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 빛 매드 픽션 클럽
미우라 시온 지음, 이영미 옮김 / 은행나무 / 200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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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이렇게 될 줄 알았어. 이렇게 되길 바랐어. 내 소원대로 쓰나미가 와서 모두 죽었어! 대단해, 모두 죽었을 거야. 틀림없이 다 죽었을 거야. 그치? 유키 형!” (37)

 

섬을 소재로 한 소설을 읽다 보면 섬이란 공간의 폐쇄성과 퇴폐적인 분위기를 곧잘 마주한다.

 

섬은 그렇다. 고립된 만큼 그 안의 사람들의 유대감과 집단의식은 더없이 강하다. 그들의 세계는 외지인이 감히 발도 붙일 수 없는 성역인지 모른다.

 

그런데 그들만의 공화국이 쓰나미로 한순간에 휩쓸리고 모두가 죽는다.

 

살아남은 이는 중학생 노부유키, 미카, 초등생 다스쿠, 그리고 세 명의 어른뿐.

 

이야기의 진정한 시작은 여기서부터다.

 

세 아이는 앞으로 지독한 운명으로 갈라지게 된다.

 

노부유키와 미카는 그 섬에서 태어나 자란 친구이자 유일한 동급생으로,

 

그에게 미카란 존재는 이 고립된 섬이 제공한 단 하나의 운명의 짝이었다.

 

쓰나미가 섬을 공격하기 전부터 미카는 노부유키의 여자였다. 노부유키만의 여자였다. 미하마 섬에서 태어나 자랐고, 모두가 사라진 미하마 섬에 또다시 인간을 늘릴 수 있는 사람은 노부유키와 미카뿐이었다." (56)

 

지구 최후의 인류 한 쌍으로 관리되고 실험당하는 것 같은 착각에 빠질 정도로 노부유키는 미카를 사랑한다.

 

그 둘과 함께 생존한 다스쿠는 부친에게 살인에 가까운 폭력을 당하는 어린아이로, 먼 친척뻘인 노부유키를 형처럼 따르나 노부유키는 그를 혐오한다.

 

쓰나미로 초토화된 땅 위에서 노부유키와 미카는 끔찍한 비밀을 공유하는 사이가 되고, 그것은 누군가에게 목격된다.

 

깊은 바다 바닥에 잠든 비밀을 불러내려 하는 자는 모두 매장시켜야 한다. (233)”

 

마호로 역과는 상반된 미우라 시온을 경험해 볼 수 있는 검은빛폭력에 관한 얘기다.

 

폭력이 우리 일상 생활을 어떻게 지배하고 있는지, 그리고 그것에 의해 우리의 감정이 어떻게 휘둘리지는지에 대해 말하고 싶었다. 사람들은 자신의 마음을 다치게 한 사건은 잘 기억하면서 남을 괴롭힌 것에 대해서는 잘 잊는다. 모순이다. 그런 삶의 풍경을 드러내고 싶었다.”

 

(2009.08.10. 중앙일보)

 

 

세 사람은 쓰나미라는 공통적인, 불합리한 폭력으로 모든 것을 잃은 사람들이다.

 

살아남은 것을 기뻐할 수 없던 그들의 인생은 깊은 허무주의에 지배당한다.

 

노부유키는 미카와의 더 끈끈한 유대감을 갈구하고, 그것을 쟁취하기 위해 택한 수단은 폭력이었다.

 

폭력을 헤쳐 나가며 너와 나는 살아남았다. 두려워하지 않아도 된다. 몇 번이라도 죽여줄 테니, 안심하고 숨쉬면 된다."(239)

 

한편, 어른이 되어서도 폭력에서 벗어나지 못한 다스쿠는 어릴 적 자신에게 유일하게 반응해주던 유키 형의 관심과 애정을 갈구하며 비틀린 방식으로 맴돈다.

 

직접적인 폭력은 아니더라도 그 이상의 불행을 초래한 미카는 가장 찬란한 빛 속에서 가장 짙은 기만을 품은 인물이다.

 

폭력이라 하니 나는 나카무라 후미노리의 흙속의 아이가 떠올랐다.

 

부친에게 생매장까지 당할 만큼 폭력을 당한 남자가 희망을 발견하는 얘기지만, 이 소설엔 없다.

 

각자의 입장에서 폭력의 방식을 달리했을 뿐, 서로의 목적을 위해 이용하는 그들의, 순수했던 유대감은 그날 쓰나미와 함께 매장된 것이다.

 

죽음 앞에서 함께 살아남았는데 결국 서로를 상처입히는. 여전히 셋은 섬에 갇혀 유랑하는 존재들이라는 게 퍽 측은하다.

 

책을 덮고 내 마음에 두 사람이 남았다.

 

가장 안쓰러운 인물과 가장 난해했던 인물.

 

후자로 말하자면, 상식적이고 온화한 겉모습에 속은 괴물의 심연을 품은 그의 인간성은 쓰나미의 유무와는 상관없어 보인다. 그것은 그녀도 마찬가지다.

 

그나마 인간적인 혹은 인간적이고 싶었던 인물이 진짜 폭력의 희생자가 되고, ‘폭력앞에 자신의 합리적 입장을 추구하는 가해자와 그 주변인들이 평범한 일상을 영위하는 것이,

 

그것이 작가가 의도한 검은빛의 실체라면,

 

폭력은 다가오는 게 아니라 돌아오는 것이다. 스스로를 만들어낸 장소...... 일상 속으로.” (359)

 

머리 위에 칼을 둔 듯이 숨죽이며 사는 매일의 지옥이 더 가혹하다는 말을 하는 걸까.

 

어디에도 도망칠 수 없다고.

 

갑자기 내 가슴에 슬픔이 확 밀려온다.

 

당신은 본 적이 없겠지? 새카만 하늘에 희고 큰 달이 뜬 모습을. 달빛이 밤바다에 하얀 길을 만들지. 정말 아름다워.” (121)

 

 

 

p.s. 마호로 역 시리즈를 읽고 나서 이 작가의 다른 소설이 궁금했다. 내용에 대한 정보 없이 받자마자 곧장 읽었는데, 취향에 맞아서인지 참 재밌었다. 읽고 나면 서글퍼진다. 위 글의 마지막 대사는 다스쿠가 노부유키의 아내에게 해준 말이다. 쓰나미 이후 과거를 봉인하며 사는 두 사람과 대조적으로 그때를 추억하는 유일한 인물이 다스쿠인데, 다스쿠의 한자가 (도울 보)인 것은 상당히 의미심장하다.

 

(2022.01.15.)

폭력을 헤쳐 나가며 너와 나는 살아남았다. 두려워하지 않아도 된다. 몇 번이라도 죽여줄 테니, 안심하고 숨쉬면 된다. (239)

폭력은 다가오는 게 아니라 돌아오는 것이다. 스스로를 만들어낸 장소...... 일상 속으로. (359)

당신은 본 적이 없겠지? 새카만 하늘에 희고 큰 달이 뜬 모습을. 달빛이 밤바다에 하얀 길을 만들지. 정말 아름다워. (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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멕시칸 고딕
실비아 모레노-가르시아 지음, 공보경 옮김 / 황금가지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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멕시칸 고딕’은 1950년대 ‘탈식민시대’의 멕시코의 탄광 마을을 배경으로 한, 현실과 환각, 역사와 역설, 과학과 미신, 고딕과 로맨스 등이 혼재한 고딕 소설로,

도일 가에 시집간 후 폐인이 된 사촌 카탈리나를 구하기 위해 도일 가에 뛰어든 노에미가 진실에 접근하면서 알게 된 도일 가문의 무시무시한 비밀과 저주의 이야기다.

*

“사랑을 위해 지어진 집이 아닙니다.... 우린 사랑을 할 수가 없는 사람들입니다.” (233)

이 소설은 1950년대의 멕시코. 스페인의 식민지 시대 이후를 배경으로 한다.

1810년 멕시코의 독립 전쟁이 발발하기 전까지 활발했던 영국인의 채광 사업이 중단되면서 잔류하게 된 도일 가문은,

엘 트리운포의 산골에 ‘하이 플레이스’라는 영국식 저택에서 모국 영국의 모습과 전통을 그대로 따르며 외부와 고립된 채 살고 있다.

멕시코 여성인 노에미의 사촌 카탈리나는 외아들 버질 도일과 결혼했지만, 거기 살게 된 이후 유령이 보인다면서 정신착란, 몽유병 등 이상 행동을 하고 불길한 기운이 가득한 편지를 노에미에게 보낸다.

멕시코시티에 살던 노에미는 카탈리나를 만나러 도일 가를 방문한다.

주변은 묘지이고 300년도 더 된 대저택에는, 도일 가문의 가주이자 노인 하워드 도일, 그의 조카 플로렌스, 그녀의 아들 프랜시스, 그리고 카탈리나의 남편이자 아들 버질이 세 하인들과 살고 있다.

집안 사람들 모두 무언가를 숨기듯 음침한 기운이 가득하고, 카탈리나의 상태는 갈수록 나빠지고, 형부 버질 (=잘생긴 개자식)은 노에미를 숨막히게 한다.

건강했던 노에미마저 소름끼치는 환각과 환청에 시달리며 쇠약해진다.

“공기가 무거운 집이 있어요. 사악한 기운이 내리눌러서 공기 자체가 묵직하게 느껴지는 집인 거죠. 그 기운은 죽음일 수도 있고 다른 무언가일 수도 있어요."(199)

마을의 민간치료사 마르타에게 기묘한 이야기를 듣는 노에미.

좀처럼 깨지지 않을 것 같은 이 집 사람들의 불안하게 끈끈한 유대감. 그들의 침묵.

빗장처럼 무거운 비밀과 저주가 드리워졌음에도 노에미는 접근조차 할 수 없다.

“주체적인 삶이라. 알아챘는지 모르겠지만, 우리 중 주체적인 삶을 사는 사람은 아무도 없어. 아버지는 내가 여기서 살길 바라셔. 아내는 병이 들었고. 늘 똑같은 이야기지. 우린 여기서 살아야 해. 바꿀 수 없는 상황이라는 걸 모르겠어?” (251)

대체 이 집에는 무슨 일이 있는 걸까.

과연 노에미는 카탈리나를 구하고 함께 무사히 탈출할 수 있을까.

*

이 책의 강점은 ‘재미’이다. 그러나 그게 전부는 아니다.

저자는 과학기술학 석사에 우생학 관련 논문도 쓴 학자이다.

고국 멕시코의 상흔을 꺼내 보이는 역사의식과 서구 열강들에 대한 비판적 태도, 인류학과 역사학에 대한 통찰력도 작품 곳곳에 담겨 있다. 다수의 저자와 논문을 인용하기까지 한다.

파워스의 소설도 그랬지만, 서사를 위한 논리적 자료를 충분히 뒷받침하여 소설의 격을 높인다.

그게 덫이 된 걸까. 탄탄한 배경에도 불구하고 자기모순과 역설을 피하지 못한 것은.

작가가 후기에 직접 쓴 ‘역설적 유산’의 되풀이된 해석이 보인다.

식민지 시대의 유령에 사로잡힌 두 멕시코 여성, 노에미와 카탈리나.

영국인 도일 가문이라는 ‘악의 축’을 내세워놓고 그들에게 희생된 멕시코인들을 대표하는 후대의 소극적인 활약은 실망스럽다.

아마존의 어떤 리뷰어가 지적한 만큼 가장 큰 모순은, 그들이 사랑에 빠진 대상이 하필 식민지 시대 때 착취한 영국인들이라는 거다.

금발 머리에 벽안, 흰 피부, 스페인어 대신 오직 영어만을 쓰는 도일 사람들.

노에미는 카탈리나가 그랬듯이 이들에게 매료되어 간다.

도일 사람들의 입에서 계속해서 우생학 얘기가 나오는데, 그런 그들이 선택한 최고의 여성이 그녀라는 설정은, 모순의 결정판이 아닐 수 없다.

작가가 혐오하는 우생학 이론을 다른 방식의 가능성으로 열어두는 마무리도 영 개운치 않다.

허나, 작가의 숭고한 신념이나 문제의식이 ‘단지 거들뿐’이고, 쫀득쫀득한 고딕 로맨스 소설로 즐긴다면 이런 비판은 무용할 테다.

오랜만에 서구 감성 느끼며 정말 재밌게 읽었다.

그나저나 멕시코의 대표 작물이 할레피노인 줄 알았는데 아니었구먼.



사랑을 위해 지어진 집이 아닙니다.... 우린 사랑을 할 수가 없는 사람들입니다. (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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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들이 모조리 사라진다면
리처드 파워스 지음, 이수현 옮김, 해도연 감수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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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향한 깊은 경외와 숭배를 지극히 아름다운 언어들로 낯설고도 슬프게 그려낸 ‘새들이 모조리 사라진다면은’,

이 행성에 존재하는 지성체들의 고통과 고독, 상실에 이르는 여정을 아버지 시오와 9세 자폐 아들 로빈을 통해 이야기한다.

“나의 슬프고 특별하며 갓 아홉 살이 된, 이 세상과 잘 맞지 않는 아들이.” (11)

*

우리는 죽어가고 있다.

이 행성의 모든 지성체는 멸종할 것이며, 지구는 멸망한다.

이 믿고 싶지 않은 사실을 정면으로 마주하고 온몸으로 버텨내는 이가 있다.

어른이 아니다. 아이다.

세상에선 '아스퍼거,' ‘자폐,’ ‘ADHD,’ ‘강박증 장애’ 등으로 분류되는 아홉 살 아이 로빈.

로빈은 ‘살아 있는 것들에게 유난히 예민한’ 성정을 갖고 있다.

로빈이 애착을 갖는 것은 ‘자연’ 그중에서 ‘동물’이다.

광우병 걸린 소들의 이상행동을 영상으로 보기만 해도 벽에 자신의 머리를 찧고, 아버지가 운전하다가 실수로 친 다람쥐의 사체를 보며 광분하고 자학하는 아이.

천사처럼 온순했다가도 까닭 없이 분노를 터뜨리며 아버지의 손을 물어 피를 내기도 하는 로빈은 세상과는 섞일 수 없는 아이다.

“나는 온 세상에서 로빈을 제일 잘 아는 사람에게 탄원할 수밖에 없었다. ‘얼리사.” 십일 년하고 반 년 동안 내 아내였던 사람. “얼리사. 어떻게 해야 할지 말해 줘. 숲속에서 함께 있을 때는 괜찮지만, 로빈을 집으로 데려가기는 두려워.” (56)

아버지 시오의 헌신적인 사랑이 가슴 아플 정도로 애절하다. 로빈의 폭주를 막기 위해 미지의 행성들 이야기를 하나씩 들려주는 시오는 아무도 침범할 수 없는 그들의 고립지에서나마 아들과 교감한다.

로빈이 가장 많이 닮은 아내 얼리사는 교통사고로 사망한 상태다. 얼리사는 동물들의 인권을 수호하는 몇 개의 NGO 단체를 이끌기도 했고, 국회 앞에서 수없이 시위를 하기도 한 행동가였다.

아내와 대한 사랑과 그 사랑 이면에 숨겨진 의심과 슬픔, 자폐 아들 로빈의 발작과 치료, 그 모든 과정이 이 행성이 지닌 부조리와 부조화와 충돌하며 갈등의 격랑을 타지만,

그들은 그들이 그토록 확신해온 지성체에 내재한 희망과 생명력의 상징인 야생의 숲, 오직 그들만이 경험한 자연의 신비와 그 압도적인 당혹감(bewilderment)이 빚어낸 그곳으로 동행한다.

“우리가 해친 것을 치유합시다.
살아 있는 모든 것들이 고통에서 해방되기를.“ (303)

자연의 한 종으로써, 생명의 처음과 끝으로써, 한때와 영원으로써, 숲의 세계와 분리될 수 없는 로빈의 고통스러운 예민함과 부서짐은, 이 기형적인 행성에 호소하는 자연의 몸부림 그 자체였는지도 모른다.

“연구자들은 과학적인 관점에서 생명이 살 수 없다고 알고 있던 곳에서 생명을 찾아내고 있었다. 생명은 끓는점 위에서나 어는 점 아래에서도 삶을 살아내고 있었다.” (75)

“나는 오랜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이제 내 아이에겐 내가 필요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였다. (386)

세상은 낙관적이지 않다는 사실을 분명히 전하면서도, 이 세상이 짊어진 고통, 아직 오지 않은 예고된 고통에 대한 방관과 무심함에 대한 경고를 아홉 살 자폐 소년의 몸에 처절하게 새긴 소설가의 이 잔혹하고도 슬픈 서사를 어찌하면 좋을까.

세상에 오직 단 두 사람만이 사는 행성.

그 이름은 지구가 아니라 고독이라는 것을.

“모두가 어디에 있는지 알아낼 수 없는 행성이 하나 있었다. 그 행성은 고독 때문에 죽었다. 그런 일이 우리은하에서만 수십억 번이나 일어났다.” (386)

‘새들은....“은 파워스의 전작 ’오버스토리‘의 연결 선상에 있는 소설이다.

역자의 후기를 참고하자면, 원제 Bewilderment의 유래도 그 작품에서 찾을 수 있다.

읽지는 않았지만 그 소설 또한 나무들, 숲의 세계와 인간이 초래한 환경 문제를 조명하여 강렬한 울림을 선사한 것으로 안다.

자연에 대한 강한 메시지는 내가 읽었던 파워스의 1995년작 갈라테아 2.2에서는 없었기에, 이후 긴 시간 동안 작가의 관심과 사유를 지배한 것들을 엿볼 수 있던 이번 소설은 큰 수확이 있었다.

갈수록 고통과 슬픔의 강도가 세진다는 것과, 불확실성에 대한 헤맴의 여정이 여전히 계속된다는 게 리차드 파워스답지만.

그의 차기작이 벌써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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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사의 기술 - 느낌을 표현하는 법
마크 도티 지음, 정해영 옮김 / 엑스북스(xbooks)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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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묘사는 생각의 방식이다.” 라고 말한다.

우리가 접하지 못했던 다양한 영시를, 언어를 초월한 인간의 감각을 사용하여 보다 섬세하게 ‘느낄 수 있게’ 돕는 책이다.

*

“우리가 흡수할 수 있는 것은 세상에 대한 부분적인 해석일 뿐이다.” (13)

이러한 부분적인 해석을 나만의 언어의 세계로 만들어 타인을 초대하는 것, 이것이 묘사가 아닐까 생각한다.

마크 도티의 ‘묘사의 기술’은 매우 지적이면서도 어려운 책이다.

작가가 시인인데다 영어로 쓰기 때문에 한 차례 걸러서 내게 와 닿는 게 퍽 쉽지 않다.

시는 모국어로 읽을 때 가장 참맛이 아니던가.

그럼에도 이 책이 매우 의미 있는 것은, 저자가 소개하고 있는 멋진 시들 때문이다.

엘리자베스 비숍의 ‘물고기’, 헨리 본의 ‘그의 책에게’, 조지 허버트의 ‘기도’, 제라드 맨리 홉킨스의 ‘별이 빛나는 밤’, 엘런 샤피로의 ‘해바라기’ 등 수없이 많은 시들이 등장한다.

영시라면, 에즈라 파운드, 에밀리 디킨슨, W.H 오든 정도만 알고 있는 내게 이 책에 등장하는 시인과 시들은 그야말로 새로운 세계였다. 제대로 다 이해하지 못하는 좌절감도 있었지만.

교수이기도 한 그가 풀어내는 영시들의 다양한 수사법과 묘사의 세계는 영미문학을 전공하거나 영시를 좋아하는 사람에게 더없이 유익할 거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다만 생소한 영시들인데다 원본이 실려 있지 않고, 아무래도 시를 다루다 보니 번역문도 상당히 추상적인 표현이 많아 가독성 면에서 아쉬운 점이 있다.

"모든 설명들은 부분적인 것 같다. 따라서 모든 지각은 감정적이고, 해석의 기회이며, 추측 게임이라고 할 수 있다.“ (13)

책은 크게 두 부분을 나눠 있는데, 첫 부분은 구체적인 시들을 들어 묘사의 예를 설명, 해석하고 있다면, 두 번째 부분은 기술적인 부분이다.

“경험의 질감을 재현하려는 작가에게, 아름다움은 단순히 정확함, 즉 진짜처럼 보이는 것에 최대한 근접하는 것이다.” (153)

묘사의 진실성을 탐구하는 저자의 전문성은 E.E. 커밍스의 시를 해석할 때 빛을 발한다.

소설가 제니퍼 이건이나 조나단 사프란 포어 등이 관습을 타파하는 표현의 방식으로 시도하기도 했던 언어의 해체, 여백, 도식적인 표기, 배열, 낯설게 하기 등을 시에서 접하는 것은 처음이다.

그러고 보니 음표로 표기해온 악보, 작곡가의 시그니처이자 음악의 권위를 증명해온 악보의 개념을 타파한 존 케이지가 떠오른다.

"초시간성 (timelessness)이라는 또 다른 종류의 시간성도 존재한다. 이 서정적인 시간에서 우리는 시간이 순방향으로 이동한다는 인식을 멈춘다. 서정적 시간은 과거의 영향과도, 다가올 사건들에 대한 예상과도 관련이 없다.“ (33)

음악이든 시든 중요한 것은 유물처럼 추앙받아온 그것의 나이테가 아니라 시간의 존재를 부수어버리고 언제든 새로운 ‘감각’, ‘현실성’, ‘우연성’의 미지의 세계를 함께 공유하는 것이 아닐까.

민트색의 자그마한 글쓰기 책 , 그러나 담고 있는 것은 미국 현대 영시의 가장 중요한 정수를 맛본 것 같다.

부족한 나로서는 여전히 모자라지만 어떤 ‘느낌’을 조금, 아주 조금이나마 알 것 같았다.

한마디로, "느낌 아니까~" 를 배우기 위한 책.

묘사는 생각의 방식이다. (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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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마지막 기차역
무라세 다케시 지음, 김지연 옮김 / 모모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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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마지막기차역 (2020, 2022) by #무라세다케시 #모모

무라세 다케시의 소설 ‘세상의 마지막 기차역’은,

삭막한 세상, 인간에 냉소하는 마음들에 정공법으로 눈물을 터뜨리는, 거짓말처럼 아름답고 세련되게 신파적인 네 편의 연작 소설집이다.


*


이미 죽은 사람을 다시 만날 수 있다면.

탈선한 열차 사고로 죽은 나의 소중한 사람을 다시 만날 기회가 있다.

그건 바로 가장 가까운 역에서 출몰하는 유령열차에 오르는 것이다.

유키호라는 여고생 유령이 나타나 안내한다. 단, 네 가지의 조건이 있다.

산 자는 이미 죽을 운명인 망자를 데리고 나올 수 없다. 만약 하차시키려고 하면 현실로 돌아오게 된다.

망자에게 곧 죽을 것을 알려줄 수도 없다. 만약 산 자가 내리지 않으면 망자와 함께 사고난 지점에서 죽게 된다.

여기 네 명의 산 자가 있다. 약혼자를 잃은 자, 아버지를 잃은 자, 연인을 잃은 자, 그리고 남편을 잃은 자.

느닷없이 찾아온 이별에, 제대로 된 작별인사나 마음을 전하지 못했던 그들은 그리움이 불러온 유령열차에 올라 망자와 마주하는데…….

각 단편의 화자들은 저마다 인생의 상처와 아픔이 있는 이들로서, 망자는 그들의 삶에 버팀목 같은 존재였다.

차라리 사는 것보다 죽는 게 나을 법한 절망 속에서 그들이 오른 유령열차행은 슬픔의 애도보단 빛나는 추억을 이야기하기 위함이다.

곧 덮칠 ‘죽음’이란 그늘을 떼어내고, 오직 그 순간, 함께하는 간절한 시간의 영원성을, 평생분의 소중함을 서로에게 전하기 위함이다.

일본 장르소설 중 타임루프물은 그리 새로운 것은 아니다.

보이 밋 걸 류의 타임루프물은 시중에도 여럿 나와 있다.

사실로 말하자면, 이 소설을 처음 펼쳤을 때도 크게 기대하진 않았다.

한 소년이 소녀를 살리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그런 라이트노벨 류의 소설이겠거니 생각했다.

하지만 네 편의 연작소설, 그것도 같은 열차사고로 소중한 이를 잃은 화자들의 저마다의 사연이 유려한 문체로 이야기되기 시작하면서 내 마음은 변했다.

작가는 망자의 입장이 아니라 산 자의 입장으로 망자를 설명함으로 감동을 배가하고, 상처받은 이들, 약한 자들의 마음을 어루만지듯이 따뜻한 문체로 스며들게 했다.

첫 단편은 너무 이상적이고 아름다운 사랑만을 그려내어 좀 거리감이 느껴지지만,

그런 완전한 사랑에 대한 감각조차 상실한 우리에게 사랑의 섬세한 면면을 볼 수 있게, 떠올리게 한다.

“남남이었던 두 사람이 만나고, 손을 잡고, 입맞춤을 하는 거야. 극적이라 할 만큼 거리를 좁혀가는 방식이 대단히 멋지거든. 무엇보다 무수히 많은 사람중에서 나를 선택해줬다는 사실이 얼마나 기쁜지 몰라.” (214)

세 번째 단편은 첫 번째와 비슷한 맥락을 띈다. 그래서인지 몇몇 인물이 겹쳐서 등장한다. 역시 사랑은 숭고하다는 것, 완전한 사랑에 대한, 한층 깊은 슬픔과 애틋함을 담고 있다.

다소 현실적이었던 두 번째와 네 번째 단편은, 화자 주변을 둘러싼 세상의 어둠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살아야 할 희망조차 앗아가는 현실에서 망자를 마주해야만 하는 고뇌와 회한을 담은 세 번째 단편,

살아남은 자의 슬픔이 너무도 사무치게 다가오는 네 번째 단편.

소설은 ‘시간을 되돌려 죽은 사람을 다시 만난다’는 것을 골자로 하지만, 사실 그보다 더 중요한 의미를 말하는 것 같다.

사람과 사람의 관계, 그 목숨과도 같은 소중한 것을 말하기 위해서 많은 인명이 희생된 열차 사고를 끌어왔는지도 모른다.

죽음 앞에서 사람은 가장 솔직하고 가장 순수하기에.

유난히 자연재해가 잦고 언제든 죽음의 위협이 도사리는 일본이라는 나라를 생각해봤다.

아니, 일본뿐 아니라 우리 모두를.

기댈 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최고의 방공호도, 안전장치도, 피난소도 아닌,

역시 ‘사랑’이라고,

죽음보다 강한 그것이라고,

별수 없이 신파적인 이 소설이 내게 가르쳐줬다.

“인간이 이렇게 아름다운 존재인 걸 알았더라면.” (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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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남이었던 두 사람이 만나고, 손을 잡고, 입맞춤을 하는 거야. 극적이라 할 만큼 거리를 좁혀가는 방식이 대단히 멋지거든. 무엇보다 무수히 많은 사람중에서 나를 선택해줬다는 사실이 얼마나 기쁜지 몰라. (214)

도모코, 마음이 병든 건 착실히 살아왔다는 증거란다. 설렁설렁 살아가는 놈은 절대로 마음을 다치지 않거든. 넌 한 사람을 진심을 사랑했기 때문에 마음에 병이 든 거야. 마음의 병을 앓는다는 건, 성실하게 살고 있다는 증표나 다름없으니까 난 네가 병을 자랑스레 여겼으면 싶다. (80)

사람을 많이 만나야 해. 사람을 꺼리면 안 된다. 삶에서 해답을 가르쳐주는 건 언제나 삶이거든. 컴퓨터나 로봇이 아니라, 모든 걸 가르쳐주는 건 사람이다. 그러니 용기를 내서 사람을 만나봐라. 사람들과 대화도 많이 하고. (161)

다들 사랑하는 사람이 계속 살아주기를 바랐거든. 난 그게 참 아름답더라. (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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