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쇼생크 탈출>과 프리드리히 니체(Friedrich W. Nietzsche) ⑩

 

10. 추억이 없는 곳, 그리하여 원한도 없는 곳으로

   
 

 우리 청각의 한계. ― 인간은 대답할 수 있는 질문만 듣는다. 

 
- 니체, 안성찬 · 홍사현 역, <즐거운 학문>, 책세상, 2005, 231쪽.

 
   

   노튼 소장은 전보다 더 악랄한 방법으로 앤디를 협박한다. 그는 앤디를 더욱 충실한 개로 만들기 위해 토미를 죽이고도 천연덕스럽게 뻔뻔한 거짓말을 읊어댄다. “토미 말이야. 출옥이 1년도 안 남은 놈이 탈옥하려고 하다니 어리석은 짓이었어. 하들리도 쏘며 괴로워했지. 그 문제는 끝났네. 이제 우리 일을 해야지.” 1달 동안의 독방 생활로 걷잡을 수 없이 초췌해진 앤디는 소장의 제안을 거부한다. “난 안 하겠습니다. 모든 게 끝났어요. 다른 사람을 시키세요.” 노튼은 더욱 잔인한 미소로 앤디를 옥죈다. “끝난 건 없어. 끝나면 넌 살아가기 힘들 거야. 간수 보호도 못 받아. 내가 그 감방에서 끌어내면, 넌 또다시 강간당할 거야. (…) 도서관도 마찬가지야. 벽돌로 차곡차곡 쌓아 폐쇄할 거야. 책들을 마당에서 태우면 수마일 밖에서도 연기가 보일 테지. (……) 한 달만 더 있으면서 생각해봐.” 노튼 소장은 앤디가 입고 있던, ‘자유’라는 이름의 투명코트를 완전히 벗겨 내 그를 서글픈 알몸으로 홀로 서 있게 할 작정이다. 앤디는 다시 텅 빈 독방에 갇힌다. 앤디가 고통 속에서 창조해낸 모든 것을 말소시키는 것, 그것이 가장 잔인한 형벌이었다. 

   힘겹게 독방에서 풀려나온 앤디 옆에는 언제나처럼 레드가 앉아 있다. 앤디는 전에 없이 우울한 표정으로 레드에게, 지금까지 한 번도 꺼내놓지 않았던 아내의 이야기를 시작한다. “아내는 저에게 말했죠. 난 이해하기 힘든 남자라고. 내가 좀처럼 속마음을 안 드러낸다고 항상 불평했지요. 그녀는 정말 아름다웠어요. 전 진심으로 아내를 사랑했어요. 다만, 그걸 표현할 줄을 몰랐지요. 내가 그녀를 죽게 했어요. 방아쇠를 당기진 않았지만 제가 죽게 만든 거예요.” 죄 없이 감방에 갇힌 19년 세월도 아내를 향한 그의 사랑을 지우진 못했다. 그는 아내의 죽음을 슬퍼할 겨를도 없이 아내의 살인범으로 몰려 무려 19년 동안 감옥에 갇힌 것이다. 그는 풀려나오지 못했지만 적어도 누가 그녀를 죽였는지 알게 되었으며, 이제야 비로소 그녀의 죽음을 슬퍼할 자유나마 얻게 되었다.
    “네가 살인자는 아니잖아. 나쁜 남편이긴 했지만.” 앤디는 어찌할 수 없는 과거의 옷자락을 붙들지는 못함을 안다. “레드. 당신은 석방될 것 같으세요?” “나? 흰 수염이 나고 세월이 흘러가면 그때야 나갈 수 있겠지.” 앤디는 한 번도 고백하지 않았던 자신의 꿈을 말한다. “제가 가고 싶은 곳은 지후아타네오예요.” 앤디의 몽환적이지만 더없이 진지한 표정에 레드는 당황한다. 독방에 두 달 동안 갇히는 초유의 형벌 앞에서, 앤디가 입던 무적의 투명코트도 효력을 잃은 것일까. “지후…… 뭐라고?” 

   “지후아타네오. 멕시코에 있어요. 태평양에 있는 조그만 섬이죠. 멕시코 사람은 태평양을 뭐라고 하는지 알아요? 추억이 없는 곳이라고 해요. 그곳에서 남은 생을 살고 싶어요. 추억이 없는, 따뜻한 곳. 바닷가에 조그만 호텔을 열고 낡은 배를 사서 수리한 다음 손님들을 태우고 낚시를 하는 거지요. 지후타네오. 그곳에선 당신 같은 사람이 필요할 거예요.” 레드는 쓴웃음을 짓는다. “난 거의 평생을 여기서 살았지. 사회에 나가면 쓸모없는 인간이야. 나도 이제 길들어졌어. 브룩스처럼.” 앤디는 꿈꾸는 듯한 표정을 거두고 레드를 바라본다. “자신을 비하하지 마요.” 하지만 레드는 이미 체념한 듯한 표정이다. “난 어떻게 시작해야 하는지도 몰라. 태평양? 엿이나 먹으라지! 난 큰 바다를 보면 빠져 죽을까 봐 겁부터 날 거야.” 앤디는 굳은 표정으로, 마치 벼랑 끝에 내몰린 사람처럼 말한다. “난 아니에요. 난 내 마누라도 정부도 쏘지 않았어요. 난 내 실수보다 더 많은 걸 보상받을 거예요. 호텔과 보트……. 그 정도는 무리한 요구가 아니라고 생각해요.” 레드는 전에 없이 결연한 의지를 표현하는 앤디의 정신 건강이 걱정된다. “자신을 학대하지 말게, 친구. 실현될 수 없는 꿈이야. 멕시코는 저 멀리 있다고.” 앤디는 마치 유언을 하듯이 비장한 표정으로 레드에게 말한다. “그래, 그렇지요. 멕시코는 저 멀리, 난 여기 있죠. 선택은 간단해요. 열심히 살던가, 빨리 죽던가.” 흠칫 놀라는 레드에게 앤디는 부탁한다.
     “만약 당신이 여기서 나가거든 부탁이 있어요. 벅스톤 근처에 풀밭이 있어요. 거대한 오크나무를 끼고 긴 돌담이 있는 곳. 프루스트의 시에 나오는 구절처럼요. 그곳에서 아내에게 청혼했어요. 우리는 함께 소풍을 가서 그 나무 아래에서 사랑을 나누었고 아내는 내 청혼을 받아줬죠……. 당신이 나가면 그곳을 찾아줘요. 담 아래를 보면 특이한 돌 하나를 볼 수 있을 거예요. 까만 흑요석이에요. 그 돌 아래 뭔가가 있을 거예요.” 앤디는 지금 스스로 미래를 만들고 있다. 흑요석 아래에 그가 담을 메시지는 아직 만들어지지도 않았다. 가장 친한 친구 레드와의 ‘약속’을 통해 그는 이미 자신의 미래를 ‘실천’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앤디의 진심을 알 리 없는 레드는 더럭 겁이 난다. 마지막 유서를 남기듯 절절한 그의 메시지는 레드의 걱정을 사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다른 죄수들도 앤디를 걱정하긴 마찬가지다. “듀프레인 말이야. 이상한 말을 하더라고. 밤에는 꼭 혼자 있잖아.” 헤이우드는 아차, 싶은 표정으로 털어놓는다. “맙소사. 듀프레인이 오늘 나한테 와서는 밧줄을 구해 달랬어.” 레드의 표정이 어두워진다. “밧줄?” “응. 2미터 길이로 말이야.” 아직 앤디의 계획을 모르는 관객의 머리에 떠오르는 이름은 브룩스다. 브룩스처럼, 절망에 빠진 앤디가 목숨을 놓을까 봐 손에 땀을 쥐게 하는, 관객을 살짝 속이기 위한 거짓 복선. 그날 밤, 아무리 걱정되어도 앤디의 방을 찾아갈 수 없는 처지인 레드는 인생에서 가장 긴 밤을 보낸다. 이해할 수 없는 말을 속삭이던 앤디의 표정과 브룩스의 유언이 담긴 마지막 편지와 헤이우드가 전해줬다는 밧줄이 머릿속에서 ‘공포의 시나리오’를 완성해가는 듯하여, 레드는 잠을 이루지 못한다. 

   다음날 쇼생크 감옥 초유의 실종 사건이 일어난다. 앤디가 흔적도 없이 사라진 것이다. 모두 혼비백산하여 어찌할 바를 모르지만, 가장 피가 마르는 것은 노튼 소장이다. 앤디와 가장 친했던 레드를 붙들고 늘어지는 소장. “늘 같이 있었잖나? 뭔가 말한 게 있을  텐데?” 레드는 아무 말도 듣지 못했다고 말한다. “기적이 일어났군. 귀신처럼 사라지다니! 흔적도 없이! 돌 몇 개와 여자 사진만 남겨놓고!” 소장은 길길이 날뛰다가 앤디의 방 여기저기로 돌을 집어던지고 그러다가 라켈 웰치의 멋진 포스터를 맞힌다. 그 순간 아름다운 리타 헤이워드 이후로 앤디의 방을 늘 지키고 있었던 여신의 육체가 숨겨준 비밀의 문이 드러난다. 

   레드의 내레이션은 드디어 앤디의 머릿속에 살고 있던 모차르트를, 앤디가 늘 입고 다니던 투명코트의 비밀을 통쾌하게 누설한다. “1966년 듀프레인은 쇼생크 감옥을 탈출했습니다. 진흙 묻은 죄수복이 발견되었죠. 비누 한 개랑 닳아서 해진 망치 하나도 발견되었죠. 굴을 파려면 600년이 걸릴 걸로 생각했던 그 망치 말입니다. 그에게는 20년도 안 걸렸죠. 그는 지질학을 좋아했습니다. (……) 오랜 시간에 걸쳐 압력과 지질을 연구한 거죠. 지질학은 시간과 압력의 상관관계를 연구합니다. 터널을 파는 것도 압력과 시간이었습니다. 아름다운 여인들의 포스터는 터널의 입구를 감추기 위한 것이었지요. (……) 듀프레인은 견딜 수 없는 악취가 풍기는 시궁창을 500미터나 기어갔습니다. 저라면 안 했을 겁니다. 500미터라니. 축구장 5개만 한 길이죠.” 

   “포스터의 비밀이 벗겨지던 바로 그 순간 한 신사가 주 은행에 유유히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서류상에만 존재하던 사람이었습니다. 랜달 스티븐스. 운전면허증, 주민등록증, 없는 게 없었습니다. 서명마저 똑같았죠. (……) 듀프레인은 그날 아침 은행을 12군데나 들렀습니다. 소장의 돈 37만 달러를 찾아갔습니다. 죄 없는 옥살이에 대한 정당한 보상이었죠.” 앤디는 은행 직원을 통해 소장의 부정부패를 낱낱이 기록한 보도 자료를 보내고 포틀랜드 신문에는 <쇼생크-타락과 살인의 온상>이라는 폭로 기사가 1면 톱을 장식한다. 우리의 친절한 앤디 씨는 소장에게 상큼한 작별의 편지를 보내는 것도 잊지 않았다. “소장 말이 옳았소. 이 책에 구원이 있었소.” 소장이 늘 ‘돈세탁’의 근거지로 사용하던 금고 속에는 소장의 성경과 앤디의 성경이 은밀하게 바꿔치기 되어 있었다. 물론 앤디의 소행이다. 소장이 한때 빼앗을 뻔했던 앤디의 성경 속에는 구원의 망치를 숨겨놓는 비밀의 장소가 마련되어 있었던 것이다. 새파랗게 질린 소장은 자기 앞에 놓인 선택지가 ‘체포 아니면 죽음’밖에 없음을 깨닫는다. 소장에게 성경이 ‘악행의 은밀한 알리바이’였다면 앤디에게 성경은 ‘엑소더스를 향한 무기’였던 것이다. 

    “노튼 소장, 체포 영장 가져왔소. 문 열어요!” 소장은 마지막까지 자신을 체포하러 온 경찰을 향해 총구를 겨누다가 결국 그 총신을 자신의 목에 겨눈다. 앤디는 자신만 탈옥한 것이 아니라 ‘노튼 소장 재임기’의 쇼생크의 통치 시스템 자체를 붕괴시킨 것이다. 죄수들은 앤디를 그리워하면서도 앤디의 목격담을 통쾌한 영웅 서사로 치장하는 데 인색하지 않다. 동료에게 맥주를 달라는 조건으로 자신의 금융 관련 지식을 기꺼이 내다 팔았던 앤디, 쇼생크 도서관을 짓고 죄수들의 교육 여건을 마련하기 위해 소장의 충견 노릇도 마다치 않았던 앤디……. 누구보다도 앤디를 그리워하는 것은 레드였다. 가족이나 연인 못지않게 서로를 아꼈던 두 사람은 어느새 떼어놓을 수 없는 영혼의 분신이 되어 있었다. 앤디는 멕시코 국경을 넘기 직전 레드에게 소인만 달랑 찍힌 빈 엽서를 보내고 레드는 앤디의 무언의 메시지를 이해한다. “그의 빈자리는 때로 저를 슬프게 했습니다. 새는 가둘 수 없다는 걸 떠올려야만 했죠. 새의 깃털은 눈부시게 아름답죠. 새들이 비상하는 기쁨을 뺏는 것은 죄악입니다. 그래도 저는 허전했습니다. 제 친구가 그리웠죠.” 30년 넘게 복역했던 레드는 드디어 가석방 심사를 통과하고, 브룩스가 잠시 머물다 죽었던 바로 그 방에서 자신의 미래를 고민한다.

   레드는 브룩스의 안타까운 죽음과 앤디의 믿을 수 없는 탈주 사이에서 고민한다. 마트에서 일하다가 “화장실 가도 될까요?”라고 묻는 레드에게 지배인은 말한다. “일일이 묻지 말고 가고 싶을 때 가시라고요.” 레드는 스스로에게 놀란다. “40년 동안은 허가를 받아야만 했습니다. 허가 없인 한 방울도 쌀 수 없었습니다. 현실은 냉혹했습니다. 밖에서 제가 할 수 있는 일이란 아무것도 없었죠. 일부러 죄를 지어 쇼생크로 돌아가는 것만이 유일한 일이었죠. (……) 내가 원하는 건 감옥으로 돌아가는 것이었습니다. 적어도 그곳에서는 두렵지는 않으니까요. 제 발목을 잡은 한 가지는 앤디와의 약속이었습니다.” 감시의 눈길을 피해 주거지를 이탈하여 앤디가 말했던 벅스톤으로 떠나는 레드. 프루스트의 시에 등장하는 것처럼 ‘가지 않은 길’을 현실에서 만난 듯한 아름다운 돌담길을 걸으며 레드가 만난 것은 바로 30년 감옥 생활 끝에 잃어버린 자기 자신, 잃어버린 꿈이 있는지조차 알지 못했던 자기 자신이었다. 앤디가 말했던 흑요석 밑에는 그가 정성 들여 쓴 편지와 ‘자유의 땅’으로 떠나기 위한 여비가 두둑이 들어 있었다. “내 친구에게. 이 편지를 읽을 때쯤이면 멀리 오셨을 테니 좀 더 멀리 오셔도 상관없겠죠? 그 도시 기억하시죠? 지후아타네오. 저와 함께 사업을 꾸려갈 친구가 필요하답니다. 보고 싶어요.”
    레드는 생애 두번째로 죄를 짓는다. 주거지 이탈. 앤디의 편지는 레드의 인생을 바꾸어 놓는다. 그가 돌아가야 할 곳은 감옥이 아니라 한 번도 마음껏 꿈꾸지 못했던 자기 안의 희망이었음을 레드는 깨닫는다. “너무 흥분돼서 앉아 있을 수도 생각할 수도 없었습니다. 자유를 가진 자만이 느낄 수 있는 흥분이었죠. 결과가 불확실한 긴 여로에 오른 것입니다. 부디 무사히 국경을 넘을 수 있기를 희망합니다. 내 친구를 만나 악수할 수 있기를 희망합니다. 꿈속에서처럼, 태평양이 파랗기를 희망합니다. 저는, 희망합니다.” 한 번도 태평양을 직접 보지 못한 레드의 눈빛은 저 아름다운 지후아타네오를 목격하자마자 앤디의 꿈을 한순간에 이해한다. 빛 한줄기 들지 않는 독방에서도 늘 지후아타네오를 생각했던 앤디의 꿈을, 누구도 질문하지 않았던 방식으로 고통스러운 질문을 계속했던 앤디의 꿈을. 앤디는 아무도 하지 않는 질문을 던졌기에 아무도 다다르지 못한 대답에 다다른 것이다. 

   
 

무엇이 인간을 영웅으로 만드는가? 최고의 고통과 최고의 희망을 향해 동시에 나아가는 것.
 너는 무엇을 믿는가? 모든 사물의 중량이 새롭게 규정되어야 한다는 것을.
 너의 양심은 무엇이라 말하는가? 너는 너 자신이 되어야 한다.
 너의 가장 커다란 위험은 어디에 있는가? 동정(同情)에.
 너는 다른 사람들에게서 무엇을 사랑하는가? 나의 희망을.
 너는 어떤 사람을 악하다고 말하는가? 항상 모욕하려 하는 사람을.
 네게 가장 인간적인 것은 무엇인가? 누군가의 부끄러움을 덜어주는 것.
 자유를 획득했다는 징표는 무엇인가? 더 이상 자기 자신에게 부끄러움을 느끼지 않는 것.  


 -니체, <즐거운 학문>, 250~251쪽. 

 
   

   30년 동안 감옥에 갇혀 살았던 한때 레드는 자기혐오에 빠졌고 자기의 능력을 과소평가 했다. 갇혀 있기 때문에 생긴 제약을 스스로의 무능력으로 오인한 것이다. 앤디는 가장 절망적인 인간들로부터도 자신의 희망을 읽어냈고, 최고의 희망으로 다가가기 위해 최고의 고통을 향해서도 주저 없이 성큼성큼 걸어갔다. 앤디는 모두가 포기해버린 질문, 생각하는 순간 너무 고통스러워져서 질문하기조차 싫어하는 질문을 매일 던졌다. 19년 동안. 그렇게 자신을 둘러싼 감옥의 철책을 스스로 무화시켰다. 그는 단지 제 한 몸 탈옥한 것이 아니라 쇼생크에 있는 사람들, 쇼생크처럼 스스로를 잿빛 감옥에 가둔 사람들에게 ‘감옥에서조차 자신의 주인이 되는 길’이 있음을 보여준다. 그는 강간과 폭력과 착취에 시달리면서도 결코 자기 자신을 평가절하하지 않았다. 낮에는 자신이 할 수 있는 최고의 연기력을 발휘하여 주어진 임무보다 항상 초과근무를 하며 쇼생크 감옥에 아름다운 도서관을 만들었고, 밤에는 마치 텅 빈 독방에 따스한 수프와 사랑하는 아내가 기다리는 것처럼 기쁜 마음으로 자기 방으로 들어갔다. 

   그가 만든 진정한 ‘자기만의 방’은 수많은 미녀 포스터 뒤에 동굴의 형태로 아로새겨진다. 그는 그렇게 자신만의 희망을 가꾸기 위한 제의를 20년 가까이 홀로 치르고 있었던 것이다. 이제는 닳아져 형체도 알아보기 힘든 그 작은 망치로, 쇼생크를 탈출하려면 600년은 족히 걸릴 것만 같았던 작은 망치만으로도. 영화관을 나오는 관객의 발걸음은 한없이 가벼우면서도 왠지 뒤통수가 가렵다. 앤디를 괴롭히던 감옥을 바라볼 때는 ‘내가 감옥에 있지 않아 다행이다’라고 여겼던 관객들은 이제 앤디가 떠나버린 지후타네오를 바라보며 ‘지금 여기 내가 서 있는 곳이 감옥이 아닌가’ 의심하게 된다. 그러나 이런 의심은 새로운 삶을 창조하기 위한 흔쾌한 의심이니 마음껏 던져도 좋다. 마음속에 앤디의 아름다운 탈주를 보듬은 사람들은, 우리를 아래로 아래로 끌어내리는 그 모든 중력의 악령과 싸우는 용기의 소중함을 잊지 않을 것이다. 저 세상의 구원이 아니라 이 세상의 탈주를 꿈꾸는 밝은 눈이, 죽음조차 죽여버리는 우리의 용기만이, 우리 안에 잠자는 저마다의 모차르트를 깨우고, 우리 안에 숨겨진 ‘자유’라는 이름의 투명코트를 권태로운 침묵의 옷장에서 끄집어낼 것이다. 

   
 

새로운 친구들에게 네 문을 활짝 열어두어라!
 낡은 것을 버리고, 기억도 버리고!
 너도 한때는 젊었지만, 이제-훨씬 더 젊다!
 (……) 내가 그리워했던 사람들,
 내 자신의 혈연이며 함께 변해간다고 잘못 생각한 사람들,
 그들도 늙어버리고 쫓겨났다 :
 오직 변하는 자만이, 나와 인연이 있다.
 (……) 이미 밤낮으로, 나는 친구들을 기다리네,
 새로운 친구들이여! 어서 오라! 때가 왔다! 때가 온 것이다!
 (……) 이제 우리는 축하하며, 하나로 뭉친 승리를 확신하고,
 축제 가운데 축제를 한다 :
 친구 짜라투스트라가 왔다, 손님들 가운데 손님이!
 이제 세계는 웃고 끔찍한 커튼은 찢기고,
 빛과 어둠을 위한 결혼식이 다가왔다……. 


 -니체, 김정현 역, <선악의 저편>, 책세상, 2002, 319~32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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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루베리 2009-09-20 16: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엑소더스' 페이지에 꽂혀 있는 저 책갈피와 망치 케이스로 쓰인 성경, 정말 멋졌지요~ 지후아타네오의 저 아름다운 풍경도 그리운.

sotkfkd 2009-09-21 00: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최고의 고통과 최고의 희망을 동시에 추구할 것!

슈슈 2009-12-15 13: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진짜 자유란 스스로의 감옥에서 벗어나고자 끊임없이 노력하는 게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