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제일 사랑하는 우리
미사 지음, 최정숙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19년 9월
평점 :
절판


내게 대만의 청춘물은, 그 유명한 주걸륜, 계륜미의 말할 수 없는 비밀과 조미, 조우정 등이 나오는 러브라는 영화가 전부였다.

 

대만은 섬이라는 지형적 특정이 일본과 비슷하면서도, 많은 부분에서 일본처럼 아기자기한 아이디어들이 넘치는 나라라고 생각한다.

 

대만식 밀크티나 샌드위치만 봐도 그렇다. 좋은 것들을 금방 흡수하고 재주있게 만들어내는 그들은 참 영리한 것 같다.

 

하여튼 중국이나 홍콩의 영화, 소설들은 정통성을 가지고 흥미있게 보곤 했는데, 사실 대만의 로맨스 소설은 처음인데다 대만 하이틴물도 보지 않은 내게 이 책은 처음이었다.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나는 대만의 작품이 정통성보다는, 한국과 일본을 편의적으로 버무린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아와서 그런 건지도 모르겠다. 주관적인 생각이다^^;)

 

한마디로 총평하면, 독자가 중- 고등학교 학생들이거나, 대만식 풋풋한 학원물을 좋아한다거나 중문 문학에 관심이 있으시다면 재밌게 읽으실 수 있다! 가독성 좋고, 책장이 금방 넘어간다. 다만, 로맨스 소설로 평가하자면 쫀득쫀득 설렘이 좀 덜하다.

 

작가가 인기 로맨스 소설 작가라는데, 우리나라의 웹소설 매커니즘과는 달리 문학적이고 작가주의 느낌이 나는 데도 인기를 끌고 출간할 수 있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작가의 이름은 미사다.

 

처음엔 한국 로설 작가의 필명이나 일본 작가인 줄 알았는데, 정통 대만 사람이다.

 

소설 내용은 한 편의 영화로 만들 수 있을 정도로 (그걸 염두해두고 쓴 듯했다.) 얼개가 잘 짜여있고 큰 무리수는 없다. 캐릭터와 스토리 라인은 사실 전형적인 느낌이어서, 일본 애니메이션(ex. 꽃보다 남자)처럼 예측 가능한 게 아쉬웠다. 사립 학교 배경도 그러했고.

 

이 소설의 난관은 바로 이름이다.

 

원래 장국영을 장궈룽, 양조위를 양쟈오웨이, 진곤을 첸쿤, 조우정을 자오유팅이라고 발음하는 걸 꺼려(;;)했던 사람으로써, 대만 쪽이 유난히 외국어표기법대로 해야 하는 건지, 아무튼 이름이 이렇다 보니 몰입하기가 힘들었다.

 

본국에서는 아주 예쁜 이름일 텐데 우리에게 익숙하지 않은 발음으로 쓰여서인지 그 매력이 좀 반감되는 것도 같다. 차라리 원래 한자 이름의 음을 같이 적어주었다면 좋았을지도 모르겠다. 아직도 얘네 한자 이름과 작품의 원문 제목이 뭔지 참 궁금하다.

 

등장하는 이름들 좀 보자. 주인공 쌍둥이 모디와 모나는 쉽다. (모디라고 하니 인도인이 떠오르는 건) 나오는 남자 주인공 이름이 지웨이칭, 담임 선생 란관웨이, 어릴 적 첫사랑 리춘안 (리춘안이) 그 외 기타 인물, 톈무펑, 딩옌린, 화유웨이, 저우잉웨이, 커위천, 비위안스.... . 아무튼 중요한 인물은 지웨이칭이다!

 

이 책은 1인칭 시점으로 쌍둥이인 모디와 모나의 이야기가 교차 서술된다.

 

모디는 소심하고 수줍은 타입, 모나는 쾌활하고 쿨해서 인기가 많은 타입이다. 마치 옛날 요술소녀란 만화가 떠오른다. (너무 달라 너무 달라 너무 달라 우리들은~~~)

 

모디는 상류층 자녀들이 다니는 사립 명문 뤼인 고등학교에 입학한다. 소심하고 조용한 모디를 대신해 모나가 그 학교에 대신 가게 되면서 이 모든 이야기들이 시작된다.

 

나는 쌍둥이가 아니라 모르겠지만, 쌍둥이이기 때문에 가능한 것들 예를 들면 역할 바꾸기 등을 서슴없이 즐기던 그들은, 자신들이 경험한 기억은 각자 간직하고 있다. 그래서 서로 소통하지 않으면 그 일에 대해 공유할 수 없게 되고, 그런 상황들이 그들을 더욱 끈끈한 하나로 만들어 간다.

 

쌍둥이가 서로의 행세(?)를 하면서 벌어지는 다양한 사건은 아마 독자들도 예측할 수 있을 거다. 반에서 모두가 두려워하는, 그러면서도 훈남미+일진미+짐승미 풀풀 풍기는 지웨이칭과 엮이면서 쌍둥이 자매의 감정도 복잡해진다.

 

쌍둥이를 구별할 줄 아는 유일한 사람인 담임 교사 란관웨이 (이름에서 진관희가 떠오르는 건)는 두 자매에게 정신적 버팀목이 되어준다. (물론 그에게도 비밀이 있다.)

 

몸과 영혼은 달라. 몸은 똑같아도 그 속에 든 영혼이 다르면 다른 표정과 기질이 드러나. 참 불가사의하지.”

 

하지만 지웨이칭은 날 못 알아봤어요.”

 

어린애는 못 알아보는 게 정상이야.” (p. 189)

 

영혼까지 나누었다고 생각하는 쌍둥이들에게도 냉전의 시간이 있었고, 큰 아픔도 있었다.

 

어릴 적엔 모디가 좋아했던 남자애 리춘안이 언니 모나를 좋아하여 다툰 적도 있었다. 리춘안은 그 둘을 구분할 줄 아는 유일한 사람이었다.

 

이것에 대해 란관웨이는 이렇게 말했다.

 

너희 둘을 구분했다는 건 자기가 누굴 좋아하는지 확실히 알았다는 뜻이니까.” (p. 190)

 

외모는 똑같아도 서로 다른 사람이었던 쌍둥이 모디와 모나의 삶을 따라가 보면, 인간들은 겉모습에 금방 속을 뿐 아니라 자신이 보고 싶은 것만 보고 있지는 않은가 하는 회의감이 든다. 거기서 오는 타인과의 단절감을 자매들은 오직 서로에게로부터 찾고 구원받아 왔는지도 모른다.

 

작가 미사는, 다르지만 하나이고 하나지만 다른 쌍둥이 자매의 심리와 감성을 타인들 틈에서 종종 피력하고 있다.

 

그 순간 깨달았다. 나에게 모디는 피를 나눈 친한 쌍둥이 동생일 뿐 아니라 또 다른 나였다고. 어쩌자고 나는 모디와 다툰 걸까.” (p. 195)

 

처음엔 소설 제목 <내가 사랑하는 우리>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로설이라고 하니까 주어가 ''가 아니라 ''가 되는 게 자연스러울 터였다.

 

왜냐면 연애소설은 내가 아니라 타인과 사랑하는 것 아니던가. 하지만 이 소설은 그렇지 않다. 사랑의 주체도, 대상도 모두 나여야만 한다.

 

마지막 반전에서 결정타를 친다. 왜 이 소설이 단순히 로맨스 소설이 아니라 미스테리 요소가 있는지도 거기서 풀린다.

 

마음의 병을 치료하기 어려운 이유는 때때로 본인 스스로가 구원받길 거부하기 때문이야.” (p. 335)“

 

뭔가 심상치 않은 쌍둥이의 이야기와 그녀들과 엮인 훈남 지웨이칭, 그리고 저마다의 사연이 있는 주변 인물들.

 

밝고 유쾌한 학원물 속에 담긴 조금은 그로테스크한 비밀의 이야기.

 

<내가 제일 사랑하는 우리>는 다양한 음식을 조금씩 맛보도록 대만에서 보낸 선물인 것 같았다.

 

가상 캐스팅을 해보자면, 요새 핫한 중화권 배우를 잘 모르지만, 남주 지웨이칭은 제일 유명한 왕대륙뭐 그런 사람을 쓰면 될 것 같고, 모디와 모나는 오우양나나, 꽃미남 담임 란관웨이는, 좀 늙었지만 황웨이더 (황유덕, ‘신삼국에서 꽂힘)나 황샤오밍 (황효명, 내가 본 제일 잘생긴 중국인) 안될까나. 안 되면 유일하게 아는 자오유팅이라도. 이게 내가 아는 전부다. , 저우져륜 (주걸륜)도 있었구나.

 

덕분에 대만 감성도 깨우고, 중화 장르 소설의 현주소를 경험한 의미 있는 독서였다.

 

독서하며 곁들여 먹은 홍루이젠 짝퉁 '이젠이건가요' 대만식 샌드위치는 정말 맛있었다.

 

 

 

공기가 상쾌하고 따사로운 오후였다.

몸과 영혼은 달라. 몸은 똑같아도 그 속에 든 영혼이 다르면 다른 표정과 기질이 드러나. 참 불가사의하지. (p.189)

그 순간 깨달았다. 나에게 모디는 피를 나눈 친한 쌍둥이 동생일 뿐 아니라 또 다른 나였다고. 어쩌자고 나는 모디와 다툰 걸까. (p. 1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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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씨의 아이
신카이 마코토 지음, 민경욱 옮김 / 대원씨아이(단행본)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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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멋진 영화, 완벽한 작품이었다고 말하고 싶다. 두 번 정도는 봐야 진가가 보이는 작품이라, 깊고 슬프고, 경이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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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입] 베토벤 : 피아노 소나타 전곡 & 피아노 협주곡 전곡 [12CD] - eloquence
베토벤 (Ludwig Van Beethoven) 작곡, 슈타인 (Horst Stein) 지 / Decca / 200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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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입고 정말 감사합니다♡ 못 사면 다시 십 년 기다려야할 줄 알았는데. 열심히 선전하고 있습니다. 알라딘 고마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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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씨의 아이 (스페셜 에디션) 신카이 마코토 소설 시리즈
신카이 마코토 지음, 민경욱 옮김 / 대원씨아이(단행본)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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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의 감동을 그대로 전한, 정말 만족스러운 패키지였어요. 영화 정말 좋았고요, 세 번 봤는데 볼 때마다 전율합니다. 신카이 감독 스스로를 갱신한 엄청난 작품이었어요. 이런 선물 같은 패키지, 대원씨아이, 고마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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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하늘에서 떨어졌을 때 - 삶, 용기 그리고 밀림에서 내가 배운 것들
율리아네 쾨프케 지음, 김효정 옮김 / 흐름출판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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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은 이 밀림에서 시작됐다.”

 

 

19711224일 크리스마스 이브, 페루의 수도 리마를 출발해 푸카이파로 향하는 랜사 항공기 508이 추락하는 사건이 있었다.

 

유일하게 살아남은 사람은 열일곱 살의 독일계 소녀, 율리아네 쾨프케.

 

3000 미터의 상공에서 추락해 아마존 밀림 어딘가에 떨어진 그녀는 11일 만에 구조된다.

 

이 책은 40년 후 쉰여섯이 된 율리아네가 2011년에 베르너 헤어조크 감독과 함께 사고 지역을 다시 방문하면서 그때의 기억과 마주하고, 잘못 알려진 정보들을 바로잡으며, 또한 17세의 자신과 지금의 자신을 오가는 교차 방식으로 서술되어 있다.

율리아네는 당시 사고의 순간을 이렇게 회상한다.

 

조종사는 뇌우를 피하기는커녕 지옥의 먹구름 속으로 똑바로 돌진했다. 환한 대낮이 밤처럼 깜깜해졌다. 비행기의 작은 창으로 사방에서 맹렬하게 번쩍이는 번개가 비쳤다. 동체에 보이지 않는 힘이 우리가 탄 비행기를 노리개처럼 마구 흔들기 시작했다. (p. 8 – p.9)

짐칸에 넣어둔 짐들이 떨어지고 그야말로 아비규환이었다. 율리아네는 사고 순간을 똑똑히 기억했다. 옆에 앉은 엄마 마리아의 음성도.

 

"부디 무사히 끝나야 할 텐데.” “이제 다 끝이구나.”

    

거대한 소음이 지나고 고요해졌다. 율리아네는 좌석에 매단 채로 10여분 정도 낙하한 것으로 보인다.

 

눈을 떠보니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금방 떠올랐다. 나는 비행기 사고를 당해 밀림 한가운데에 떨어져 있었다. 눈을 뜬 순간에 마주한 이미지를 절대 잊을 수 없다. 밀림의 거대한 나무 꼭대기에 금색 빛이 맺히자 모든 것이 다양한 녹색 톤으로 눈부시게 반짝였다. (p. 114)

 

그녀는 생존에 대한 감격이나 큰 사고에 대한 두려움, 엄마를 잃었다는 슬픔 등으로 울지 않는다. 그녀는 냉정하리만큼 침착했다. 잠깐의 뇌진탕이 있었고 쇄골에 통증이나 무릎, 등 쪽에 찢긴 상처가 있었지만, 그녀의 생존 본능은 강했다. 그녀는 살아야 한다고만 생각했다. 물길을 찾아 걸어가면 반드시 사람들을 만날 수 있을 거라는 아버지의 말을 기억했다.

 

율리아네는 원래 밀림 생활에 익숙한 사람이었다. 그녀의 아버지는 저명한 생물학자였고, 어머니는 뛰어난 조류학자였다. 율리아네는 페루 리마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부터 부모와 함께 밀림을 탐험했고, 그들이 세운 팡구아나의 연구소에서 함께 거주했다. 그녀도 스스로 말하길 자신은 밀림에 대한 이해가 있었기 때문에 살아나올 수 있었다고 한다. 한 예로, 노랑가오리나 카이만 악어들을 만나면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 이미 부모와 이웃들에게서 얻었던 지식을 활용해 위기들을 극복할 수 있었다.

 

11일 간의 사투 끝에 율리아네는 사람들에게 발견된다. 그 여정은 자연의 섭리에 반할 정도로 초인적이고 기적적인 힘을 그녀에게서 끌어낸 것이었다.

 

율리아네는 나중에서야 자신의 몸이 사실상은 걸을 수도 없었을 정도로 손상이 되었었고 (십자인대 파열), 상처에 번식한 구더기들의 숫자가 이미 수십 마리에 이른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구조되기 전까지 내 몸이 부상에 대한 자연스러운 반응을 철저히 억압했다는 사실이 놀라울 따름이다... 머릿속에서는 추락 현장에서 멀리 떠나야 살 수 있다는 생각뿐이었다. (p. 192)

    

생존하고 난 뒤 그녀의 삶은 이전 같지 않았다. 벌떼처럼 들끓는 기자들, 매스컴들, 오보들, 관심들. 당시 어렸던 그녀는 자신에게 닥친 혼란들을 스스로를 강하게 방어하는 것으로 이겨내 보려고 했다. 그녀의 마음에선 간절히도 전과 같은 평범한 생활을 원했고 사고가 빚어낸 충격과 변화를 피하려는 일종의 감정의 단절이 막처럼 세워져 있었던 것 같다. 책에서는 방어기제라고 표현한다.

 

롤프 빈터라는 기자에 의해 자신이 피눈물도 없이 냉정하고 오만하고 맹랑한 아이로 그려진 것에 대해 율리아네는 분노를 표현하고 있다. (p. 227)

 

사실 나도 여기까지 읽었을 때 율리아네가 굉장히 객관적이고, 과학자다운 냉철한 심장을 가진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글 전체가 건조하고 자신의 감정에 대해 솔직히 얘기하지 않기 때문이었다. 엄마를 잃은 심정이 참 궁금했는데 율리아네는 자신이 어떻게 살아남았는지에 관해서만, 또 자신과 별개의 존재로서 부모의 학술적 업적이나 행적 등을 더 세심히 묘사하고 있는 듯했다.

사고 이후 그녀는 아버지와도 솔직하게 이야기를 나눠본 적이 없었다속이 상할 때면, 말렸는데도 왜 그 비행기를 탔었냐고 감정을 터뜨리는 아버지와 끝내 벽을 허물지 못했다.

    

엄마가 남긴 공백 때문에 나는 아빠와 좀 더 가까워졌지만, 엄마의 상실을 끝내 극복하지 못한 아빠는 오랫동안 내게 조금은 딴사람처럼 느껴졌다. (p. 229)

    

하지만 율리아네의 절절한 심정은 책에 드문드문, 무겁고도 진실하게 기록되어 있다.

 

나는 죄책감과 깊은 후회를 느꼈다. 학교 행사쯤은 빠져도 되는 거였는데. 나는 살아남고 엄마만 돌아가셔서 한없이 미안했다. 이렇게 많은 가족이 슬픔에 빠져 있는데 나 혼자 침대에서 나날이 건강을 되찾고 있는 것도 미안했다. (p. 208)

아무도 엄마를 돌려줄 수 없었다. 그리고 모든 것이 한결같은 밀림에서도 과거와 같아질 수는 없었다. 이 역설은 오랫동안 나를 괴롭혔다. 평범한 삶에 대한 강렬한 욕구 때문에 종종 가슴이 미어졌다. 19722월에 팡구아나에 있던 나는 내가 그 일을 정말로 극복했다고 믿었다. 사실은 내 자신을 기만하고 있었다는 사실은 머잖아 깨닫게 된다. (p. 231)

 

해마다 돌아오는 크리스마스 때면 율리아네는 울었다. 그리고 엄마에 대한 꿈을 꾸었다.

 

율리아네와 엄마 마리아의 따뜻한 관계는 자칫 슬픔과 절망으로 치달을 수 있는 이 수기에 빛처럼 스며들어 있다. 어떤 시련에도 굴하지 않았던 아버지와 대자연 속에 사랑과 희망을 놓지 않았던 어머니의 사랑과 마음을 그녀는 이어받았고, 그것이 결국 그녀를 생존케 한 힘이었다고 나는 믿는다.

 

이 책은 박쥐 전문 포유류학자 (율리아네는 아버지의 제안으로 후에 박쥐 전문 연구가가 된다.)가 쓴 과학적인 에세이라고 해도 무방했다. 밀림의 생물에 관한 묘사나 관찰은 정확했고, 학자의 시선으로 상황을 판단하는 통찰력은 뛰어났다.

 

하지만 나는 단지 밀림, 재난 생존기라기보단 비행기 추락사고를 통해 소중한 것을 상실한 한 여성이 그것을 다시 되찾는 과정 속에서 생존의 의미를 찾게 된 감동의 실화라고 말하고 싶다.

 

율리아네의 아버지의 말처럼, “뭔가를 이루겠다고 정말로 굳게 결심하면 결국 성공할 수밖에 없어. 간절히 원하기만 하면 돼. 율리아네.” 절망과 상실의 날개로 추락했으나 희망과 기대로 비상하는 이들을 위한 위로와 격려의 이야기라고.

 

율리아네는 밀림 속을 헤매면서 자신이 겪은 끔찍한 비행기 사고의 잔해에 희망의 날개를 띄웠다.

 

 

밀림에 홀로 있는 지금의 나는 비가 내리는 밤이면 뭔가 원대하고 의미 있는, 인류와 자연에 크게 공헌할 수 있는 일에 내 인생을 바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그게 구체적으로 어떤 일인지는 알 수 없었다. 그저 이제부터 내 인생이 세상 속에서 의미를 가져야 한다고 느꼈다. 비행기에서 떨어지고도 약간의 상처만 입은 채 내 발로 밀림을 걸어 나온 데는 이유가 있어야 했다. (p. 153) 

    

 

율리아네가 지금까지 침묵을 뚫고 책과 다큐멘터리로 세상에 걸어 나온 의미는 하나였다.

 

바로 팡구아나를 자연보호지역으로 지정해 보호해나가도록 하는 것이다. 페루의 허술한 법과 투팍 아마루라는 민족 단체의 위협 속에서 팡구아나를 지켜내기 위한 그녀의 노력은 그때 밀림 속의 사투처럼 치열하고 간절하기 이를 바 없다.

 

그녀는 100년을 기다려야만 얻을 수 있는 귀한 나무들이 고작 유럽의 창문 가로대에 사용되기 위해 무참히 소비되는 것을 경고하고, 자연을 지킬 책임이 우리 모두에게 있음을 강하게 주장한다.

기적적으로 생존한 소녀는 자연으로 인해 상실한 것들을 자연에서 되찾고 있다. 지금도 그녀는 밀림 사이를 탐험하는 소녀의 모습으로 위기의 지구에서 우리가 살아남을 수 있는 방법을 전한다.

 

모든 것은 이 밀림에서 시작됐다. 생사를 건 기나긴 여정 주에 나는 만물과 완전히 새로운 관계를 맺었다. 어떤 것도, 어떤 생명도 그냥 주어진 것으로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배웠다. 그때 이후로 나는 매일을 마지막 날처럼 살고 있다. (330 - 331)

 

굳이 사담을 하자면, 이 책은 선물 받은 책이다. 그리고 나는 그 선물에 진심으로 감사한다. 정말이다. 그렇지 않았다면, 나의 편중된 취향으로는 이 책을 일부러 읽을 일이 결코 없었을 것이다. 이 책이 얼마나 소중한지 영영 모른 채로 말이다. 독서 편식의 숲에서 나를 꺼내준 빛 같은 책이었다.

 

내가 하늘에서 떨어졌을 때, 나는 무엇을 보고 있을까.

 

자연에 감사하고, 곁에 있는 소중한 이들을 아끼고, 매일의 평범한 삶을 귀히 여기는 것이 생존이라는 것을.

 

추락하는 이들은 모두 보지 않을까.

 

 

 

 

 

 

 

  

밀림에 홀로 있는 지금의 나는 비가 내리는 밤이면 뭔가 원대하고 의미 있는, 인류와 자연에 크게 공헌할 수 있는 일에 내 인생을 바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그게 구체적으로 어떤 일인지는 알 수 없었다. 그저 이제부터 내 인생이 세상 속에서 의미를 가져야 한다고 느꼈다. 비행기에서 떨어지고도 약간의 상처만 입은 채 내 발로 밀림을 걸어 나온 데는 이유가 있어야 했다. (p. 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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