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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선가 나를 찾는 전화벨이 울리고
신경숙 지음 / 문학동네 / 2010년 5월
평점 :
소리없는 아우성이라는 말이 내내 맴돌았다. 너무 조용조용 물 흐르듯이 흘러만 가는 것 같음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가슴 속 한켠이 두근두근 거린다. 두근두근 거리던 가슴이 어느 순간에 이윽고
쿵쾅쿵쾅 요동을 치기 시작하다 문득 시가 쓰고 싶어지고 내 머릿속에 떠오르는 생각들이 어느새
시가 되어 흐르고 있었다.
청춘을 표현하라 한다면 세상에 존재하는 언어만큼이나 다양한 묘사들이 쏟아져 나올지도 모른다.
그런데 신경숙이 표현하는 청춘은 우리가 그간 표현해왔던 혹은 겪어 지나왔던 청춘과는 차이를 보인다.
그녀의 청춘은 그리 무모하지도 그리 활발한 것도 같지 않다. 그저 청춘의 고개를 넘어서며 들었던
부유하는 느낌, 뭔가를 하고 있어도 막막한 느낌이 먼저 와닿았다.
<어.나.벨>은 확실히 그간 읽어왔던 청춘소설과 연애소설, 그리고 통틀어 한국 소설과는 다르다.
어쩌면 이러한 몇가지 종류만으로 분류하기에는 더 복잡다단하고 뭔가는 더 아련하고 그들을 이해하기
에는 내가 너무 덜 감성적이다. 그들은 누구나 사랑에 빠지는 흔한 방법으로 사랑에 빠지지도 않고
누구나 하는 사랑의 방식으로 사랑을 하지도 않는다. 뿐만 아니라 그들의 헤어짐의 방식마저도 평범하지 않다.
그들은 너 나 사랑해? 안해?라고 사랑을 확인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경험했던 모든 감각, 기쁨과 슬픔,
희망과 절망을 빌려 사랑을 표현한다. 어떻게 널리고 널린 사랑을 이렇게 표현해낼 수 있을까. 과연
사랑에 대해 얼마나 많은 고민과 생각을 거듭해야만 그렇게 할 수 있을까하고 감탄하게 된다.
사실 이 소설은 그리 쉽게 읽히는 이야기는 아니다. 중간중간 주인공들의 아픈 감성을 느끼기 위해 잠시
내 마음을 추스려야 할 때도 있고 서로의 마음이 한 길로 닿기까지의 길이 너무 굽이굽이 돌아가는 터라
나도 모르게 조급함을 느끼기도 한다. 그래서 머리로 읽히는 소설이 있다면 가슴으로 읽어야 할 소설이
있다면 바로 이 소설이 아닐까 싶은 마음도 든다.
<어.나.벨>은 아련한 청춘의 잔상만큼이나 죽음의 잔상이 짙게 깔려있는 작품이기도 한데 이상하게도
그 죽음이 절망적인 비극으로만 느껴진다기 보다는 그저 흘러가는 인생 중에 누구나 경험하게 되는 그런
것쯤으로 당연하게 받아들여지는데 거기에 대한 거부감도 그다지 들지 않았던 건 어쩌면 <어.나.벨>
전체를 관통하고 있는 흐름때문일 수도 있고 죽음의 잔상이 그리 슬프지만은 않고 정윤과 명서의 사랑
만큼 아련하게 표현되었기 때문일 수도 있을 것 같다.
만약 내가 글을 쓰게 된다면 나도 이런 글을 쓰고 싶을 정도였다. 막막하게만 보이는 내 청춘을...
때늦게 찾아온 질풍노도의 시기와 같은 내 젊은 날들을 어루만지며 따뜻한 위로를 건네는 그런 글을
쓰고 싶게 만드는 소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