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과의사 - 판타스틱 픽션 블랙 BLACK 6-1 리졸리 & 아일스 시리즈 1
테스 게리첸 지음, 박아람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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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븐 킹'이 그의 글쓰기에 대해 흉을 봤다는 이유만으로 '존 카첸버그'의 <어느 미친 사내의 고백>은 '내 머릿속의 독서리스트'에서 순위권 한참 밖으로 밀려났었는데, 이제 막 책장을 덮은 '테스 게리첸'의 <외과의사> 뒷표지에 실린 '킹'의 추천 글을 보고 나니 <어느 미친…>을 다시 순위권 안으로 진입시켜야할 것 같은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 잘은 모르겠지만 '로빈 쿡'이나 '마이클 크라이튼'이 그렇게 형편 없었나 하는 생각도 들구요…

< 외과의사>는 바른생활 형사인 ‘토마스 무어’와 재색을 겸비한 여의사 ‘캐서린 코델’의 이야기를 큰 줄기로 하고 있는데 아쉬운 점이 있다면 이들 캐릭터의 깊이입니다. 이 작품은 제가 읽어본 여타 스릴러에 비해서 자잘한 캐릭터들이 비교적 많이 등장하는데, 잔가지들이 많다보니 각 가지들에 충분한 영양공급을 못해줘 작품이 전체적으로 조금 산만해 보입니다. 독특하다고 느꼈던 ‘리졸리’가 중반까지도 자기 위치를 확실히 하지 못한 채 어정쩡하게 있다보니 막판 바짝 치고 올라오는 장면에서도 극적인 효과를 충분히 누리지 못하는 것처럼 느껴졌고, 그를 추적하는 주인공들과 시소게임을 벌이며 악의 화신으로 우뚝서야할 살인마도 웬지 ‘무어’와 ‘코델’의 로맨스에 밀려 소홀히 다뤄진 탓에 크게 위력적으로 다가오지는 못합니다.

좀 경직된 느낌이랄까요? 하고 싶은 말은 많은데 정작 그 이야기들이 서로 유기적으로 결합되지 못한 듯한 그런 느낌. 어깨에 힘을 빼고 자신이 하고 싶은 이야기보다는 독자들이 듣고 싶어하는 얘기를 했으면 좋지 않았을까 그런 생각을 해 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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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크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2
기리노 나쓰오 지음, 권일영 옮김 / 비채 / 200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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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무한도전'을 보면서 '과연 이 쇼프로의 끝은 어딜까?'라는 생각을 가끔 합니다. 밑도 끝도 없어 보이던 이 프로그램이 언젠가부터 주말 저녁 안방을 장악하기 시작하더니 일정한 포맷도 없이 매회 변화하고 있고 출연자 여섯명의 캐릭터 또한 간격을 두고 바뀌고 있습니다. '무한도전'은 점점 앞을 내다 볼 수 없는 프로그램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 다크>를 읽는 동안도 비슷한 느낌이었습니다. 지하세계로 통하는 계단. 그 계단을 다 내려온 줄 알고 한숨 돌렸는데 알고보니 ‘층계참’이었고. 끝인줄 알았더니 또다른 출발점이었습니다.

무섭습니다. 이 ‘어둠의 자식들’은 도대체 어디에서 튀어 나온걸까요? 아마도 작가의 경험속에서 구체화되어 뚜벅뚜벅 걸아나온 것이겠죠? 하지만 작가도 분명 우리가 있는 이 땅덩어리에 발을 붙이며 살고 있을텐데… 그렇게 살다보면 뾰족하고 모난 부분도 어느덧 세상풍파에 깍이지 않나요? 독합니다. 작가는…

언젠가 ‘그’의 집에 찾아갔을 때 ‘그’는 -얼마동안이었는 지는 알 수 없는, 제 기억속에서만-네번째의 여자와 살림을 차리고 있었습니다. 그 여자가 밥상을 물리러 부엌으로 들어가자 ‘그’가 제게 말했습니다. “저 여자랑 헤어져야 할 것 같다.” ” 왜요?” “몰랐는데 암내가 너무 심해…같이 살 수가 없네.”

책을 읽는동안 언뜻언뜻 ‘그’가 떠올랐습니다. 하지만 ‘그’가 사람을 죽일 용기나 배짱까지 있는지는 잘 모르겠군요.

‘미야베 미유키’님의 <이유>나 <화차>를 읽었을 땐, 가슴이 시리면서도 그녀의 다음 작품을 어서 만나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는데 <다크>는 책을 덮고 난뒤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적어도 한 다리는 건너서 ‘기리노 나츠오’ 여사를 다시 만나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딴엔 그래도 강펀치에 단련이 됐다고 생각했는데 긴 숨 내뱉을 틈을 안주고 날아오는 그녀의 묵직한 어퍼컷은 제 맷집을 무색하게 만들며 그로키 상태로 몰고 갔습니다.

성적 취향을 드러내는 다소 위험한 발언일 지도 모르겠지만  전 ‘히사에’가 가장 마음에 듭니다. ‘미로’는 제가 느끼기엔 좀 영악합니다. 그래도 ‘히사에’는 -적어도 겉으로 보기엔- ‘복수는 나의 것’이라고만 외치는 순진한 구석이 있으니까요…그녀가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시리즈를 기대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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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 Expert in Murder: A Josephine Tey Mystery (Paperback)
Nicola Upson / Perennial / 200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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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가장 좋아하는 ‘아가사 크리스티’ 여사의 작품은 <애크로이드 살인사건>입니다. 물론 ‘트릭’의 경이로움이 그 첫 번째 이유이기는 하지만, 아직도 잊을 수 없는 -범인의 의외성에서 기인한- 결말부분의 공포감은 또 다른 의미에서 큰 이유이기도 합니다. ‘포와로’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한마디 한마디에 손발이 움찔움찔하고 뒷덜미가 서늘하다 못해 오싹해졌던 그 때의 분위기는 아직까지 그 어떤 추리소설이나 공포영화를 통해서도 다시 느껴본 적이 없었던 것 같습니다.

사건 현장에 있었던 혹은 사건에 관련된 용의자들을 한 자리에 불러다 놓고 탐정이 진행하는 범죄의 재구성을 훔쳐보는 이런 식의 결말은 어찌 보면 독자들에게 단순히 미덕이고 혹은 그저 보너스일 수도 있겠지만, 트릭 자체보다는 그 트릭의 기발함에서 파생되는 음흉하고 공포스러운 분위기를 더 즐겼던 저에게는 종종 사건의 복잡함 때문에 느끼게 되는 자괴감(?)과 더불어 살인사건 사이의 공백에서 오는 지루함을, 기나긴 고행(?)뒤에 얻게 될 짜릿한 결말을 누리기 위해 마땅히 치러야 할 대가로 여기게 만드는 도저히 뿌리칠 수 없는 유혹입니다.

이런 면에서 제가 가장 달가워하지 않는 유형의 작품은 전혀 엉뚱한 곳 또는 엉뚱한 사람에 의해서 사건의 전모가 일종의 선전포고도 없이 순식간에 밝혀지는 그런 책들입니다. 그리고 아쉽게도 ‘An Expert in Murder’ 역시 그런 작품들 중의 하나입니다.

추리소설에는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표지 그림에도 불구하고 추리소설이 아니면 생각하긴 힘든 책 제목에 끌려 이 책을 산지가 거의 1년이 다되었지만 그 동안 애써 읽고 싶은 마음을 누르고 영어가 조금 더 늘기를 기다렸던 이유는 ‘아마도’ 이 작품이 ‘본격’일 거라는 기대감 때문이었습니다. 위에서도 말씀 드렸듯이 본격을 좋아하긴 하지만 그 트릭을 쫓아가는 것은 늘 힘들었기에 모자라는 영어로 좋은 작품을 망치는 것이 썩 내키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결국 ‘어떻게’ 보다 ‘왜’라는 쪽에 좀더 기운 결말은 제 지나친 기대와 달리 허탈(?)하게 끝나긴 했어도 –연극무대를 둘러싸고 펼쳐지는- 1930년대의 분위기가 물씬 풍겨나는 시대적 배경은 ‘아가사 크리스티’를 사랑하시는 분들에겐 충분히 어필할 만한 장점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특히 도입부분을 약간 지난 지점에서, 사건과 관련될 인물들을 한 명 한 명 디테일 하게 묘사하며 독자의 환기를 유도하는 장면은 역시 추리소설이 아니면 찾아보기 힘든 매력인 것 같습니다.

작가의 다음 작품(‘Angel with Two Faces’, 02/2009, UK)이 트릭의 까다로움을 좀더 발전시킨 것이 될지 아니면 –개인적으로 느끼기에- 작가자신의 장점이라고 생각되는 서정적이고 드라마틱한 구성에 더 중점을 두게 될 지는 알 수 없지만, 만약 전자의 경우라면 과거의 향수를 그리워하는 추리소설 독자들에게 거부할 수 없는 유혹이 될 것이 분명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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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야성 불야성 시리즈 1
하세 세이슈 지음, 이기웅 옮김 / 북홀릭(bookholic) / 201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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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남자들은 권력을 얻기 위해 노력합니다. 왜냐하면, 남자들 세계에서의 ‘서열’이란게 대체로 이 권력의 의해서 매겨지게 되거든요. 권력은 크게 세개의 형태로 부터 나오게 되는데, 일단 ‘학교’라는 울타리 안에서는 물리적인 ‘힘’이 그것이 됩니다. 그러니까 주먹으로 ‘짱’ 먹는 애가 그냥 ‘보스’가 되는거죠. 하지만 얘네들이 사회로 나오게 되면 그 ‘힘’은 위력을 잃어버리고, 그 자리를 ‘돈’ 과 ‘감투’가 대신하게 됩니다. 때때로 우린 이 중 하나를 가졌지만 다른 하나에 미련을 버리지 못한 사람들이, 그것을 얻기 위해 해서는 안되는 일들을 아무렇지도 않게하는 걸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습니다. 학교 안에서 최고이던 물리적 힘은 -이젠 순서가 바뀌어- 가끔 이 부정행위들의 도구로 사용되기도 하구요. …사설이 길었군요.ㅎㅎ (꼰대같이 굴었다면 죄송합니다. ㅠㅠ)

 

<불야성>의 주인공인 ‘류젠이’는’돈’도 없고 ‘감투’도 없습니다. 그렇다고 ‘쌈질’을 엄청 잘하느냐 하면 딱히 뭐 그런 것 같지도 않습니다. 그래도 그는 잘난 ‘머리’ 하나로 정글의 세계에서 교묘하게(?) 버텨나갑니다. 아무 것도 가지지 못한 그가 생존을 위해 처절하게 몸부림 치는 모습에서, 우리는 먹고 사느라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는 우리 자신의 모습을 보게 됩니다. 같이 아파하고, 슬퍼하고, 때론 통쾌해 하면서요.  <영웅본색>에서의 ‘소마’ 역시 모든 남자들이 한 번쯤 꿈꾸는 영웅이었지요. 하지만 <불야성>의 ‘류젠이’와의 차이가 있다면, ‘소마’가 밝은 ‘지킬박사’요, ‘류젠이’는 어두운 ‘하이드’가 아닐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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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숫가 살인사건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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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3인칭이었을까?"

마지막장을 덮는 순간 제일 먼저 떠오른 생각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소설의 전개나 구조상 주인공격인 ‘순스케’를 ‘나’로 하는 1인칭 시점이 더 어울려 보였기 때문입니다. 또한 작가의 입장에서 생각해봐도 1인칭 시점의 글쓰기가 훨씬 더 쉽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또한 “기존의 추리소설을 뛰어넘는 벅찬감동이 있어 나로서는 눈물을 참을 수 없었다.”고 한 담당 편집자 ‘나혁진’님의 코멘트를 단순한 애사심 차원의 홍보용 멘트가 아닌 진심어린 독후감이라고 인정하고, 이 작품의 옮긴이가 후기에서 밝힌 ‘이 작품은 ‘입시지옥’ ‘스와핑’ ‘가정붕괴’등의 메세지를 독자에게 전달하고자 했다’라는 말이 사실이라면 3인칭이 아닌 1인칭을 썼더라면 그 효과가 더욱 커졌을 것이라는데도 개인적으로 의심의 여지가 없습니다.

"어쩌다 보니, 책보다 영화를 먼저 보게 됐네요. 대표적인 ‘작가’로 평가받는 아오야마 신지 감독이 만들었는데, 초반의 정밀한 묘사가 인상적입니다. 사람의 마음까지도, 젓어까지도 투영되는 듯한 영화더군요. 막판이 너무 설교적이란 생각이 듭니다만, 매력적인 영화입니다. 개인적으로, 저는 경계에 있는 추리소설이 더 나왔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굳이 추리기법 차용을 들먹이지 않더라도, 가능하지 않을까요."

위 글은 ‘김봉석’님께서 ‘비평과 칼럼’란에 실린 ‘임석원’님의 같은 책에 대한 비평글에 다신 답글 입니다.(이런식으로 빌려온 것이 불쾌하셨다면 용서해 주시기 바랍니다.)

- 전 아직 영화를 보지 못했습니다. - 밑줄친 부분을 보면 이 영화의 감독 역시 이 소설이 어떤 교훈적 내용을 담고 있다고 생각하는 듯 보입니다. 반대로 ‘김봉석’님은 그 영화의 막판 ‘설교’가 불편하셨던 모양입니다. 전 이 답글을 읽고 나름대로 가졌던 ‘추측’을 확신으로 바꾸게 되었습니다. 그 추측이란 소설 <호숫가 살인사건>은 읽는 이가 누구냐에 따라 전혀 다른 방식으로 읽혀질 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이 작품을 다 읽은 지금 전 그 어떤 감동도 느끼질 못했고 그 어떤 사회적 메세지도 전달 받지를 못했기 때문입니다. 저에겐 입시경쟁이니 가정파괴니 하는 모든 것이 그저 결말의 극적 반전까지 가는데 필요한 하나의 ‘장치’로 밖에는 보이질 않습니다.

(일본에선 굉장히 뛰어난 운동선수가 나왔을 때 ‘괴물’이란 애칭(?)을 붙여주는 걸 가끔씩 보아왔습니다. 히가시노 게이고’란 작가와는 처음 이지만 웬지 그가 ‘괴물’이란 수식어와 아주 잘 어울린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소설 &lt;호숫가 살인사건&gt;은 마치 유아용 스케치북 같은 작품이라고 생각합니다. 간단한 밑그림만 그려져 있고 거기에 어떤 색을 칠하느냐에 따라 독자가 전혀 다른 그림을 그릴 수 있는 그런 스케치북 말입니다 . “그건 어느 소설이나 마찬가지 아니냐?” 라고 물으실 수도 있을 겁니다. 하지만 보통의 소설들은 ‘어쩌면 내 생각과 다르게 해석될 수도 있겠지’라고 생각하는 정도가 대부분이지 이 작품처럼 고의로 독자의 자의적 해석을 유도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고 봅니다.

전 3인칭 시점이 1인칭이나 전지적 시점에 비해 독자에게 전달되는 정보의 양이 제한 된다는 점에서 추리장르의 소설쓰기에 훨씬 더 적합한 글쓰기 방식이라고 생각합니다. 이것은 다르게 이야기하면 독자가, 작품속 사건의 내용이나 등장인물의 캐릭터에 대해 주인공이나 작가의 개입을 덜 받게 된다는 걸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이런 이유 때문에 ‘히가시노 게이고’가 쓰기 편한 1인칭 대신 3인칭 시점을 택한 것이 아닐까 추측하는 것입니다.

덧붙여 한가지, 이 책을 읽으면서 굉장히 신기했던 점이 있습니다. 그것은 이전에 읽었던 그 어떤 책보다, 배경이 되는 장소의 그림이나 주인공들의 움직임이 훨씬 더 선명하게 떠올져진다는 점이었습니다. 이것이 전적으로 작가의 능력인지 아니면 구질구질한 부연설명을 보태지 않고 독자의 상상력에 맡겼기 때문인지 그것까지는 알 수 없지만 말입니다.

…여기까지가 원래 쓰려던 내용이었습니다. 그런데…

(요아래에는 소설 <호숫가 살인사건>의 결말에 대한 ‘고자질’이 있습니다. 책을 읽으신 분들께서만 스크롤바를 내리실 것을 당부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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