묘사의 기술 - 느낌을 표현하는 법
마크 도티 지음, 정해영 옮김 / 엑스북스(xbooks)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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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묘사는 생각의 방식이다.” 라고 말한다.

우리가 접하지 못했던 다양한 영시를, 언어를 초월한 인간의 감각을 사용하여 보다 섬세하게 ‘느낄 수 있게’ 돕는 책이다.

*

“우리가 흡수할 수 있는 것은 세상에 대한 부분적인 해석일 뿐이다.” (13)

이러한 부분적인 해석을 나만의 언어의 세계로 만들어 타인을 초대하는 것, 이것이 묘사가 아닐까 생각한다.

마크 도티의 ‘묘사의 기술’은 매우 지적이면서도 어려운 책이다.

작가가 시인인데다 영어로 쓰기 때문에 한 차례 걸러서 내게 와 닿는 게 퍽 쉽지 않다.

시는 모국어로 읽을 때 가장 참맛이 아니던가.

그럼에도 이 책이 매우 의미 있는 것은, 저자가 소개하고 있는 멋진 시들 때문이다.

엘리자베스 비숍의 ‘물고기’, 헨리 본의 ‘그의 책에게’, 조지 허버트의 ‘기도’, 제라드 맨리 홉킨스의 ‘별이 빛나는 밤’, 엘런 샤피로의 ‘해바라기’ 등 수없이 많은 시들이 등장한다.

영시라면, 에즈라 파운드, 에밀리 디킨슨, W.H 오든 정도만 알고 있는 내게 이 책에 등장하는 시인과 시들은 그야말로 새로운 세계였다. 제대로 다 이해하지 못하는 좌절감도 있었지만.

교수이기도 한 그가 풀어내는 영시들의 다양한 수사법과 묘사의 세계는 영미문학을 전공하거나 영시를 좋아하는 사람에게 더없이 유익할 거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다만 생소한 영시들인데다 원본이 실려 있지 않고, 아무래도 시를 다루다 보니 번역문도 상당히 추상적인 표현이 많아 가독성 면에서 아쉬운 점이 있다.

"모든 설명들은 부분적인 것 같다. 따라서 모든 지각은 감정적이고, 해석의 기회이며, 추측 게임이라고 할 수 있다.“ (13)

책은 크게 두 부분을 나눠 있는데, 첫 부분은 구체적인 시들을 들어 묘사의 예를 설명, 해석하고 있다면, 두 번째 부분은 기술적인 부분이다.

“경험의 질감을 재현하려는 작가에게, 아름다움은 단순히 정확함, 즉 진짜처럼 보이는 것에 최대한 근접하는 것이다.” (153)

묘사의 진실성을 탐구하는 저자의 전문성은 E.E. 커밍스의 시를 해석할 때 빛을 발한다.

소설가 제니퍼 이건이나 조나단 사프란 포어 등이 관습을 타파하는 표현의 방식으로 시도하기도 했던 언어의 해체, 여백, 도식적인 표기, 배열, 낯설게 하기 등을 시에서 접하는 것은 처음이다.

그러고 보니 음표로 표기해온 악보, 작곡가의 시그니처이자 음악의 권위를 증명해온 악보의 개념을 타파한 존 케이지가 떠오른다.

"초시간성 (timelessness)이라는 또 다른 종류의 시간성도 존재한다. 이 서정적인 시간에서 우리는 시간이 순방향으로 이동한다는 인식을 멈춘다. 서정적 시간은 과거의 영향과도, 다가올 사건들에 대한 예상과도 관련이 없다.“ (33)

음악이든 시든 중요한 것은 유물처럼 추앙받아온 그것의 나이테가 아니라 시간의 존재를 부수어버리고 언제든 새로운 ‘감각’, ‘현실성’, ‘우연성’의 미지의 세계를 함께 공유하는 것이 아닐까.

민트색의 자그마한 글쓰기 책 , 그러나 담고 있는 것은 미국 현대 영시의 가장 중요한 정수를 맛본 것 같다.

부족한 나로서는 여전히 모자라지만 어떤 ‘느낌’을 조금, 아주 조금이나마 알 것 같았다.

한마디로, "느낌 아니까~" 를 배우기 위한 책.

묘사는 생각의 방식이다. (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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