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라이브, 각자도생을 거부하라 - 당신은 원래 혼자가 아니다!
시배스천 영거 지음, 권기대 옮김 / 베가북스 / 201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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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먹고 자는 극히 기본적인 활동과 다름 없이, 소속감 혹은 공동체의식 역시 생존의 필수조건이라 생각해 본 적이 있는가? 만원 지하철을 꽉 채운 타인들을, 거리의 노숙자를, 이름도 얼굴도 모르는 옆집사람을 유의미한 개별 개체로, 동일한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인지하는 것', 다시 말해 나와 관련 있고 내가 아는 사람으로 대하는 것이 살아남기 위해 필요한 일이라고 느껴본 적은? 대도시 생활의 익명성과 사람들의 상호 무관심이 문제라고 생각하긴 했어도 막상 문이 열리는 엘리베이터 안에서 핸드폰을 들여다보는 대신 모르는 사람과 눈을 맞추고 가벼운 인사를 나누는 일이쉽지는 않다. 집 밖으로 한 발자국만 나가도 넘치고 넘치는 인간의 물결에 진절머리를 내는 대신 내가 속한 공동체의 번영에 감사하는 마음을 갖는 것이 가능한가? 뿐만 아니라 그것이 생존에 필수적이라고? 정말?  


미국의 저널리스트이자 다큐멘터리 감독인 시배스천 영거는 YES라고 확신한다. 그는 오랫동안 중동에 파병된 미군 부대를 취재하며 파괴되는 사회 속에서 함께 파괴되는 인간 정신과 동시에 그로부터 새롭게 피어나는 본능을 생생하게 목격하고 기록해 왔다. 


우리가 영위하는 하루하루의 삶에서 결핍되어 있는 것은 과연 무엇인가? 그것을 확실히 알아내는 한 가지 방법은, 우리의 삶이 심하게 망가지고 파괴될 때 과연 어떤 태도들이 자발적으로 생겨나는지를 관찰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본문 p.176)

인간은 성공보다는 실패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발전해 왔으므로, 역사상 유래없는 평화의 시기를 구가 중인 현대 사회의 숨은 결핍을 찾아내는 데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이 평화가 단기간에 확실하게 깨지는 사건들을 들여다보는 일일지도 모르겠다.


전쟁이 나면 사회는 아비규환이 되고 정신질환은 겉잡을 수 없이 증가할 것이라는 게 통념이라면, 이 책에서 과장없이 제시하는 많은 예들은 오히려 반대의 진실을 보여준다. 전쟁이나 자연재해와 같은 재난이 닥칠 때, 죽음과 삶의 경계에서 인간은 보다 인간다워 진다. 부자와 빈자, 힘센 자와 약한 자, 남녀노소, 외국인과 내국인, 피부색에 상관없이, 인류가 지금껏 지겹도록 내세워 온 모든 차별이 순식간에 극복되고 살아남은 자들은 오로지 생존을 위해 뭉친다. 적군의 폭격으로 언제 죽을지 모르는 중에도 패닉에 빠지거나 벙커로 숨어드는 대신 노인과 아이들을 보호하고, 식량보급을 위해 공터가 된 폭격지 위에 먹거리를 심는다. 자연스럽게 남은 자원을 모아 나눠 쓰고, 오늘 하루를 또 살아 남았음에 감사한다. 지금 이 순간 옆에 살아있는 형제가, 자식이, 부모가 고마워 저녁 식탁에서 주린 배를 쥐고도 마주 보며 웃는다. 돈 버느라, 공부 하느라 서로 얼굴 볼 새가 없던 가족들이 모인다. 한 여자아이는 가까스로 전쟁지역에서 탈출한 후에 1년도 채 안 되어 다시 가족이 있는 전쟁터로 되돌아 갔다. 전쟁이 터진 이후보다 더 많이 웃었던 적이, 더 행복했던 적이 없었기 때문이라고. 

실제로 전쟁이나 재난 등 사회의 정상적인 기능이 마비되고 대량의 죽음이 발생하는 사건이 터질 때 정신질환은 오히려 급감한다고 한다. 미국의 119 테러 후에도 증가 추세이던 정신질환이 2년 동안 감소하는 패턴을 보였는데, 저자는 그 원인을 위기 앞에 급작스럽게 회복되는 인간 본능, 즉 공동체의식에 있다고 결론 내린다. 고독감, 우울, 자살 등의 원인은 많은 경우 소속감, 즉 타인에게 존중받고 받아들여지는 느낌, 하나되는 느낌의 부재에 있다. 자신보다 더 큰 의미에의 소속, 개인의 존재를 가치롭게 만드는 사회를 경험하지 못하는 인간은 정신이 병든다. 그 결과, 공동체의식 역시 의식주와 마찬가지로 인간이 '인간답게 생존'하기 위한 필수 조건이라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꼼꼼하게 정리 된 방대한 양의 학술자료, 전문가인터뷰, 현장취재가 설득력 있게 주장을 뒷받침한다. 


공동체의식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저자의 태도는 매우 인본주의적이고 열성적이면서도 시종일관 분석적이다. 오죽하면 실험실 쥐들의 공동체로부터도 시사받을 점이 있다고 할 정도니까. 


실제로 모든 포유류 동물은 '동료애(Companionship)'로부터 혜택을 받는 것으로 보인다. 심지어는 실험실의 쥐들도 혼자 있는 것보다 다른 쥐들과 함께 우리에 갇혀 있는 편이 훨씬 더 빨리 트라우마에서 회복된다.

책 전체의 구성은 다소 방만한 느낌이 있지만, '함께 사는 삶'이 입에 발린 정치 구호이거나 이상주의자의 꿈이 아니라 말 그대로 '인류의 생존 조건' 임을 설득하고자 하는 저자의 열성이 공감을 불러 일으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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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생각이 너무 많아 - 넘치는 생각 때문에 삶이 피곤한 사람들을 위한 심리 처방 나는 생각이 너무 많아
크리스텔 프티콜랭 지음, 이세진 옮김 / 부키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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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가끔, 책을 펼치자마자 그 자리에서 끝까지 읽어버리는 경우가 있다. 읽는 동안 팡팡 분출되는 도파민이 느껴지는 책. 

- 난 생각이 너무 많아요.

- 성격이 까다롭고 쓸데없는 일로 끙끙 앓는다는 말을 자주 들어요.

- 머릿속이 늘 복잡해요. 가끔은 생각을 멈추고 싶어요. 

(p. 9)

이런 하소연을 해 본 적이 있다면 이 책은 당신을 위한 책이다. 타인의 어려움에 쉽게 공감하고, 맡은 바 일에 완벽을 추구하고, 스스로를 증명하고 싶고, 정확한 언어 구사를 중요하게 생각하며, 불의에 쉽게 분노하고, 쉽게 질리고, 끊임없는 호기심으로 늘 새로운 것을 찾아 헤매고, 학습 능력이 뛰어나고, 인간의 삶과 죽음이란 무엇인지 궁금하고, 하루에도 몇 번씩 변하는 변덕스런 기분때문에 타인으로부터 핀잔을 듣고, 그런 사소한 핀잔에도 하루 종일 마음이 쓰이며, 서로를 100% 이해하는 완벽한 사랑을 꿈꾸고, 아직 오지 않은 미래에 과도한 불안을 느끼며, 뭐든 쉽게 결정내리지 못하고, 무엇보다도 남들도 당신과 같이 이럴 것이라고 기대한다면, 이 책은 정말 당신을 위한 책이다. 

심리치료사로 오래 일해 온 저자의 노련함과 예리함이 정신적 과잉활동인(지나칠 정도로 왕성하게 활동하는 두뇌를 가진 사람들)에 대한 정확한 분석으로 빛을 발한다. 읽다보면 어느 새 있는 줄도 몰랐던 답답함이 해소되고, 다친 줄도 모르고 있던 마음이 치유된다. 그러나 정신적 과잉 활동인이 아니라면 다소 어리둥절하고 지루할 수도 있겠다.     

 

그야말로 매사에 지나친 것이다. 생각이 지나치고, 질문이 지나치고, 감정이 지나치다. 매사에 ‘super-‘, 나아가 ‘hyper-‘라는 접사가 붙을 만하다. 과잉 행동, 과민, 과잉 감정 ... , 정신적 과잉 활동인은 살면서 겪는 자질구레한 사건들을 매우 민감하고 강렬하게 경험한다. 긍정적으로든 부정적으로든 마음에 와 닿은 것이 있으면 크리스털처럼 울리고 동요한다. 별것 아닌 일조차도 그들에겐 보통 사람이 짐작할 수 없을 정도로 크게 다가올 수 있는데, 특히 그들의 가치 체계에 관련된 일이 그렇다. 지각, 감정, 감수성..., 모든 것이 부풀려 진다. 사실, 그들은 감각 체계 및 감정 체계 자체가 과민하다. 예민한 지각은 신경학적인 이유에서 비롯되어, 현실을 지각하는 단계부터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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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레나, 밀레나, 황홀한 경기문학 3
배수아 지음 / 테오리아 / 201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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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수아 작가가 오랜만에 소설 신간을 냈다는 소식을 접한 날, 바로 구매를 눌렀다. 2016년 경기문화재단 전문예술창작지원 선정작으로 단편 두 편을 함께 묶어낸, 시집만한 크기와 가격의 책인데, 한동안 번역에만 몰두하는 듯 보였던 작가의 새 문장에 목말라하던 나로서는 이 두께도 감지덕지. 단편영화 감독의 하루를 다루는 표제작 <밀레나, 밀레나, 황홀한>과, 혼외자로 태어나 집안의 수치로 여겨져 금기시되는 인물 경희를 둘러싼 이야기 <영국식 뒷마당>, 두 편이 실려 있다. 감상을 한 구절로 요약하자면 '반복을 통한 평범의 비범화' 라고 부를 수 있을 것 같다.

표제작인 <밀레나, 밀레나, 황홀한>은 단편영화감독 험윤의 하루를 다루는데, 작가의 페이스북을 팔로잉 중인 나로서는 묘하게 작가 본인의 하루 일상을 그리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즐거운 상상을 했다. 얼마 전 그녀의 포스팅에서 읽은 것처럼, 욕조에서 책 읽기를 좋아한다는 작가의 모습이, "험윤이 가장 사랑하는 일은 미지근한 물속에 잠긴 채 책을 읽는 것이다."라는 문장 위로 오버랩 되기에. 곱게 간 커피 가루에 곧바로 끓는 물을 부어 천천히 식혀가며 마시는, 깔깔한 가루의 촉감을 즐기는 일로 하루를 시작하는 험윤의 모습도, 심플한 아침 식사와 규칙적인 운동으로 균형잡힌 금욕적 생활을 영위하는 모습도, 집안 곳곳 손이 닿는 모든 곳에 서로 다른 종류의 책을 비치해 두고 동시다발적으로 돌아가며 읽는 것도 모두 작가 자신의 하루를 그린 것이 아닐까 싶은 묘사들. 디테일은 다를지언정 그 자족적 독립성은 분명 그녀의 모습을 상당 부분 카피해 오고 있는 것이 아닐까 상상하며 읽는 동안 즐거웠다. 

소설의 도입부는 이렇게 꼼꼼하며 아무런 사건도 추가 등장인물도 없는 일상의 묘사로 채워진다. 유일하게 비일상적인 사건이라면, 험윤이 자신의 소유가 아닌 것이 분명한 누군가의 책을 집 안에서 발견하는 것 뿐이다. 그저 어깨를 한 번 으쓱할 정도의 비일상성. 그는 아무 페이지나 펼쳐 <밀레나에게 보내는 편지> 를 읽는다. 아무 페이지나 펼친 것이므로 '밀레나'가 누구인지 어떤 일을 겪었는지 알 수 없다. 욕조의 물이 식을 때까지 알 수 없는 어느 여자, 밀레나의 이야기를 읽고 험윤은 밖으로 나간다.

이 부분에는 문체의 맛도 특별한 감성도 딱히 느껴지지 않기에 페이지를 넘기다보면 집중력이 풀리면서 자칫 지루해 보일 수 있는 문장들을 꼬박꼬박 다 읽어나가야 하는지 과감히 스킵할지 망설이게 된다. 그러나 그저 읽어 나가다 보면 '지극히 사소하고 평범한 일의 묘사일 뿐인 문장들'이 몇 번이고 반복된다. 반복이 거듭되면서, 시선을 끌고, 힘을 얻는다. 

험윤이 아파트단지를 나갈 때마다 지나쳐야 하는 긴 낭하는 '아무와도 마주치지 않으며, 아무도 그와 마주치지 않는' 곳으로 묘사된다. 지극히 일상적인, 평범한 아파트단지의 긴 낭하를 지나가는, 나가고 들어오는 활동의 묘사일 뿐이다. 그러나 아침에 '아무와도 마주치지 않으며, 아무도 그와 마주치지 않는' 낭하를 지나 시내로 나간 험윤이 그날 저녁 집으로 되돌아 올 때, 그 낭하는 여전히 같은 풍경이면서 동시에 같지 않은 어떤 것이 되어 있다. 


"오전에 집을 나설 때와 같은 풍경이다. 어제도 그리고 그 전날도 항상 같았던 변함없는 집들의 풍경. 늦은 밤, 그의 발소리가 낭하에 유난히 크게 울린다. 손가락처럼 갈라진 커다란 이파리의 화분 그림자가 어느 집의 창가에서 흔들거린다. 고양이가 운다. 수도관을 흐르는 물이 운다. 귀뚜라미와 창틀이 여리게 운다. 긴 다리를 가진 밤의 거미가 운다. 방충망에 달라붙은 채 전 생애를 보내는, 투명한 날개의 회색 나방이 운다. 부유하는 꿈들이 운다. 그 모든 것들의 울음 소리가 낭하에 가득 울려 퍼진다."


낭하를 지나가며 귀에 들어오는 것들은 모든 것들의 울음 소리다. 그리고 그는

"아무와 마주치지 않으며, 아무도 그와 마주치지 않는다. 그는 아무에게도 자신에 대하여 묻지 않으며, 아무도 그에게 그에 대하여 묻지 않을 것이다."


그 날 하루 그에게 일어난 어떤 일이 밤의 낭하를 울음으로 가득 찬, 스스로를 낯설게 만드는 의미 부재의 공간으로 바꿔놓았다. 아무와 마주치지 않으며 아무도 그와 마주치지 않는 일상성은 이 반복에서 비일상적인 의미를 획득한다. 작가는 여러 가지 이미지의 묘사를 반복하면서 그 때마다 조금씩 디테일을 더해 간다. 반복의 사이에 벌어진 일이 더해지는 디테일에 의미를 부여한다, 우리가 일상에서 경험하는 것처럼. 매일의 삶이 의미를 획득하는 방식은 익숙한 것들의 반복과 그 사이의 사건 간의 비관계성에도 불구하고 사건이 일상의 반복을 채색하는 것이다. 아침에 험윤이 읽었던 '밀레나'는, 아무도 아닌 어떤 여자, 지극히 평범하여 존재를 특정할 수도 없을 만큼 평범한 여자, 단순히 '평범한 것으로서의 아름다움'을 가진 여자를 만남으로써, '아무도 아닌 밀레나'로서 그 '특정할 수 없음'으로 인해 '특별'해진다. 반복을 통해 평범함을 주목할 때 평범은 비범이 된다. 


이런 반복에 의한 의미의 획득은 <영국식 뒷마당>에서도 동일하게 전개된다. 화자는 집 안의 혼외자, 뇌수막염에 결려 오랫 동안 병원 신세를 지다가 친척들 집을 전전하게 된 인물, 경희와 이야기를 나누게 된다. 경희에게서 처음 들은 말, "나는 마침내 영국식 뒷마당으로 가는 길을 찾아낸 거야...... ." 라는 문장에 매혹되어 그녀는 금기된 경희와의 대화를 시작한다. 그저 경희의 상상 속의 공간인 '영국식 뒷마당으로 가는 길'은 그 자체로 사건도 아니고 의미도 없지만 운율을 가진 노래의 후렴구처럼 소설 내내 반복됨으로써 그 동화스러운 신비함이 증폭되고, 실재 여부와 상관없이 화자와 독자를 매혹한다. "그것은 이상한 노래 같았고, 여러 가지 동화에서 한 조각씩 가져와 이어 붙인 연결되지 않는 만화경 같기도 했으며, 거꾸로 돌아가는 필름 같기도 했고, 미친 여자의 독백, 혹은 잠든 사람의 무의미한 웅얼거림, 혹은 고양이나 뻐꾸기의 울음처럼 이해할 수 없는 소리 같기도 했다. 하지만 그것은 나를 매료시켰다." 는 화자의 독백은 이 소설이 의도한 독자의 심정이 아닐까. <영국식 정원>은 반복의 미의식을 탐구하기 위한 작가의 실험같다는 생각이 든다. 마치, '영국식 뒷마당'이라는 이미지의 반복만으로 '이상한 노래' 같기도 하고, '연결되지 않는 만화경'이기도 하며, '거꾸로 돌아가는 필름' 이나 '미친 여자의 독백, 혹은 잠든 사람의 무의미한 중얼거림' 혹은 '고양이나 뻐꾸기의 울음처럼 이해할 수 없는 소리'같기도 한 어떤 것을 창작해 보고자 한 실험. 


배수아 작가의 글에서 기대할 수 있는 실험성을 충분히 즐길 수 있었던 작품들. 따뜻한 커피 한 잔이 채 식기도 전에 게걸스럽게 읽어내려간 문장들이 더 읽고 싶어 아쉬운 글들이었다. 다만, 짧은 길이의 탓이었을까, 조금 너무 실험적인 탓이었을까, 형용할 수 없을 것만 같은 예민한 감성을 발라내는 그녀의 솜씨가 살짝 덜 보인 느낌이어서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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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생 돈에 구애받지 않는 법 - 항상 돈에 쪼들리는 사람에게
고코로야 진노스케 지음, 김한나 옮김 / 유노북스 / 201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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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생 돈에 구애받지 않는 법'


오래 살진 않았지만 평생 이런 책을 사 본 적이 없었다. 이 무슨 사기성 제목인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에는 샀다. 왜냐하면 이 책을 쓴 사람이 자기개발전문가나 투자상담가가 아니라 심리상담사여서. 돈을 화두로 사람에 대해 이야기 하려는 걸까, 아니면 정말 돈에 관한 이야기일까 궁금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잘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파트타임으로 일하면서 다시 학생 신분이 되고 나니 돈이 궁했다. 입에 풀칠 못할 만큼은 아니어도 공부가 길어지면 머지 않아 힘들어질지도 모르겠단 예상을 하던 참이다. '돈 잘 버는 법'에 관한 책은 아니고, 분명 '구애받지 않는' 법을 알려준다는데 믿거나 말거나 하는 마음으로 구매를 눌렀다. 


표지 뒷페이지 작가 소개란은 '일본 도쿄와 교토를 중심으로 활동하면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는 심리상담사.' 라고 시작하는데, '선풍적인 인기를 끄는' 것이면 뭐든지 일단 의심의 눈초리로 보는 꼬인 성격의 나로서는 제목과 함께 지은이의 첫 소개도 마음에 안 들었으나, 기왕 샀으니 첫 장을 넘겼다.


"돈이 많으면, 좋아하는 물건을 구입할 수 있고 호화로운 요리를 먹을 수 있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떠받들어 주고 원하는 장소에 갈 수 있습니다. 또 매장 점원이 귀한 손님으로 대접해줘서 마음속이 만족감으로 가득 찹니다.

그래서요?

당신은 안심할 수 있습니다."

-본서 1장 에피소드1 '내가 돈으로 정말 하고 싶은 것은 무엇인가?' 중-  


멈칫했다. '정말로 원하는 것은 사실 돈 자체가 아니라 돈이 많을 때의 안도감'이라는 해석은 한 번도 생각해보지 않았으나 분명한 사실이었다. 실제로 통장 잔고와 상관없이 앞으로 돈이 궁해질지도 모른다는 불안 때문에 이 책을 샀으니까. 안심하고 싶어했던 게 분명하고, 꼬박 꼬박 월급이 들어올 때도 지출의 즐거움을 위해 돈을 모았던 것은 아니었다. 

첫 장의 인상이 꽤 강렬해서 술술 책장이 넘어 간다. 


"돈은 일해서 받는 '대가'가 아니다."

"돈은 아낄수록 사라지고 쓸수록 들어온다."

"오늘의 돈 문제는 오래된 가족 문제에서 비롯되었다."

"열심히 하면 오히려 돈이 들어오지 않는다."

......


상식과 정반대의 도발적인 제목들인데, 전체를 요약하면, 우리는 돈을 좋아하는 것이 아니라 돈을 가지고 있을 때의 마음의 평화(안심)를 원하는 것이고, 무조건 아끼려고 노력하는 이유는 돈을 벌기 어렵다는 생각때문인데, 사실 돈은 공기처럼 주변 어디에나 있고 무의식중에 공기를 들이마시듯 자연스럽게 흘러다니는 것이라는 내용이다. 무릎을 딱 칠 만큼 맞아! 하고 공감되는 내용은 아닌데 그렇다고 딱히 논리적으로 반박하기도 어려우며, 묘하게 설득력이 있다. 


어릴 때부터 돈은 노동의 대가이고, 고생해야 얻을 수 있고, 불로소득은 나쁜 것이라는 편견(?)을 교육받아 왔기 때문에 대부분의 사람들이 돈에 대해 부정적인 견해를 기르게 된다는 말에는 특히 수긍이 간다. 저자의 말처럼 돈은 어디까지나 '가치의 상징'이지 그 자체에 도덕성은 없다. '좋은 돈 나쁜 돈'의 구분은 돈을 '벌거나 쓰는 과정의 행위에 대한 도덕률'을 돈에까지 확장에서 적용하기 때문에 생기는 일종의 논리적 오류이다. 그래서 돈 자체에는 옳고 그름이 없다. 돈은 있거나 혹은 없을 뿐이고, 있다면 어디에 어떻게 쓸 것이냐가 더욱 중요하다는 것이다. 


그 외에도 돈은 쓸 수록 들어온다던지, 돈의 흐름을 만드는 것이 악착같이 모으기만 하는 것보다 더 중요하다던지 하는 여러 가지 돈에 대한 흥미로운 이야기들이 펼쳐지는데, 그 중에서 책을 덮은 후에도 계속 기억에 남는 것은 '존재급'이란 개념이다. 저자는 책의 초반부에 아주 흥미로운 질문을 던진다. 


"아무 일도 하지 않는 당신은 이 사회에 기여하는 게 전혀 없는 존재입니다. 아무런 성과를 내지 못해서 남들에게 폐만 끼치고 잠만 자는 상태입니다. 

자, 그런 당신이 매달 받을 수 있는 돈은 얼마일까요?"


질문을 읽자마자 순간적으로 0원이라고 대답했다. 저자는 설명하기를, 실제 "어느 정도의 가치가 있는가?"가 아닌 "어느 정도의 가치고 있다고 '생각하는가?'" 하는, 다시 말해 자기 스스로 인정하는 '자신의 가치'가 바로 '존재급'(월급의 기본급에 해당)이라고 한다. 나처럼 0원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스스로 생각하는 자신의 가치를 0원이라고 여긴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웁스. 

이처럼 자각하는 존재가치가 낮은 사람은 열심히 일해서 스스로의 가치를 높이려고 하는데 여기에 해당하는 것이 '성과급'이란다. 같은 돈을 벌더라도 존재급이 높은 사람은 성과급을 많이 얻을 필요가 없어 여유롭고, 존재급이 낮을 수록 성과급으로 필요한 양만큼의 돈을 벌어야 하기 때문에 더 힘들다는 설명이다. 왠지 억울한데, 맞는 것도 같다. 실제로 월급과 일을 생각해 봐도, 같은 일을 할 때의 퍼포먼스는 월급과 상관없이 거의 일정하다. 내가 기대한 월급이 300만원인데 실제로 100만원을 받는다고 그 차이만큼 덜 하는 것은 아니고, 500만원을 받는다고 정확히 차액만큼 더 일하는 것도 아니지 않은가. 마찬가지로 인간으로서 존재하는 나의 퍼포먼스는 일정하고, 그에 대해 스스로가 부여하는 가치는? 분명 제로는 아니어도 괜찮을 것 같다. 


조금은 기대했던대로, 돈을 화두로 사람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책이다. 누구나 자신이 충분히 가치 있다는 생각(높은 존재급)을 할 때 걱정하지 않아도 돈은 자연스럽게 들어온다는 것이고, 그 흐름을 억지로 끊지 않으면, 다시 말해 악착같이 벌어들이기만 하고 선소비를 하지 않으려는 욕심만 버리면 돈은 공기처럼 돌고 돌아 언제라도 부족하지 않게 유지된다는 이야기다. 결국 자신의 가치를 많이 인정할 수록, 돈에 대한 불안에서 벗어날 수 있다. 이런 해석하에서, 공감가는 논리다. 

돈에 대한 새로운 시각, 그보다도 스스로의 가치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해 준 책. 흥미로운 책. 

처음 한 번은 반신반의하며 훑듯이 읽어버렸지만 시간이 흐른 후, 어쩌면 책장에서 다시 꺼내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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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분의 기적
키아라 감베랄레 지음, 김효정 옮김 / 문학테라피 / 201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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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다른 사람들이다. 서로 아주 다르다. 우리가 책을 읽는 이유는 다양하다. 지루해서 책을 읽고, 호기심 때문에 책을 읽고, 일상에서 도망치고 싶어서 책을 읽고, 일상을 정면으로 마주하고 싶어서 책을 읽고, 지식을 알고 싶거나 망각하고 싶어서 책을 읽고, 머릿속을 파고드는 괴로운 생각을 완화하거나 털어 버리고 싶어서 책을 읽는다.

- 본문 p.156-

그 뿐만이 아닐 것이다. 문득 거울 속에 짙은 다크써클을 드리운 낯선 사람이 서 있을 때, 왕복 12차선 횡단보도를 건너며, 출퇴근 만원 지하철 안에서, 저녁의 번화가 불빛 아래를 우르르 몰려다니는 사람들의 무리에서 자신의 얼굴을 마주칠 때 우리는 책을 읽게 된다. 나를 알 수 없을 때, 너와 다른 유일무이한 나의 존재가 의심스러워 질 때, 나조차도 나를 받아들이기 힘들 때, 어떻게든 '나'라고 생각되던 것의 파편을 그러모아 재구성해야 할 때 책을 읽는다. 꼭 책의 주인공처럼, 인생에 호되게 꼬라박혀 혼미한 정신으로 여기가 어디인지 구분조차 어려울 때, 아침에 눈이 떠지면 눈 뜬 것이 후회될 때, 이 책을 읽었다.


평생을 살아온 고향을 떠나 대도시 로마로 이주하자 마자 남편과의 이별과 갑작스런 실직이 36살의 주인공에게 찾아 온다. 남편은 출장지에서 만난 여자와 사랑에 빠져 전화로 돌아오지 않겠다고 통보하고, 오래 기고하던 잡지사의 칼럼란은 TV쇼에 출연하는 유명인에게 뺏긴다. 불안, 두려움, 무기력과 슬픔, 분노가 혼자 덩그러니 남겨진 낯선 집안을 채운다. 

주인공은 상담을 받지만 별 차도가 없다. 그러다 의사의 새로운 처방을 받는다. 한 달 동안 매일 단 10분 간만 평생 해 본 적이 없는 새로운 일을 해보라고. 


35년 동안 살아온 고향 마을을 떠나, 18살 이후로 줄곧 함께했던 남편과도 떨어진 채, 처음 경험하는 갑작스런 실직까지 이 모든 것이 이미 처음 겪어 보는, 예상한 적도 기대한 적도 없으며 대처 불가능한 변화인데. 삶의 의욕을 잃은 그녀에게 의사는 예상 밖의 임무를 주었다. 그리고 첫 날, 그녀는 생전 처음으로 미용실에 가 매니큐어를 바른다. 평소라면 절대 선택하지 않을 화려한 자홍색 매니큐어를. 신체의 일부를 낯설게 함으로써 '스스로에게 무심해 지는 순간'의 기분이 나쁘지 않아 그녀는 이 게임을 계속해 보기로 결심한다. 


게임은 일상의 소소한 발견으로 채워진다. 누텔라를 바른 팬케이크 만들기, 길거리에서 뒤로 걷기, 힙합 춤추기, 씨앗 심기, 한 번도 궁금해 한 적 없던 엄마의 인생에 대해 질문하기......


게임이 계속되어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해결책은 생기지 않는다. 남편은 돌아오는 것도 아닌 것도 아닌 상태로 그녀와의 관계를 바라고, 새로 쓰기 시작한 소설은 좀처럼 진도가 나가지 않는다. 불안과 두려움도 그대로이다. 친구들의 걱정과 관심이 아니라면 먹고 마시는 일조차 귀찮을 만큼의 끈적한 무기력과 피로감도 사라지지 않는다. 

그러나 몇 달이나 살아온 이 거리에 중국인 가게가 있고, 수예점과 꽃집이 있고, 생선 가게가 있다는 것을 처음으로 알게 된다. 중국인 가게 주인은 무뚝뚝하고 말이 서툴지만 마음이 따뜻하고, 수예점 할머니는 어릴 적 친할머니를 꼭 닮았으며, 꽃집에서는 고추씨와 상추씨를 팔며, 생선 가게에서는 모두가 크리스마스 만찬준비를 위해 모인다는 것을 알게 된다. 뒤로 걸어도 사람들은 아무도 이상하게 보지 않고, 세상에는 마법에 걸린 것 같은 팔다리로 멋지게 힙합을 추는 소녀가 있으며, 걸핏하면 쏟고 깨는 서투른 손으로도 맛있는 티라미수를 만들 수 있다는 것도 배운다. 


그리고 변화에 몸을 맡기고 나아가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배운다. 우리가 현재를 얼마나 확고하다고 여기며 살아가는지, 하지만 사실은 얼마나 바늘끝같은 확률로 위태롭게 지속되고 있는 것인지를 배운다. 그럼에도 인생이 어떻게든 지속될 수 있는 까닭은 그 아슬아슬한 확률을 지속되도록 도와주는 친구들이 있는 까닭임을 배운다. 생각보다도 훨씬 많은 사람들이, 나를 걱정하고, 안녕을 바라며, 만나러 와 준다는 것을 배운다. 책 속의 그녀가 배우고, 내가 배운다. 

 

이 책은 지금 떠나고 있는 사람에게, 넘어진 사람에게, 쓰러져 울고 싶지만 자존심이 허락치 않거나, 전력으로 도망치고 싶으나 어떻게 해야할지조차 감이 오지 않는 사람에게, 내일이 없는 사람에게, 오늘이 두려운 사람에게, 인생의 맨 얼굴을 마주하고 몸서리치고 있는 사람에게, 당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건지 자신조차 낯설어질 만큼 알 수 없는 사람에게 추천한다. 그리고 '인간을 위해 인간이 만들었으나 비인간적으로 과대망상에 빠진 것 같은(본문 p.224)' 지금 우리의 도시에서 길을 잃는 것은 누구에게나 있을 수 있는 일이니 당황하지 않아도 된다고, 너무 겁낼 필요 없다고, 10분 게임을 하듯이 매일을 채워가보는 것은 어떠냐고 말해주고 싶다. 인생을 '인생'이라 부르는 순간 추상적이며 모호한 어떤 것으로 변해버리지만, 실은 이케아 매장에서 '팬케이크 만들 때 쓸 고무 냄비 손잡이(본문 p.225)'를 고르는 것만큼 단순하고 확실하며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것이라고 어렴풋이, 알 듯 모를 듯 그런 듯한 감이 들기 때문이다. 

알 듯 모를 듯 괜찮을 듯한.   


**참고: 두껍지 않은 책인데도 오탈자가 제법 눈에 띄고, 매끄럽지 않은 문장들이 있으므로 책 내용과 상관없이 별 4개를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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