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쇼생크 탈출>과 프리드리히 니체(Friedrich W. Nietzsche) ⑨

 

9. 나를 죽이지 못하는 것은, 나를 강하게 만들 뿐이다

   
 

 예언자적 인간이 고뇌에 가득 찬 인간이라는 것을 그대들은 전혀 느끼지 못한다. 그저 그들에게 훌륭한 “재능”이 주어졌으며, 그대들도 이 재능을 가졌으면 하고 생각할 뿐이다.―그래서 나는 비유를 통해 내 생각을 표현하고자 한다. 동물들이 대기와 구름의 전기로 인해 얼마나 고통을 받겠는가! 동물 중의 몇몇 종들은 날씨를 예견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다. 일례로 원숭이가 그런 능력을 지니고 있다. (……) 그러나 우리는 그들이 겪는 고통이 그들을 예언자로 만든다는 것은 ― 생각하지 않는다! 강력한 양전기가, 다가오고 있지만 아직 눈에 보이지 않는 구름의 영향으로 인해 음전기로 변하여 날씨의 변화를 일으키려 할 때, 이 동물은 마치 적이 다가오고 있기나 한 것처럼, 방어 자세나 도주 자세를 취한다. 대부분은 어딘가로 숨어든다. 그들은 악천후를 날씨가 아니라 적의 손이라고 느끼는 것이다.
   

- 니체, 안성찬 · 홍사현 역, <즐거운 학문>, 책세상, 2005, 289쪽.

 
   

   레드가 쇼생크의 최고참이 되고 앤디가 쇼생크의 중견이 되는 동안, 쇼생크에는 끊임없이 신참 죄수들이 입성한다. 토미는 바로 그 신참 죄수 중 하나였다. 토미는 텔레비전을 훔치다가 들켜 무단침입죄로 2년 형을 선고받고 감옥에 들어온다. 타고난 친화력과 유머감각으로 토미는 순식간에 쇼생크의 마스코트가 된다. 도둑질조차 서툴렀던 토미는 좀도둑질을 하다 매번 붙잡혀 어린 시절부터 교도소를 제집 드나들듯 했다. 토미의 넉살 좋은 수다를 듣고 있던 앤디는 불쑥 충고를 한다. “새로운 직업을 가져보는 게 어때? 자네는 도둑질도 잘 못하니 다른 걸 해보라는 거야.” 


   토미는 아내와 갓 태어난 딸을 생각하며 앤디의 제안을 받아들인다. “고등학교 졸업 시험을 치르고 싶어요.” 죄수들의 학업을 도와주며 쇼생크의 멘토 역할을 하고 있던 앤디는 토미의 개인교습도 도맡기로 한다. 문맹이었던 토미를 위해 알파벳부터 차근차근 가르치는 앤디. 토미는 빠른 속도로 고교 과정을 습득하며 눈부신 성장을 거듭해 나간다. 자신에게 그런 재능이 있다는 것을 몰랐던 토미였기에 배움은 더욱 짜릿한 희열을 안겨준다.

   타인에게 쉽게 마음을 열지 않던 앤디는, 자신으로 인해 매일매일 변해가는 토미를 자식처럼 아낀다. 토미를 가르치는 것은 앤디가 기획하고 있었던 어떤 문화 사업 프로젝트보다도 보람 있는 일이었다. 배움에 대한 아무런 열망도 필요도 느끼지 못했던 토미가 공부에 재미를 붙인다는 것, 아무런 희망도 없어 보였던 인간이 희망을 품기 시작했다는 것, 누군가가 나 때문에 삶의 노선 전체를 바꾼다는 것. 그 모두가 앤디에게는 또 하나의 감미로운 모차르트였고, 또 다른 희망의 뮤즈였다. 레드는 토미를 향한 앤디의 열정을 이렇게 해석한다. “감옥의 하루는 매우 길죠. 그래서 집중할만한 게 있어야 합니다. 어떤 죄수들은 성냥 쌓기도 하죠. 듀프레인은 쇼생크 도서관을 만드는 데 성공했습니다. 이제는 새로운 목표가 필요했죠. 바로 토미였습니다. 수년간 갖가지 돌을 깎고 다듬은 이유도 같은 목적이었습니다. 같은 이유로 앤디는 여배우 사진을 모았던 것입니다.” 그러나 앤디가 토미를 자식처럼 가르치고, 조각가 못지않게 돌을 연마하고, 여배우 포스터를 수집한 것은 단지 감옥의 권태를 견디기 위한 것만은 아니었다. 

   1년 후 토미는 고등학교 졸업 시험을 보고 나서 스스로 시험을 망쳤다고 판단하며 절망한다. 그런 토미를 위로해주는 레드. 토미는 시험을 망친 것보다 앤디 실망시켰을까 봐, 그것이 더욱 걱정스럽다. “앤디가 실망했겠죠?” “그렇지 않아. 앤디는 자네를 늘 대견하게 생각한다네. 우린 오랜 친구라서 내가 잘 알지.” 앤디가 사회에 있을 때는 최고의 은행가였다는 것을 알려주는 레드. 토미는 앤디가 아내를 살인한 죄로 감옥에 들어왔다는 것을 믿지 못한다. “그래, 앤디는 살인을 할 사람은 아니지. 침상에 있던 아내와 정부를 총으로 쐈다고 하더군.” 토미는 이 말을 듣는 순간 전기에 감전된 듯한 가 충격을 받는다. 앤디를 불러 자신이 아는 충격적인 사실을 고백하는 토미. 

    “4년 전 토마스톤 감옥에 있을 때였어요. 전 자동차를 훔쳤어요. 바보 같은 짓이었죠. 6개월 정도 지났을 때 새 식구가 들어왔어요. 엘모 블래치였죠. 미치광이 같았어요. 아무도 그런 작자랑 방을 같이 쓰고 싶지 않아 했어요. 그는 6년 형을 선고받았죠. 도둑질만 수백 번도 넘게 했다고 자랑을 하더군요. (……) 어느 날 밤에 제가 그에게 물었죠. 살인을 해본 적이 있느냐고.” 토미의 머릿속에 강렬하게 각인된, 살인자 엘모 블래치의 끔찍한 고백이 시작된다.  “딱 한 번 저질렀지. 컨추리 클럽에서 돈 많아 보이는 대상을 물색했어. 한 남자를 골랐지. 밤에 몰래 그 집에 들어가서는 한탕 했다고. 그놈은 잠이 깼는지 나한테 대들더라고. 그래서 그냥 죽여버렸지. 옆에 있던 여자도 같이 말이야. 이 대목이 중요해. 그 여자는 골프선수와 자고 있었어, 결혼한 여자였는데 말이야. 그 여자의 남편은 성공한 은행가였지. 남편이 내 대신 죄를 뒤집어썼어.”
    엘모 블래치의 잔인한 미소와 앤디의 당혹스런 표정이 오버랩된다. 앤디의 지난 19년 감옥생활, 그 모든 것이 끔찍한 누명 때문이었다는 것이 밝혀지는 순간이다. 19년. 갓난아기가 태어나 어엿한 성년으로 자랄 만한 시간, 감옥에 갇힌 한 인간의 존엄이 완전히 망가지기에 충분한 시간, 그리고 앤디에게는 ‘리타 헤이워드’ 포스터가 마릴린 먼로를 비롯한 수많은 여인을 거쳐 ‘라켈 웰치’로 바뀌기에 충분한 시간이었다. ‘리타 헤이워드’는 반란의 시작을, ‘라켈 웰치’는 반란의 끝을 장식하는 앤디만의 암호였다. 

   앤디는 비로소 자신이 감옥에 갇힌 이유를 깨닫고 노튼 소장의 마지막 양심에 호소한다. 토미의 증언이 있으면 자신이 다시 재판을 받을 수 있다고. 이미 앤디를 자신의 ‘충직한 개’로 만드는 데 성공했다고 믿었던 노튼 소장은 앤디의 석방이 곧 자신의 종말이라고 생각한다. “그 살인자는 지금 어디 있다고 하던가? 그자가 무릎을 꿇으며 잘못했으니 벌을 대신 받겠다고 할 줄 아나?” 그는 앤디를 설득하려 하지만 앤디는 필사적일 수밖에 없다. “토미의 증언이면 다시 재판 받을 수 있어요.” 노튼 역시 필사적이다. 앤디가 쇼생크를 떠나는 순간 자신의 호시절이 끝날 것이라는 예감에 몸을 떤다. 19년 무고한 감옥 생활 동안 한 번도 분노하지 않았던 앤디는 드디어 폭발한다. “제 인생이 달렸다고요. 정말 모르겠어요?” 감옥 밖으로 나가도 ‘돈세탁’에 관련된 일은 발설하지 않겠다는 앤디의 말에 노튼은 결정타를 맞는다. 앤디를 노예처럼 부려먹었던 노튼은 자기 인생을 정작 좌지우지하는 것은 앤디였음을 깨달은 것이다. 앤디가 없다면 그의 모든 부귀영화는 물거품이 될 것 같은 두려움. 앤디는 ‘한 달간 독방 감금’이라는 쇼생크 감옥 역사상 최고의 형벌을 받고, 앤디가 그토록 아꼈던 토미는 앤디를 석방하지 않으려는 노튼의 흉계로 목숨을 잃고 만다. 토미가 드디어 고등학교 졸업시험에 합격했다는 통지서를, 생애 최고의 감격스러운 순간을 만끽한 직후였다.

   앤디는 1달 동안의 독방 생활 동안, 그의 마음속에 마지막으로 남아있었던 망상들을 죽인다. 노튼 소장은 자신의 은혜를 입었으므로 자신을 도와줄 것이라는 환상, 법의 힘이 자신을 구원해 주리라는 환상, 타인의 도움으로 자신을 구원할 수 있으리라는 환상을 죽인다. 그리하여 그는 새로 태어난다. 그에게 토미의 등장은 하늘에서 내려온 동아줄 같았지만, 그 동아줄은 향기로운 만큼 더없이 위험한 미끼였다. 토미가 등장하기 전까지 그는 얼음으로 둘러싸인 고산에서도 혼자 살아갈 수 있음을 스스로의 삶으로 증명했다. 누군가 자신을 구원해주리라는 실낱같은 환상을 일깨운 토미는 그에게 아름다운 유혹이었던 셈이다. 그는 토미의 죽음을 통해 자신 안에 있었던 마지막 망상을 죽인다. 토미의 죽음은 더 없는 슬픔이었지만, 앤디 안의 또 다른 앤디의 죽음은 기쁜 죽음이었다. 쇼생크의 누구도 생각해내지 못한 한 인간의 반란이 비로소 탄생하는 순간이기 때문이다. 그가 싸운 그 모든 적들보다도 가장 무서운 적, 자기 자신과 싸워 이기는 순간, 초인의 새벽은 밝아온다. 니체의 말처럼, 나를 죽이지 못하는 것은 나를 더 강하게 만들 뿐이므로. 

  

   
 

모두에게 그렇듯 니체에게도 죽음이라는 단어는 씁쓸하고 허무한 느낌을 주었다. 그러나 그는 삶의 모든 거친 질료들을 씹어서 자기 신체의 구성 요소가 될 때까지 향유할 줄 아는 건강한 사유자였다. 그는 죽음에서 슬픔이 아닌 기쁨의 요소를 발견한다. (……) 그는 죽음에서 소멸이나 슬픔과는 거리가 먼 신비를 발견한다. 기쁘고 명랑한 죽음이 있으며, 이 죽음을 다른 말로는 생성이라고 부른다. 후일 그는 이런 생성의 기쁨을 찾아가는 사유를 능동적 니힐리즘이라고 표현했다.  


 - 진은영, <니체, 영원회귀와 차이의 철학>, 그린비, 2007, 2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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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손체조 2009-09-17 13: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앤디처럼, 노튼소장같은 내 상사에게 한 방 날릴 무기를 만들어야 할 터인데....

wow! 2009-09-17 14: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맨손체조님! 그럴려면 튼튼해야 해요! 잘못하다간 나만 다치거든요 ㅠㅠ 맨손체조 하루 1시간씩! 영차영차~~^^

sotkfkd 2009-09-21 00: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죽음 = 생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