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98, 문명의 전환 - 대한민국 기원의 시공간
전인권.정선태.이승원 지음 / 이학사 / 201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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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 책은 공동저작이자 유고집이다. 이미 고인이 된 저자의 못 다 이룬 작업을, 그의 학문적 동지들이 뜻을 모아 펴낸 것이다. 저자 사후 6년이란 시간이 걸린 뒤에야 책이 나오게 된 것도 이 같은 사정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말미에 수록된 유언(육성 녹음을 풀어 기록한 것이라 한다)을 읽어보면, 하고 싶은 공부를 다 하지 못하고, 쌓아온 생각들을 정리하지 못하고 떠나는 자의 안타까움, 아쉬움과 이를 동료들에게 맡기는 덤덤함(간절한 부탁이면서도, ‘안 해도 그만이고라는 말이 남아 있는 것은, ‘떠나는 자의 말임을 실감케 한다)이 오버랩되어, 가슴이 짠하다. ‘안녕히 계셔요라는 마지막 말이 이렇게 절절하게 다가오는 책은 흔치 않은 듯.

 

2. 책의 내용 자체도, 내가 이 쪽의 문외한이라 그렇겠지만, 흥미로운 문제제기가 많다.

그 중에서도,

-만민공동회의 횃불집회에서 촛불집회를 읽어내는 시각,

-독립신문의 띄어쓰기가 영어의 문명 언어에 영향을 받은 것이라는 지적.

등이 기억에 남는다.

역사학의 역사가 아닌, 다른 분야(정치학, 문학)의 역사를 읽는 재미는 이런 것인지.

그렇기에 더더욱, 이 책이 미완성이라는 사실이 아쉬울 뿐이다.

물론, 저자가 남겨놓은 큰 틀 속에서 그의 동료들이 빈 칸을 메워주곤 있지만,

만민공동회의 실패 이후의 상황(사회진화론과 민족주의만이 남게 되는)까지가 정리가 되었어야 완결성이 있는 작업이 되었을 것 같다.

공동저작의 조율이 원활하지 않은 것인지, 고인의 글과의 연계성이 강하게 의식되어서 인지, 중복되는 서술이 상당히 있다는 점도 아쉽다(비슷한 내용의 서술이야 그럴 수 있다고 해도, 인용되는 자료마저도 똑 같은 것은, 독자 입장으로서 달갑지는 않다).

 

3.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정치학적 역사 서술은 어딘가 위화감이 느껴지는 것 또한 사실이다. (내가 생각하는) 역사학과의 근본적인 시각차이가 있는 것인가라는 생각도 조금 들었다. 문제의식이 현재로 수렴되기 때문인 건지, 과거의 이야기를 하는 데도 과거의 이야기 같지가 않다. 역사학이라면, 과거의 인물을 현재로 끌어 오기전에, 자신이 과거로 들어 가는 것이 필요하다고 (나는) 생각한다. 역사학의 의의는, ‘현재자신이 알고, 당연하다고 여겨지는 것들이, 결코 원래부터그러하지는 않았다는, 스스로가 역사적인간임을 깨닫는데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흠 구체적으로 어떤 점이 이 책에서 그러하냐고 묻는다면, 솔직히 '인상이 그러하다'라고 밖에 대답하지는 못하겠지만;;;;

 여튼, 내가 역사를 공부하고 싶다고 생각한 것도, 커다란 담론보다, 이른바 역사학의 精緻에 아주 조금은 매료되었었기 때문인지, 책을 읽고나니 ‘재밌지만, 이런 건 역사책이 아니야!’라고 말하고 싶어진다. 이래서 사회과학대학의 어느 선생님이 역사학자들이랑 대화가 안 통해라고 말씀하셨던 건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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