물 오우거(ogre)에게 ‘이름’을 물어본다. 동키는 그의 이름을 가만히 되뇌며 그와 친구가 되고자 한다.
당나귀 동키를 차마 내치지 못하는 슈렉의 여린 마음속에는 사실 숨길 수 없는 외로움이 둥지를 틀고 있다. 가족도 친구도 연인도 없는 슈렉은 채식 위주의 웰빙 식단으로 꾸려진(파다하게 퍼진 괴소문처럼, 사람의 내장이나 눈동자를 후벼내어 만든 젤리 샌드위치가 아니라!) 소박한 식탁 위에서 혼자 식사를 하며 은근히 문밖에서 굶고 있는 동키를 걱정하기 시작한다. 그 순간 외부의 침입자가 나타난 듯한 기척에 놀란 슈렉은 집 밖으로 나오고 파쿼드의 ‘퇴거 명령’으로 추방된 각양각색의 동화 속 생물들을 만난다. 유럽의 동화 속 주인공들은 총출동한 것 같다.
슈렉은 어쩔 수 없이 자신의 오랜 은거지인 늪을 지키기 위해 파쿼드와 담판을 하러 떠난다. “요정 여러분, 너무 편하게 있진 마세요, 여기선 환영 못 받아요. 당장 파쿼드를 찾아가서 다시 여러분의 집을 되찾아주도록 하겠습니다. (동키를 가리키며) 너, 너는 나랑 같이 가는 거야!” 동키는 슈렉과의 여행(?)이 성사되자 뛸 듯이 기뻐하며 그를 따라나선다. 이제 버려진 존재 ‘아브젝트’의 인권과 주거권을 탈환하기 위한 모험의 스토리가 시작된다.
슈렉과 동키가 도착한 파쿼드 왕국은 어쩐지 생기도 활기도 없는 음산한 분위기를 풍긴다. ‘살균된 공동체’를 만들기 위해 동화 속에나 등장하는 각종 환상의 바이러스들을 모두 제거했는데, 이 세계는 조금도 안전하거나 행복해 보이지 않는다. 그들 앞에는 어떤 모험이 기다리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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