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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령화 가족
천명관 지음 / 문학동네 / 2010년 2월
평점 :
세상에 뭐 이런 소설이 다 있지? 물론 이것은 절대 부정적인 의미가 아니다.
절대적으로 감탄의 의미다.
시중에 나가면 가족의 의미를 깨우쳐 주기 위한 목적임이 분명한 소설들이 참 많다.
드러내놓고 감동과 눈물샘을 자극하기 위한 소설도 있고 너무나 교과서적이고 착한
전개를 보여주는 가족 소설 또한 존재한다. 그러한 작품들 중에서도 훌륭한(다 읽어본
것은 아니지만) 작품들도 있겠지만 <고령화 가족>같은 작품은 거의 없지 싶다.
<고령화 가족>은 일찍이 <고래>를 통해 천상 이야기꾼의 재능을 보였던 천명관의 두 번째
장편이다. 고령화 가족을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막장이다. 그것도 마치 엄마나 알고 보니
누나였고 사돈의 팔촌이 알고보니 아버지였다 정도의 전개쯤은 가볍게 뛰어 넘어주는 막장이다.
자, 주인공 나는 십여년전 그 누구도 그 의도를 짐작할 수도 없다는 영화를 발표한 후 제작사를
쫄딱 망하게 만든 장본인으로 집도 절도 없이 살던 집에서도 쫓겨나게 생기자 엄마 집으로
기어들어온 중년의 남자다. 게다가 지나치게 잘난 척이 심하고 잘난 척에 비하면 소심한 편이지만
조카의 비행을 꼬투리 잡아 조카에게 무려 “삥”을 뜯는 삼촌이다. 그 뿐인가.
그의 형 오한모는 쉰 둘의 거구에다 전과 5범의 변태 성욕자로 교도소를 제 집 드나들 듯하는
인간 망종이다. 여동생 미연은 바람 피다가 들켜서 이혼 당하고 딸과 함께 친정으로 쫓겨온 인물이다.
그렇게 한 지붕 아래 여차저차해서 모였다고 해서 이들이 결코 진한 가족애를 보이진 않는다.
가족애는커녕 상대를 대놓고 무시하고 깔보며 눈을 희번득거리며 으르렁거린다. 이정도면 막장
중에도 상 막장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작품 전체가 삼류라는 나락으로 떨어지진 않는 것은 <고래>를
통해서도 보여줬던 작가의 이야기 능력 때문이다.
천명관은 그 옛날 장터에 찾아온 장돌뱅이같다.
갖가지 물건이 아니라 세상에 존재하는 가장 재밌다는 얘깃거리들을 잔뜩 가지고 온
장돌뱅이말이다. 인간 말종에 가까운 인물들의 황당한 에피소드를 한참 쏟아내다가 어느 순간
가슴 뜨끈뜨근하게 만드는 진심을 보여준다. 서로에게 상처를 주기 위해 태어난 사람처럼
굴다가도 어머니가 차려놓은 밥상머리에 머리를 맞대고 앉아 맛있게 밥을 먹고 저 인간 귀신도
안잡아간다며 타박을 하다가도 어느 순간 내 옆에서 없어지면 금세 허전해한다.
이 가족은 꼭 <살인의 추억>에서 추궁하던 범인에게 밥은 먹고 다니냐고 묻는 송강호의 느낌같다.
너무 재밌어서 손에 잡은 자리에서 몽땅 읽어버렸다.
전작 <고래>에 비해 보다 현대적이고 좀 더 쎈 작품이지만 그야말로 신나게 읽어내린 것이다.
아직 천명관의 소설이라곤 두 작품밖에 안읽었지만 그의 소설을 읽고 나면 진탕 한 번 놀아제낀
듯한 기분이 들어 벌써부터 그의 차기작이 기다려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