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슈렉>과 줄리아 크리스테바 ②

 

 

2. ‘바람직한 주체’가 되기 위해 버려야 할 것들 (2)

   
 

‘아브젝트(abject)’는 우리가 혐오하고, 거부하고, 거의 폭력적으로 배제하는 것을 의미한다. 예를 들어 시큼한 배설물, 심지어는 어머니의 과격한 포옹도 여기에 속한다. 
 

 -노엘 맥아피, 이부순 역, <경계에 선 크리스테바>, 앨피, 2007, 92쪽.

 
   

  


    “사람들은 날 보면 말해. 으악! 못생기고 냄새나는 괴물이다!” 슈렉은 한 번도 ‘이름’을 제대로 불려보지 못한 존재다. 이름 불린다는 것. 그것은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친밀성을 만들어가기 위한 첫번째 문턱이다. 이름 불리지 못하는 슈렉은 단지 ‘괴물’일 뿐이며 존재하지만 존재를 인정받지 못하는 타자다. 괴물 주의! 괴물 수배 중! 현상금 있음! 그가 사는 주변에는 이런 무시무시한 팻말이 흩어져 있다. 사람들은 현상금이 걸린 괴물을 잡으려고만 하고 아무도 그의 삶에 대해 궁금해하지 않는다. 여기는 파쿼드(Farquaad) 영주가 지배하는 화려한 도시의 바깥, 괴물 슈렉이 혼자 사는 늪지대다. 

   엄청난 길이의 ‘키 높이 부츠’를 신고 말을 타고 다니는 전형적인 마초형 남성 파쿼드 영주. ‘조금 짧은 다리’에 대한 심각한 콤플렉스와 타인을 향한 무한한 지배욕으로 똘똘 뭉친 파쿼드는 지금까지 함께 살아오던 동화 속의 주인공들을 모두 몰아내고 자기만의 왕국을 건설하려 한다. 아직 왕이 되지 못한 파쿼드는 아름다운 공주와 결혼하여 국왕의 자리에 오르고자 한다. 슈렉은 이런 골치 아픈 세상사와는 전혀 관계없이 혼자만의 칩거 생활을 즐기는 중이었다. 늪지대에 넘쳐나는 지저분한 진흙으로 샤워하고 동화책은 화장실 휴지로 써버리면서. 사람들은 슈렉을 잡아 현상금을 나눠 가지려다가 슈렉의 흉측한 모습에 놀라 혼비백산한다. 

    “그 괴물은 뼈를 갈아서 아침 식사로 먹는다고 하던데!”
   “그건 거인이에요. 괴물 오우거(ogre)는 더 잔혹하죠. 사람의 가죽을 벗겨서 수프를 만듭니다. 내장을 자르고 눈에서 젤리를 뽑아냅니다! 사실 눈에서 뽑아낸 젤리는 토스트에 발라 먹으면 맛있어요.”

    슈렉은 자신을 잡으러 몰려온 사람들을 ‘엄청난 입 냄새 폭탄’으로 순식간에 몰아내고 평화로운 은거 생활을 즐기려 한다. 그는 ‘괴물은 무섭다’는 막연한 뜬소문을 역으로 이용하는 중이다. 사람들은 슈렉에 대한 무지와 소문에 대한 실체 없는 공포 때문에 슈렉을 제대로 대면하기도 전에 도망쳐 버린다. 사람들이 모여 사는 곳이라면 어디서나 존재하는 각종 ‘괴담’의 주인공들은 대체로 사람들의 상상보다 훨씬 덜 무섭고, 덜 잔혹하며, 덜 해롭다. 진짜 공포는 ‘자기 안에 존재하는 역겨운 것들’을 몰아내려는 문명화된 인간의 관습이 아닐까. 

   ‘바람직한 주체’로 사회화되기 위해 현대인은 자기 안의 수많은 가능성을 버리고 ‘나다운 것’의 경계를 구축해야 한다. 보다 깨끗하고, 보다 적절한 자아를 확립하기 위해 야생적 본능을 버려야 한다. 부패한 우유, 똥, 구토물, 시체들을 보고 구역질을 참지 못하듯이 우리는 ‘한때 내 것이었으나 이제는 억압하거나 배설해버린 욕망들’을 자아의 경계 바깥으로 멀리 추방하고자 한다. 크리스테바는 이렇게 문명화한 현대인의 자아, 그 경계 바깥에 추방된 존재들을 ‘아브젝트’라 불렀다. 

   프로이트는 문명이 개발되기 위해서는 주체의 다채로운 욕망이 무의식 깊숙한 곳에 억압되어 숨어 있어야 한다고 믿었다. 즉 ‘억압된 것의 귀환’이 이루어지기 전까지, 적어도 인간의 ‘부끄러운 욕망’은 무의식 속에 숨어 좀처럼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것이다. 크리스테바의 ‘아브젝트’는 프로이트가 말한 ‘억압된 것’과는 다르다. 우리가 기피하지만 실상 매일 접하는 것, 즉 더러운 오물이나 끔찍한 죽음처럼, ‘아브젝트’는 항상 우리의 또렷한 의식 주변을 배회하며 서성인다. 우리의 정체성을 확립하기 위해 이미 버려졌지만, 그렇게 버려진 아브젝트는 ‘바람직한 주체’의 경계를 위협하며 ‘난 아직 살아 있음’을 증언한다.  

   파쿼드 영주가 ‘자기만의 왕국’을 건설하기 위해 추방한 동화 속의 주인공들은 세속적인 삶에서는 전혀 실용성이 없어 보이는 ‘동화 속의 생물들’이다. 동화 속의 환상 따윈 이제 필요 없어! 오직 노동하고 생산하고 발전하는 문명만이 있을 뿐. 파쿼드의 왕국은 이 모든 ‘동화적 환상’을 철저히 ‘아브젝트’로 버려둔 채 독재자 파쿼드의 시선으로 재단된 바람직한 문명의 경계를 구축하려 한다. 그들은 백설공주와 신데렐라는 물론, 빗자루를 타고 날아다니는 마녀, 피리 부는 아저씨, 피터팬, 피노키오, 일곱 난쟁이, 아기돼지 삼형제 등 수없이 많은 동화 속의 인물들과 동물들을 추방해버린다. 갈 곳이 없어진 이들은 슈렉의 늪(swamp)으로 잠입하여 거대한 난민촌을 형성한다. 평화롭고 안락한 슈렉의 은둔 생활에 최대 위기가 닥친 것이다. 

   
 

추방되는 것은 과격하게 쫓겨나지만, 결코 다 제거되지는 않는다. 그것은 유아의 경험 주변을 배회하며, 유아의 모호한 자아 경계를 끊임없이 위협한다. 어떤 것이 단지 억압되는 것이 아니라 추방된다는 것은 그것이 의식에서 전적으로 사라지지 않음을 의미한다. 그것은 그 사람의 깨끗하고 적절한 자아에 대한 무의식적인, 동시에 의식적인 위협으로 남는다. 아브젝트는 경계를 침범하는 것이다.  

- 노엘 맥아피, 이부순 역, <경계에 선 크리스테바>, 앨피, 2007, 9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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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meday 2009-12-30 11: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숏다리 영주 파쿼드 표정, 지금봐도 너무 웃김 ㅋ 손에 흙 안묻히고 공주를 차지하려는 그의 얕은 수와 잔꾀가 결국 슈렉과 피오나를 이어준다^^

둥이 2009-12-30 14: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내 자아는 점점 파쿼드 영주의 왕국이 되어가는건가
난 나의 아브젝트를 찾아 떠날꺼얌^^
하지만 너무 춥어!! 차막혀!!(역쉬 나의 파쿼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