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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남자 - 제138회 나오키 상 수상작
사쿠라바 가즈키 지음, 김난주 옮김 / 재인 / 2008년 12월
평점 :
"부모 자식이란 말이지. 언젠가는 헤어질 수밖에 없는 거야."
"왜? 동물도 아닌데. 왜 그래야 돼?"
"아니지. 동물이야, 나와 너는."
('내 남자' p. 44)
주로 일본 소설을 즐겨 읽는 나는 꽤 다양한 작가들의 작품을 탐독해왔다.
재밌는 건, 각 작가마다 저마다의 특징들이 있고, 필력의 수준도 제각각이라는 것. 그리고 사람들의 리뷰나 찬사가 전부가 아니라는 것도 깨달았다.
특히 현대 소설 작가는 신중을 기해 골라야 한다. 모리 오가이나, 오에 겐자부로 등 검증된 작가들의 소설은 나름 읽는 가치가 있는데 요즘 우후죽순 발간되는 젊은 소설들은 지뢰가 많다.
대부분 뻔한 이야기, 뻔한 문체, 뻔한 1인칭 시점, 불륜은 기본이요, 사랑 얘기, 연애 얘기, 섹스.... 에휴, 그 안에서 참신하면 좋은데 다들 저차원적인 부분에만 머물러 있어서 마음에 울림도 주지 못한다. 특히 일본의 여자 작가들의 작품은 한계성을 띠고 있는 경우도 많이 접했다. (아마도 사랑 이야기를 주로 다루어서 그런 것 같다.)
또 어떤 식으로 분리되는가 하면,
간결한 문체에도 깊이와 힘이 있고, 세련되고 지적인 멋이 있는 부류 (원래 탁월한 재능이 있는 부류)
중2병적인 환상에 가득차 온갖 허무와 허세만 늘어놓으면서 있어 보이는 '척'하려고 무진 애를 쓰는 부류 (탁월한 재능이 있는 척 안간힘을 쓰는 게 느껴지는 부류).
아무튼 이런 식이다.
<이하 스포주의>
사쿠라바 가즈키의 '내남자'
생각보다 책의 두께가 너무 두꺼워서 놀랐다. 그리고, 이 책의 두께만큼, 각 문장들이나 단어가 그정도의 무게를 담고 있는지 의문도 들었다. 한마디로, 군더더기가 너무 많다. 뭘 그렇게 주절주절 설명하고 싶었는지. 그것은 파격적인 소재를 선택한 작가가 이런 저런 것들을 갖다 붙여 당위성을 부여하려는 억지였던가.
작가 자신이 원래 장르 소설을 쓰던 사람이라 그런지, 이 작품 안에서는 순문학적인 요소를 많이 띄고 싶어 노력한 흔적이 느껴진다. 그래서 환경이나 상황에 대해 과도하게, 필요 이상으로 묘사되어 있다.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될 감정들까지 나열해 놓았다. 거기에 장르소설에서 볼 법한 외모나 인물, 분위기에 대한 감성도 얹어 있다.
<"열네 살이오."
통통한 볼이 막 짜낸 우유의 표면처럼 뽀얗고, 살결도 어린애 특유의 매끄러움을 아직 잃지 않았다. 긴 속눈썹에 조그만 눈송이가 내려앉았다... 옆얼굴이 너무 여려서, 걸음을 내딛자마자 아까처럼 또 미끄러질 것만 같아 불안했다. (p. 295)>
고마츠라는 여자가 본 여자주인공 하나의 외모 묘사다. 그 밖에도 하나는 '키잡물'이나 소아성애자들이 좋아할 만한 외모를 갖추고 있다. 가녀리고, 어리면서도, 섹시하고, 어른스럽고, 눈빛은 생기없이 탁하고, 남자가 하는 모든 행동에 따라주며 수동적이기까지 하다. 남자들을 위한 av에서 딱 나올 만한 여자 주인공 같은 분위기다. 거기에 교복, 땋은 머리 등의 모에 요소까지 첨가. 굳이 이런 것들은 왜 끼워 넣었는지 의뭉스러웠다.
사실 하나라는 아이의 캐릭터가 애매하다. 애 자체가 음울하고 신비한 분위기를 갖고 있는데, 태생부터 사이코가 아니라면 그렇게 될 만한 이유가 없다. 지진을 겪기 전까지는 어떤 충격이나 학대를 받은 것도 아니다. 물론 가족 속에서 안 보이는 소외감에 외로움을 느끼고는 있었지만, 위에 상냥한 오빠도 있고, 동생도 있고, 아빠 엄마도 표면적으로 크게 문제될 것이 없는 나름 평범한 4학년 아이였다.
그런 애가, 준고를 만난 후도 아닌 준고를 만나면서부터 (갑자기) 아이답지 않게 섹시하게 변모한다. 준고의 제복 입은 모습을 체킷 아웃하시고, 밥도 드시지 않고 물만 꼴깍꼴깍, 머리가 가슴께에 흩날리도록 격정적으로 들이켜 주신다. (p. 369)
준고의 잘생긴 매력에 끌려 버려 지금것 돌봐준 가족들에 대한 정을 (아버지가 자신을 트럭에 던져놓고 갔다고는 하지만... 그것도 주변 사람들 이야기를 듣고 끼워 맞춘거지 자신에게 호의적인 아버지에게 그런 살벌한 마음을 품을 필요는 없다고 본다.) 깡그리 잊어버린 채 슬퍼하지도 않는다. 그게 인간인가. 그런데도 갑자기 만난 젋은 남자 (그 나이때는 오히려 더 경계할 수밖에 없는데)의 품에 덥썩 안겨 그가 가는 대로, 하는 대로 무조건적으로 긍정하고 따른다. 게다가 어린 애가 이십 대 후반 남자의 알몸도 보고, 욕조에서 씻자고 하는 등 이해 못할 말들을 하니, 이미 아이의 속은 그다지 청결하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준고도 나쁜 자식이다. 제 딸이면서 스토커처럼 사진만 찍어대고, 외면햇으면서. 게다가 다시 재회하고서는 아버지로서의 올바른 역할을 하지 못하고 기다렸다는 듯이 아이를 유린했다. 로설에서 말하는 소위 '키잡물'처럼 말이다. 키워 잡아 먹기. 아이가 제 손에 들어와 인형처럼 갖고 놀 수 있을 그 날만을 기다려온 나쁜 새끼이다.
하나도 그 악질적인 DNA를 고대로 물려 받았다.
자신에게 온정을 베푸는 오시오 할아범을 쳐죽이고. 준고의 애인이었던 고마츠까지 불행하게 한 주제에 그녀를 때리고, 평범하고 건실한 요시노라는 남자에게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시집가고, 준고와 그렇게 몸을 섞었으면서, 뼈가 되어 사랑한다고 해놓고, 헤어지는 게 답이라며 결혼 선택... 이것이 첫 챕터였다. 그리고 챕터를 눅진한 '비'의 느낌과 냄새로 채우고 있는데 그건 그냥 분위기 띄우려고 작가가 설정해 놓은 허세 중 허세란 생각밖에 안 들었다. 애틋한 비는 커녕, 둘 관계가 진흙탕처럼 너무 더럽고 질퍽하다는 느낌만 들었다.
게다가 첫 챕터에서 묘사된 하나가 무슨 성녀라도 되는 것처럼 나와서 굉장히 불쾌했다. 그리고 그런 여자애는 꼭 수수하고, 반듯한 이미지라고 묘사해야만 하는가. 그러면서 그 집에 놀러간 요시노는 아버지란 작자의 무릎을 베고 누워 있는 그 수수하고 반듯한 여자의 이상한 행동에도 별 의문을 품지 않으니 이건 뭔가. 벽장에 시신도 발견했으면서 결혼까지 가다니. 또라이 아닌가.
중간에 어린 시절 친구이자 오시오 영감의 맏손자인 반듯하고 잘생긴 아키라라는 소년도 하나를 좋아하는데, 소위 '로설'에서 자주 등장하는 어릴 적 떡밥 같은 관계로, 만약 이게 로설이었다면 어른이 됐을 때 둘이 재회에 준고와 신경전을 벌일 것 같다는... 지극히 로설스러운 스토리 라인 예상도 그리 어렵지 않다.
나오키 상을 탔다고 해서 기대를 했는데, 나오키 상은 대중 소설에 주는 상이라는 말을 얼핏 들은 적 있다. 상을 탔다는 게 신기하고, 파격적인 소재를 대충 그럴싸하게 쓰면 주는 상인가 싶을 만큼 상의 정통성도 의심이 되었다. 이 작품으로는 '아쿠타가와'상은 절대 못 탔을 것이리라. (아쿠타가와 수상작 중에 하나무라 만게츠의 '게르마늄 라디오'라는 작품이 있는데 그것도 좀 논란이 일 만한 소재를 다루고 있다. 그래도 그 소설에는 나름 무언가가 있었다.)
'혈연'만이 구원이라고 생각해, 친딸 하나를 '피'로 이어진 완전한 관계로써 거기에 비정상적으로 집착하는 정신이상자 준고와, 어린 나이에 아무것도 모르고 그대로 길들여져버린, 일찍 성에 눈떠 폭주하는 욕망을 제일 가까운 잘생긴 양아빠에게 풀어버린 무뇌아 하나의 '근친상간' 사랑은 결코 아름답거나 낭만적일 수 없다. 절절하다는 느낌도 들지 않고, 그냥 이 두 사람, 격리시키고 치료받아 제대로 각자 다른 사람들을 만나 사랑하는 게 더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가장 싫어하는 소설이, 작가가 객관성을 잃고 등장인물에 몰입해 자신의 환타지를 펼치는 건데, 작가는 자신을 종종 하나로 투영해 준고 같은 남자와의 사랑을 꿈꾸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키카 크고, 호리호리하며, 담배를 피우고, 혀로 핥아주며, 귀엽다는 듯 머리를 쓰다듬어 주는 멋진 청년의 광기어린 집착의 사랑을 한 몸에 받는 예쁘고 섹시한 어린 여자아이. 그런 것처럼.
죄의식 없는 인간은 짐승이다.
두 사람은 자신들의 관계에 대한 죄의식도 없었고, 둘을 방해하는 거라면 사람도 죽일 정도로, 그것에 대한 반성도 전혀 없는 인물이었다. 그런데도 어떤 심판없이 하나는 잘난 남자 만나 결혼하고, 준고는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실컷 친딸 빨아먹을 대로 다 빨아먹고 잠적하는 참으로 아름다운(?) 열린 결말로 마무리 지어져 있다.
"딸은 아버지의 부정한 신이다." (p. 257) 하나
"피의 인형이야, 피의 인형......." (p. 438) 준고
사실 읽으면서 조잡한 문장들이 많아서 피로했고, 허세가 가득한 문장들이라 정독하진 않았다. 긴 시간을 들여 공들여 평을 할 만큼 가치 있는 소설은 아니었기 때문에 여기까지만 쓰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