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뷰티풀 마인드>와 칼 구스타프 융(Carl Gustav Jung)④

 

4. 아곤 : 천재들은 ‘좋은 전쟁’ 속에서 태어난다 (1)

   
 

흔히 천재들은 외로운 거인으로 나타나지 않고, 특정 도시 특정 분야에서 무리지어 나타난다. 왜 그러한가에 대해 처음으로 이론을 제기한 사람은 로마 철학자 발레이우스이다. 그는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 피타고라스, 아르키메데스, 아이스킬로스, 유리피데스, 소포클레스, 아리스토파네스 등을 염두에 두었지만, 뉴턴과 로크, 프로이트, 융, 아들러 등 후대에도 그런 사례는 많다. 창조적 천재들은 젊은이들에게 경쟁심과 질투심을 불러일으키고, 자극을 받은 잠재적 천재들은 앞선 천재들의 아이디어를 수정하고 완성하려 든다고 발레이우스는 추측했다. 


 - 실비아 네이사, <뷰티풀 마인드>, 승산, 2002, 170쪽. 

 
   

   영화 <뷰티풀 마인드>는 존 내쉬의 파란만장한 일생을 좀더 드라마틱하게 재구성하기 위해 추리적인 기법을 쓴다. 그의 가장 친한 친구 찰스(폴 베타니), 그에게 비밀 임무를 맡기는 강력한 감시자이자 아버지 같은 존재 윌리엄 파처(에드 헤리스), 찰스의 귀여운 조카로 타인에게 애정을 품을 줄 모르는 내쉬가 유일하게 사랑을 쏟은 소녀 마시(비비안 카돈). 이 모두가 그의 정신분열 증상 속에서 만들어진 환상 속의 존재로 밝혀지는 극적 구성을 택한 것이다.


   아내를 제외하고 존 내쉬의 일상을 지배하는 중요한 인물들은 모두 ‘환상’ 속에서만 존재한다는 충격적인 설정은 <뷰티풀 마인드>의 핵심적인 서사 전략이다. 게다가 환상 속의 인물들이 펼치는 연기가 어찌나 리얼한지, 이미 이 환상속의 인물들에게 ‘정이 들어버린’ 관객들은 환상이라고 치부하기엔 너무도 절실한 그들의 목소리와 표정에 압도당하게 된다. 환상 속에서만 존재하기에 그들은 더욱 닿을 수 없는 애절한 욕망의 대상이 된다. 환상 속에서만 존재하기엔 그들은 너무 강력하고(파처), 더없이 다정하며(찰스), 지나치게 사랑스럽다(마시). 영화 속에서 존 내쉬가 가장 끊어내기 힘들었던 환상은 베스트 프렌드인 찰스의 환상이었다. 그가 어쩔 수 없이 자신의 환각을 인정하고 난 이후에도 그에게 필요한 것은 냉철한 의사보다는 그리운 친구였다. 그가 생각하기에 그의 천재성을 질투하지 않고 그의 안부를 진심으로 걱정해 준 친구는 찰스뿐이었다.

   영화 속에서 존 내쉬는 찰스를 제외하고는 거의 친구가 없는 것처럼 묘사되었지만 실제로 그의 아이디어 생산에 도움을 주었던 크고 작은 계기들을 만들어준 것은 그의 친구들이었다. 게일은 아무런 대가 없이 내쉬의 대리인 노릇을 하며 그의 이론이 훌륭하다고 거듭 칭찬해 주었고, 내쉬가 거의 짝사랑에 가깝게 좋아했던 로이드 셰이플리는 애정에 굶주려 있던 내쉬의 모든 스토커 행동과 짓궂은 장난질까지 받아주었다. 존 내쉬는 따돌림이나 거절을 천재의 대가로 생각하면서도 언제나 외로운 자신의 영혼을 쓰다듬어줄 친구를 필요로 했다. 영화에서 묘사된 것처럼 그가 모두의 철저한 따돌림을 받은 오갈 데 없는 외톨이만은 아니었다. 그가 내밀던 애정의 안테나와 친구들이 송신하는 우정의 주파수가 맞지 않았던 것뿐이다.

   친구라고 해서 꼭 생일축하 카드와 선물을 주고 어려운 시기에 도움을 줘야 하는 것은 아니다. 친구는 그렇게 반드시 ‘의식적으로’ 무언가를 주고받는 존재만은 아니며 단지 곁에 있다는 것만으로 더없는 영감을 선물하는 친구가 있다. 그가 의식하지 못하는 순간에 불현듯 타인에게 도움이 되는 친구. 그리하여 그 어떤 우정의 부채 관계도 성립되지 않는, 어쩌면 수십 년이 지나 다시 만났을 때 서로를 알아보지 못할 수도 있는, 그런 친구. 한 번도 얼굴을 맞대지 않았으나 매일 만나는 친구보다 오히려 더 가깝게 느껴지는 멋진 펜팔이 존재할 수 있는 것처럼 말이다. 중요한 것은 프린스턴이 내쉬에게는 더없이 훌륭한 ‘천재들의 요람’이었다는 것이다. 그것은 단지 아인슈타인이나 폰 노이만 같은 걸출한 스타 교수들이 활약하고 있었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끊임없이 서로의 발전을 독려해주고 새로운 아이디어가 나올 때까지 서로를 경쟁의 극한에 몰아넣는 토론이야말로, 매일 벌어지던 천재들의 무시무시한 끝장 토론이야말로, 화약 냄새가 나지 않는 향기로운 전쟁이었다. 

   
 

그리스 사회는 지나친 천재의 출현이 경쟁 자체를 방해한다는 것을 이해하고 ‘도편추방(ostracism)’이라고 하는 제도를 두었다. 그러나 우리는 도편추방을 사회의 조절 장치라고 이해해서는 안 된다. 도편추방은 자극의 수단이고 천재에 대한 보호의 수단이라는 것이 니체의 주장이다. 이것은 일인의 지배를 혐오하며 그것이 지닌 위험을 경계하는 제도이지만, 천재를 죽이는 제도가 아니라 오히려 천재를 보호하고 더 자극하기 위해서 제2의 천재를 만들어내는 수단이다. 다시 말해 이 제도의 핵심은 천재를 없애는 것이 아니라 천재를 여럿으로 만드는 것에 있다. (……) 그리스인들은 여러 진리가 공존하고 경쟁하기를 바랐다. 경쟁이 없는 진리는 의미도 없을 뿐 아니라 위험하기까지 하다.   


- 고병권, <니체, 천개의 눈, 천개의 길>, 소명, 2001, 147~148쪽. 

 
   

   이 ‘포연 없는 전쟁’의 핵심은 바로 ‘유일한 진리의 소유자’를 만들지 않기 위해 끊임없이 무시무시한 경쟁을 불러일으켜 다양한 진리들이 싸우도록 한 것이다. 적대를 목적으로 하지 않는 경쟁, 서로 더 나은 존재로 만들기 위한 경쟁, 보편적 진리가 아니라 여러 개의 진리가 아름답게 공존하도록 하기 위한 경쟁. 이것이 ‘아곤(agon)’이라고 부르는 그리스의 독특한 정치 문화였다. 그것은 서로를 내밀한 우상으로 섬기기에 절대적인 우상이 탄생할 수 없는 지적 환경이며, 어떤 우상도 탄생하자마자 파괴되므로 ‘우상의 중앙집권’이 불가능한 정치체제다. 

   내쉬의 프린스턴 재학시절 학과장이었던 솔로몬 레프셰츠는 수업도 학점도 다 쓸데없으며 오직 창조적 아이디어를 내는 것만이 학생의 임무임을 강조하는 ‘아곤의 지휘자’였다. 그가 요구하던 단 한 가지 요구사항은 바로 ‘차를 마시러 가는 것’이었다. 그의 요구에 따르면, 학생들은 매일 오후 반드시 차를 마시러 가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세계 최고의 수학자들을 어디서 만나겠는가. 그리고 당신들만 좋다면 ‘향기나는 거실’에 언제든 들러도 좋다. 거긴 고등학문연구소라는 곳인데, 아인슈타인이나 괴델이나 폰 노이만을 먼발치서라도 바라볼 수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학생들에게 어떤 강압적 요구도 하지 않고 오직 ‘차를 마시러 가라’는 요구만을 했던 학과장의 아이디어는 존 내쉬 같은 고독한 천재에게 둘도 없는 교육 방식이었던 셈이다. 저 하늘의 별을 지상에 내려놓고 관찰하는 행운. 저 별이 내 옆에 있다는 사실을 매일매일 확인하는 행위만으로도 우리 안의 뮤즈는 고양되지 않을까.
    존 내쉬보다 한 해 먼저 프린스턴에 들어온 유제니오 캘러비는 ‘독서의 해악’에 대해 이렇게 설명한다. 내쉬와 자신은 독서장애였다고. 내쉬는 간접적인 지식을 너무 많이 배우게 되면 자기 안의 창조성이 질식할 거라는 생각 때문에 ‘수동적이고 게으른’ 독서를 거부했다는 것이다. 내쉬의 지식 생산방식은 주로 교수와 동료 학생들에게 끊임없이 난처한 질문을 던지는 것이었다. 그는 두레방의 대화를 통해 ‘미해결 난제’가 무엇인지를 면밀히 기록해 두었고 내쉬의 최고의 아이디어들은 반쯤 배우다 만 것, 심지어는 잘못 배운 것에서 시작해서 그것들을 자기만의 방식으로 재구성하려 애쓰는 과정에서 나온 것이었다고 한다. 

   한편, 칼 융에게 있어 ‘아곤의 공동체’는 무엇이었을까. 그에게 친구이자 스승이자 아버지 같은 존재는 바로 프로이트였다. 프로이트와 아들러, 니체와 융. 이 네 명의 천재들은 서로에게 의식적, 무의식적 영향을 주고받았으며, 멀리서도 서로의 아이디어가 보내는 무언의 메시지를 해독하고 경쟁하며 독려하는 최고의 친구들이었다. 융은 ‘프로이트와 함께한다면 당신의 미래가 위태로울 것’이라는 일부 교수들의 경고장을 받고 이렇게 대답했다. “프로이트가 말하는 것이 진리라면 나는 그와 함께 할 것입니다.” 융이 발표한 논문이 동료들의 조롱을 받았을 때, 프로이트만은 그 논문의 가치를 알아보고 융을 초대하여 그들의 ‘첫 만남’이 이루어진다. 그들은 오후 1시에 만나 장장 열세 시간 동안이나 쉬지 않고 대화를 나누었다고 한다. 융은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친구를 서른두 살이 되어서야 만난 것이다. 융이 가장 동경하는 대상이면서 그가 가장 처절하게 극복해야 했던 존재, 그가 바로 프로이트였다. 

   
 


프로이트는 내가 만난 사람 중에서 진정으로 중요한 최초의 인물이었다. 그 당시의 내 경험으로는 그 어떤 사람도 프로이트에 견줄 수 없었다. 그의 태도에는 진부함이 전혀 없었다. 내가 보니 그는 무척 총명하고 예리하며 어느 면에서나 괄목할 만한 사람이었다. 그러면서도 그에 대한 나의 첫인상은 모호한, 알 수 없는 구석이 여전히 남아 있는 느낌이긴 했다.  


 - 칼 융, 조성기 역, <기억 꿈 사상>, 김영사, 2007,  27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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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손체조 2009-09-24 17: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저 하늘의 별을 지상에 내려놓고 관찰하는 행운'이 나에게도, 우리에게도 있겠지요?

dlatjsdud29 2009-09-24 18: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좋은 전쟁이어야 할 텐데요. 요즘, 토론들은 자기얘기만 하고 남을 깎아내리는 데 있으니... ㅎㅎ

sotkfkd 2009-09-24 22: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잘 읽었습니다.

트로이메라이 2009-09-25 07: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강호의 고수들 속에서 성장하는 천재들의 아름다운 경쟁이 손에 잡힐 듯 생생하게 느껴집니다. 우리에게도 그런 향기나는 전쟁의 행운이 깃들기를.

훈남 2009-09-26 09: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솔로몬 레프셰츠 맘에 드네요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