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하늘에서 떨어졌을 때 - 삶, 용기 그리고 밀림에서 내가 배운 것들
율리아네 쾨프케 지음, 김효정 옮김 / 흐름출판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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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은 이 밀림에서 시작됐다.”

 

 

19711224일 크리스마스 이브, 페루의 수도 리마를 출발해 푸카이파로 향하는 랜사 항공기 508이 추락하는 사건이 있었다.

 

유일하게 살아남은 사람은 열일곱 살의 독일계 소녀, 율리아네 쾨프케.

 

3000 미터의 상공에서 추락해 아마존 밀림 어딘가에 떨어진 그녀는 11일 만에 구조된다.

 

이 책은 40년 후 쉰여섯이 된 율리아네가 2011년에 베르너 헤어조크 감독과 함께 사고 지역을 다시 방문하면서 그때의 기억과 마주하고, 잘못 알려진 정보들을 바로잡으며, 또한 17세의 자신과 지금의 자신을 오가는 교차 방식으로 서술되어 있다.

율리아네는 당시 사고의 순간을 이렇게 회상한다.

 

조종사는 뇌우를 피하기는커녕 지옥의 먹구름 속으로 똑바로 돌진했다. 환한 대낮이 밤처럼 깜깜해졌다. 비행기의 작은 창으로 사방에서 맹렬하게 번쩍이는 번개가 비쳤다. 동체에 보이지 않는 힘이 우리가 탄 비행기를 노리개처럼 마구 흔들기 시작했다. (p. 8 – p.9)

짐칸에 넣어둔 짐들이 떨어지고 그야말로 아비규환이었다. 율리아네는 사고 순간을 똑똑히 기억했다. 옆에 앉은 엄마 마리아의 음성도.

 

"부디 무사히 끝나야 할 텐데.” “이제 다 끝이구나.”

    

거대한 소음이 지나고 고요해졌다. 율리아네는 좌석에 매단 채로 10여분 정도 낙하한 것으로 보인다.

 

눈을 떠보니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금방 떠올랐다. 나는 비행기 사고를 당해 밀림 한가운데에 떨어져 있었다. 눈을 뜬 순간에 마주한 이미지를 절대 잊을 수 없다. 밀림의 거대한 나무 꼭대기에 금색 빛이 맺히자 모든 것이 다양한 녹색 톤으로 눈부시게 반짝였다. (p. 114)

 

그녀는 생존에 대한 감격이나 큰 사고에 대한 두려움, 엄마를 잃었다는 슬픔 등으로 울지 않는다. 그녀는 냉정하리만큼 침착했다. 잠깐의 뇌진탕이 있었고 쇄골에 통증이나 무릎, 등 쪽에 찢긴 상처가 있었지만, 그녀의 생존 본능은 강했다. 그녀는 살아야 한다고만 생각했다. 물길을 찾아 걸어가면 반드시 사람들을 만날 수 있을 거라는 아버지의 말을 기억했다.

 

율리아네는 원래 밀림 생활에 익숙한 사람이었다. 그녀의 아버지는 저명한 생물학자였고, 어머니는 뛰어난 조류학자였다. 율리아네는 페루 리마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부터 부모와 함께 밀림을 탐험했고, 그들이 세운 팡구아나의 연구소에서 함께 거주했다. 그녀도 스스로 말하길 자신은 밀림에 대한 이해가 있었기 때문에 살아나올 수 있었다고 한다. 한 예로, 노랑가오리나 카이만 악어들을 만나면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 이미 부모와 이웃들에게서 얻었던 지식을 활용해 위기들을 극복할 수 있었다.

 

11일 간의 사투 끝에 율리아네는 사람들에게 발견된다. 그 여정은 자연의 섭리에 반할 정도로 초인적이고 기적적인 힘을 그녀에게서 끌어낸 것이었다.

 

율리아네는 나중에서야 자신의 몸이 사실상은 걸을 수도 없었을 정도로 손상이 되었었고 (십자인대 파열), 상처에 번식한 구더기들의 숫자가 이미 수십 마리에 이른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구조되기 전까지 내 몸이 부상에 대한 자연스러운 반응을 철저히 억압했다는 사실이 놀라울 따름이다... 머릿속에서는 추락 현장에서 멀리 떠나야 살 수 있다는 생각뿐이었다. (p. 192)

    

생존하고 난 뒤 그녀의 삶은 이전 같지 않았다. 벌떼처럼 들끓는 기자들, 매스컴들, 오보들, 관심들. 당시 어렸던 그녀는 자신에게 닥친 혼란들을 스스로를 강하게 방어하는 것으로 이겨내 보려고 했다. 그녀의 마음에선 간절히도 전과 같은 평범한 생활을 원했고 사고가 빚어낸 충격과 변화를 피하려는 일종의 감정의 단절이 막처럼 세워져 있었던 것 같다. 책에서는 방어기제라고 표현한다.

 

롤프 빈터라는 기자에 의해 자신이 피눈물도 없이 냉정하고 오만하고 맹랑한 아이로 그려진 것에 대해 율리아네는 분노를 표현하고 있다. (p. 227)

 

사실 나도 여기까지 읽었을 때 율리아네가 굉장히 객관적이고, 과학자다운 냉철한 심장을 가진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글 전체가 건조하고 자신의 감정에 대해 솔직히 얘기하지 않기 때문이었다. 엄마를 잃은 심정이 참 궁금했는데 율리아네는 자신이 어떻게 살아남았는지에 관해서만, 또 자신과 별개의 존재로서 부모의 학술적 업적이나 행적 등을 더 세심히 묘사하고 있는 듯했다.

사고 이후 그녀는 아버지와도 솔직하게 이야기를 나눠본 적이 없었다속이 상할 때면, 말렸는데도 왜 그 비행기를 탔었냐고 감정을 터뜨리는 아버지와 끝내 벽을 허물지 못했다.

    

엄마가 남긴 공백 때문에 나는 아빠와 좀 더 가까워졌지만, 엄마의 상실을 끝내 극복하지 못한 아빠는 오랫동안 내게 조금은 딴사람처럼 느껴졌다. (p. 229)

    

하지만 율리아네의 절절한 심정은 책에 드문드문, 무겁고도 진실하게 기록되어 있다.

 

나는 죄책감과 깊은 후회를 느꼈다. 학교 행사쯤은 빠져도 되는 거였는데. 나는 살아남고 엄마만 돌아가셔서 한없이 미안했다. 이렇게 많은 가족이 슬픔에 빠져 있는데 나 혼자 침대에서 나날이 건강을 되찾고 있는 것도 미안했다. (p. 208)

아무도 엄마를 돌려줄 수 없었다. 그리고 모든 것이 한결같은 밀림에서도 과거와 같아질 수는 없었다. 이 역설은 오랫동안 나를 괴롭혔다. 평범한 삶에 대한 강렬한 욕구 때문에 종종 가슴이 미어졌다. 19722월에 팡구아나에 있던 나는 내가 그 일을 정말로 극복했다고 믿었다. 사실은 내 자신을 기만하고 있었다는 사실은 머잖아 깨닫게 된다. (p. 231)

 

해마다 돌아오는 크리스마스 때면 율리아네는 울었다. 그리고 엄마에 대한 꿈을 꾸었다.

 

율리아네와 엄마 마리아의 따뜻한 관계는 자칫 슬픔과 절망으로 치달을 수 있는 이 수기에 빛처럼 스며들어 있다. 어떤 시련에도 굴하지 않았던 아버지와 대자연 속에 사랑과 희망을 놓지 않았던 어머니의 사랑과 마음을 그녀는 이어받았고, 그것이 결국 그녀를 생존케 한 힘이었다고 나는 믿는다.

 

이 책은 박쥐 전문 포유류학자 (율리아네는 아버지의 제안으로 후에 박쥐 전문 연구가가 된다.)가 쓴 과학적인 에세이라고 해도 무방했다. 밀림의 생물에 관한 묘사나 관찰은 정확했고, 학자의 시선으로 상황을 판단하는 통찰력은 뛰어났다.

 

하지만 나는 단지 밀림, 재난 생존기라기보단 비행기 추락사고를 통해 소중한 것을 상실한 한 여성이 그것을 다시 되찾는 과정 속에서 생존의 의미를 찾게 된 감동의 실화라고 말하고 싶다.

 

율리아네의 아버지의 말처럼, “뭔가를 이루겠다고 정말로 굳게 결심하면 결국 성공할 수밖에 없어. 간절히 원하기만 하면 돼. 율리아네.” 절망과 상실의 날개로 추락했으나 희망과 기대로 비상하는 이들을 위한 위로와 격려의 이야기라고.

 

율리아네는 밀림 속을 헤매면서 자신이 겪은 끔찍한 비행기 사고의 잔해에 희망의 날개를 띄웠다.

 

 

밀림에 홀로 있는 지금의 나는 비가 내리는 밤이면 뭔가 원대하고 의미 있는, 인류와 자연에 크게 공헌할 수 있는 일에 내 인생을 바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그게 구체적으로 어떤 일인지는 알 수 없었다. 그저 이제부터 내 인생이 세상 속에서 의미를 가져야 한다고 느꼈다. 비행기에서 떨어지고도 약간의 상처만 입은 채 내 발로 밀림을 걸어 나온 데는 이유가 있어야 했다. (p. 153) 

    

 

율리아네가 지금까지 침묵을 뚫고 책과 다큐멘터리로 세상에 걸어 나온 의미는 하나였다.

 

바로 팡구아나를 자연보호지역으로 지정해 보호해나가도록 하는 것이다. 페루의 허술한 법과 투팍 아마루라는 민족 단체의 위협 속에서 팡구아나를 지켜내기 위한 그녀의 노력은 그때 밀림 속의 사투처럼 치열하고 간절하기 이를 바 없다.

 

그녀는 100년을 기다려야만 얻을 수 있는 귀한 나무들이 고작 유럽의 창문 가로대에 사용되기 위해 무참히 소비되는 것을 경고하고, 자연을 지킬 책임이 우리 모두에게 있음을 강하게 주장한다.

기적적으로 생존한 소녀는 자연으로 인해 상실한 것들을 자연에서 되찾고 있다. 지금도 그녀는 밀림 사이를 탐험하는 소녀의 모습으로 위기의 지구에서 우리가 살아남을 수 있는 방법을 전한다.

 

모든 것은 이 밀림에서 시작됐다. 생사를 건 기나긴 여정 주에 나는 만물과 완전히 새로운 관계를 맺었다. 어떤 것도, 어떤 생명도 그냥 주어진 것으로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배웠다. 그때 이후로 나는 매일을 마지막 날처럼 살고 있다. (330 - 331)

 

굳이 사담을 하자면, 이 책은 선물 받은 책이다. 그리고 나는 그 선물에 진심으로 감사한다. 정말이다. 그렇지 않았다면, 나의 편중된 취향으로는 이 책을 일부러 읽을 일이 결코 없었을 것이다. 이 책이 얼마나 소중한지 영영 모른 채로 말이다. 독서 편식의 숲에서 나를 꺼내준 빛 같은 책이었다.

 

내가 하늘에서 떨어졌을 때, 나는 무엇을 보고 있을까.

 

자연에 감사하고, 곁에 있는 소중한 이들을 아끼고, 매일의 평범한 삶을 귀히 여기는 것이 생존이라는 것을.

 

추락하는 이들은 모두 보지 않을까.

 

 

 

 

 

 

 

  

밀림에 홀로 있는 지금의 나는 비가 내리는 밤이면 뭔가 원대하고 의미 있는, 인류와 자연에 크게 공헌할 수 있는 일에 내 인생을 바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그게 구체적으로 어떤 일인지는 알 수 없었다. 그저 이제부터 내 인생이 세상 속에서 의미를 가져야 한다고 느꼈다. 비행기에서 떨어지고도 약간의 상처만 입은 채 내 발로 밀림을 걸어 나온 데는 이유가 있어야 했다. (p. 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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