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원령공주>와 가스통 바슐라르 ⑧

   


8. 아니무스의 눈물, 아니마의 미소 (2)

   
 

 멈출 수 없는 총알이 관통할 수 없는 벽에 가닿을 때, 우리는 종교적인 체험을 하게 된다. 정확히 바로 이 지점에서 성장이 일어난다. 융은 “상담자가 가장 두려워하는 것을 찾아라. 그의 다음 성장은 바로 그곳에서 일어난다”라고 말했다. 자아(ego)란 망치와 모루 사이에 있는 금속 같은 것이다. 


 - 로버트 존슨, 고혜경 역, <당신의 그림자가 울고 있다>, 에코의 서재, 2008, 117쪽.

 
   

   아시타카에게 ‘관통할 수 없는 벽’은 바로 인간도 들개도 아닌 원령공주였다. 그러나 아시타카도 원령공주의 강철 방어벽 못지않은 힘으로 돌진하는, ‘멈출 수 없는 총알’이었다. 아시타카는 그가 가장 두려워하는 것에 맞섬으로써 통과의례의 마지막 장벽을, 이제껏 그를 가로막고 있던 영혼의 문턱을 넘어서게 된다. 그가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부족의 멸망’이었고 ‘자신의 죽음’이었지만, 이제 아시타카는 원령공주가 맞닥뜨린 더 커다란 두려움을 목격함으로써 자신의 두려움조차 잊어버렸다. 이제 아시타카에게는 최후의 선택이 남았다. 

   높다란 절벽 위에서 장엄한 숲의 정경을 내려다보며 고뇌에 잠겨 있는 아시타카에게, 모로는 말한다. “고통스럽나? 거기서 뛰어내리면 간단히 끝날 게야. 몸이 회복되면 네 몸의 상처도 함께 날뛸 테니까.” 아시타카는 이미 자신의 ‘작은 상처’ 따윈 잊은 말투로 말한다. “아름다운 숲이군요.” 이제야 몽상의 여유가 생긴 아시타카는 이 숲이 잃어버리기엔 너무 아름답다는 것을, 전쟁터로 초토화해버리기엔 너무도 아름답다는 것을 깨닫는다. 목숨을 건 통과의례를 겪고 있는 아시타카는 자기 부족의 삶만 걱정해도 충분히 바쁜 삶을 살다가, 처음으로 타자의 삶, 다른 동물과 다른 숲과 다른 세계의 삶을 사유하게 된다. 
 


   자신의 몸에 총탄을 박은 에보시를, 숲을 초토화시킨 원흉인 에보시를 죽이기 위해 그녀를 기다리고 있다는 모로에게 아시타카는 애원하듯이 말한다. “모로, ‘산’(원령공주)을 놓아줘요. 그 애는 인간이잖아요.” 모로는 그제야 자신이 어떻게 인간 소녀를 키우게 되었는지를 이야기해준다. “그 애는 우리 일족의 딸이다. 숲이 살면 ‘산’도 살고 숲이 죽으면 ‘산’도 같이 죽는 거다. ‘산’은 숲을 침범한 인간들이 내 이빨을 피하려고 내던진 갓난애였어. ‘산’은 인간도 들개도 될 수 없는 가엾고 사랑스런 내 딸이다.”
   인간에게 버림받은 소녀를 들개의 딸로 키워낸 모로의 모정이 절절히 묻어난다. 원령공주에 대한 아시타카의 마음을 눈치 챈 모로는 시험하듯 아시타카에게 질문한다. “네가 ‘산’을 구원해줄 테냐?” 아시타카는 말한다. “그건 모르겠지만 그녀와 함께 살아갈 순 있어요.” 그러나 모로는 아시타카의 팔뚝에서 점점 번져가는 선연한 상처를 보고도 원령을 맡길 순 없다. “네가 할 수 있는 건 아무 것도 없어. 넌 곧 상처로 죽게 될 테니. 날이 밝으면 바로 여길 떠나거라.”

   자신이 곧 죽을 운명이라는 사실을 피할 수 없는 아시타카는 숲을 떠나려 하지만, 거대한 멧돼지 군대와 에보시 일족의 혈투가 벌어지기 시작했다는 사실을 알고 차마 발걸음을 떼지 못한다. 이제 ‘나의 목숨’을 위해서가 아니라, ‘부족의 영광과 번영’을 위해서가 아니라, 그녀가 지키려던 것을 지키기 위해, 그녀의 운명을 ‘함께’ 견뎌내기 위해 아시타카는 목숨을 건다. “네가 ‘산’을 구원해줄 테냐?”라는 모로의 질문은 아시타카의 새로운 미션으로 자리 잡는다. 자신에게 주어진 미션을 처리하러 떠난 여행에서 오히려 또 다른, 더 거대한 미션을 떠안게 된 아시타카. 



   한편 에보시의 군대는 지독한 냄새를 풍기는 연기를 피워 올려 멧돼지를 숲 밖으로 유인하여 함정에 빠뜨리려는 계책을 세운다. 모로는 멧돼지 부족의 최후를 예견한다. “옷코토누시는 다 알면서도 정면공격할 거야. 그게 멧돼지의 긍지라고. 마지막 한 마리까지 덤비고 쓰러지겠지.” 원령공주는 모로의 품에 안기며 눈물을 글썽인다. “엄마, 난 떠나야겠어. 옷코토누시의 눈이 되어줄래. 그는 연기 때문에 제대로 달릴 수도 없을 테니.”
   모로는 사랑하는 딸 ‘산’과의 마지막 만남이 될 것만 같은 슬픈 예감을 뒤로 하고 딸을 위로해준다. “난 괜찮다. 넌 저 젊은이와 함께 살 수 있는 길도 있을 텐데…….” 원령공주는 단호하게 고개를 젓는다. “인간은 싫어.” 이때 아시타카가 원령공주에게 보낸 목걸이가 다른 들개를 통해 전해지고, 그토록 아름다운 ‘액세서리’를 처음 본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찬사를 뿜어낸다. “아시타카가 내게 이걸? 정말 예쁘다!” 목걸이를 바라보며 감탄하는 원령공주의 표정에서 들개가 아닌 인간 소녀의 달뜬 표정이 스쳐간다.


   이제 전쟁은 피할 수 없는 현실이 된다. 인간들은 총포와 화약 뒤에서 자신의 몸을 안전하게 숨긴 채 멧돼지와 들개들의 목숨을 노리고 있고, 모로와 원령공주를 비롯한 들개들과 멧돼지 군대는 목숨을 걸고 총력전을 각오한 채 적진으로 달려간다. 에보시는 그녀의 재산과 땅을 노리는 사무라이들에게, 그리고 시시신의 목을 노리는 국왕에게 ‘이용’당하고 있는 것을 모르고 있다. 짐승보다 숲보다 더 큰 적은 인간이라는 것을, 그녀와 ‘비슷한’ 재화를 노리는 경쟁자들이라는 것을, 그녀는 아직 모른다. 그러나 안다 해도 결과는 달라지지 않았을 것이다. 그녀의 목표는 ‘자연의 자원화’이기에. 


   아시타카는 ‘숲의 군대’와 ‘인간의 군대’ 사이를 목숨을 걸고 오가면서 최대한 전투와 피해를 막아보려고 한다. 그러나 양측으로부터 돌아오는 반응은 냉담하다. “역시 짐승과 한패로군!” “역시 인간들과 한패였어!” “저 녀석 도대체 어느 편이야?” 그는 이편도 저편도 아닌 존재로서 ‘주어’나 ‘목적어’가 아니라 ‘전치사’와 ‘접속사’처럼 존재와 존재를 이어주고 관계를 맺게 해주는 존재다. 


   더 이상 ‘사이의 존재’에 머무를 수 없게 되어버린 아시타카는 원령공주와 들개를 도와 죽음을 불사하는 길을 택한다. 그것이 최선의 균형감각임을 스스로 깨달은 것이다. 양편은 대등한 관계로서 갈등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일방적인 공격과 숲의 예정된 파멸로 치닫고 있기에. 한편 멧돼지들은 인간이 쏜 화약과 총탄으로 줄줄이 ‘바베큐’가 되어버리고, 크게 다친 옷코토누시와 원령공주는 시시신의 도움을 청하기 위해 이동한다. 사냥꾼의 무리들은 시시신을 죽이기 위해 죽은 멧돼지 가죽을 덮어 쓰고 멧돼지 떼로 위장한 채 원령공주를 미행한다. 죽은 멧돼지의 가죽을 덮어 쓴 인간 사냥꾼들을 알아보지 못한 옷코토누시는 죽어버린 멧돼지들이 돌아온 줄로 착각하고 기뻐한다.
 


   “전사들! 돌아왔다! 황천 갔던 전사들이 돌아왔어! 나를 따르라! 시시신께 가자!” 분노에 치를 떨며 더 이상 제정신이 아닌 옷코토누시를 말리는 원령공주. “진정하세요! 죽은 게 살아날리 없어요. 멧돼지들의 가죽을 덮어쓰고 피를 바른 인간사냥꾼들이예요. 제발 멈춰요! 우릴 미끼로 시시신에게 접근하려는 거예요.” 함께 동행하던 들개는 원령공주를 말린다. “옷코토누시는 곧 죽어! 버리고 가자!” 원령공주는 고개를 젓는다. “안 돼! 내가 그를 버리면 그는 재앙신이 될 거야.” 그러나 그녀가 옷코토누시를 버리기도 전에 그는 이미 재앙신이 되어 그녀의 몸까지 함께 재앙신으로 만들어버리려고 한다. 자신의 멧돼지 부족을 잃고 절망에 빠진 옷코토누시는 본래의 용맹스런 영혼을 잃고 ‘나고신’처럼 끔찍한 재앙신으로 변모해버린 것이다. 이제 원령공주조차 죽음의 문턱에 다다랐다. 숲이 지켜야 할 소중한 아니마 그 자체인 원령공주, 그녀의 죽음은 곧 숲의 죽음일 것이다. 아니마와 아니무스의 균형이 완전히 깨져버린 이 숲에는 과연 어떤 파국의 스펙터클이 기다리고 있을까. 

 

   
 

현대의 모든 정신분석학 중에서, 칼 구스타프 융의 정신분석학은 가장 명확하게 인간의 심리상태는 그 원초적인 상태에서 쌍성(雙性)이라는 것을 입증해낸 바 있다. 융에 의하면, 무의식이란 억압된 의식이 아니며, 잊힌 추억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제1의 본성이다. 무의식은 그러므로 우리 속에서 남녀양성(男女兩性)의 힘을 유지한다. 남녀양성에 대해 말하는 자는, 이중의 안테나를 가지고, 자신의 무의식의 심층을 건드리고 있다.  


 - 바슐라르, 김현 역, <몽상의 시학>, 홍성사, 1986, 70~71쪽.

 
   
   
 

자연은 하나의 신전, 살아 있는 기둥들에서
 때때로 뭔지 모를 웅얼거리는 말소리가 새어나온다.
 인간이 상징의 숲을 가로지르며 자신의 길을 걷고 있을 때
 상징의 숲은 친근한 시선으로 그를 바라본다.
 

 - 보들레르, <조응>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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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손체조 2009-11-03 16: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자아란,,,,, 그럼 두들겨 맞아야'만' 성장하나요^^*

sotkfkd 2009-11-03 19: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잘 읽었습니다.

심슨 2009-11-04 01: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주어나 목적어가 아니라 전치사나 접속사 같은 존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