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로스파이어 1
미야베 미유키 지음, 권일영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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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을 올리는 일이 실은 두 가지 면에서 조금 조심스럽습니다. 아직 국내에 소개가 되지 않은 작품인걸로 알고 있는데다, 약간은 우습게 들 리실 수도 있겠지만 ‘고단샤 인터내셔널’이라는 출판사를 통해 발행된 영어 번역본으로 읽었기 때문인데 이 후자의 경우가, 작품을 읽고 해석 하는 독자 입장에서 생길 수 있는 실수의 폭을 우리글 번역본으로 읽었 을 때보다 훨씬 크게 만들 수 있다는 걸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책을 다 읽고 난 지금의 입장에서 확실하게 말할 수 있는 또 다른 두가 지가 있는데요, 그중 하나는 만약 이 글이 ‘미야베 미유키’여사의 것이 아니었다면, 35행으로 이루어진 페이지를 400여번 읽어나가는 일이 그 야말로 지루하고 고단한 작업이었을 거라는 겁니다. 창피하지만 말하는 저도 확실한 구분 기준을 가지고 있지 않기에 어떤 식으로 표현해야 좋 을런지 모르겠지만 여튼, 작가들 중엔 ‘글을 잘 쓰는 이’와 ‘이야기를 잘 하는 이’가 있다라는게 늘 저를 따라다니는 의견이었는데요, ‘미야베 미 유키’여사는 그중 후자 쪽에 좀 더 가까운게 아닌가 하고 생각합니다. 매번 여사가 쓴 책을 읽을 때마다 느끼는 거지만 글을 읽고 있는게 아니 라 이야기를 듣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거든요.

-작가의 작품을 대할 때마다 느끼는- 또 다른 사실 한 가지는 그녀가 창 조해 내는 캐릭터들이 무척이나 살아있어 보인 다는 점인데요, -이것 역 시 어떤 식으로 설명해야 좋을지 난감하긴 마찬가지지만- 그러니까 작 가가 만들어내는 인물들의 이미지가, 제가 읽은 여타의 작품속 인물들 과는 좀 다르게, 제 머릿속에서 -그 둘이 매우 비슷할거라는 것에 대한 확신을 할 수는 없지만- 아주 또렷하게 그려진다는 점입니다.

이 책 ‘CROSSFIRE’에서, 주인공 여자의 남편 이미지가 짧은 순간 아내 의 묘사를 통해 -이 남편은 작품 전체를 통해 이 순간 단 한번(단순 언급 을 제외하면) 등장합니다- 머릿속으로 옮겨지고 있다는 걸 느꼈을 때는 살짝 소름이 돋을 정도였으니까요. 그리고 이것은 ‘미야베 미유키’여사 만이 가지고 있는 독보적인 영역이라고 생각합니다. 사람의 내면을 들 여다 보고 파악하여 자신만의 살아있는 또 다른 캐릭터를 만들어 내는 일은 결코 ‘아무나’ 할 수 있는 아니기 때문이니까요. 하고자 하는 말에 어울리는 비유인지는 모르겠지만 굳이 예를 들자면, 훌륭한 뉴스 아나 운서가 뛰어난 토크쇼 진행자가 되리란 보장은 없고 최고의 선수가 언 제나 명장,덕장이 되는건 아니라고 알고 있거든요.

위에서 말씀드렸지만 국내에 아직 소개가 되지 않은 작품이기에 더더욱 (아니 그렇게 알고 있기에) 이 책의 줄거리에 대한 약간의 언급도 앞으 로 읽을 이의 흥미를 떨어뜨릴 지도 모른다고, 뭐 저는 그렇게 -영화건 책이건 모르는 만큼 이득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앞서 말씀드린 두 가지 확실한 것중 하나로 이 시시한 글을 끝내는 게 좋을 것 같은데요, 그 다른 하나는, 만약 제가 영화제작자이고 여사의 작품중 한편을 영화 로 만들 기회가 주어진다면 전 주저없이 이 ‘CROSSFIRE’를 선택할 것 이라는 겁니다. (실제 영화로도 만들어 진 걸로 알고 있습니다. 그만한 이유가 있었겠죠^^.)

단 한가지 걱정스러운 점은, 이 작품이 나온 해가 1998년도인데 -단순 히 배경이 되는 소재만 놓고보면- 그간 10년 헐리우드에서 이 비슷한 장르(?)를 많이 해먹었던 터라 독자들에게 약간의 지루함을 선물할 수 도 있다는 겁니다. 사실 10년이란 터울은, 제가 생각하기에, 유행에서 밀려나기엔 충분하지만 향수를 불러일으키기엔 조금 모자란 세월이니 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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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own the Rabbit Hole (Mass Market Paperback)
Peter Abrahams / Harpercollins Childrens Books / 200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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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저 나에게 맞는 -너무 어렵지 않고 또한 너무 쉬워서는 곤란한- 책을 찾기 위해, 딱히 손에 쥔 이렇다 할 정보도 없이 대형 서점의 ‘CRIME NOVEL’ 섹션을 우왕좌왕 건들거리던 저의 눈을 잡아 끈 것은 지금 소 개할 작품의 책 표지에 적힌 -“My all-time favorite. Astonishing.”-‘스티븐 킹’의 한 줄 헌사였습니다. 그의 작품을 단 한 권 읽어본 적은 없 어도 -기초가 된 영화들 중의 어느 한편이 수많은 누군가의 ‘HAVE SEEN LIST’에 분명히 들어있을 거라는 나름의 추측과 더불어- 세간에 알려진 명성은 익히 들어 알고 있었기에 그 직후 최종 결정에 이르렀던 시간은 이 책이 진열된 코너 앞에 서기까지 걸린 그것에 비하면 ‘찰 나’였다고 말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2006 Agatha Award Winner-Young Adult’란 타이틀은 그 가속페달에 올려진 또 하나의 묵직한 추 가 되었구요.)

생일로부터 3주 지난 미국 어느 변두리 마을의 13살 짜리 소녀가 주인 공임을 말하고 있는 책 첫마디로부터 떠오른 이전에 읽었던 14살 짜리 영국 소년의 세계를 무대로 한 첩보 액션 어드벤쳐 시리즈보다 조금은 더 쉽게 읽힐 것이라는 믿음은 10여 페이지를 넘기면서 온데간데 없이 사라지고, 어느 순간 전 수 많은 구어체 대사들과 우리가 흔히 ‘IDIOM’ 이라고 부르는 생소한 구절들, 그리고 제 수준의 영어에서 슬랭이라고 밖에는 달리 말할 길이 없는 낯선 표현들과 ‘cul8r’같은 인터넷 채팅 용 어(?)들이 난무하는 알파벳의 바다에서 허우적거리고 있었습니다. 마치 최고 수심이 가슴높이까지 밖에 오지 않는 얕은 풀에서 놀다가 키를 훌 쩍 넘기는 파도가 몰려오는 거친 해변으로 던져 진 것 처럼요…ㅋㅋ

대략의 줄거리는 이렇습니다. 학교 대표 축구 선수에 배우로서의 뛰어 난 재능도 가지고 있으며 동시에 ‘홈즈’의 일거수일투족을 외우고 있고 또 실천으로 옮기려고 노력하는 ‘셜로키언’ ‘잉그리드’ -그녀의 어머니 가 좋아하는 영화배우 ‘잉그리드 버그만’으로부터 이름 지어진- 가 어느 날 우연히(여느 추리소설에서처럼) 같은 마을의 비교적 온전치 않은 정 신을 가진 중년 여자의 살인 사건에 말려 들게 되면서, 어찌하여 사건 현 장에 재수없이 남겨진 -자신이 그 여자와 죽기직전 사전 접촉이 있었다 는 사실을 탄로 낼 수 있는- 한 켤레 축구화로부터 시작된, 그녀의 비밀 단독 수사가 시작됩니다. 그러던 와중 이 책의 제목처럼(DOWN THE RABBIT HALL) 자신도, 살인사건도 어두컴컴한 미궁 속으로 빠져들어 가게 만드는 ‘ECHO FALLS’마을 의 음산하고 핏빛 묻은 과거사에 대해 하나 둘 알아가기 시작합니다.

고백하건대, 만약 이 책이 열 댓 명의 용의자들을 리스트 상에 올려놓고 범인 찾기를 진행해 나가는 고난도 수수께끼 풀이 식의 본격 추리소설 이었다거나 –그 뜻이 애매모호한 형용사들과 확실한 의미 파악이 쉽지 않은 명사들로 인해- 우리말로의 전이가 용이치 않은 문장들로 범벅 된 심리 스릴러였다면, 어쩌면 도중에 슬그머니 이 책을 놓아버렸을 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청소년 독자들을 대상으로 쓰여진 글 이기에 그렇기도 하겠지만- 이 작품은 중반 이후부터 굳이 ’16년 동안 추리소설만을 고집해온’ 이가 아닐지라도, 16권 정도의 목록은 필요할 지도 모르겠지만, 충분히 예측이 가능한 –저 스스로는 범인이 밝혀지기 직전의 마지막 순간까지도, 앞서의 힌트처럼 보이는 것들이 거짓 암시 일 것이라고 생각한- 결말을 향해 나아갑니다.

(실은, 책을 읽는 동안 줄곧 따라다닌 생각이 있었는데요, -나이차가 있 긴 하지만- 독립심 강한 여성 캐릭터가 주인공인 것부터 그녀가 살고 있 는 마을을 사건의 배경으로 하고 있다는 점, 그리고 무엇보다 그녀의 엉 뚱함으로부터 만들어지는 –가끔은 영어이기에 웃을 수 있는, 하지만 영 어라서 알아듣기까지 엄청난 시간이 소비된- 코믹한 표현들, 이런 것들 이 ‘자넷 이바노비치’가 쓴 스테파니 플럼 시리즈의, ‘원 포더 머니’ 달랑 하나로부터 추측해 보는 것이라 확신을 가지고 주장하기엔 턱없이 모자 라지만, 그것과 무척 많이 닮아있다는 것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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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ath of a Red Heroine : Inspector Chen 1 (Paperback)
Qiu Xiaolong / Sceptre / 200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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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처음 ‘Qui Xiaolong’이라는 전혀 생소했던 이름을 알 게된 것은 영 국의 출판 그룹 ‘펭귄’에서 시리즈물로 발간한 ‘러프 가이드(ROUGH GUIDES) -우리로 치면 ‘지식 총서’ 정도- 중의 하나인 ‘크라임 픽션’(사 진 참조)을 통해서였습니다. 영국의 ‘추리소설’ 전문 잡지인 ‘크라임 타 임’의 편집장을 맡고 있는 ‘Barry Forshaw’라는 이에 의해 완성된 이 책 은 이 장르를 몇개의 카테고리로 분류한 뒤 그 섹션에 마땅히 들어가야 할 발군의 작품들을 글쓴이의 대략적인 이력과 함께 소개하는 형식을 취하고 있는데요, 그 가지들 중의 하나가 뛰어난 비영어권 작가들을 알 리는데 할애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여기엔 아시아인으로서 는 단 두명의 작가만이 이름을 올리고 있는데, 그 중 한 사람이 이 ‘Qui Xiaolong’이라는 분이고 또 다른 한 사람이 바로 ‘미야베 미유키’여사 입니다.

글쓴이 개인의 의견이긴 하지만 ‘미야베 미유키’와 동급의 점수를 매겨 놓았다는 점은 그녀의 왕팬인 제 궁금증을 불러일으키게 하기에 충분했 고 중국 출신 추리소설 작가라는 낯설음이 가져다 준 프리미엄은 그 호 기심을 증폭시켰습니다. 그리고 어느날, 시간이 흘러 무의식 속에 숨어 있던 그 희미한 기억은 서점 ‘크라임 섹션’ 한 구석에 웅크리고 있던 동 양의 냄세가 물씬 나는 이 책이 진열되어 있는 곳으로 결국 저를 끌고 갔습니다.

바른대로 말씀 드리자면 책을 사들고 와서 처음 펼치기까지 제법 시간 이 걸렸습니다. ‘메이드 인 차이나’(영어로 씌어지긴 했지만)가 완성품 의 질을 보장하지 못하다는 말과 같다는 등식에 워낙 오랫동안 길이 들 여져 왔던 탓에 언뜻 보기에도 두툼한 책의 첫페이지를 선뜻 열어볼 용 기가 나질 않았거든요. 마치 검은 보자기로 싸여진 유리상자안에 뭐가 들었나 궁금하긴 한데 막상 손을 집어넣으려니 원인모를 찜찜함이 자꾸 팔을 끌어 당기는 것 같다고나 할까요? 뭐, 결국은 용기를 내서 밀어넣 었습니다. 결론은… 잘했죠. 아니었으면 ‘미야베 미유키 여사’가 주었던 희열(에 비하면 아직은 모자란듯 하지만 그녀만큼의 충분한 능력을 가 진)의 또다른 버전을 놓쳤거나 그 즐거움을 느끼는 것이 한참 뒤로 미뤄 질 뻔 했으니까요.

분량도 만만챃은 데다 충분치 않은 영어실력 탓에 첫 페이지를 펼친 뒤 로 오랜시간이 걸려 도착한 이 책의 마지막 장을 덮고난 뒤 처음 든 생 각은 -좋은 글을 읽고나면 언제나 그렇듯- 이 기분을 어떻게 표현하면 좋을까? 하는 것이었습니다. 마치 아름답고 신비스런 영화를 봤는데 혼 자 알고 있기 아까워 주위 사람들에게 알리고는 싶은데 ‘모자란’ 말주변 때문에 시름에 빠진 상황이랑 비슷하다고 할까? 특히, 아직은 우리에게 익숙하지 않은 중국인 작가에 의해 중국을 배경으로 씌여졌다는 점때문 데 더 신경이 쓰였습니다. 왜냐하면 그 사실이 이 글을 훨씬 더 읽어볼 만한 책으로 만드는데 한 몫 하고 있다고 생각했거든요. 암튼, 대강의 내 용은 이렇습니다.

1990년의 상하이, 서쪽으로 20마일 정도 떨어진 어느 운하에서 한 젋 은 여인의 변사체가 발견됩니다. 이에, 상하이 경찰 특별 수사본부 소속 의 ‘YU’ 형사와 그의 상관이자 이 작품의 주인공인 ‘CHEN CAO’ 형사가 이 살인 사건의 조사에 뛰어들게 되고 사건 해결을 위한 전담 수사반도 꾸려집니다. (그렇다고 일본 영화나 책에서 보아 왔던 중대 단위의 인력 이 동원되는 건 아닙니다. 원래의 수사 팀에서 은퇴를 막 앞둔 당 고위 간부가 한명 더 느는 정도.) 하지만 시간이 흘러도 마땅한 사건 해결의 단서가 될만한 정보는 나오질 않고 수사는 마냥 제자리 걸음을 하는 듯 합니다. 사체의 신원이 밝혀지고 당 유력간부의 아들이자 천부적 재능 을 가진 사진작가인 ‘WU’가 유력한 용의자로 떠오르기 전까지는요…

작가는 전반부의 상당부분을 등장 인물의 면면을 소개하고 후반부를 위 한 복선을 준비하는 데 할애하고 있습니다. ‘좀 늘어지는 느낌이네’라고 생각했었으니까요. 하지만, -어쩌면 이 나라 역사에 대해 잘모르는 저 같은 독자들을 위한 것인지도 모르는- 중국 근대를 살아온 주인공들에 대한 개인사를 동반한 간략한 소개가 끝나고 본격적인 수사가 시작되는 전반 후반부 부터 이 작품은 흥미를 더합니다. 미궁으로 빠질 것 같았던 수사가 차츰 진척되는 상황을 통해서 만들어지는 스릴과 더불어서, 문 단을 통해 등단한 시인이자 영어 작품의 번역일도 간간히 하고 있는 주 인공 ‘CHEN’ 형사의 눈을 통해 들여다본 ‘천안문 사태’ 직후의 격변하 는 중국사회상과 그 시대를 살아가는 인물들의 이야기를 듣는 재미도 쏠쏠합니다.

이쯤에서 책에 대한 소개를 이 정도로 끝내려하니 한참 모자란 제 능력 에 자꾸만 한 숨이 나오는 군요. 앞으로 국내에 소개가 될 지 안 될지는 모르겠지만 만약 소개가 된다면 꽤 성공할거라는 쪽에 저는 내기를 걸 고 싶습니다. 왜냐하면 이 책을 읽는 독자들이 아마도 책을 덮을 때쯤엔 주인공을 포함한 주변 인물들을 사랑하게 되지 않을 수 없을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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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차관의 살인 아야츠지 유키토의 관 시리즈
아야츠지 유키토 지음, 김은모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1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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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끄러운 얘기지만 한동안 ‘본격’이라고 불릴만한 장르에 소원했었어 요. 딱히 이유가 있었던 건 아니고 ‘decca’님께서 <올해의 추리소설 이 벤트> 서두에서 쓰셨던 표현을 빌리자면 ‘시달리고 피곤했기’ 때문이 죠.^^ 지친 몸을 간신히 끌어와 책상 앞에 앉으면, 아무래도 사람 피곤하 게 하는 ‘본격’보다 술술 읽히는 ‘드라마’색 짙은 책들에 먼저 손이 가게 되더라구요. 솔직히 나쁘지 않았어요. 난해한 수수께끼 풀이에 몸이며 머리를 축내는 일 없이, 작가가 그려가는 크고 작은 세상사들에 함께 울 고 웃다가 때론 안타까워하기도 하면서 그저 따라가기만 하면 됐으니까 요. 그러니까…’아리스가와 아리스’가 ‘수차관의 살인’ 서평에서 말한 것 처럼 ‘추리’소설이 아닌 추리’소설’에 ‘익숙해지게’ 된거죠.

그러던 어느 날, ‘어, 내가 이래도 되나?’하는 생각이 문득 들더라구요. 그리고 책장을 훑어 봤는데 ‘본격’ 쪽에 걸칠만한 책들은 이가 빠진 ‘엘 러리 퀸 컬렉션’을 제외하면 정말 숨은 그림 찾기더군요. 으음…이건 아 니다 싶었죠. 사실 계기가 있긴 있었는데, 미스테리라고 하기엔 거리가 먼듯한 ‘사쿠라바 가즈키’와 ‘미치오 슈스케’의 나오키상 수상작을 손에 들고 갈등하는 나를 보게 된거죠. ‘아니야…이대로 무너지면(?) 안되지.’ 하는 생각에 결국 내려놓았어요. 그리곤 반성하기 시작했구요. 암요, 사 람이 근본을 잊으면 안되는 거죠. ㅎㅎ

사실 그렇게 마음은 다잡았어도 본격물 읽기는 여전히 녹녹하지 않았어 요. ’마쓰다 신조’의 신작을 펼쳐 들었다가 한 페이지 가득 빽빽하게 나 열된 등장 인물들과 가계도를 보고는 식겁해서 내려놓고 서양 고전은 시작하기도 전에 고리타분할 것 같다는 편견이 머릿속에 들러 붙어 떠 나질 않고… 정말 난감했어요. 그렇게 우왕좌왕하던 중에 <수차관의 살 인>이 눈에 들어오게 됐어요. 검정 바탕에 원색을 사용한 표지 디자인 이 마음에 들어 전부터 눈 여겨 보고 있었는데, ‘그래, 이 때다!’ 싶은 생 각이 들더라구요. 사는 김에 <인형관…>이랑 <흑묘관…>도 함께 집어 들 었어요. (오늘 <기면관…>까지…) 본격에 진 마음의 빚을 조금은 더는 느 낌이었죠. ㅎㅎ

책 이야기 하는데 서두가 너무 길었군요. -,-;; 작심은 했지만 책을 펼쳐 들면서도 큰 기대는 하지 않았어요. 바로 위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부채 를 갚는 듯한 느낌으로 시작한 거거든요. 그런데… 이 책… 읽어 나가는 데, 피곤은 커녕 졸음이 싹 달아났어요. 제 생애 본격물을 하루 만에 끝 내 본 건 아마도 이 책이 처음이지 싶어요. 본격이 이렇게 잘 읽혀도 되 나 싶은 생각마저 들었구요. 공간에 대한 감각이 한참 뒤떨어져 이런 장 르의 책 읽기는 거의 포기해야 하는 게 아닌가 하고 늘 생각했었던 제가 부끄러울 정도로, <수차관의 살인>은 선명하게 그림이 그려졌어요. 그 러다 보니 시,공간 그리고 수많은 등장인물을 정리하느라 허덕일 필요 가 없어졌고, 그 덕분에 나름의 논리를 전개 시켜 나갈 수 있을 만큼의 여유마저 생겼죠. 그리고 결국, 중반을 넘어서면서 첫 번째 살인에 사용 된 트릭과 그 범인에 대한 윤곽을 어느 정도 파악하게 되는 소기의 성과 (?)마저 거두게 됩니다. 물론 여기엔 작가가 설치한 장치들이 그리 낯설 지 않았다는 이유도 한 몫 했는데요, 만약 당신이 ‘능력자’라면 초장에 그 낌새를 알아차리실 수도 있을 겁니다. 그 만큼 이 작품의 트릭은 공 정하고 명쾌합니다. 곳곳에 깔아 놓은 자잘한 복선들이 하나둘 회수 되 는 장면을 지켜보면서 느꼈던 쾌감은 본격에서 흔히 기대하게 되는 뒤 통수를 후려치는 반전을 훨씬 뛰어넘는 어떤 것이었습니다. 부끄럽지만 저는 이 책 <수차관의 살인>이 <그리스 관의 미스테리>을 포함해 이런 경험을 맛보게 해준 두번째 작품입니다.

< 수차관의 살인>을 통해 느끼게 된 것이 많지만 그렇다고 앞으로 줄기 차게 ‘본격’을 찾을 것 같지는 않아요. ‘피곤한’ 인생, 여전히 드라마에 목을 매겠죠.ㅎㅎ 그래도 이전처럼 시작도 하기 전에 겁을 먹는 일은 다 시 없겠죠. 기다려라! <염매처럼…>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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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린 머리에게 물어봐 - The Gorgon's Look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20
노리즈키 린타로 지음, 최고은 옮김 / 비채 / 201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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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 자유게시판에 올린 제 도움 요청(?)의 글을 보고 이곳으로 오신 것 이리라 추측하지만 혹시나 하는 염려때문에 다시 주의를 드립니다. 이 글은 ‘잘린 머리에게 물어봐’의 결말 누설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노리즈키 린타로’와 ‘구노’ 경부가 16년전 그 산부인과에서 있었던 일 을 알아내기 위해 그 당시 원장으로 일했던 할아버지 집을 찾아가 이야 기를 나누는 마지막 장면, (그러니까 사건의 전모가 노리즈키 린타로에 의해서 밝혀지기 직전 부분이 됩니다) ‘가가미 요코’란 이름으로 찾아간 ‘가와시마 리쓰코’가 그 원장에게 혼수 상태에서 “’동생’에게 험한 일을 당했다.”라고 말했었다는 설명이 나옵니다. (그러니까, 당시의 원장이 그런식으로 들었다고 이야기하고 있는 거죠)

전 그 대사를 읽을 때, 그 ‘동생’이란 단어가 죽은 ‘가와시마 이사쿠’의 동생인 ‘가와시마 아쓰시’라고 생각했습니다. 가가미 요코가 가와시마 이사쿠와 당시 내연의 관계였던 걸로 되어있는 데다 가가미 요코가 자 살한 시점을 전후로 해서 두 형제의 사이가 틀어졌다고 했던 게 얼핏 생 각났기 때문입니다. 사실 이것 때문에 다음 챕터에서 갑자기 가가미 부 부가 범인이었다고 했을 때 좀 많이 놀라면서 당황했고, 노리즈키 린타 로가 사건의 전모를 설명하는 과정에서 가와시마 리쓰코가 ‘가가미 준 이치’에게 성폭행을 당했노라고 설명하기 직전까지 ‘그럼 그 ‘동생’은 자신의 여동생인 ‘가가미 요코’를 가리키는 것이었고 ‘험한 일’이라 함 은 그저 모질고 악한 행동정도를 얘기하는 건가? 하는 그런 멍청한 생 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물론 -그래서- 마지막 반전에서도 좀 김이샜 죠…-.-;;

음… 그러니까… 제가 이 글을 쓰고 여러분들께 이 곳까지 찾아주십사하 고 부탁드린 이유는, ‘정말로 나만 그렇게 생각한 것인지, 만약 그렇다면 내가 어딘가 ‘잘못’ 읽은 것은 아닌지’가 궁금해서입니다. 주고 받은 말 에 의해 생긴 오해로 인한 헤프닝을 워낙 많이 겪다보니 제가 남의 말을 알아듣는 과정에 어떤 문제가 있는 건 아닌지 생각할 때가 자주 있거든 요. (때문에 와이프한테 ‘바보’ 소리도 자주 듣구요.^^) 아무튼 여러분들 은 어떻게 그 ‘동생’이란 단어를 해석하셨는지 너무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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