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백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18
미나토 가나에 지음, 김선영 옮김 / 비채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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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글맘이자  학교의 교사로 살아가던 유코는 어느 날 불의의 사고로 어린 딸을 잃게 된다.
그러나 단순한 사고인 줄만 알았던 딸의  죽음이 자신의 학교 학생 그것도 자기반 제자들이 벌인
살인인 것을 알게 되고 봄방학을 앞둔 종업식날 유코는 반 아이들을 상대로 차분하면서도 차가운
고백을 시작한다.

첫 장부터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또 그 일의 범인과 가해자를 알고 있는 피해자의 가족이 그 사건을
어떻게 대처했는가 자세히 일러주고 있는 소설은 각 장마다 사건에 직간접적으로 연관되어 있는
인물들의 시점에서 이야기를 풀어나가고 있어 앞부분에서 이미 밝혀진 살인의 전말때문에 김이
진다든지 하는 일은 결코 없다. 오히려 그러한 중요한 사건을 풀어 놔버리고도 끝까지 긴장감을
놓치지 않고 오히려 조금씩 드러나는 인물들의 비밀과 누구나 궁금해 하지만 잘 전해지지 않던
사건 이후의 인물들의 삶이 자세히 펼쳐지고 있어 마지막까지 흥미진진하며 이 말은 결코 과장이
아니다.

눈 앞에 보이는 살인 사건에만 집중한다면 어쩌면 이 소설이 갖고 있는 재미의 절반도 못 느낄 수도
있겠지만 그보다는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과 감정들의 충돌, 그리고 가족임에도
불구하고 속까지는 알 지 못함으로 인해 일어나는 비극 등에 주목을 한다면 <고백>이라는 소설이
얼마나 짜임새 있고 묵직한 울림을 주는 지 느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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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바라기가 피지 않는 여름
미치오 슈스케 지음, 김윤수 옮김 / 들녘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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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책을 읽고 연이어 만난 책마저 흥미진진하다면 그야말로 심봤다는 심정이 되지 않을까 싶은데
이 책이 그랬다.

<고백>과 마찬가지로 S라는 인물의 자살과 또 사라진 시체를 시작으로 펼쳐지는 구성과 그 사건의 진실과
그 이면에 감춰져 있던 인물들 간의 비밀과 아픔이 드러나는 결말까지 참 비슷하면서도 고맙게도 <고백>
만큼이나 높은 완성도를 가지고 있다.

<고백>이 약간은 딱딱하고 메마른 느낌이라면 <해바라기가 피지 않는 여름>은 사건을 풀어가는 화자가
아홉살 소년이니 만큼 <고백>보다는 조금 더 아기자기하면서 약간은 서정적인 느낌도 없지 않아 풍긴다.
특히 죽은 S가 죽은 뒤 며칠 뒤 거미로 환생해 미치오 앞에 나타난다든지 어린 여동생과 함께 사건을
추적해나가는 구성은 약간은 환상동화같은 느낌마저 들게 만들기도 한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거미로
다시 태어난 S의 존재나 기이한 모습으로 죽어있는 동물들, 사건을 착착 풀어나가는 미치오의 모습이
마냥 낯설거나 어색하다기 보다는 책의 내용과 무척 잘 어울려 위화감따위는 느껴지지 않는다.

또 <해바라기가 피지 않는 여름> 역시 <고백>과 마찬가지로 아니 어쩌면 조금 더 음울하게도 사람과
사람 사이에 닫힌 관계를 이야기 하고 있어 책을 읽고 나면 마음 한 켠이 묵직해지는데 아.. 이렇게도
이런 주제를 풀어낼 수 있구나 하는 감탄과 동시에 어린 아이가 주체가 되어 알게 되는 이야기치고는
너무 무겁지 않나.. 어쩌면 이런 게 현실인가.. 등등 그야말로 만감이 교차하게 되기도 했는데..
그래서 이 책이 참 마음에 들었다. 미스터리한 사건을 추적해나가며 느끼는 속도감과 드러나는
진실들에서 느끼는 재미에 사람과 사람 사이를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만드는 주제까지 던져주는
이 작품이 참 마음에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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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령화 가족
천명관 지음 / 문학동네 / 201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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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뭐 이런 소설이 다 있지? 물론 이것은 절대 부정적인 의미가 아니다.
절대적으로 감탄의 의미다.

시중에 나가면 가족의 의미를 깨우쳐 주기 위한 목적임이 분명한 소설들이 참 많다.
드러내놓고 감동과 눈물샘을 자극하기 위한 소설도 있고 너무나 교과서적이고 착한
전개를 보여주는 가족 소설 또한 존재한다. 그러한 작품들 중에서도 훌륭한(다 읽어본
것은 아니지만) 작품들도 있겠지만 <고령화 가족>같은 작품은 거의 없지 싶다.

<고령화 가족>은 일찍이 <고래>를 통해 천상 이야기꾼의 재능을 보였던 천명관의 두 번째
장편이다. 고령화 가족을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막장이다. 그것도 마치 엄마나 알고 보니
누나였고 사돈의 팔촌이 알고보니 아버지였다 정도의 전개쯤은 가볍게 뛰어 넘어주는 막장이다.

자, 주인공 나는 십여년전 그 누구도 그 의도를 짐작할 수도 없다는 영화를 발표한 후 제작사를
쫄딱 망하게 만든 장본인으로 집도 절도 없이 살던 집에서도 쫓겨나게 생기자 엄마 집으로
기어들어온 중년의 남자다. 게다가 지나치게 잘난 척이 심하고 잘난 척에 비하면 소심한 편이지만
조카의 비행을 꼬투리 잡아 조카에게 무려 “삥”을 뜯는 삼촌이다. 그 뿐인가.
그의 형 오한모는 쉰 둘의 거구에다 전과 5범의 변태 성욕자로 교도소를 제 집 드나들 듯하는
인간 망종이다. 여동생 미연은 바람 피다가 들켜서 이혼 당하고 딸과 함께 친정으로 쫓겨온 인물이다. 

그렇게 한 지붕 아래 여차저차해서 모였다고 해서 이들이 결코 진한 가족애를 보이진 않는다.
가족애는커녕 상대를 대놓고 무시하고 깔보며 눈을 희번득거리며 으르렁거린다. 이정도면 막장
중에도 상 막장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작품 전체가 삼류라는 나락으로 떨어지진 않는 것은 <고래>를
통해서도 보여줬던 작가의 이야기 능력 때문이다.

천명관은 그 옛날 장터에 찾아온 장돌뱅이같다.
갖가지 물건이 아니라 세상에 존재하는 가장 재밌다는 얘깃거리들을 잔뜩 가지고 온
장돌뱅이말이다. 인간 말종에 가까운 인물들의 황당한 에피소드를 한참 쏟아내다가 어느 순간
가슴 뜨끈뜨근하게 만드는 진심을 보여준다. 서로에게 상처를 주기 위해 태어난 사람처럼
굴다가도 어머니가 차려놓은 밥상머리에 머리를 맞대고 앉아 맛있게 밥을 먹고 저 인간 귀신도
안잡아간다며 타박을 하다가도 어느 순간 내 옆에서 없어지면 금세 허전해한다.  

이 가족은 꼭 <살인의 추억>에서 추궁하던 범인에게 밥은 먹고 다니냐고 묻는 송강호의 느낌같다.

너무 재밌어서 손에 잡은 자리에서 몽땅 읽어버렸다.
전작 <고래>에 비해 보다 현대적이고 좀 더 쎈 작품이지만 그야말로 신나게 읽어내린 것이다.
아직 천명관의 소설이라곤 두 작품밖에 안읽었지만 그의 소설을 읽고 나면 진탕 한 번 놀아제낀
듯한 기분이 들어 벌써부터 그의 차기작이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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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선가 나를 찾는 전화벨이 울리고
신경숙 지음 / 문학동네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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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고 아련한 청춘의 잔상을 시처럼 써내려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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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선가 나를 찾는 전화벨이 울리고
신경숙 지음 / 문학동네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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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없는 아우성이라는 말이 내내 맴돌았다. 너무 조용조용 물 흐르듯이 흘러만 가는 것 같음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가슴 속 한켠이 두근두근 거린다. 두근두근 거리던 가슴이 어느 순간에 이윽고  

쿵쾅쿵쾅 요동을 치기 시작하다 문득 시가 쓰고 싶어지고 내 머릿속에 떠오르는 생각들이 어느새  

시가 되어 흐르고 있었다.

청춘을 표현하라 한다면 세상에 존재하는 언어만큼이나 다양한 묘사들이 쏟아져 나올지도 모른다.  

그런데 신경숙이 표현하는 청춘은 우리가 그간 표현해왔던 혹은 겪어 지나왔던 청춘과는 차이를 보인다. 

그녀의 청춘은 그리 무모하지도 그리 활발한 것도 같지 않다. 그저 청춘의 고개를 넘어서며 들었던  

부유하는 느낌, 뭔가를 하고 있어도 막막한 느낌이 먼저 와닿았다.

<어.나.벨>은 확실히 그간 읽어왔던 청춘소설과 연애소설, 그리고 통틀어 한국 소설과는 다르다.  

어쩌면 이러한 몇가지 종류만으로 분류하기에는 더 복잡다단하고 뭔가는 더 아련하고 그들을 이해하기 

에는 내가 너무 덜 감성적이다. 그들은 누구나 사랑에 빠지는 흔한 방법으로 사랑에 빠지지도 않고  

누구나 하는 사랑의 방식으로 사랑을 하지도 않는다. 뿐만 아니라 그들의 헤어짐의 방식마저도 평범하지 않다. 
 

그들은 너 나 사랑해? 안해?라고 사랑을 확인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경험했던 모든 감각, 기쁨과 슬픔,  

희망과 절망을 빌려 사랑을 표현한다. 어떻게 널리고 널린 사랑을 이렇게 표현해낼 수 있을까. 과연  

사랑에 대해 얼마나 많은 고민과 생각을 거듭해야만 그렇게 할 수 있을까하고 감탄하게 된다.

사실 이 소설은 그리 쉽게 읽히는 이야기는 아니다. 중간중간 주인공들의 아픈 감성을 느끼기 위해 잠시  

내 마음을 추스려야 할 때도 있고 서로의 마음이 한 길로 닿기까지의 길이 너무 굽이굽이 돌아가는 터라  

나도 모르게 조급함을 느끼기도 한다. 그래서 머리로 읽히는 소설이 있다면 가슴으로 읽어야 할 소설이  

있다면 바로 이 소설이 아닐까 싶은 마음도 든다.

<어.나.벨>은 아련한 청춘의 잔상만큼이나 죽음의 잔상이 짙게 깔려있는 작품이기도 한데 이상하게도  

그 죽음이 절망적인 비극으로만 느껴진다기 보다는 그저 흘러가는 인생 중에 누구나 경험하게 되는 그런  

것쯤으로 당연하게 받아들여지는데 거기에 대한 거부감도 그다지 들지 않았던 건 어쩌면 <어.나.벨>  

전체를 관통하고 있는 흐름때문일 수도 있고 죽음의 잔상이 그리 슬프지만은 않고 정윤과 명서의 사랑  

만큼 아련하게 표현되었기 때문일 수도 있을 것 같다. 

 

만약 내가 글을 쓰게 된다면 나도 이런 글을 쓰고 싶을 정도였다. 막막하게만 보이는 내 청춘을...  

때늦게 찾아온 질풍노도의 시기와 같은 내 젊은 날들을 어루만지며 따뜻한  위로를 건네는 그런 글을  

쓰고 싶게 만드는 소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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